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의 세계사 - 한 장으로 압축된 인류의 역사 EBS CLASS ⓔ
김종근 지음 / EBS BOOKS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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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지리학자 김종근이 읽어주는 인류 기술의 집약체,

고지도의 세계를 만나다

일명 길치라고 불리는 나에게 학창시절 지리과목은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는 분야였다. 내가 좋아하는 역사와 접목시켜서 배웠더라면 흥미를 느꼈을 텐데, 역사에서 지도가 엄청나게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역사서에 관심을 갖게 된 최근 몇년전에서부터야 깨닫게 됐다. 역사서를 읽다보면 자주 만나게 되는 지도들은 그야말로 '한 장으로 압축된 인류의 역사' 라는 말 딱 그대로 들어맞는다. 지도 중에서도 특히 고지도에 대해 자꾸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다.

이 책에서 다루는 고지도 10장에는 지도상에 묘사된 지리 정보와 함께 지도가 제작된 당시의 상황, 그리고 지도를 작성한 목적이 생생히 담겨 있습니다. 나아가 과거 사람들의 세계관까지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이는 지리와 역사가 만나는 지점이며 세계를 바라보는 철학과 당시 사람들의 일상사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지도가 작성되던 시기의 학문 및 과학의 수준이 드러나며, 지도를 작성한 회화 및 인쇄술의 발달 정도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p. 4) 세계에는 이 책에서 제가 안내하는 고지도들 외에도 수많은 중요한 고지도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제가 고지도 10장을 선택하여 설명하는 것은 이들 지도 10장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설명을 시작으로 궁극적으로 고지도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알리고자 함입니다. (p. 6) - 들어가며 中-

저자가 말하듯이 이 책에는 10장의 고지도와 그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생소할 수 있는 지도에 대해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하려는 저자의 배려는 차례에서부터 빛이 난다. 차례를 보면 각 지도의 이름과 핵심 및 간략한 개요가 쓰여져 있다. 따라서 지도가 생소한 사람도 차례를 보면 대략의 내용이 예상이 가면서 궁금증이 절로 일어난다. 아하 그래서 어떻게? 아하 그래서 왜? 하는 식으로.


목차

1장 바빌로니아의 세계지도 : 신의 눈으로 천지를 보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세상에 질서와 구조를 부여하고, 바빌론을 지도 가운데에 위치시켜 그들의 수도를 세상의 중심으로 바라보았다.

2장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 : 그리스인이 본 철학적 세계

‘지구는 편평하다’는 믿음을 최초로 깨트린 사람들은 그리스인이었다. 점차 ‘우주가 구형이라면 지구도 구형일 것’이라는 주장이 그리스 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3장 헤리퍼드 마파문디: 중세 기독교의 세계관을 담다

천지창조와 예수 재림, 최후의 심판에 이르는 과정, 신적 질서와 설계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성서의 내용이 지도에 고스란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4장 알 이드리시의 세계지도: 그리스 철학과 이슬람 과학의 만남

중세 유럽의 지리학이 퇴보한 가운데, 이슬람 세계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문헌을 아랍어로 번역해 수용한다. 나아가 천문학, 지리학, 수학의 발전에 힘입어 고대에 작성된 지도를 계승·발전시킬 수 있었다.

5장 배수의 제도육체: 동양의 지도 원칙을 세우다

동양에서는 어떻게 지도를 그렸을까? 동아시아에서는 서구에서 개발한 지도 제작 기법이 들어오기 전부터 제도육체, 방격법, 평환법, 백리척 등 기하학을 바탕으로 한 거리계산법을 활용했다.

6장 메르카토르의 아틀라스: 지도학의 황금기

정치적, 종교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 뛰어난 항해술과 조선업 기술, 인쇄 산업의 중심지였던 네덜란드는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지도학은 황금기를 맞는다.

7장 카시니의 프랑스 지도: 지도는 어떻게 국가를 완성하는가

약 150년간 4대에 걸쳐 카시니 가문이 제작한 지도는 중앙집권적 방식의 지도이자 프랑스 시민이 국가라는 공간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든 대단한 발명품이었다.

8장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새 나라 조선의 기틀을 세우다

새로운 왕조를 연 조선은 역성혁명을 정당화하고자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막 움트기 시작한 왕조를 안정시키려는 일환으로 만들어진 지도에는 천문과 지리가 제왕의 학문임을 나타내고자 했다.

9장 김대건의 조선전도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서방에 한반도를 알린 지도들

19세기 격변의 시기, 조선 최초의 천주교 사제가 만든 조선의 지도. 김대건 신부는 무슨 목적으로 조선전도를 작성했을까? 또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는 무엇이 다를까?

10장 존 스노의 콜레라 지도: 전염병을 다스리다

마취과 의사 존 스노가 밝힌 콜레라의 진실. 모두가 콜레라의 원인을 독기라고 생각할 때 그는 오염된 물을 발병의 원인으로 꼽았다. 존 스노는 어떻게 지도를 활용해 콜레라를 막을 수 있었을까.


