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rain079님의 서재 (rain079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856910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02 Jun 2026 08:17:47 +0900</lastBuildDate><image><title>rain079</title><url>http://image.alad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5856910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rain079</description></image><item><author>rain079</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안녕이라 그랬어 - [안녕이라 그랬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8569104/17310864</link><pubDate>Mon, 01 Jun 2026 11: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8569104/173108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9240&TPaperId=173108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off/s63213595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9240&TPaperId=173108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녕이라 그랬어</a><br/>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6월<br/></td></tr></table><br/>&lt;안녕이라 그랬어&gt;에는 &lt;홈 파티&gt;부터 &lt;빗방울처럼&gt;까지, 총 7편의 단편이 실려 있어요. 평소 단편을 자주 읽지 않아서, 짧은 호흡이 처음에는 꽤 낯설게 느껴졌어요. 이제 막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데 끝나 버리는 느낌. 뒷이야기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 채, 저자는 또 다른 이야기 속으로 훌쩍 떠나버리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읽다 보니, 짧은 호흡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됐어요. 어쩌면 장편보다 더 많은 감정과 여운을 남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감정과 삶을 함께 말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어요.<br> &lt;안녕이라 그랬어&gt;에 실린 단편들은 세상의 환한 빛보다, 그 빛에 가려진 그림자 속 사람들의 삶을 비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지만, 사실은 저마다의 불안과 결핍을 품고 있는 사람들. 어쩌면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이들도 그렇게 각자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br> 우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상대의 표정과 옷차림, 사는 집과 자동차 같은 것들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의 위치를 가늠하곤 해요. 책에 나오는 서사적 윤기, 계급적 표지, 계급적 친밀감, 내장의 관상 등의 표현처럼요. 그래서 사람들은 더 나은 삶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고, ‘언젠가’라는 말을 붙잡은 채 살아가요. 하지만 현실은 쉽게 나아지지 않아요.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앞서나가는 모습을 볼 때면 질투와 좌절, 열등감이 한꺼번에 밀려오기도 하죠. 사람들은 이를 개인의 선택이나 능력 문제처럼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가진 것이 많을수록 더 많은 기회와 정보를 얻고 실패의 위험도 감당할 수 있으니까요. 반면 어떤 이들에게 지금 가진 돈은 삶의 전부이기에 쉽게 모험할 수 없어요.<br> &lt;홈 파티&gt;에서 이연이 말하듯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는 타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건 아닐까요. &lt;빗방울처럼&gt; 속 지수와 수호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왔음에도 삶의 기반을 잃고 무너지는 사람도 많아요. 그런데도 사회는 그들의 불안을 이해하기보다 쉽게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리곤 하죠. <br> 책 속 인물들은 대부분 40대예요. 어린 시절에는 무언가를 이루고 안정되어 있을 거로 생각했던 나이. 하지만 막상 그 나이에 다다르면 여전히 혼란스럽고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이뤄놓은 것이 없다고 느낄수록 상실감은 더 커지죠. SNS 속 타인의 삶은 끊임없이 비교를 부추겨요. "나는 왜 이렇게밖에 살지 못할까."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다른 걸까." 그런 질문들이 마음속을 어지럽게 맴돌아요.<br> 그래서 &lt;좋은 이웃&gt; 속 주희의 말이 오래 남아요.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씁쓸하지만, 그 말에 공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돼요. 젊을 때는 사회의 부당함에 쉽게 분노했는데, 현실을 살아내는 동안 그런 감각도 조금씩 무뎌진 건 아닐까요.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이라는 말을 핑계처럼 붙들며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자꾸 미루게 돼요. 하지만 정말 여유가 생기면 우리는 달라질까요. 아니면 또 다른 욕심을 붙잡게 될까요.<br> 이 책은 돈과 이웃에 관해 이야기해요. 세상에는 분명 좋은 사람들도 존재하는데 왜 그렇지 않은 장면들이 더 자주 눈에 들어오는 걸까요. &lt;좋은 이웃&gt;에서 시우가 던지는 질문처럼, 그런 가치를 믿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정작 현실은 "왜 이런 세상이 되었는가"라는 질문보다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만 끊임없이 요구해요. 어른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도 결국 질문의 본질보다 생존의 기술이었던 건 아닐까요.<br> 책은 결국 우리 사회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질문해요. 돈이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삶의 대부분을 결정짓는 힘이 되어버린 시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있어야 비로소 여유와 존엄도 가능해지는 현실 말이에요. 