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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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의 <샤일록 작전>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심층적 배경으로 다루면서도 작가 특유의 재치와 유머가 속속들이 빛나는 작품이다. 

 샤일록은 셰익스피어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대인이다. 그는 돈을 빌려간 사람의 살을 '3천 두카트' 베어내려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질 고리대금업자이다. 필립 로스는 이 작품을 통해 (그 자신이 유대인이면서도) 샤일록의 기질을 이어받은 전세계 유대인의 속성 한 면을 철저하게 비판한다.

 최근에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으로 수많은 어린이와 여성 등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세상 건너편 뉴스만으로 보던 이 비극을, 유머와 비유와 심오한 달변으로 버무린 한 권의 명작 소설로 접한 경험은 특별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작가 자신인 필립 로스다. 그는 아하론이라는 작가를 인터뷰하러 예루살렘에 가고, 거기에서 자신을 사칭하는 또 다른 필립 로스와 조우한다.

 가짜 필립 로스에게 모이셰 피픽이라는 조롱 섞인 이름을 지어주는 그는, 분쟁의 한복판인 예루살렘에서 여러 가지 기이한 일들에 휘말린다. 사방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깔려 있으며 아랍인과 유대인의 극한 긴장이 도사리고 있는 곳, 그곳에서 자기를 사칭한 피픽과 갈등하며 작가는 불같이 화를 낸다. 

유대인 학살의 주범 '공포의 이반'이라 불리던 간수, 데미야뉴크의 재판에 참석하기도 하고, 팔레스타인 사람인 친구 조지의 집에 들렀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죽음의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또한 분노의 대상인 피픽의 애인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자신을 따라다닌 이스라엘 사복 경찰에게 납치되기도 한다.


사실 암투병 중인 피픽은 한때 탐정으로서, 지금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유럽으로 집결하는 대의를 위해 행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간호사인 징크스가 있다. 하지만 필립의 눈엔 두 남녀가 시종일관 의심스럽기만 하다.

 홀로코스트 희생자인 사촌 앱터를 만나러 가다가 필립은 한 유대인 노인, 스마일스버거로부터 100만 달러를 얼떨결에 받게 된다. 하지만 친구 조지의 집에 들렀다 돌아가는 위태로운 한밤중에 돈을 잃어버리고,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과 미스테리로 접어든다.


 종교와 역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소설은 때로 작가의 긴 사설이 상당 분량 쏟아지기도 해서, 마치 의식의 흐름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결국 마지막에야 밝혀지는 비밀.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의 첩보작전을 지휘한 스마일스버거의 큰그림이라는 것.

놀라운 것은 (마지막 장에서) 스마일스버거가 계획한 긴 이야기의 전말을 들으며, 필립 로스는 그토록 분개했던 사기꾼 피픽이 사실은 그를 구원해준 것이나 다름 없다는 진실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허구인지 진실인지를 궁금해하는 독자에게, 작가는 모호함의 그물을 던지는 매력적이고 영리한 결말을 선사한다.


 "책임질 의무가 없는 유대인, 세상이 자신의 마음에 쏙 든다고 생각하는 유대인, 편안한 유대인, 행복한 유대인, 가요. 선택하고, 취하고, 가져요. 당신은 어떤 불행한 운명도 없이 축복받은 유대인이오. 특히 무엇보다도 우리의 역사적 투쟁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기억에 남는 스마일스버거의 대사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가진  유대인이지만 지구상 어딘가에선 또 다른 학살자가 되고 있는  모순. 필립 로스만이 꼬집을 수 있는 이 어려운 현상.

어떤 민족이 권력에 희생되고 권력을 휘두르게 되는가. 이 역사적 딜레마를 우리는 늘 생각하고 토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현실의 정치, 역사, 문화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가져야만 한다.

 과연 역사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정해져 있는 것일까. 복잡함에 빠지기 싫은 독자들이라면 픽션이라는 허구적 장치에 의지하며 즐기면 된다. 대작가의 능력은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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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하우스
피터 메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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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가슴 졸이게 하는 한 편의 장대한 드라마다.

초반엔 스릴러와 추리물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한 형사의 어두운 과거를 향해 나아가는, 봉인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드라마다.