지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지구의 형태는 가장 기본이 되는 인식론인 까닭에 고대인들이 지구의 형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알아보는 일은 중요합니다. 특히 바빌로니아의 세계지도에는 고대인들의 지구평면설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p. 16)

첫번째 지도는 문명의 시발점이기도 한 지역 바빌로니아에서 만들어진 세계지도다. 이 오래된 고대시대에 세계지도가 있었다는 것이 신기한데, 인간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을 거듭해 온 것이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바빌로니아의 세계지도의 존재가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고대 문명 발상지 네곳, 즉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중국 모두에서 지구편평설은 지구의 형태에 대한 최초의 모델이었습니다. (p. 23)' 눈에 보이는 세상만 지도로 그리던 때 세상은 당연히 편평해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바빌로니아 세계지도에서 바빌론을 세상의 중심으로 묘사한 것처럼 자신이 사는 지역이 곧 세상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기원전 4세기 고대그리스에서 지구가 구형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 파르메니데스는 지구를 원반 형태가 아닌 구체라고 생각한 최초의 인물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p. 50)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의 모양과 크기를 이전의 철학자들에 비해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예를들어 (중략)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했습니다. (p. 51)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 학자 였던 프톨레마이오스는 천문학과 지리학서를 집필했는데 그가 사용한 도법은 유클리드 기하학을 이해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릴 수 있었기에 당시에는 혁신적인 지도 제작법 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다양한 과학지식들은 중세 유럽에선 종교에 밀려 사실상 퇴보를 하게 된다.

헤리퍼드 마파문디가 세계기록유산에 선정된 이유는 중세에 만들어진 세계지도 가운데 유일하게 완벽한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지리뿐만 아니라 역사학, 인류학, 민족학, 종교학, 신학과 관련해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어 시각적인 백과사전 역할을 함으로써 중세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p. 69)

'마파'는 식탁보, 테이블 냅킨 등을 뜻하고, '문디'는 세계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 용어는 8세기경부터 서유럽의 라틴어권 국가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중략) 르네상스 시기가 오기까지 600년 가까이 기독교 세계에서 세계를 설명하는 그림과 지도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습니다. (p. 70)' 마파문디 라는 단어가 라틴어였는지 몰랐다. 어감상 느낌이 왠지 이슬람 명칭인가 했더니 라틴어 지도 였구나;;; 여하튼, 지도는 당시의 세계관을 담아낸다. 로마 시기에 만들어진 지도를 바탕으로 한 헤리퍼드 마파문디는 기독교 신앙의 교리와 믿음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지리적 지도의 역할을 강조한 지도다운 지도는 이제 유럽이 아닌 이슬람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알 이드리시의 세계지도'가 우리에게 더 의미깊은 이유는 이 지도에 '신라'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세계지도에 '신라'가 등장한 김에 이제 저자는 동양의 지도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동양의 지도 라고 표현해봤자 결국은 고대중국의 지도인 셈인데, '육체론'이라는 지도 제작 원리는 놀라웠다. 서양보다 빨랐고 정확했다. 무엇보다 현실적이었다. 한반도의 지도를 포함하여 동양의 지도는 땅의 거리나 모양이나 방향등 실측자료에 최대한 가깝게 그려내고 있어 관념론적 서양지도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왠지 뿌듯했는데 유럽에서도 차츰 이런 지도가 등장한다. 대표적으로는 메르카토르의 아틀라스라고 할 수 있겠다.

메르카토르가 살았던 16세기에 작성된 일반적인 지도들은 방향, 거리, 육지의 형태, 경위도 등이 모두 부정확하다는 문제점이 있었어요. (p. 159)

메르카토르가 살았던 16세기는 바야흐로 유럽의 항해시대다. 망망대해 바다에서 도착지를 정확히 찾아가기 위해서는 해도가 절실히 필요했기에 메르카토르의 지도는 개선된 해도라고 할 수 있었다. 항해사들에겐 이 지도가 무척 유용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법으로 만들어진 지도에는 거리나 육지의 면적이 왜곡되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p. 161)' 지도는 사실 실용적인 측면이 강하다. 필요가 결과물을 유도하기 마련이니 유럽의 지도는 해도중심이었기에 더더욱 동양의 육지중심 지도와는 달랐던 것 같다. 여하튼 이 당시의 지도에서 COREA를 발견하니 반가웠다.

유럽의 육지지도가 빈약하다는 게 너무 강조되서일까? 다음 등장하는 지도는 본격 육지 지도다. 비록 프랑스에 국한된 지도이기는 해도, '카시니의 프랑스 지도'는 지도를 통해 국가의 영역을 확인한다는 것이 어떻게 국가를 완성하는지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 세계최초의 국가 기본도를 150여 년만에 완성한 사람은 나폴레옹 이었다. 국가지도 하면 우리에게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지도가 있지 않은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바로 조선의 지도 말이다. 1395년에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와 1402년에 완성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모두 혼란스런 조선초기 나라의 안정과 왕권강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한반도의 지도를 떠올려보라고 했을때 조선의 지도 보다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런데 동시대 인물인 김대건 신부도 조선전도를 제작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어 신기했다. 김대건 신부의 지도에서 서울이 Seoul 이라는 로마자로 처음 표기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김정호의 지도는 여전히 볼수록 놀랍다. 그리고 김정호에 대해 알아야 할 정보는 널리 알려진 '지도' 보다도 그에 얽힌 신화아닌 신화이야기 이다.

