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예언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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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를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지구온난화를 테마로 한다는게 매우 눈길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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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복 같은 소리 - 투명한 노동자들의 노필터 일 이야기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기획 / 동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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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컨텐츠를 소비하는 경우 극단적인 찰리 채플적인 착취를 당하고 그 사고를 당한 후기를 영화화하거나 책으로 나와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그 극단적 노동환경에 있는 사람보다 평범한 노동자들이 우리 주위에 많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컨텐츠가 나와서 매우 기뻤다. 평범한 느낌일수록 무심할 가능성도 높으니까. 말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각종 노동환경에 대한 이해도를 한층 높일수 있다는 것이다. 왜 노동자들이 시위를 하지?라고 부모님한테 물으면 아무말도 못하거나 그냥 그런거라고 이해를 시키지 못해서 그런지 그 뉴스에 시선을 따라갈 뿐이였지만 이 책을 읽고 노동환경이 이러이러해서 시위를 하고 있다는 이해도 만으로 이책은 하나의 힘이 되어준다. 나는 20퍼센트의 상위인 사람이 되고 싶어하거나 아예 그 사람들의 시선을 몸으로 흡수한 사람들의 모습을 매번 주위에 보게 되지만 어떻게 틀리다는 걸 말해주어야 할까?에 대해 의문이 이 책을 읽으라고 추천을 하고 싶다. 그리고 가장 반가웠던 부분은 이가현님의 글이 였다. xsfm 팟캐스트 컨텐츠에 이가현 코너를 듣고 노동컨텐츠의 힘이 이렇게 컸구나.를 느꼈는데 이 컨텐츠를 듣고 가현님의 글을 읽으니 다시금 노동컨텐츠가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 더이상 무관심한 시선으로 노동뉴스를 보지 않기 위한 책이 계속해서 소비되기를....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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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데이 블랙
나나 크와메 아제-브레냐 지음, 민은영 옮김 / 엘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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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 살다가 그 사람의 관점으로 아니 그 자신을 관점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몇명일까? 저마다 하나의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 그 존재를 인정하는게 어렵다라는 것은 새삼느끼게 된다는게 객관적으로 보기인 것일 것이다. 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며 그 글을 읽기보다는 그 글에 대한 분석도 당연히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속에 내제되어 있는 폭력성을 나와 다른 타인에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함을 생각하면서 말한다는 것이 모순적이면서도 이상적이면서도 계속해서 생각하며 생각한다. 이 책은 이러한 관점에서 보기에 재미라는 요소 어찌보면 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시작하는 그런 책이 아닌 것을 나는 느낀다. 이 책속에 소설들은 하나의 사람이 가지 각색의 이야기를 듣고 각색한 이야기로 보여졌다. 그 이면에는 이야기들의 뿌리가 어디서 뻗어나가는지에 대한 묘한 감정을 들게한다. 이 느낌은 새롭게 느끼거나 신기하게 들려서 그런게 아닌 그저 일상속에서 통계적으로 그냥 지나가다 듣는 정도에 사소한 것에서 부터 때로는 엄청 사소해보이지만 그것을 점점더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크기가 나보다 몇배는 큰 그러한 건물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그 느낌 속에서 계속해서 읽어갔다. 이 짧은 책의 100쪽을 넘기면서 드는 생각들중에 문득든 생각은 이 작가의 권위나 뒷배경이라는 안내 표지에 표시된 것보다 뒤에 있는 록산느라는 작가의 추천사보다 중요했던 것은 어느 하나의 권위있는 상도 그 책 홍보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하겠지만 어느한 단체 어느한 지역에서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사랑을 받는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 지금의 내 느낌이고 어느 한 부분에서 느낀 나의 느낌을 가장 간단하게 표현했다고 본다, 하지만 내심 염세적으로 본 반대편의 나의 마음은 자본주의와 그 자본주의에 동화또는 저항 하려는 흑인이라는 특정집단의 관심이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그들도 결국 다른 국가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을까? 라는 의문에서 이말을 하지만 그저 생각만 할뿐 이 생각의 문제점은 꽤 단순하다는데에 있고 그들에 대해 알기 보다 그저 자신의 입장만을 인정 받기바라는 그 생각이 때로는 나를 작게 작게 만든다. 특정한 소수자들이 다수자들에게 저항 하는 모습을 보며 다들 그저 지나가는 일들로 생각하게 되지만 그 행동들을 직접겪은 사람의 글을 관심있게 보게되면서 생기는 변화가 소설이 주는 특이한 현상이지만 이 글들속에서 이 소설 속에서 정말로 우리는 아니 나는 그들의 입장에 대해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의문의 죽음을 해명을 외치는 공장노동자, 환경이 열악해서 개선 될수 있음에도 무관심으로 인해 자본의 논리로 죽임을 당한 청소부 그 사람들이 떠오른 이유는 소수자 즉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의 모습이 그 아주 냉혹하면서도 잔인하여 그저 무관심으로 일관 되게 계속해서 대체제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떠오르게 만드는 그 모습이 떠오르면서 슬프고 무거운 생각을 하게되었지만 그들의 저항 그들의 희생이라는 하나의 방점이 그 소수자를 뭉치게 하는 점으로 작용한다는 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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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겟티드 - 당신이 누른 ‘좋아요’는 어떻게 당신을 조종하는가