소설 초반부의 살인 사건과 대단히 사실적인 검시 장면은, 앞으로 잔혹하게 흘러갈 것만 같은 이야기의 수위를 예고하며 잔뜩 심장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표지에 있던 스코틀랜드 호러 스릴러의 정점라는 문구가 시작부터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도입 부분 핀의 꿈에 나타난 이미지를 떠올려 봐도 그렇다. 회색빛 머리카락의 괴물같은 거한이 고개를 옆으로 하고 핀을 내려다보는 장면, 핀은 소스라치듯 놀라 가위에 눌리듯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나고, 이건 누가 뭐라 해도 미스터리 호러물다운 시작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작품을 다 읽고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이 책은, 겉으로는 호러 스릴러의 무늬를 가지고 있지만, 속은 깊고 진한 인간의 삶과 운명을 다룬 정통 드라마라는 것이다. 멜로와 휴먼과 서스펜스를 종합선물세트처럼 지니고 있는. 책을 읽는 도중 때때로 이언 매큐언의 <속죄><체실 비치에서>와 같은 비극적 운명과 회한, 놀라움과 감동의 회오리가 솟아올랐다. 그만큼 재미있고, ‘극적 드라마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었다.

그것도 스코틀랜드 바닷가 마을의 황량하고 이국적인 풍경을 분에 넘치도록 만끽할 수 있는 드라마. 보너스같은 배경이 주는 풍성한 자연의 묘사 속에 고전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운명의 아이러니, 다양한 감정들은 생생하게 넘실거린다.

사랑과 우정, 질투와 분노, 용기와 후회, 복수와 회한이, 그리고 이 슬픈 운명의 서사 속에 몰입한 독자들은 황홀한 북부 바다의 내음을 느끼며 비밀의 출구를 향해 발을 내딛게 된다. 과연 에인절 맥리치의 살인범은 누구인가. 주인공의 과거와는 어떤 인연으로 얽혀 있는가. 출구의 문턱에서야 작품의 처음과 끝이 긴밀하게 이어지고, 안 스커 섬에서 봉인된 비밀이 놀라운 반전으로 실체를 드러낸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작가의 뛰어난 묘사력이다. 독자들의 머릿속을 입체적 상상력으로 가득히 채워넣는 디테일한 묘사들은(비록 번역본일지라도) 눈으로 활자를 씹어가며 맛을 보는즐거움마저 던져준다.

어린 시절 마샬리를 농장으로 바래다주던 들판, 트랙터 타이어를 훔치던 밤의 풍경, 바르바스 황야와 해리스 산맥, 크롬웰 거리를 휘젓는 스산한 비바람, 안 스커 섬에서 가넷새를 잡고, 도살하고, 훈제하고 소금에 절이는 디테일한 작업들, 18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핀이 그동안 한번도 찾지 않았던 부모님의 묘지에서 오열하는 장면 등 - 생생하게 살아있는 묘사의 힘 덕분에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깝기만 했다.

 

그와 동시에 안개가 옅어지면서 구름 틈새로 햇살 파편이 쏟아졌고, 번들거리는 섬은 완전히 대조되는 명암을 뿜어냈다. 꼭대기에서 눈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끊임없이 흩날렸는데, 조금 후 그 눈송이가 새 떼임을 깨달았다. 날개 끝이 검푸르고 노란 머리가 멋들어진 흰 새로, 날개 길이가 거의 2미터에 달했다. 가넷새였다. 수천 마리나 되는 가넷새가 하늘을 가득 채우고, 하늘색을 바꾸면서 요동치는 대기의 흐름을 탔다.

 

 

 

 

또 하나의 매력은 비극적 운명의 서사가 주는 감동이다.

캘럼이 절름발이가 되어야 했던 밤의 모험들, 이후에 에인절 맥리치가 외로운 캘럼에게 단 하나의 친구가 되어준 아이러니, 마샬리와 핀, 아슈타르의 끊어질 듯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온 사랑의 줄다리기, 도널드에 대한 질투, 구가 사냥을 그토록 피하고 싶어 긱스를 찾아가는 핀의 불안과 혼돈, 피온라크를 구하기 위해 폭풍우를 뚫고 퍼플아일호에 몸을 실어 기어이 섬에 도착하는 미친 듯한 집념. 그리고 안 스커 섬에서 마주하는 자신의 꽁꽁 숨겨둔 불행한 기억과의 대면. 아슈타르와의 마지막 조우. 이렇게 넘쳐나는 운명과 인연의 실들이 독자들의 가슴을 꽁꽁 묶어 우리의 주인공 핀 매클라우드에게 따스한 애정과 응원, 매서운 질책과 비난을 쏟아내게 만든다.