실제로 2021년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한국은 17개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를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았어요. 대부분의 나라가 '가족'을 1위로 선택한 것과 대비되는 결과였어요. 한국 사회의 물질 중심적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결과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해요.<br> '안녕'의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예요. 아무 탈 없이 편안한 상태. 그리고 만나거나 헤어질 때 건네는 인사말.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훨씬 더 많은 의미의 안녕을 마주해요. 사람뿐 아니라 시간과 장소, 추억과 물건에도 안녕을 건네요. 간혹 &lt;안녕이라 그랬어&gt;의 은미처럼 암영을 잘못 들은 안녕까지. 그 안에는 반가움과 설렘도 있지만, 슬픔과 체념, 애틋함과 후회도 함께 섞여 있어요. 우리는 과연 어떤 안녕을 말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br> 돌이켜보면 저는 '안녕'이라는 말을 꽤 가볍게 사용해 왔어요. 반가운 마음으로, 혹은 헤어짐의 아쉬움을 담아 습관처럼 건네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때로는 그 말조차 쉽게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늘 익숙한 인사말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lt;안녕이라 그랬어&gt;를 읽으며 생각이 달라졌어요. '안녕'이라는 짧은 말 안에 얼마나 많은 감정과 사연이 숨어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누군가에게 안녕은 다정한 인사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버텨낸 하루의 끝이자 어렵게 꺼내는 작별일 수도 있어요.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안녕에 담긴 의미를 너무 쉽게 지나쳐온 건 아닐까요. 복잡한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서, 힘든 감정을 마주하기 싫어서 내 방식대로만 해석해 버린 건 아니었을까요. 그런 생각이 들자, 문득 미안해졌어요. 누군가의 안녕을 너무 가볍게 받아들였던 건 아닐까 싶어서요.<br>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난 뒤에는, 제가 건네는 안녕이 조금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더 오래 머무르고, 조금 더 마음을 들여다보는 안녕. 서로의 삶을 쉽게 판단하지 않으면서도, 괜찮냐고 조용히 물어볼 수 있는 그런 안녕 말이에요. 감사합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150/s63213595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665217</link></image></item><item><author>rain079</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모모 - [모모 - 출간 50주년 기념 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8569104/17296226</link><pubDate>Mon, 25 May 2026 16: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8569104/172962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39995&TPaperId=172962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712/5/coveroff/894913999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9139995&TPaperId=172962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모 - 출간 50주년 기념 개정판</a><br/>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2024년 03월<br/></td></tr></table><br/>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시간이 없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며 살아가요. 누구에게나 하루는 똑같이 주어지는데도 늘 부족하고, 늘 쫓기는 기분이 들죠. 그래서 시간 관리법을 찾고, 틈새 시간까지 알뜰하게 활용하려 애써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촘촘히 채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질 거라고 믿으면서요. 그런데 이상해요. 삶을 더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들은 점점 많아지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시간에 허덕여요. 잠깐의 여유가 생겨도 그 시간을 가만히 보내지 못하고, 멍하니 있으면 괜히 불안해져요. 무언가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기분이 들고, 효율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자신을 쉼 없이 몰아붙이게 되죠.<br> &lt;모모&gt;는 바로 그런 우리의 모습을 정확히 꿰뚫는 작품이에요. 미하엘 엔데가 1973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읽어도 놀라울 만큼 현재의 삶과 닮았어요. 그래서인지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시간’과 ‘삶의 본질’을 돌아보게 만드는 고전으로 남아 있죠.<br> 작품 속 회색 신사들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고 속삭여요.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천천히 쉬는 시간,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은 모두 낭비라고 말하죠. 회색 신사들에게 잠식된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할 시간이 없어. 인생에서 중요한 건 딱 한 가지야. 뭔가를 이루고, 중요한 인물이 되고, 무언가를 손에 넣는 거지.”라고 말하며 점점 더 바쁘게 살아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삶은 풍요로워지지 않아요. 오히려 웃음도, 여유도,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마음도 조금씩 메말라 가죠.<br> 그 와중에도 모모는 달라요. 가진 것은 거의 없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줄 아는 아이예요. 누군가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위로하고,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드는 존재죠. 모모 곁에서는 아이들도 마음껏 상상하며 놀아요. 특별한 장난감이 없어도 돌멩이 하나, 흙 한 줌만 있으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요. 