어떤 기록물에도 김정호가 죄인으로 투옥되었다거나, 김정호를 도와준 이들이 관련 죄목으로 벌을 받았다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여러가지 설은 실제가 아니라 '신화'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즉 김정호가 전국 답사 과정을 거쳐 지도를 제작했다기보다는 신헌이라는 고위 관료의 도움으로 정부의 문서고에 보관된 많은 지도와 서적을 열람하여 지리 정보를 확보했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지도와 지리적 서적을 작성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지요. 그리고 조선 정부로부터 어떠한 핍박도 받지 않고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일제강점이 동안 조선 정부의 무능함을 부각하고 그들의 지배를 합리화하고자 식민 정부에서 이와 같은 '신화'를 만들었다고 여겨집니다. (p. 264)

김정호 신화는 일제가 조선을 폄하하기 위해 퍼트린 낭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김정호 신화는 역사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 오랫동안 왜곡되어 온 정보를 수정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철썩같이 믿고 있을 때 아무리 정확한 정보를 들이대도 사람들은 여간해선 자신의 믿음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이는 이 책의 마지막 지도인 존 스노의 콜레라 지도 이야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마취전문의 였던 의사 존 스노는 당시 공기의 오염으로 전염된다고 알려진 콜레라가 사실 물이 원인이라는 것을 여러차례 주장하고 증명했지만 그가 죽을때까지 그의 이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록 사후에 인정되긴 했지만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려서야 기존의 왜곡된 정보가 수정된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지도 한장한장 읽을 때마다 그 시대를 잠시 엿보고 온 기분이었다. 지도 한 장을 세세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많은 역사들을 배울 수 있다니 역사 역사 읽기에서 지도읽기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저자가 쉽게 설명해주는 지도이야기가 재미있다보니 다른 지도들에 대해서도 술술 풀어준 또다른 책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책에선 기왕 양 페이지를 할애해 크게 인쇄한 지도가 가운데를 씹힌 모양이 아닌 (적절한 간격을 둔 인쇄로) 완전체 지도를 세세히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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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저벨
듀나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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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 SF월드의 정수 '링커 우주'

그곳에서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모험!

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은 종종 불친절하다는 말을 듣는다. 곽재식 작가는 듀나 소설을 [제저벨] 같은 걸로 시작하면 이게 뭔가 하면서 헤맬 수 있다고 친절하게 경고한 적 있다. 하지만 독자들이 과연 작가가 숨겨놓은 모든 레퍼런스들을 다 이해해야 하는 걸까? 모르면 모르는 대로 즐거운 독서가 가능하지 않을까. (p. 301)" 라고 저자는 말했지만, 곽재식 작가의 경고가 맞았다. 이 책은 무척 불친절한데... 나는 듀나 소설을 이 작품으로 시작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모르는 독서를 좋아하지 않으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즐거운 독서는 불가능한 사람이다. 제대로 다 알고 이해하고 넘어가야 만족스런 독서가 된다. 지식을 얻는 책이 아니라 소설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을 어떻게 읽었겠는가. (참고로, 이 책은 10년만의 개정판이다. 아마 10동안 계속 불친절한 책이라는 소리를 들어오지 않았을까 싶다.)

"진저는 어딨어요?"라고 묻는 녀석들은 정말 그 농담이 신선한 줄 알까?" (p. 13)

초반부터 내용이해의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프레드 에스테어라는 [스윙 타임}의 필름에서 막 뛰쳐나온 헐리우드 배우처럼 생긴 선의에게 던지는 농담을 농담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나라는 독자는 이책을 대체 어떻게 읽어가야 하나;;; 이게 무슨 지식정보책도 아닌데 모르는 영화 모르는 배우 이름이 나오면 일일이 찾아가며 읽어야 하나? 내가 대체 왜 소설을 읽으며 그래야 하나? 저자는 온통 헐리우드 흑백영화를 총 출동 시켜서 이 작품을 진행하고 있는데...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배우들과 영화들이 아니다.

"뒷바라지할 쿠퍼 몇 마리만 남겨놓고 말이야. 하지만 아무리 목석같은 올리비에가 있는 곳에는 늘 아자니가 꼬이는 법. (중략) 하늘을 덮고 있던 우중충한 비구름에 지름이 수백미터가 넘는 구멍이 뚫리고 그 구멍을 통해 수십 마리의 아자니들이 황금 비처럼 쏟아지는 거야. 아자니들이 바닷물 속으로 뛰어드는 동안 지금까지 주변을 먼저처럼 맴돌던 100여개의 빨판 상어들은 중력장의 고리를 끊고 떨어져 나가지. (중략) 간신히 물 위에 떠 있는 빨판상어 안에선 보이는 게 별로 없지. 유리창 하나 난 건 조그많고 바닷물로 더러워져 있으니까. 그래도 그걸 통해 같이 빠진 동료 빨판상어들과 멀리서 다가오는 구조선들을 볼 수 있을 거야. (p. 12)"