그리고 한 편의 대작을 읽고 나면 늘 그러하듯, 주인공(그가 도덕적으로 어떤 잘못과 실수를 저질렀든)에게 연민을 느끼며 이제 그가 깊고 평온한 밤을 보내길 기원하게 된다.

 

 

너만 괜찮다면, 글래스고에서 벌어지는 다음번 스코틀랜드팀 경기 입장권을 구할까 해서 말이야. 아버지랑 아들이랑 보통 그런 걸 같이 하잖아. 축구장 가는 거 말이야.”

 

 

 

해피 엔딩을 암시하는 위 마지막 대사를 보면 그 기원은 틀림없이 이루어지리라 예측되지만,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아슈타르의 장례식이나 마샬리와 풀어야 할 문제들, 도나 머리의 아이, 또 에든버러의 모나를 동시에 걱정하게 되는 사소함에 목매는독자들에겐 말이다.

 

 

이런 장편을 읽고 나면 으레 '어떤 인물이 가장 마음에 드는가' 따위의 수다를 떨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그 욕망은 (우리 자신의 결함은 망각한 채) 작품 속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 선택에 대해 날카로운 잣대로 평을 내리는 독자의 특권이자 즐거움이다.

수많은 인물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긱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크로보스트 남자들의 정신적 지주, 구가 사냥꾼의 리더이자 안 스커 섬에서의 심판자, 흔들리는 핀을 잡아주고 그를 걱정해주고 누구보다 전통과 정의를 실천하는 인물. 물론 그가 신봉하는 전통이 오늘날 동물권에 비추어 본다면 극도의 야만스러운 행위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작품 속에서만은 누구라도 신뢰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멘토. 긱스는 일찍 부모님을 잃은 핀에게 단 한 명의 믿을 만한 어른이자 멘토였다.

 

 

 

"왜요? 아저씨는 이걸 왜 하는 거죠?"

"전통이니까." 도니가 대신 나섰다. "누가 전통을 깨는 사람이 되고 싶겠니."

하지만 긱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건 전통이 아니다. 물론 전통의 일부일 수는 있겠지. 내가 이걸 하는 진정한 이유를 말해 주마. 얘야. 그건 온 세계를 통틀어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만 한다는 뜻이지."

 

 

 

위의 대사에 드러나는 긱스의 카리스마에 누가 반하지 않으랴. 특히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선 남자든 여자든 그 누구든 이런 카리스마 있는 정신적 멘토가 필요한 법이다.

 

 

이 작품을 읽고 누구나 느끼게 되는 두 가지 보편적 진실.

첫째, 낯선 루이스 섬의 바닷가에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북쪽의 안 스커 섬을 떠올리고 싶다는 것. 그것이 게일어로 가득찬 소음 속, 네스 항의 펍에서 맥주 한 잔을 기울이는 행운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지만.

둘째, 누구나 가슴 속에 깊이 자리한 블랙하우스 하나쯤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어린 시절에 형성된 것이든 최근에 지어진 것이든, 봉인된 비밀 하나를 간직한 어두운, 굴뚝 없는 블랙하우스를 내면에 하나씩 품고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책을 덮은 누구에게나 묻고 싶다.

 

당신 내면의 블랙하우스는 지금 토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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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하우스
피터 메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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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 운명의 서사가 주는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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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맨
크리스티나 스위니베어드 지음, 양혜진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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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여성들의 서사

 

 

여성들의 서사가 빛나는 SF 명작이 탄생했다. 이 책을 덮은 순간 뇌리에 떠오른 것은, 야심있는 수많은 작가들의 질투를 불러올 만한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한 번쯤 이런 멋진 이야기를 써보고 싶지 않을까. 여성이든 남성이든, 누구든 작가라면.

 

남성들만 공격하는 대역병이 세계를 강타하고, 지구상의 수많은 남성들이 죽어 나간다. 최초의 발병부터 시작해서 원인을 구명하고, 면역을 체크하고, 백신을 발명하고, 새로운 행정으로 나라의 기강을 잡는 것은 모두 여성들이다. 여성들의 힘이 삶과 세상을 나아가게 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슬픔과 절망에 빠지는 것도 여성들이다. 남편과 아들과 아버지를 잃고, 몸을 가누기 힘든 슬픔과 지옥같은 절망과 분투하며 싸워야 한다.

