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이야기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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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비 이야기>는 세 편의 미스터리물이 담겨 있다. 모두 장맛비와 같은, 비가 내리는 습기 찬 날씨를 배경으로 한다.

첫번째 이야기 <5월의 어둠>은 중학교 하이쿠부 지도교사였던 퇴직한 노교사에게 옛제자가 찾아와 시 해석을 부탁하며 벌어지는 내용이다. 노교사가 치매라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 이제 성인이 된 청초한 제자에게 야릇한 감정을 느끼는 노교사의 심리 전개에서, 눈치빠른 독자들은 과거에 그가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모종의 사건에 대한 추측, 그리고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얼마 전 자살했다는 쌍둥이 오빠의 하이쿠 시집을 해석해달라는 제자는, 사실 노교사에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도록, 집요하게 몰아가는 심리 고문관의 역할을 한다. 복수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동시에, 하이쿠에 대해 독보적인 지식을 자랑하는 작가에게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사람이 과거의 기억을 잃는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몰염치가 아닐까. 과연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할지,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두번째 이야기 <보쿠토 기담>은 일본의 신화와 기이한 이야기가 결합되어 몽환적인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수작이다. 단순히 도식화하면 애벌레의 복수라고 할 수 있지만, 어린 소녀에게 못된 짓을 한 범인이 서서히 목이 졸리듯 죗값을 받게 하는 스토리에 너무나 풍성한 비유와 환상, 나비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이 새겨져 있어 지적 즐거움에 몰입하게 된다. 꿈과 환상, 일본 전통 무속 신화가 결합된 새로운 공포물을 맛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세번째 이야기 <버섯>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여기에도 역시 몽환과 환상, 주술이 등장하지만 어디까지나 작가의 철저한 탐구를 통한 과학적 지식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독버섯이 환각작용을 일으킨다는 소재로 스토리를 쓰려고 한 작가가 얼마나 치밀하게 공부하고 설계했는지 감탄하게 된다.

프리랜서 공업디자이너인 스기히라의 부인과 아이가 실종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촌형, 탐정, 옛 친구(주술사)의 개입이 시작된다. 주인공 스기히라는 정원에서 버섯의 환영을 보고, 어느덧 집안 곳곳 거실 벽까지 버섯으로 뒤덮이는 환각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이 버섯의 환영은 억울하게 살해된 부인이 남편을 살리려는 초자연적 현상이었음이 밝혀지며, 끝까지 궁금증과 긴장감으로 책장을 넘기게 한다.

탁월한 연구와 지적 탐구심으로 소설 속에 거대한 교양의 학문을 풀어놓는 기시 유스케. 독자에게 스릴감과 재미, 지적 성취감까지 선사하는 작가의 성실함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책이 너무나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출판사에서 도서 제공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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