올리비에, 쿠퍼, 아자니, 빨판 상어... 무엇보다 링커 라는 것에 대해 책을 다 읽어도 이것들이 대체 뭔지 알수가 없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서 왜 오는건지 와서 무엇을 하는 건지 하다못해 생물인지 아닌지조차 알수가 없다. 작가는 이 소설속 세계를 전혀 설명하지도 묘사하지도 않는다.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도 모르겠는데 그 세계 속 인물들이 무엇을 하건 집중이 될 리가 없다. 인물들이 하는 일은 현실세계에서의 일과 크게 다를게 없고 (사람이 하는 일이 현실이나 미래에서나 거기서 거기랄까;;;) SF라는 장르가 현실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를 배경으로 함으로써 특별하게 읽히는 건데 이 소설의 세계는 당췌 무슨 세계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우주도 세계도 제쳐놓고 인물들과 사건들을 읽다보면 이건 SF라기 보다는 현실풍자 내지는 우화처럼 읽히는 거다. (왜 우화처럼 읽히는지는 뒤에 다시 언급할 예정)

크루소 태양계는 연성계입니다. 우리가 사는 크루소 알파와 그 주변을 1만2000년 주기로 도는 적색 왜성 크루소 베타가 있지요. 거기엔 디트리히가 네 개인가 있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소행성에 뿌리를 박고 공항 구실을 하는 올리비에들이 잔뜩 있고, 웨인과 기네스들이 메뚜기처럼 소행성 사이를 폴짝폴짝 뛰어다닌답니다. (p. 15) 문제는 아자니들이 거기 있기를 싫어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놀기 좋아하는 아가씨들은 가르보에서 내리자마자 광속의 99.999999... 퍼센트로 여기까지 휙 나라오는 겁니다. 미처 내리지 못한 운 나쁜 승객들을 끌고 말이죠. 그림이 그려집니까? 딱 <공포의 보수>라니까요! (p. 16)

디트리히도 웨인가 기네스도 가르보도 끝까지 무엇인지 설명되지 않는다. 또 옛날 헐리우드 영화 <공포의 보수>는 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제저벨은 배의 이름이다. 귀여운 곰돌이 외형의 선장과 앞서 언급한 회색인간 선의 프레드 그리고 항해사와 엔지니어 그리고 외형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요리사 아주머니. 이들은 베티 데이비스 여사(당연히 난 누군지 모른다!!!)의 초상화가 그려진 제저벨을 타고 다니며 바다에 떨어진 사람들을 구조하는 일을 하고 종종 다른 의뢰도 받곤 하는데, 이번엔 바다에 빠져있는 도서관큐브를 찾아달라는 의뢰였다. 그런데 이 큐브를 획득하자마자 제저벨에서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로즈 셀라비라는 군함이 제저벨을 추적해온다. 로제 셀라비는 곰돌이선장이 8년간 혹독하게 일하다 탈출한 곳이었다.

"내가 돕고 있는 게 누군지는 말할 수 없어. 하지만 이게 보다 큰 그림의 일부라는 건 말해줄 수 있지. (p. 54)"

도서관 큐브와 로즈 셀라비 잠입 건은 정말 큰 그림의 일부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크루소 알파라는 행성에서의 존폐를 건 사건들이 시작된다. 사건이 점점 중요해지면서 화자도 프레드 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는 항해사로 바뀐다.

마리아 부츠는 아름다운 곳이었어. 적어도 사람들이 정착한 제1대륙은 그랬지. 거대한 바다와 혼란스러운 해류 때문에 날씨가 변덕스럽고 폭풍이 심하긴 했어도 그곳은 링커 바이러스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폭발 진화한 아름다운 생태계가 있었고, 도시를 짓고 농장을 세울 수 있는 공간도 충분했으며, 링커 기계의 관심은 주로 극지에 쏠려 있었어. 다들 이보다 이상적인 식민지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 (p. 60)

선의 프레드는 이야기하는 걸 즐겼는데 그중에서도 자신의 고향 행성 마리아 부츠d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했다. 링커 바이러스, 링커 기계, 링커 우주... 수시로 나오는 링커 라는 게 무엇인지 아무리 읽어도 알수가 없다.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여하튼, 인류의 후손에 마리아 부츠에 정착하려 했는데 올리비에들이 떠나면서 마구 파괴시키고 간 바람에 정착민들은 모든 것을 맨손으로 다시 시작해야 했다.