브리태니 카이저 지음, 고영태 옮김 / 한빛비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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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것은 생각보다 우리가 쉽게 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사회의 구조를 이용해 빠져나가는 사람들도 있는 가면 그 구조를 잘못 이해하고 수긍과 충성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자기가 피해를 받아도 수긍하고 옷지려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게 되면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고 그들은 무엇을 잘못했으며 오히려 피해를 받은 사람이 일상 생활이 불가능하게 되는지 심히 생각해 보게 되는데 서양 그것도 개인주의와 그것을 이루는 자본주의의 이면을 보면서 이런 혼자만의 생각을 하게 된다. 카이저가 폭로를 하고 떠나는 모습 신변의 위협과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이고 그후 그녀는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 아니 뜻을 가치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부터 무엇이 잘못됐다고 했을 때 너만 그런거 아니야라는 분위기가 아닌 잘했다는 한마디 그리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대변될 때 두가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그런 내부 고발자에 대해 팀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 것인지 그리고 그건을 통해 그 사람의 힘든 과정을 통해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어느 한 부분에서 그녀의 이야기가 역으로 우리를 설득하기보다는 그들과 비슷한 말로 느끼게 되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떠한 앱이 그들의 데이터 사용이 투명하지 않으니 다른 앱 그것도 구체적인 앱을 제시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앱을 광고하는 느낌이 들 것인데 이 생각은 어디 부분에서 잘못되었는가? 생각해보면 좀더 구체적으로 그 회사가 어떠한 정보공개에 대한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확실하게 말해주었으면 싶다. 더 알면 알수록 우리 생활가 밀접한 앱들의 비밀들의 존재가 더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런한 것들에 대한 문제를 경험하게 됐을 때는 어찌보면 늦었다는 말을 할수도 있다. 이러한 글들이 중요하게 읽히고 어떠한 폭로 글들로 인해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오히려 글쓴이의 주장이 틀린게 아닐까? 아니면 선민의식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들면서 너 잘났다. 라 하고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한 갈등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그들 맹목적으로 편안함을 대가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같이 대화하고 이해해 나가야 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이 책에도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지우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폭로자가 쓴 글을 많이 읽었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 하지는 않길 바란다. 어떠한 상황에서 글을 적고 쓰면서 다시 편집과정을 거치는 그러한 글들보다는 오히려 원본이 궁금해지는 글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 남성 인종 국가 이러한 단어들로 점철되어온 선거들이 얼마나 나라를 아니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지 되뇌고 되뇌어 봐도 이기적인 사람들 여기에는 기업가 저커버그나 샌드버그 같은 사람이 속하는데 그 사람들이 또 다른 이기적인 씨앗을 뿌리는 모습을 보고도 우리는 과연 수동적으로 그 씨앗이 싹을 틔울때까지 보고만 있을 것인지 아니면 밭을 다시 갈고 새로운 씨앗을 심고 키워야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한번 가졌으면 싶다.
나는 수동적인 사람이다. 카이저를 보면 대단한 사람 하나의 사건에 연류되어 있는 사람으로 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욱더 대단한 사람으로 보고 싶지 않다. 그저 사람 개인 어쩌면 주위에서 볼수있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보고 그 사람이 우리에게 주는 정보를 믿기보다는 의심하고 더욱더 믿기 쉬운 정보를 찾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할까? 그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은 어느 나라 국한 되어 있지 않다. 인터넷이 발달된 나라와 발달되지 않은 나라의 차이를 데이터 정보를 모은 것에서 찾을수 있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의 기성매체를 보면 다른 나라들의 종이 신문들의 힘으로 선거를 이용하는지를 보게 되면 데이터라는 것보다도 사람들의 시야를 넓히고 어떠한 존재를 인식하고 혐오보다는 이해라는 것을 하게 만들지에 대해 오히려 그러한 점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카이저의 말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저기는 더러운데 여기는 깨끗해라는 뜻으로 들리면서 혼동이 온다. 이 상황에서 다들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너도 데이터로 무엇을 하니 그들과 똑같아. 그 생각을 하면서 그것에 대해 카이저는 어떠한 대답을 할까? 