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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의 자화상
전성태 지음 / 창비 / 2015년 2월
평점 :
반드시 유심히 읽을 것
은근한 시선으로 세태를 조망했던 작가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두번의 자화상>역시 우리 시대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격렬한 장면이나 그에 따른 충격을 기대하고 책장을 연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사건들은 대단치 않다. 누군가의 생의 결정적 순간은 이 단편집에 없다. 그러한 순간들의 전조나 예감, 혹은 후일담 같은 것들이 가만히 제 몫의 이야기만 하며 욕심내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인물들은 이러한 잔잔한 이야기 속에서도 기민하게 눈동자를 움직이고 조용한 탈바꿈을 거친다. 한 가족의 주말을 그린 첫 번째 단편 <소풍>에서 화자는 장모를 모시고 처자식과 함께 숲으로 나들이를 간다. 그들은 어느 가족이라도 할 법한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네잎클로버를 찾는 등 또래다운 평범한 면모를 보인다. 아이들을 위해 숲에서 보물찾기를 하던 와중 화자의 장모가 화자의 백 달러 지폐를 숨겨둔 곳을 잊어버리고 찾지 못하며 소설은 일단락되는듯하다.
하지만 개개인의 사소한 지점들을 눈치 챌 수 있다면 이 소설이 평온하고도 지루한 일상의 한 조각 이상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자 아버지의 죽음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고통을 받으며, 남몰래 커피에 술을 탈 만큼 위험한 상태다. 쾌활하나 다소 신경질적인 데가 있는 아내는 어머니의 치매증세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또 아이들은 순진한 듯 보이나 그들 자신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이런 단서들을 찾는 과정에서 독자는 자연스레 이 가족의 미래를 그려보게 된다. 아버지를 잃은 남자의 미래는 어떨지, 어머니의 치매가 확정되면 아내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지 생각하며 마치 화자의 아이들처럼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으로 소설을 되새기게 된다.
단편집의 다른 단편인 <로동신문>은 경비의 시선을 빌려 아파트의 거주하는 새터민들을 보여준다. 다리를 저는 여자나 수줍은 남자, 불안정한 소년 등의 인물에 경비 나 씨는 살갑게 구나, 그의 정치적 이념은 또 별개다. 사람 좋은 그는 한편으로 새터민들이 과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여기며, 자신의 신념에 따라 그들을 은근히 감시하기도 한다. 아침에 신문더미에서 발견한 로동당의 신문은 그를 예민하게 자극하는 도구이자 그의 본성과 무관하게 자신이 성립한 국가안보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단편집 <두번의 자화상>은 아무것도 내세우지 않는다. 문장은 온화하고 다소 평이하기까지 하며, 강렬한 기미들은 일상으로 포장되어 불안정한 예감으로만 남는다. 기승전결이 꽉꽉 조여진 단편들에 익숙한 독자들은 이러한 그의 방식이 다소 낯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분명이 말하고 있다. 다만 호들갑을 떠는 대신 우리의 일상 한 조각 한 조각들을 빌려 천천히 읊조리는 길을 택한 것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그러나 놓치는 순간들이며 장면들이다.
그러니 이 책을 집어든 당신, 부디 유심히 읽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