문제는 지식이었어. 폭풍으로 도서관과 대부분의 정보 저장 장치가 파괴되었거든. (중략) 정착민 절반은 도서관 건물 안에 들어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들을 종이에 옮겼어. (중략) 이 백과사전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어. 필수적인 과학 지식이야 비교적 쉽게 재구축할 수 있지. 하지만 인문학 지식은 어떨까? (p. 62) 인류 문화의 보고라는 예술 작품들은 어떻게 하나?(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 부츠의 사람들은 최선을 다했고 종종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어. (중략) 마리아 부츠의 도서관에는 온전한 책 대신 제목과 줄거리가 적힌 목록들이 들어섰어. (중략) 이래 놨으니, 마리아 부츠 사람들이 창작욕에 달아오른 건 당연하다 하겠지. (p. 63) 언젠가부터 마리아 부츠의 사람들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어. 피부와 머리칼은 색을 잃었고 성격은 내성적이 되었으며 몽상은 늘어만 갔지. (중략) 마리아 부츠가 꿈꾸는 건 지구였어. (중략) 우리들은 제목만 남아 있는 책들을 수백번씩 다시 썼고 그림들을 다시 그렸으며 영화들을 다시 찍었어. (p. 64) 이런 시기가 지속되자, 더 이상 지구는 지구일 수가 없었어. 우리는 실제 지구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이제 별 관심이 없었어. 지구는 오로지 꿈의 재료였어. (중략) 고립기는 표준력으로 16년 전에 덜컥 끝나버렸으니 말이야. 올리비에 다섯 마리가 제3대륙에서 뭔가 근사한 일을 하려고 다시 우리 별을 찾았던 거야. (중략) 그러는 동안 그들 몸에 붙어온 밀항자들이 우리를 찾았어.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도서관 큐브를 하나 던져주었어. 거기엔 우리가 필사적으로 재현하려 했던 지구와 관련된 모든 지식들이 들어 있었어. (p. 65) 아무도 더 이상 우리만의 지구를 꿈꾸지 말라고 하지 않았지. 하지만 '진실'과 '사실'이라는 단어의 힘은 예상보다 훨씬 컸던 거야. 진짜 샬럿 브론테의 책들을 읽을 수 있게 되자, 우리가 쓴 수많은 [제인 에어]들은 그냥 덧없게 느껴졌어. 그중 몇 권은 심지어 원작보다 더 나았는데도 말이야. 그렇다고 우린 원작을 그냥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어. 진짜 [제인 에어]는 우리에게 너무 생생해서 오히려 어색하기 짝이 없는 유령이었어. 마리아 부츠는 공황에 빠졌어. 자살률이 늘어나고 출산율은 떨어졌지. 이 혼란기가 몇십 년은 갈 것 같았어. (중략) 열세 살이 되자, 나는 마리아 부츠를 떠났어.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고 우주로 날아갔지. 그게 우리에겐 유일한 해결책이었던 것 같아. 몇백 년 동안 마리아 부츠를 지배해온 꿈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어. 그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건 현실 세계의 행동이었지.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어. 어쩌다가 운이 나빠 차단 상태에 빠지면 주저앉아 전에 꾸었던 꿈을 다시 꿀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p. 67)

마리아 부츠 라는 행성의 운명은 이 책속에 등장하는 세계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곳에 떨어졌다 - 기존의 지식을 잃어 재구성하면서 꿈을 꾸기 시작했다 - 꿈을 꾸면서 새로운 삶이 안정화 되었다 - 기존의 지식이 다시 돌아왔다 - 혼란과 우울에 빠졌다 - 떠나거나 계속 헛된 꿈을 꾸는 수밖에 없었다 ... 라는 순서랄까. 꿈이 현실의 촉매제가 될수도 있지만 그 꿈이 유령이나 망령이 되어버리면 현실을 파괴시킬 수도 있었다.

선장에게 섹스보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우주시대 이후 더욱 막강해진 트레키들의 위세였다. 과거 지구에서 이들은 우스꽝스러운 소수였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인구수만 따진다면 교회마피아를 능가하는 당당한 문화 집단이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링커 우주는 할리우드 배우들이 라텍스 가면을 쓰고 외계인 흉내를 내는 <스타 트랙>의 우주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어느 누구도 스스로 움직이는 우주선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p. 82)

트레키 라는 단어를 사전검색하면 '스타트렉의 팬'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스타트렉을 거의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링커 못지 않게 그저 마냥 새롭고 알수 없는 단어일 뿐이다. 여하튼 작가는 스타트렉 뿐 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의 광팬이고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사람인것 같다. 영어를 영어로 써놓으면 나같은 영알못은 읽지도 못하겠지만 영어를 한글로 써놓았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트레키 니 링커 니 할리우드 영화 제목들이니 다 영어와 미국문화를 익숙해 하는 사람은 익숙할지 몰라도 나같은 영알못에게는 외계어와 다를 게 없다. 그래서 이 책이 (과학과 상관없이) sf 인 것인지도.

여하튼, 프레드는 과거에 시드니와 약속을 한 적이 있기에 시드니가 죽은 지금 그 아들이 요청한 일을 해야만 한다. 독일군과 소련군으로 나뉘어 2차세계대전을 끊임없이 재현하고 있는 전쟁놀이터 토요일에 가야 하는데 그 토요일에서 한때 전쟁광으로 살았던 사람이 항해사였다. 제저벨 일행은 항해사의 안내를 받아야만 토요일에 가서 의뢰받은 물품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 물품은 일종의 로봇이었다.

크루소는 편견 때문에 살기 힘든 곳은 아니었다. 1미터짜리 곰인형도 2미터짜리 고양이 인간도 특별히 꿀릴 것 없이 살 수 있는 곳이니 인종차별은 무의미했다. 양성의 경계가 붕괴되고 있었으니 지배적인 성차별이랄 것도 없었다. 다양한 종류이 편견과 차별이 존재했지만 그 수명은 대부분 길어도 한 세대를 넘기지 못했다. 편견이 그 이상 유지될 수 있을 만큼 특정 무리가 오래 유지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지금은 블랙 지하드 때문에 목요일의 평판이 안 좋고, 교회 마피아 역시 그렇게 인기가 있는 무리가 아니었지만 이들 역시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생물학적 후손을 남기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이 별에서 종교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베들레헴들은 예외였다. 베들레헴들은 단순한 정신병자들이 아니었다. (중략) 그들은 단지 평범한 인간들과는 전혀 다른 정신 구조를 갖고 있었다. 링커들의 장난에 놀아난 두뇌가 어느 단계부터 인간 두뇌의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p. 113)

