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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 지음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1이라는 숫자가 무려 네 번이나 겹치는 11월 11일, 친구끼리 우정을 전하며 '키 크고 날씬하게 예뻐지자!' 라는 의미에서 빼빼로를 선물하기 시작된 일명 '빼빼로데이'가 수일 지난 지금, 박생강 작가의 소설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를 만나게 되었다. 박생강 작가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제목만 보고는 제과업체의 상술에 편승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를테면 빼빼로데이에 빼빼로를 하나도 받지 못한 싱글남의 하소연이 담긴 소설이라는 둥 말이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와 달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 생각대로 전개되는 이야기였다면 한 번 읽으면 남는 게 하나도 없는 진부한 로맨스 소설 중 하나일 테니 말이다.
이 책은 막대 과자, 즉 빼빼로에 대하여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빼빼로에 대해 불안장애를 일으키는 공포증을 가진 빼빼로포비아(phobia)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스무 살의 젊은 여성 고객, 한나리가 심리 상담사 민형기와 상담하면서 시작한다. 그녀의 고민은 빼빼로포비아인 남자친구에 대한 상담이었다. 요즘 본방사수 중인 드라마에서는 피노키오 증후군이 나오더니 읽는 책에선 빼빼로포비아가 나온다. 하긴 제정신으로 살기 힘든 세상이니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런 증상들도 왠지 그럴듯해 보인다. 아무튼, 상담 대상인 그녀의 남자친구는 스윗스틱이라는 막대 과자 체인점으로 성공한 기업가였다. 빼빼로포비아가 '달콤한 막대'라는 막대 과자를 판다? 갑자기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의문스러워졌다. 그러더니 심리 상담사 민형기가 빼빼로포비아와 만나는 순간, 이 모든 내용이 스윗스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김만철의 소설 속의 이야기였다고 밝혀진다. 멘붕.
헐…. 뭐지 이 상콤한 기분은? 하며 계속 읽어나갔다. 소설 밖 현실로 돌아온 지금, 김만철은 자신이 일하고 있는 스윗스틱의 사장에게 초대를 받는다. 김만철의 소설 속 스윗스틱 사장은 빼빼로포비아였다. 초대에 응한 김만철에게 사장은 자신이 실리칸이라는 외계인이라고 뜬금없이 커밍아웃을 한다. 으아…. 심리 상담사가 등장하는 평범한 소설에서 갑자기 미스터리 SF 장르가 되었다. 와 이게 뭐지? 분명 황당한 전개임에도 뒷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이래서 막장 드라마의 시청률이 높은가보다. 욕하면서도 궁금하거든…. 정말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박생강 작가. 왠지 그의 다른 작품을 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이 책 정말 마약 같은 소설이다.
본문 중에 와 닿는 내용이 있어 소개하고 글을 마치겠다.
이 시대의 인간은 어쩌면 빼빼로 피플이네. 인간은 태어나기를 딱딱하고 맛없는 존재로 태어났지.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개성이란 달콤한 초콜릿을 묻히지. 타인을 유혹할 수 있는 존재로 특별해지기 위해. 하지만 그 개성의 비율 역시 언제나 적당한 비율, 손에 개똥 같은 초코가 묻어나 불쾌감을 주지 않는 적정선의 비율로 필요하네. 그게 넘어가면 괴짜라거나 변태 취급을 받기 쉽지. 그렇게 이 시대의 인간은 모두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는 양 착각하지만 실은 모두 똑같은 봉지 안에 든, 더 나아가, 똑같은 박스 안에 포장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초코 과자 빼빼로와 비슷하다네 - 본문 145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