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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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2024.07.29~08.05.
로베르트 발저
배수아 옮김
한겨레출판


로베르트 발저는 독일어권의 한 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가난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오랫동안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작가로서 어느정도 성취는 했지만 지성인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정신병원에 입원 후 절필을 선언하고 '걷기'와 '쓰기'에 집중한다.

그런 작가의 이력이 있기에, 이 산문들은 그와 동행하는 산책길에 서 있다. 냉소적이고 시니컬한 문체. 종 잡을 수 없는 단어와 문장들도 함께 말이다. 어떤 글에선 그의 머릿속을 산책하는 듯 하고, 어떤 글에선 그와 함께 펼쳐진 풍경을 하나하나 보는 듯 하다.


[우리는 타인의 불행, 타인의 굴욕, 타인의 고통, 타인의 무력함, 타인의 죽음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하므로 최소한 타인을 이해하는 법이라도 배워야 한다. 15p.]


특히 <헬블링 이야기>는 헬블링의 머릿속을 구석구석 산책하는 느낌이었다. 처음 시작한 문장이 글의 마지막까지 도무지 끝나지 않았다
. 그것도 대부분 헬블링이 머릿속에서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의 속도처럼 나의 눈도 빨라졌다. 눈이 빨라져서 숨이 가뿐 느낌이들 정도였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압권은 마지막의 <산책>이다. 이 책에 수록된 산문들은 짧게는 한장 반정도. 길게는 3~4장을 차지 분량인데 반해 가장 방대한 분량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만큼 긴 산책과 사색의 시간으로 로베르토는 나를 초대한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길게 늘어진 문장들과 대화들. 관찰. 사색.

로베르트가 이렇게 까지 산책에 집착하다시피 한 건 그가 항상 혼자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계속되는 가난과 고통 때문에 걷기와 쓰기가 유일한 삶의 이유였던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산책으로 발현된 멋진 문장들을 책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건 헤세와 카프카와 같은 유명인들의 열렬한 지지 덕분일 것이다.

산문들의 끝엔 옮긴이의 말이 있다. 로베르트 발저의 생애와 책의 감상이 적혀있다. 소설도 쓰고 번역도 하기에 로베르트 못지 않은 필력을 느꼈다. 아, 그러니 이 책을 이렇게 멋지게 번역하셨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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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대각선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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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대각선
2024.07.29~30.
베르나르 베르베르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퀸의 대각선 2

2권이 시작되면서 호흡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마치 1권은 2권의 빠른 호흡을 위한 밑바탕이었다는 듯이 말이다. 2권은 스파이 소설에 가깝다. 니콜이 소련의 KGB 요원이 되고, 모니카는 미국의 CIA 요원이 되어 세계 여러 사건들과 얽히면서 서로를 향한 복수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IRA 무장 투쟁, 소련 붕괴, 오사마 빈라덴의 911테러까지. 누구나 알만한 세계의 굵직한 사건들이 그녀들의 힘겨루기 때문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니콜과 모니카는 천재적인 여성이다. 하지만 너무나 다른 성향으로 대척점에 있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실제 체스 게임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 여러 사람들을 움직여 체스 게임하듯 서로를 겨누기 시작한다. 결국 모니카는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끼게 되고, 니콜은 한쪽 눈을 잃는다.

그렇게 이어진 서로에 대한 경쟁심과 복수심은 두 천재들을 평범한 삶으로 안내하지 못한다. 1972년 열두 살 때부터 시작된 인연은 2045년 그녀들이 여든다섯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과연 여든다섯 할머니들이 펼치는 목숨을 건 체스 게임은 어떻게 될까?

<홀로 대 모두>

[집단이냐, 개인이냐. 이건 철학과 세계관의 문제야. 우리는 상반된 인식을 가졌지만 어떤 면에서는 상호 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어.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옳거나 틀린 게 아니니까. 너와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살면서 깨달은 결론도 결국 그거 아닐까. 270p.]