나는 그 데이터라는 것의 정의와 데이터베이스라는 것 데이터 포인트로 분석하는 것 마이크로 타겟팅이라는 것 이러한 가지각색의 단어들을 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건들에 대해 수익을 얻고 그 수익을 다시 우리에게 돌려주는 시스템을 생각하면서 그녀의 생각을 말하는 부분에서 때로는 공포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녀도 우리의 데이터로 결국 수익을 얻는다는 것과 그 데이터를 사용한 대가로 우리에게 다시 수익을 주는 선순환 구조가 과연 가능할지에 대해 그들도 결국 페이스북과 같은 자유시장주의 그리고 기업에 대한 변명으로 변하지는 않는지 그리고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페 블록체인 기술과 같은 현란한 말재주로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는 것어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직관적인 설명이 필요한 것이 아닌지 질문해보고 싶다. 결국 나의 사생활들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투명성을 어떻게 해서 신뢰하게 만들것이며 모두 기분 좋은 엔딩으로 가길 꿈꾼다. 이부분에서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고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더욱더 관심을 갖고 내가 그들의 단어를 이해하고 좀더 자세히 이해하고 그녀의 시점에서 뭐가 잘못되었으며 무엇을 어떻게 고칠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혐오보다는 이해로 가는 길 혼자가는 길이 아는 같이 가는 길을 이익보다는 공공을 부족함을 같이 채워나가고 분열보다는 동행을 그러한 세상이 다가오게 만들것이다. 그중에서 카이저 같은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지켜주고 들어주며 만들어나가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궁긍하고 더욱더 냉철하게 반대와 가짜정보 광고에 속지 않는 자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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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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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다시 읽으면서 갑자기 번쩍! 하고 아니지 찌리릿 하고 느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이상한 느낌은 좋은 쪽이라기 보다도 나쁜 쪽에 속하지만 그 이상 최악으로 치닫지는 않았다.여러 가지 아이템들 즉 아이디어들이 어디서 출발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 거의 대부분은 서양의 문화를 가져와서 쓰는 경우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영화나 애니나 여타 다른 장르 소설들과 게임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것에 뿌리를 찾아나서서 찾게 되는 것이 아마도 서양 고전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이 걸리버 여행기를 다시 읽으면서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흠칫 흠칫 보였다. 초반의 소인들이 나와서 거대한 자신과 소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이 알 것이다. 영화화도 되었고 어렸을 때 짧게 기억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걸리버가 오줌을 싸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걸리버가 본 소인국의 이야기는 거의 다 들었지만 그 이후의 여행기는 나는 적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제목을 듣고 무릎을 탁친 그런 부분도 있고 생소하면서도 당연한 이상한 여행기를 볼 때면 이러한 내용도 있었구나! 하고 신기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이 걸리버 여행기에서 소개한 인물들이 주인공 중심으로 이뤄지고 상상하기 어려운 구체적인 모습을 그러니까 어느 것의 덩치를 상상을 하게 만드는게 아니라 그것을 우리 뇌에 그려넣으려고 한다는 것 그 부분에서 나는 의문이 든다. 나의 키가 160cm 라고 하자. 

그리고 거기에 여드름이 나있고 웃는 모습이 있다고 하면 그것에 대한 세세 묘사를 하는 것 그러니까 내 몸의 구성물질을 화학 기호로 표시하고 너무나도 구체적으로 그것을 상세하게 설명하다보면 그 소설은 소설 같지 않고 그저 여타 다른 논픽션 비슷한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이 느낌이 계속해서 나에게 불쾌감을 주는 이유는 아마도 나의 지식 부족으로 작가는 말할 것이다. 어느 미터에 근일점 그 행성간의 거리를 측정하는 것이며 소인이 주인공의 몸과 치수를 재는 것을 하며 초반에는 그 표현이 생각보다 쉽게 접근되며 더욱 더 흥미를 이끌지만 그것이 갈수록 점점 지치게 만든다. 옛날 이야기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중에서 작가가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들여다 볼수 있었다는 것은 좁은 시야를 가진 나한테는 신기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상상한다는 즐거움 때문에 소설을 읽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한 무엇인가를 채워 나갈 때가 종종있다.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영상을 많이 봐서 그것이 마치 내가 상상한 그것으로 착각하기 쉽상이지만 내가 거대해지는 것 작아지는 것 하늘을 나는 것 그리고 좀 더 많은 경험할수 없는 것을 상상해내면서 전개해내는 걸리버의 여행에서 그 시대에 맞는 글을 써야 해서 그 작가의 한계가 존재하지만 그 한계 안에서의 상상 속에서도 이러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길게 이 이야기가 전해 오는 것이 아닐까... 못내 아쉬운 점은 이 글이 아이들을 위해서 쓴 글은 아니란 점이 다시 읽으면서 느껴졌다는 것이다.

 옛날 어렸을 때 봐왔을 때는 이솝우화와 같이 그저 그런 교훈을 주는 그런 글이라고만 생각하고 접했었다. 이 글에서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시대 정신에 대한 비판을 보고 어른들의 생각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도 그 생각에 접어든 모순된 작가가 되고 있다라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고 말할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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