어쩌면 진짜 놀이는 이미 완성된 것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상상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런 아이들도 회색 신사들을 만나면서 변해가요. 탁아소에서 ‘노는 법’을 배우고,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배워요. 무엇이 앞날에 도움이 되는지, 얼마나 유익한지만 중요하다고 여기게 되죠.<br>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두 아들을 떠올리게 됐어요. 요즘 아이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기관에 다니고, 정해진 프로그램 속에서 하루를 보내요. 놀이조차 교육적인 목적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죠. 물론 그 안에도 좋은 점은 있어요. 하지만 문득 의문이 들어요. 아이들은 정말 ‘놀고’ 있는 걸까요. 주어진 놀이와 정교하게 만들어진 장난감, 일찍부터 접한 미디어에 익숙해지면서 정작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가는 경험은 점점 줄어드는 건 아닐까요.<br> 생각해 보면 저 역시 어릴 때는 참 많이 놀았어요. ‘술래잡기, 숨바꼭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도 했지만, 가끔은 규칙부터 새롭게 만들며 놀기도 했어요. 흙만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별것 아닌 물건 하나로도 하루 종일 이야기를 만들어냈죠. 아마 그 시절에는 제 곁에도 모모 같은 존재가 있었던 것 같아요. 내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게 해주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던 누군가가요.<br>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은 달라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공부도, 일도, 자기 계발도 끊임없이 이어지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많은 기준은 과연 누가 만든 걸까요. 어느 정도의 인내심과 끈기만 길러도 충분할 것 같은데, 우리는 왜 늘 더 빨리,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을까요. 다수를 따라가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아 불안해하고, 어느새 내 방식보다 정답처럼 여겨지는 흐름을 좇게 돼요. 그렇게 살아가며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또 무엇을 잃어버린 걸까요.<br> 빠르게 발전하고 성장하는 사회는 분명 편리해요. 하지만 속도만큼 깊이도 함께 자라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끝에서 얻을 수 있는 생각들, 아무 목적 없이 멍하니 있는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지나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멍때리기 대회’가 생겨난 이유 역시, 결국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br> 무엇보다 이 책은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이 단순히 바빠지는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줘요. 시간을 빼앗긴다는 건 결국 삶의 주도권을 잃는 일이니까요. 내 시간인데도 보이지 않는 회색 신사들의 기준에 맞춰 움직이며 살아가는 것. 지금 조금만 더 참으면 언젠가는 행복해질 거라고 믿지만, 그 ‘나중’은 끝없이 뒤로 밀려나요. 그러는 사이 정말 중요한 순간들은 어느새 지나가 버려요. 아이들이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놀이를 놓쳐버리듯, 어른들 역시 지금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관계를 흘려보내며 살아가죠.<br> 그래서 모모는 단순한 동화가 아니에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작품이에요. 왜 이렇게 조급해졌는지, 왜 내 시간인데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지, 왜 타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여유조차 잃어버렸는지 돌아보게 만들죠.<br> 책을 덮고 나니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시간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동안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아낄 수 있을지만 고민했지,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또 막상 ‘제대로 쓴다’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저만의 기준을 세우고 살아가고 싶어도 주변의 흐름이 워낙 강하다 보니 자꾸 휩쓸리게 되더라고요. 모두가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데 혼자 멈춰 서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br> 그래서 책 속 호라 박사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어요.“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는 문제는 전적으로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니까. 또 자기 시간을 지키는 것도 사람들 몫이지.” 이 말을 읽고 나니, 조금은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졌어요.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더 많은 자극과 정교한 장난감이 아니라, 마음껏 상상하고 스스로 시간을 채워갈 수 있는 여백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어른인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잠시 멈춰 서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타인의 말을 천천히 들어주며,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나누는 것. 어쩌면 회색 신사들에게 빼앗긴 시간을 다시 찾는 방법은 그런 순간들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감사합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712/5/cover150/894913999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7120556</link></image></item><item><author>rain079</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자기 앞의 생 - [자기 앞의 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8569104/17227729</link><pubDate>Mon, 20 Apr 2026 11: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8569104/172277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816631&TPaperId=172277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751/78/coveroff/8982816631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816631&TPaperId=172277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기 앞의 생</a><br/>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05월<br/></td></tr></table><br/>어른을 위한 동화를 찾던 중 『자기 앞의 생』을 읽게 되었어요. 