니콜과 모니카는 공통점이 많다. 일단 그 둘은 천재적이며 강인하다.
니콜은 감각 박탈 고문을 당하고 겨우 탈출하자마자 아버지가 죽는다. 그리고 양떼목장을 운영해 억만장자인 아빠의 유산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소련으로 가 스파이가 된다.
모니카는 우울증이 심해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위인들의 우울증에 관한 책을 읽으며 이겨낸다.
각각 안락한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기꺼이 비밀스러운 조직에서 일하며 서로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겨눈다.
그리고 그들은 한 해의 마지막 날, 그 해의 중요한 사건들을 월별로 기록하며 정리한다. 그렇게 세계의 정세를 살피며 체스판의 말을 조정한다.

그런 그녀들의 천재성을 상대방에 대한 증오로 써버린 게 아쉽다. 그저 평범하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가정을 꾸렸다면, 그 상황에 집중하느라 서로를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체스판에서만 서로 다투며 말이다. 나 또한 그런 그저 그런 체스판의 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를 궁금했었다. 이렇게 스케일이 커질 줄이야!

체스와 여성, 그리고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쓴 사실적인 소설을 보며 아직 종식되지 않고 다른 형태로 이어지는 냉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는 개인이 세상을 이끌어 갈 수 있는지, 집단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개인주의자이고, 민주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뛰어난 개인이 세상을 이끌어 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니콜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단순한 앙숙이 아니라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이야. 나는 너라는 존재가 상징하는 모든 것, 자본주의, 금권주의, 부패, 천박함, 철학적 풍토로 자리 잡은 이기주의가 혐오스럽고 역겨워. 소위 서방 국가들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노예로 전락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시스템을 은폐하기 위해 인권을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있어. 위선의 극치라고 할 수 있지. . 268p.]


여든다섯이 된 할머니 니콜과 모니카. 누가 체스 게임에서 승리하게 될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역시나 재밌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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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대각선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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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대각선 1
2024.07.26~27.
베르나르 베르베르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극단적인 두 여자가 나온다.
집단의 힘을 믿는 여자와 개인의 힘을 믿는 여자.
두 여자는 12살인 1972년,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 체스 게임 대회에서 처음 만난다. 니콜은 폰들을 이용해 모니카를 이겨버리고, 그것에 흥분한 모니카는 니콜의 목을 조른다. 그렇게 강렬했던 첫인상.

니콜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아버지와 살고 있다. 니콜은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는 오토포비아다. 그리고 집단의 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체스 게임을 할 때 폰들을 이용해 승리하는 주특기를 가지고 있다. 또 궁금한 것을 알기 위해 자신이 키우던 개도 절벽으로 가게 만든 사이코패스 적 면모도 있다.

모니카는 미국 뉴욕에서 어머니와 살고 있다. 모니카는 다른 사람에게 병적인 고통을 느끼는 안트로 포비아로 무리 짓는 것을 혐오한다. 그리고 개인의 힘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체스를 둘 때 퀸을 이용해 승리한다. 모니카는 늘 혼자고 엄마가 유일한 친구다.

이름과 사는 곳, 성장환경, 조상의 뿌리, 성향이 모두 반대다. 그래서 두 여자는 극단적이다. 그런 두 여자는 1978년 런던에서 열린 "세계 여성 체스대회"에서 다시 만났고, 이번엔 모니카가 우승한다. 하지만 가짜 테러 협박 전화로 아수라장이 되었을 때 모니카의 엄마는 압사 당해 사망하고 만다.

그리고 1985년. 니콜은 IRA 요원 라이언을 만나 배신자를 처단하는 일을 계획하게 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모니카는 책 사인회에서 MI5 국장 소피 웨링턴을 만나, 어머니를 사망하게 만든 그날의 범인에 대해 알게 된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니콜과 모니카. 니콜은 집단의 힘을 이용해 IRA 배신자를 처리한다. 과연 그에 맞서 싸울 모니카의 다음 행보는?



이렇게 1권이 끝났다.