 

이 책이 출판된 시기가 공교롭게 코로나19로 전세계가 고통받고 있는 현재라니, 작가의 말에도 남겼듯 놀랍기만 하다. 팬데믹의 소용돌이가 삶의 모습들을 얼마나 변화시키고 있는가. 그 소용돌이 한복판을 살아가는 지금의 독자들은 이것이 터무니없는 허황된 소재가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더욱 긴박하고, 재미있고, 공감이 가고, 그밖에도 수많은 감정들이 소환된다. 경탄하며 읽은 독자로서 책을 통해 우러난 감정들을 따라 주인공들 이야기를 해보자.

 

  

존경

어맨더가 등장할 때마다 , 저 멋진 주인공은 도대체하는 압도적 느낌이었다. 최초로 0번 환자를 진료한 의사 어맨더는 두 아들과 남편을 잃고도 냉철한 이성과 행동으로 세상을 위한 일을 계속해 나간다. 뷰트 섬으로 가서 발병의 원인을 규명해낸 끈기. 자신의 말을 무시하던 스코틀랜드 보건국. 결국 그 기관의 수장이 되어 활약하는 그녀는 모든 여성들의 롤모델이 될 만하다. 자신의 보고를 믿지 않고 묵살한 남자를 시원하게 해고해 버리는 장면과 상처 많은 캐서린을 다정하게 감싸고 위로하는(끝에는 캐서린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주는) 장면을 보라. 어떤 할리우드 영웅들보다 더 영웅적인 그녀에게 존경과 경탄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통쾌함

헬런의 이야기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다. 그녀의 남편은 남성 대역병이 시작되자 딸들과 아내에게 말 한 마디 없이 사라져 버리고, 몇 년이 흘러 본인에게 면역이 있다는 걸 알자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남편이자 가장 행세를 하려 한다. 그가 없는 동안 딸 셋을 혼자 힘으로 키우고 국가에서 재지정해준 직업에 성실히 종사하며 헬런은 스스로의 힘으로 가정을 지켜내고 삶을 개척해 간다.

 

당신은 한번도 내가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 적이 없어. 나는 요즘 일과를 마치고 퇴근할 때면 내 두 손을 써서 다른 사람들이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을 느끼고, 집에 와서 딸들을 볼 때면 여기가 바로 내 자리라고 느껴.”

 

통쾌함을 날리는 대사다.

헬런 편에서는 다음과 같은 서술자의 목소리도 여운이 남는다.

 

수가 줄었다고 그들이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건 아니다. 우리-여자든 남자든-는 모두 인간일 뿐이다. 단지 유전 법칙 혹은 운명의 장난으로 면역이 있다거나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더 나은 인간이 되는 일은 없다.”

 

시대나 나라를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삶의 주체성을 빼앗겨 왔던가. 철없는 남편 덕에 울고 상처받고 그림자같은 일생을 감내해온 것은 물론이고.

 

 

씁쓸함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리사 마이클 박사는 백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낸 위대한 과학자다. 하지만 철저하게 냉혹하고 이기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 백신 판매로 억만장자가 된 그녀는 스스로 쌓게 된 부와 성취를 굳이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전세계인을 구했지만 전세계로부터 미움을 받게 된 그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줄도 안다. 리사의 냉혹함에 씁쓸함을 느끼다가도 맞아, 남자들도 야망과 과시욕에 사로잡혀 사람들의 지탄을 받는 이들이 많은데, 왜 여자라고 그러면 안되지? 왜 여자들은 좀더 숭고해야만 한다는 편견이 있었지?’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부러움

미국에서 영국으로 날아온 당찬 아가씨, 엘리자베스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스스로 인생의 돌파구를 찾아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생존과 꿈과 열정과 사랑, 결혼까지 쟁취한 인물이다. 남성 대역병의 시대, 팬데믹의 공포가 세계를 휩쓴 시대에 엘리자베스는 모두가 부러워할 것들을 이루었다. 그렇다. 당찬 힘으로 낭만까지 손에 넣은 여주인공 한 명쯤은 우리 모두가 가슴 속에 품고 키울 수 있는 법이다.