처음엔 낯설었던 로맹 가리는 이미 유명한 작가였어요. 그는 ‘끝난 작가’라는 평가와 고정된 이미지에 갇혀 있었죠. 이를 벗어나기 위해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새로운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고자 한 선택이었어요. 그렇게 두 번째 삶을 얻은 그는 『자기 앞의 생』으로 다시 한번 공쿠르상을 수상해요. 같은 사람이 두 번이나 그 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비밀로 남아 있었지요. 그 비밀은 1980년,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뒤 남긴 유서를 통해서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어요. <br> 자기 앞의 生. 정작 내 앞에 놓인 삶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있었나, 문득 생각하게 돼요. 그저 주어진 것이기에 살아가고, 그때그때 의미를 덧붙이며 견뎌온 것은 아니었을까요. 같은 '生'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사람마다 그 안에 남는 결은 전혀 달라요. 어떤 삶은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지고, 또 어떤 삶은 의지와 다르게 흘러가기도 하지요. 이 책 속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삶이 바로 그래요. 그들의 생은 스스로 고른 결과라기보다, 어쩌면 감당해야만 했던 시간에 더 가까워 보여요. <br> 아무것도, 아무도 없었기에 서로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던 모모와 로자 아줌마. 모모가 기억하는 삶은 로자 아줌마와 함께한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어쩌면 이들은 사회의 가장 어두운 가장자리에 놓인 사람들일지도 몰라요.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낡은 7층 아파트에서, 제대로 된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끌려갔던 과거를 지닌 전직 창녀, 창녀가 낳은 아이들, 그리고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까지. 그들의 삶은 흔히 말하는 '정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어요. 그래서 실패한 인생처럼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생을 받아들이며 살아가요. 선택할 수 없었던 조건 속에서도, 주어진 시간을 끝까지 살아내요. 사회 밖에 놓인 삶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분명 자기 앞에 놓인 生을 묵묵히 감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br> 로자 아줌마는 모모를 잃지 않기 위해 모모의 나이를 속일 만큼 절박했어요. 모모 역시 유일한 보호자인 아줌마를 잃을까 두려워 늘 불안 속에 살았어요. 이들에게 삶은 늘 불안 위에 놓여 있었어요. 다른 삶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조차 분명히 알지 못한 채 저지르는 일들. 설령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지도 몰라요. 모모가 도둑질하는 건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시선과 관심을 붙잡기 위한 방식이었어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그렇게라도 손을 뻗어야 했던 모모.<br> 어른의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에, 혼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아이, 모모. 아마 그래서였을 거예요. 로자 아줌마가 나이 들어 병에 걸리고, 끝내 의식을 잃은 채 세상을 떠났을 때도 모모는 그 곁을 떠나지 못해요. 무려 3주 동안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해가면서까지요. 자신을 유일하게 돌봐주었고, 조건 없이 사랑해 주었던 존재였으니까요. 부패가 시작되고, 아무도 없는 지하 공간에서 홀로 시간을 견디는 일은 분명 두려웠을 거예요. 그래도 모모가 그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죽음' 그 자체보다 '부재'가 더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열네 살의 나이에 완전히 혼자가 된다는 것. 그 감각은, 쉽게 상상조차 닿지 않는 종류의 외로움일 것 같아요.<br> "거꾸로 된 세상, 이건 정말 나의 빌어먹은 인생 중에서 내가 본 가장 멋진 일이었다." (P. 137)모모는 성우가 영화 더빙을 하다 녹음을 망쳐 다시 해야 하는 순간, 화면이 거꾸로 되돌아가는 장면을 보며 그것을 '멋지다'라고 느껴요. 어쩌면 그에게는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자기의 삶도, 로자 아줌마의 한때 찬란했을 청춘도. 그렇게 시간을 되감을 수 있다면, 모모는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요. 경찰, 테러리스트, 늙어서 더 이상 선택받지 못하는 여자들만 맡는 포주, 혹은 하밀 할아버지가 소중히 간직하던 빅토르 위고처럼 글을 쓰는 사람. 모모의 꿈은 결국, 자신이 보고 들은 세계 안에서만 자라날 수밖에 없었어요.<br>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 같지만, 그 생이 모두에게 다정하게 펼쳐지는 것은 아니에요. 모모에게도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결국 로자 아줌마의 곁으로 돌아와요. 그 선택의 이유는 어쩌면 단순해요. 적어도 그곳에서는 서로가 같은 결의 사람, 같은 세계에 속한 존재였기 때문이죠.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나가기보다는, 비록 초라하고 고단하더라도 익숙한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설령 그것이 '똥 같은 세계'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느끼는 동질감이 모모를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br>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 사랑해야 한다." (P. 311)'사랑'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슬프고 무겁게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깨달았어요. 