이 책은 참 흥미롭다. 대척점에 놓인 극단적인 두 여자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들이 번갈아 가며 나오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 중간이 없는 그 모습들을 보며, 과연 나는 집단 VS 개인 중 어느 쪽으로 기울어졌는지를 생각해 봤다. 나는 체스를 둘 때 폰으로 공격할 까, 퀸으로 공격할까? 나는 아무래도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다. 그럼 나도 모니카처럼 행동했을까? 모니카라면 어떨까?라는 물음이 책을 읽는 내내 맴돌았다.
그리고 사실은 집단 지성을 이용하는 양들이 인간을 이용한 다는 니콜의 아버지의 말이 흥미로웠다. 인간이 양을 길들이고 키워서 양털을 얻어 이득을 취한다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랐기 때문이다. 양들은 평생 무료 이발 혜택을 누리고, 먹고 자고 포식자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

얼른 2권 읽으러 가야지!


[고립된 개개인의 뛰어난 능력보다, 함께하는 집단의 숫자에서 나오는 힘을 믿어야 한단다. 23p.]

[네 행복이 타인에게 달려 있다면 넌 불행해질 수밖에 없어. 1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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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분식
김재희 지음 / 북오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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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주는 추억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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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분식
김재희 지음 / 북오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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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0~22.
유미 분식
김재희
북오션



유미 분식은 작가가 유방암 수술을 마치고 항암과 방사선으로 힘든 치료를 이겨낼 때 집필한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유미 분식의 '김경자' 사장은 암 투병 환자다. 사장의 딸 유미는 어머니의 부고를 알리며, 고마운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어머니가 남긴 것을 전해드리고자 초대장을 보낸다. 부고장이 아닌 초대장을 말이다.
그렇게 유미 분식으로 초대된 손님들. 각자의 사연이 담긴 유미 분식의 음식을 맛보며, 김경자 사장과의 추억, 그리고 그 시절의 자신을 추억한다.



실종아동이 좋아하던 돈가스부터, 경찰시험 준비생이 마시던 어묵탕 국물, 유미 분식 사장님이 즐겨 먹는 열무비빔국수까지. 유미 분식의 맛있는 메뉴들과 각자의 사연이 챕터마다 담겨있다.
그리고 그 챕터가 끝나면 어김없이 레시피가 나오는데, 정말 따라 하고 싶은 욕망이 마구 솟구친다.


[유미는 새삼 음식의 위대함을 느꼈다. 추억의 음식을 먹으며 그때의 추억을 돌이켜 헤어지려던 부부를 다시 화해하게 해주었다. 38p.]


유미 분식은 따뜻하다.
왜냐하면 정말 우리 이웃에 살고 있을법한 인물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문제로 헤어지려는 부부, 남자에게 사기당한 과부, 학교폭력으로 은둔형 외톨이가 된 아이, 남과는 늘 다투고 자기 아내는 등한 시 하는 개떡 남편, 실종 아동의 가족, 공무원 시험을 준비를 하는 학생까지. 그리고 암 투병을 하는 유미 분식 사장까지.
그리고 유미 분식은 내가 아는 분식집 느낌 그대로다. 분식집에 가면 tv에선 재방송되는 1박 2일이 나오고 있고, 내가 아는 조금은 철 지난 익숙한 노래들이 나온다. 그리고 김밥과 라면, 떡볶이.
유미 분식은 그 자체로 분식집을 드나들던 그 때로 나를 데려간다. 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엄마가 암투병을 했을 그 당시로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까지 선사한다.
여태 읽은 힐링 소설 중 가장 따뜻하고 가장 재밌게 술술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유미 분식! 과연 반전은 무엇일까?
그리고, 소설을 읽는 내내 떡볶이가 정말 너무너무 먹고 싶은걸 참느라 혼났다.

[누군가 겪는 삶을 나의 부모도 나도 겪고 있는 것일 뿐이다. 별다를 것도 없고 크게 놀라울 것도 없는 일상들이다. 이걸 조금씩 이겨나가면 될 뿐이다.
'이겨 나가자. 매일 조금씩.' 115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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