항해사는 2미터 고양이인간이었고 엔지니어는 베들레햄이었다. 곰인형 선장에 할리우드 배우의 얼굴을 지닌 회색인간 프레드 까지 제저벨의 구성원은 하나같이 독특하다. 마지막 구성원 요리사 아주머니에 대한 정보는 없다. 이 각양각색의 구성원들이 한 팀을 유지하고 있는 데에는 요리사 아주머니의 출중한 요리실력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말이다. 다른 책에서 저자가 링커 우주 관련 작품을 썼다면 이 요리사 아주머니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은데... 이 책에선 더이상 알수가 없다. 여하튼, 베들레햄이라는 명칭이나 그 존재성에서는 여러모로 기시감이 느껴진다. 이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배경과 사용하는 낯선 단어들 외에는 SF라고 여길만한 것들이 별로 없다. 그냥 현실세계를 외계어로 바꿔 풍자하고 있는 우화처럼 읽히는 사건들.

토요일에서의 작전?!은 나름 성공적으로 끝나고 이제 장소는 레벤튼으로 넘어간다. 항해사의 고향이었던 섬 레벤튼, 과거 그 섬에서 잔혹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그저 한 미치광이가 벌인 일이 아니었다.

레벤튼 섬의 다른 사람들처럼 나는 열두 살 무렵부터 잠을 잃었다. 잠을 잃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뜻이다. 그것은 앞으로 각성된 상태에서 스스로의 꿈을 통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외부 우주와 내부 우주가 충돌하며 발생하는 혼란 속에서 스스로를 지킬 힘을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p. 155) 여전히 수정 같은 각성이 유지되는 동안 나는 의식적으로 모든 사고를 중지하고 정신에 빈 공간을 만들었다. (중략) 그곳은 온갖 종류의 꿈으로 채워졌고 그것을 현실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중략) 이것은 병이다. 외부의 물리적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생명체는 살아남지 못한다. (중략) 두 세계를 의식적으로 갈라놓을 수 있는 자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레벤튼의 아이들은 그 방법을 배워야 했다. 온전히 의지력으로 이 테스트를 통고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뇌수술이나 칩 이식, 화학 요법이 따라주어야 했다. 그렇다고 해도 뇌를 망치지 않고 잠을 되찾는 아이들은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꿈과 함께 살아야 했다. 나에게 그 해결책은 전쟁이었다. (p. 156)

항해사는 레벤튼의 아이였다. 스스로의 의지로 전쟁터로 갔다. 그리고 뇌수술이나 칩 이식, 화학 요법 없이 크루소에서 살아남았고 계속 살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베들레헴 엔지니어가 있다. 레벤튼에는 더이상 주민이 없다. 연구소에 연구원 한명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섬에 제저벨과 다른 배 하나가 도착하게 된 것이다. 레벤튼 섬이 과거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사람 대신 나비떼가 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생태계와 환경도 그 나비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크루소가 링커 우주에 편입된 것이 표준력으로 2000년 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목요일의 최근 발굴을 통해 크루소에서 5만년 전에도 잠시나마 링커 진화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음이 증명되었다. 그것은 정말 링커 진화였는가? 그랬다면 무엇이 링커 네트워크의 확장을 막았는가? (p. 161)

링커 생물학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식이란 뻔하다. 입증된건 별로 없고 해석을 기다리는 정보는 너무나도 많다. 오로지 올리비에와 아자니들만이 모든 걸 알고 있다. (p. 169)

서기2천년, 5만년의 인간의 역사 는 지구의 역사와 시간배경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지구의 역사 역시 밝혀진 것보다 밝혀야 할 정보들이 훨씬 많다. 무엇보다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은 작가뿐이다. 올리비에와 아자니가 대체 뭔지 링커 가 대체 뭔지 읽어도 알수 없는 이 정보들에 대해서 말이다. 끝까지 알려주지 않을 거면 대체 독자들은 어떻게 그 정보에 접근해야 하나? 오로지 작가만이 알고 있는 그 정보들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링커 기계들을 신처럼 생각합니다. 적어도 올리비에는요. 올리비에는 지성을 가진 모든 존재가 수렴 진화해서 모일 수밖에 없는 유일한 종착역입니다. 신이고 플라톤적인 완전체지요. 웨인, 쿠퍼, 기네스는 그 신을 돕는 천사들이고요. 우린 아직도 이 정의와 구분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합니까. 우린 아직도 링커 기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p. 181) 은하계 전체가 링커 우주는 아닐 것이고 아직 남아 있는 다윈 우주 어딘가엔 링커 우주의 습격을 이겨낼 만큼 발전한 문명도 분명 있을 겁니다. (p. 182)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링커 기계들이 우리가 그 진상에 접근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것이죠. (p. 183)

앞서 이 책이 현실풍자처럼 우화처럼 읽힌다는 언급을 했었다. '삼위일체! 대속! 말씀의 순수성! 말씀의 완성! 말씀의 전파! 창조와 종말! 유일신!" (p. 209) 그리고 정신병자 취급을 받던 베들레햄들은 뭉치고 전쟁을 벌이고 이기고 자신들의 나라를 세운 이야기 등 어떤 현실을 풍자했는지 거의 직설에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가? 또한 약탈하고 무의미한 전쟁을 하고 광신도가 넘쳐나는 사회는 굳이 sf일 필요도 없이 그냥 현실이었기에 아무리 외계어를 남발해도 우화로 읽힐뿐 sf로 다가오지 않는 사건들이었다. 게다가 플라톤적인 완전체라니... 작가는 소설의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영화지식 뿐만이 아니라 인문학적 문화적 지식을 뽐내느라 열심이다.