모모에게 사랑은 조금 다르게 남아 있을지도 몰라요. 그의 삶 속 어딘가에 자리한 로자 아줌마와의 기억이, 여전히 조용히 그를 감싸고 있을 테니까요. 따뜻하되, 마냥 밝지만은 않은 온기로요. 어쩌면 저는 그동안 사랑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해 왔는지도 모르겠어요. 반짝이고, 부드럽고, 따뜻한 색을 띠는 것만을 사랑이라 여겨왔던 건 아닐까요. 하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알게 돼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빛나는 사랑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요. 그래서 마지막 문장, '사랑해야 한다'라는 말이 더 오래 남아요. 지금의 저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랑은 어떤 빛을 띠고 있는지, 조용히 돌아보게 되네요.<br> 어린 모모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에 관한 이야기. 열네 살의 아이가 어떻게 이런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것이 그의 전부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져요.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아이라면, 좋든 싫든 결국 알아버리게 되는 것들. 자기 앞에 놓인 생이 그러했다면,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지 않았을까요. 아직 미성년자인 그에게는 삶을 바꿀 힘조차 없었을 테니까요. 이 책을 읽으며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혹시 저는 편견 속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요. 그들의 사정에는 귀 기울이지 않은 채,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해 버리지는 않았는지. 왜 저렇게밖에 살지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순간들 역시, 결국 그들의 자리에 서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br>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관계를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하나의 기준선을 그어두고, 그 안에 있는 것만 '정상'이라 믿어왔던 건 아닐까요. 하지만 그 선 밖에 있는 삶 역시 분명한 삶이에요. 그렇다면 그 선은 누가 그은 것일까요. 그리고 왜 우리는 그 기준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채 받아들여 왔던 걸까요. 어쩌면 필요한 것은 선을 유지하는 일이 아니라, 그 선 자체를 다시 생각해 보는 일일지도 몰라요. 물론 세상에는 분명 나쁜 사람도 존재해요. 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어요. 다만, 그들이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질문해 볼 필요가 있어요. 그들을 그렇게 만든 환경과 조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보호받아야 할 존재들을 방치한 채, 결과만을 두고 비판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되네요. 사람들이 조금 더 안전하게, 조금 덜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어쩌면 우리가 고민해야 할 방향은 그쪽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감사합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751/78/cover150/8982816631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7517868</link></image></item><item><author>rain079</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오만과 편견 - [오만과 편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58569104/17183533</link><pubDate>Mon, 30 Mar 2026 11: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58569104/171835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882&TPaperId=171835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3/68/coveroff/s93746088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882&TPaperId=171835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만과 편견</a><br/>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09월<br/></td></tr></table><br/>작년에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으며, 제인 오스틴이 언급되는 대목이 인상 깊게 남았어요. 울프는&nbsp;오스틴이 살았던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 여성들이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강조했어요. 여성은 자기만의 공간도, 경제적 자유도 없이 창작을 이어가야 했고,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여러 제약 속에 놓여 있었다고요. 하지만&nbsp;오스틴은 거실 한쪽에서, 가족들의 시선과 방해를 감수하며 소설을 써 내려갔습니다.&nbsp;울프는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오스틴이 자신의 감정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문학적으로 균형 잡힌 작품을 완성해 낸 드문 작가라고 평가해요. 이 대목을 읽으며 『오만과 편견』이 궁금해졌습니다. 제목은 익숙했고 영화로도 상영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힘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오만과 편견』은 겉으로 보면 단순한 연애 소설처럼 읽히기 쉽지만, 그 이면에는 당대 사회의 구조와 인간 심리가 정교하게 담겨 있는 작품이에요.&nbsp;제인 오스틴은 사랑과 결혼이라는 익숙한 이야기를 통해, 한 개인이 타인을 어떻게 오해하고 또 이해해 가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사회적 조건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무엇보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nbsp;'오만'과 '편견'이라는 두 개의 시선이 있어요. 다아시는 자신의 신분과 재산에서 비롯된 자부심으로 타인을 쉽게 판단하고, 엘리자베스는 그런 그의 태도를 근거로 그를 성급하게 단정해요.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 모두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니라는 데 있어요. 