 

  

놀라움

마리아 페레이라의 기사 속 주인공인 브라이어니 킨셀라는 대역병 이후의 세계 풍속도를 발빠르게 포착해 세계 최대의 데이팅앱인 어댑트를 창시한 CEO이다. 남성들의 수가 현저히 부족해진 세계에서, 여자들이 왜 남자들만 찾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작가의 상상력에 이마를 때리고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제발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이들이 이 대목을 읽고 커다란 깨달음을 얻기를.

 

 

(그밖의 영웅들에게 바치는) 찬양

조용하고 힘 있는 행정가 던 그녀의 등장도 언제나 미소짓게 한다. 남자들보다 더 유능한 던이 승진 일로를 걸을 때마다 (흑인 여성이어서 더욱 그랬을까) 속에서 희열과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당신은 이 책을 제대로 읽은 독자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의 바다를 2년째 표류하던 배에서 남편을 구해낸 영웅 프랜시스. 프랜시스의 끈기와 신념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사랑하는 남편 토비는 배 위에서 굶주려 죽고, 승객 중 소수의 생존자도 없었을 것이다. 프랜시스가 토비를 위해 벌인 위대한 일들은 다큐멘터리감이다. 여성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험난한 여정의 보고를 담은 저자이자 인류학자 캐서린 어릴 때부터 부모 없이 자란 캐서린이 자기에게 전부였던 앤서니와 아들 시어도어를 잃었을 때, 그 상실감은 모든 독자들에게 전염되고 만다. 캐서린이 친구 피비를 질투하고 피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이가 있을까. 책을 읽어가며 조마조마하게 빌었던 것은 캐서린이 정신적으로, 무사하기를, 잘 버텨나가기를, 하는 바람 뿐이었다.

 

전 세계인을 위한 빛나는 여성들의 서사 이 책은 인류와 코로나19라는 시의적절성 속에, 충격과 슬픔보다 희망과 위로를 준다는 점에서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보너스 하나 - 많은 나라의 인물들이 나오지만, 끝부분에 가서 대한민국 인물 한 명을 발견하게 되는 작은 기쁨도 맛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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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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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대단한 명작을 만났다는 흥분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길 떠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란 점에서, 이 작품은 코맥 매카시의 <로드>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주인공이 십대 흑인 소녀이고, 특히 그 소녀가 지도자로서의 기질을 발휘하며 새로운 세상을 위한 희망의 등불이 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매카시의 소설이 어둠과 절망으로 끝을 맺는다면, 이 작품은 희망과 밝음으로 끝을 맺고 있기에.

 

로런에게 닥친 어둠의 현실은 2024년부터 2027.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와 가까운 현대라 할 수 있다.

어떻게 30년 전에 옥타비아 버틀러는 살인, 방화, 약탈, 강간이 넘치는 암울한 2020년대를 상상했을까. 어떻게 파이로라는 신종 마약 불을 지르며 극단의 쾌락을 느끼는 에 중독된 이들을 그려내고, 미쳐버린 세상 속 무리들이 도시를 파괴해가며 장벽을 부수고 사람들을 죽이는 가슴 섬뜩한 미래를 예견했을까.

부자들은 장벽을 높이 세우고 경비를 철저히 하며 자기들만의 안전한 울타리 속에 안주하고, 가난하며 굶주린 자들은 그 장벽 너머를 호시탐탐 노리며 닥치는 대로 빼앗고 죽이고 불을 지르는 괴물이 되어간다. 로런이 북쪽으로 향하며 마주치고 목격한 모든 현실은 지옥과도 같은 삶의 현장이다. 사람들은 무리지어 더 약하고 병든 자들을 공격하고, 시체의 돈과 옷을 빼앗고 심지어 식인까지도 한다. 로런의 눈에 비친 지구는 병들고 병든 멸망 직전의 땅이다.

 

비록 허구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기후 위기와 환경 재앙, 코로나라는 질병이 전 세계를 불의 심판처럼 휩쓸고 있는 지금, 이 작품에 그려진 암담한 배경들이 터무니없는 환상일 뿐이라는 장담을 누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어둠과 혼란 속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로 작가는 로런을 창조해냈다. 초공감증후군을 가진 로런. 엄마의 약물 남용으로 로런은 남들이 느끼는 고통과 쾌락을 고스란히 느끼는 초공감을 가지고 태어났다. 로런의 약점은 매우 위험하고, 심지어 노예로 삼거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기에 가족, 또는 진실한 친구들만이 그 비밀을 알고 있었다.