'인문학 지식은 어떨까? (p. 62)' '지금 베수비오 지하족 이야기를 하는 거야? (p. 69)' '그들에게 전쟁이란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폭력적인 수단이었지. 클라우제비츠가 정의한 진짜 전쟁이었던 거야. (p. 119)' '하여간 이것으로 우리의 성배 찾기는 일단 종결된 셈이지 (p. 133)' '연구 대상은 언제나 찰나의 일부이며 엠마 보바리나 플로리아 토스카처럼 짧은 시간 동안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린다. (p. 160)' '세뇌 벌레(종교적 믿음을 숙주에게 강요하는 화학물질) p. 170) - '말씀'에 복종하고 있었습니다. (p. 172)' '자코메티들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p. 201)' '당신들은 이 섬 안에서 데카당스한 사치를 누리는 귀족처럼 (p. 203)' 엘리너 파웰에 대한 에세이와 고대 로마 제국의 화장실 문화에 대한 농담 (p. 227)' '오메가라는 명칭은 테야르 드 샤르댕이 썼던 의미와는 달랐어. (p. 240)' '울릭세스 (p. 269)' '2245년, 오스트리아/프러시아 연합제국이 쏘아 올린 마리아 테레지아 라는 우주선 (p. 258)'

역사와 문학과 문화에서 차용한 저 단어들을 포함한 문장들을 굳이 이 SF소설에 갖다 쓴 이유가 무엇일까? 꼭 그 단어를 그 역사를 빗대어 표현하지 않았어도 될 때 굳이 저 지식적 용어들을 쓴 것이 작가의 자랑질 말고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베수비오 지하족이 역사속 어느 집단을 의미하는지 클라우제비츠가 정의한 전쟁이 뭔지 성배와 말씀의 의미와 엠바 보바리나 플로리아 토스카가 누군지 등등등 작가가 굳이 자랑질한 저 지식적 용어들을 읽고 뭔지 알았음에도 이해의 기쁨보다는 오만의 불쾌함이 느껴지는 건 나만 그런것일수도 있지만, 굳이 저 인문학적 역사적 문학적 단어들을 들춰내지 않았어도 소설의 서사진행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을 알기에 당췌 작가의 표현들에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sf와 멀어져가는 이 느낌....

(작가의 아는 척은 그냥 '연작소설'이라고 하면 다 알 것을 픽스업이라는 용어를 쓰며 구구절절 어렵게 쓴 '작가의 말'에서 다시한번 느껴진다. 끝까지 정말이지...에혀...)

내가 지금까지 눈으로 보았다고 믿었던 건 모두 '내 눈앞에 여러 명의 유령이 서 있다'와 같은 문장에 불과했어. 문장은 거기 유령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긴 하지만 아무리 형용사들을 많이 깔아도 그 유령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보여주지는 못하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 나는 유령들에게 손을 흔들어대며 껑충껑충 뛰면서 노래를 불렀어. '우리는 마법사를 만나러 가네. 놀라운 오즈의 마법사를!' 그 순간 빛이 들어왔어. (p. 252)

'마리아 부츠 사람들이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게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제인 에어] 이고 다른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 이라고. (p. 129)'

마찬가지로 저자가 확실히 좋아하는 건 [제인 에어]와 디킨스

눈으로 읽은 문장이 물체감은 없듯이 문장이 존재를 증명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저자의 세계관은 소설 속에서 증명되지 않고

'지금까지 지구인들은 그들이 저지르는 수많은 바보짓을 신비주의로 포장해 그럴듯하게 해석해왔던 게 아닐까. (p. 290)'

처럼 sf인지 아닌지 헤깔리는 세계를 sf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해 놓고 그럴듯하게 해석해 왔던 게 아닐까.

하지만

'앞으로 인간과 링커 기계 사잉서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이야기를 만들게 될지 누가 알랴. 수많은 가능성을 담은 새로운 미래가 시작되고 있었다. (p. 291)'

라는 마무리처럼 저자의 작품엔 수많은 가능성이 있을 테지...

나는 내 인생에서 허구의 재료가 될 만큼 재미있는 순간을 단 하나도 골라낼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보고 읽은 것에 대한 기억은 꽤 갖고 있다. 이들은 내 인생 대신 내가 쓰는 이야기의 재료가 된다. 이들 대부분은 번역서들이거나 자막이거나 더빙을 입힌 외국영화들이다. (중략) 아직도 나는 한국소설을 읽을 때 종종 낯선 사람의 나체를 보는 것과 같은 난처함을 느낀다. (p. 296) <제저벨>에 대한 내 알리바이는 내가 그리는 이 세계가 객관적인 우주가 아니라, 내 어린 시절 문화 경험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은 번역서들이거나 자막이나 더빙을 입힌 외국 영화들이다. 나에게 번역체의 문장을 통과한 이국의 환경은 가장 자연스러운 공간이었고... 여기서부터 이 글은 무한 순환한다. (p. 298)

저자의 소설은 sf소설이다. 하지만 sf 라고 해서 작가의 경험이 전혀 안 들어간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김초엽 작가나 천선란 작가의 sf를 좋아하는 것은 sf 소설작품에도 그들의 인생을 그들의 경험을 녹여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듀나 작가의 소설에선 그런게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가 말했듯이 자신의 경험이 아닌 자신이 본 책과 영화들을 재료로 써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작가의 어린 시절 문화 경험은 모두 외국작품 외국영화였나 보다. 그리고 작가가 여전히 한국 소설을 낯설게 느껴서인지 작가의 소설은 한국sf로 읽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외국sf로 읽히지도 않는다. 그저 낯설고 난처할 뿐이다.