다아시는 실제로 오만했고, 엘리자베스의 판단 역시 그 경험에 기반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오스틴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nbsp;우리는 '얼마나 쉽게 타인을 단정 짓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요. 두 사람이 각자의 오만과 편견을 자각하고, 서로를 다시 바라보며 자신의 판단을 수정해 가는 과정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인식의 성장'이라는 의미로 확장돼요.<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제인과 빙리의 관계를 보면, 이들의 사랑은 갈등이 거의 없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듯 보여요. 그러나 그 관계조차 개인의 감정만으로 완성되지는 않아요. 주변의 시선과 개입, 특히 계급과 체면이 결혼의 성립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이를 통해 작품은 사랑이 개인적인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사회적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드러내요.<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이 소설에서&nbsp;결혼은 낭만적 선택이라기보다 경제적·사회적 생존 전략에 가까워요. 베넷 가문의 딸들이 처한 상황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줘요.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가문의 재산이 먼 친척인 콜린스 씨에게 상속되는 구조 속에서, 딸들은 자신의 삶을 안정적으로 보장할 방법이 거의 없어요. 이들에게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사실상 유일한 출구에 가까워요. 이러한 맥락에서 엘리자베스의 어머니가 딸들의 결혼에 집착하는 모습은 단순한 희화화의 대상이 아니에요. 그것은 오히려 당시 여성들이 마주해야 했던 불안과 현실을 반영하는, 절박한 태도로 읽혀요.<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또한 한 가족 안에서도 각기 다른 태도와 욕망이 드러나요. 제인은 온화하고 신중하며, 엘리자베스는 비판적이고 자의식이 뚜렷해요. 반면 메리는 어설픈 지성주의자의 모습을 보이고, 리디아는 충동적이고 경솔하며, 키티는 쉽게 휩쓸리죠.&nbsp;같은 환경 속에서도 서로 다른 선택과 결과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통해, 오스틴은 인간을 단순한 유형으로 환원하지 않아요. 이는 곧 ‘가족’이라는 울타리조차 개인의 삶을 규정할 수 없음을 보여줘요.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존재들이 모여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균형을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공간. 그런 의미에서 가족은, 다양한 차이를 안은 채 공존을 배워가는 가장 처음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어요.&nbsp;<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한편,&nbsp;작품 곳곳에는 신분에 따른 위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요. 높은 지위를 가진 인물들은 그것을 당연한 권리처럼 행사하며 타인을 억압해요. 특히 신분을 앞세워 관계를 통제하려는 태도는, 사랑과 결혼마저 계급 질서 안에 묶어 두려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줘요. 그러나 오스틴은 이러한 구조를 정면으로 비판하기보다, 인물들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독자가 스스로 인식하도록 만들어요.<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이 소설이 단지 시대의 한계를 고발하는 데 머물지 않는 이유는,&nbsp;엘리자베스라는 인물에 있어요. 그녀는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감정과 이성을 조율하며 자신을 변화시켜요. 그리고 결국 사랑 역시 상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 위에서 다시 선택해요. 이는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올바르게 보는 법'을 배운 결과에 가까워요.<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제인 오스틴은 이 작품에 대해 "너무 가볍고 밝고 반짝거려서 그늘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을 만큼, 『오만과 편견』은 그녀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밝은 분위기를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실제로 읽다 보면 생각보다 술술 넘어가고,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 자연스럽게 페이지를 넘기게 됐어요. 아마 어린 시절 이 책을 읽었다면, 흥미로운 연애 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였을지도 몰라요. 일정 부분 '신데렐라' 서사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시 읽어보면, 그 밝고 경쾌한 표면 아래에 훨씬 더 복합적인 의미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끼게 돼요. 지금은 저 시대와는 많이 다르지만, 첫인상의 중요성, 소통의 부재가 낳는 오해, 현실적인 조건이 관계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자존감과 성찰을 겸비한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와 결혼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봤는데, 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고립을 감수하는 삶을 선택하기보다는 신중히 상대를 선택해 결혼했을 가능성이 크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작품은 우리 역시 타인을 쉽게 판단하고 편견을 가질 수 있음을 돌아보게 만들어요. 그리고 질문해요.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공정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내리는 판단은, 과연 우리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것인가.&nbsp;사람의 다양한 면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성장이 아닐까 하고요. 사랑 이야기처럼 시작된 이 소설은, 그렇게 인간과 사회를 함께 비추는 거울로 남아요. 감사합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3/68/cover150/s93746088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3683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