로런은 목사인 아버지의 사랑 속에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고 새엄마 코리의 따가운 눈길을 견뎌내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책을 읽으며 언젠가 장벽 밖의 세상으로 탈출했을 때 마주칠 위기의 삶을 대비한다.

친구 조앤과 이웃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로 볼 때조차 로런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언젠가 자기 동네의 장벽이 무너지고 약탈자들이 침입해올 것을 알기에, 로런은 사격 연습을 열심히 하며 비상 배낭을 준비할 만큼 치밀하고 지혜롭다.

동네 사람 중에 해리와 함께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라. 그녀에게 스승이 되어 달라고 말하며(자라는 이미 빈곤과 구걸 등 거리의 삶을 어린 시절 온몸으로 체득한 흑인 여성이다.) 로런은 이렇게 말한다.

 

 

바깥 세상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을 이미 알아요. 난 그 사람들을 지켜보고, 그 사람들에게 귀기울이고, 그 사람들에게서 배울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해당할 테니까요. 아까 말했다시피 난 어떻게든 살아남을 작정이에요.”(302p)

 

 

로런은 내가 보기에 남자들마저도 질투를 느낄 매력적인 주인공이다. 흑인, 여성, 소녀--- 어떻게 보면 약자로서의 많은 정체성을 가진 로런은 자신의 믿음 - ‘지구종변화가 곧 하느님이라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기까지 이른다. 이 책의 끝에 가면 누가 뭐래도 로런이 새로운 공동체의 정신적 지도자라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초공감이라는 약점을 가진 소녀가 굳센 의지와 신념으로 살아남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믿음을 심어주며 연대하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로런이 길을 가며 합류시키는 사람들은 인종과 신분을 초월한 사람들, 흑인과 중남미계, 아시아계가 섞인, 어른과 아이와 아기가 함께 있는, 노예로서 탈출한 사람들이자 학대하는 부모로부터 탈출한 사람들이다. 해리처럼 잘 교육받은 백인도 있지만 도망친 노예이자 강도짓으로 삶을 이어온 그레이슨과 도라는 흑인 부녀도 있다. 해리와 자라를 제외하고 로런이 길에서 만난 그들은 가족을 잃고, 어머니와 아들을 잃고, 굶주림과 불행의 끝에서 로런을 만나 구출되는 것이다.

로런의 덕분에 그들은 짐승같은 세계 속에서 동지를 만나고(이것은 곧 가족이나 이웃으로 확장될 것이다.) ‘함께 힘을 합쳐그들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할 희망을 얻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식량을 우리 손으로 키워내는 일을. 우리 자신과 이웃을 전에 없던 새로운 존재로 키워내는 일을. 지구종으로 변화시키는 일을.”(396p)

 

 

이 책은 많은 것을 우의적으로 보여준다. 사람이 서로를 죽이고 약한 자를 짓밟는 힘의 원리, 자신들만의 굳건한 장벽을 세우고 안전을 지키는 계층의 벽. 돈 없이는 물과 식량과 인권과 희망 한 줌도 살 수 없는 자본의 속성. 이러한 모습은 신종 질병과 기후 변화, 물질만능으로 몸살을 앓는 지금 이 현실 세상과 결코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소설 속 배경인 2020년대를 살아가는 지금, 모두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전부가 로런의 신념과 정의를 따를 필요도 없고 로런의 생각에 동의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스스로의 약점을 인정하고 더 강한 따듯함과 포용력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의연함만은 독자들이 배웠으면 한다.

아쉬운 점은 조앤네 가족이 간 올리버라는 도시에 대한 후속 설명이 있었다면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올리버를 탈출한 사람들이 잠깐이라도 등장한다면 어땠을까. 그들의 증언을 통해 그 도시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몹시 알고 싶었다.

또한 로런이 영원히 존경했던 아버지의 시신이라도 발견했다면. 누구보다 훌륭한 지식인이자 로블리도의 지도자였던 올라미나 목사의 실종은 로런의 가슴에도 독자인 내 가슴에도 풀리지 않는 응어리로 작게 남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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