검색을 해보니 1990년대 PC통신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듀나라는 필명으로 꾸준히 활동중인 '얼굴없는 작가' 다. 신상정보를 전혀 공개하지 않고 활동하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30여년을 그렇게 활동해왔다니 기묘하면서도 대단하다 싶다. 전부터 듀나 작가의 작품이 궁금했다. 한국SF 소설에 대한 평을 할때 빠지지 않는 작가였고 늘 분석되는 작품을 쓰고 있는 작가로 보여서였다. 하지만 내가 접한 듀나 작가의 작품은 생각보다 너무 마이너 했다. 아니 마니아 적이라고 해야 하나. 마블 시리즈 영화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마블 시리즈 영화는 한편 한편 그냥 봐도 재미있지만 마블 세계관을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하지만 듀나의 SF 세계는 마블시리즈 처럼 대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듀나의 팬들이라면 그래서 이미 전작들을 통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면 재밌게 점점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겐 그저 여기저기서 짜깁기하고 모방에 모방을 거듭한 혼합물로 혼란스럽게 읽혔을 뿐이다.

마리아 부츠 선생의 서가와 마찬가지로 이 책은 내가 읽지 않은 책과 영화에 대한 모방으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제저벨이라는 배의 이름이나 몇몇 설정은 마커스 굿리치의 [딜라일라]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나는 제임스 미치너의 [작가는 왜 쓰는가]에 나오는 소개글을 읽었을 뿐, 이 책을 읽은 적이 없고 읽을 생각도 없다. (p. 300) 단지 부츠 선생과는 달리 나는 읽은 책과 영화도 꽤 있는 편이라, 그것들 역시 크루소 행성을 이루는 재료가 됐다. 그 상당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나온 RKO사 제작 흑백 영화들이다. 우리나라엔 이 영화들의 팬이 별로 없는 편이라, 이 책은 종종 불친절하다는 말을 듣는다. 곽재식 작가는 듀나 소설을 <제저벨>같은 걸로 시작하면 이게 뭔가 하면서 헤멜 수 있다고 친절하게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독자들이 과연 작가가 숨겨놓은 모든 레퍼런스들을 다 이해해야 하는 걸까? 모르면 모르는 대로 즐거운 독서가 가능하지 않을까. (p. 301)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저벨>은 서구인과 서구세계를 흉내 내는 비서구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중략) 가짜 유럽 국가가 무대인 로맨스 판타지와 서양 배경의 뮤지컬이 한국에서 인기를 끄닌 지금, 이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여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p. 302)

'나는 한국적 SF에 대한 의무감은 없지만, 한국인이 아닌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늘 조금씩 민망함을 느낀다. (p. 298)' 면서 '가짜 유럽 국가가 무대인 로맨스판타지와 서양배경의 뮤지컬이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지금 이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여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라는 마무리는 내로남불 혹은 어불성설 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지. '한국어롤 쓰는 한국 사람들만이 모인 우주선이 안드로메다 은하계로 날아가는 미래는 상상하지 못하겠다. 아마 그런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다. (p. 298)' 라는 저자의 말을 보며 나는 왜 평소 갖고 있지도 않던 국뽕감이 차오르는 것일까. 듀나 작가가 한국적 SF에 대한 의무감도 갖고 민망없이 한국 캐릭터가 등장하는 아니 아예 주인공으로 하는 SF도 썼으면 어떨까 싶다.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아니 그게 왜 오지 않을 미래라고 단정하는지. 아니 듀나 작가가 그런 작품을 쓰지 않아도 된다. 이미 그런 한국적 SF 잘쓰는 작가들 많다. 또한 작가는 자신의 외국어 실력과 인문학적 지식을 다시 뽐낼때 알아둬야 할게 있다. 지금 이 시대는 작가가 PC통신 하던 그 시절과 같지 않다고, 지금 정보와 책이 넘쳐나는 이 시대는 그런 외국어 실력과 인문학적 지식을 알고도 잘난척 뽐내지 않는 사람들도 많으니 독자가 알아챌게 뭐람 하면서 무시하다간 나중에 큰코 다칠 거라고. (ps. 가장 최첨단 소설인 SF를 쓴다는 작가가 이런 구시대적 꼰대 마인드를 작품 곳곳에서 드러내다니 거참 당혹스럽기가 참...)

듀나 세계로 오는 자,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려라.

여하튼, <제저벨>은 듀나 작가의 작품에 열광하는 독자라면 또다시 열광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듀나 작가의 작품에 접한 적 없다면 곽재식 작가의 친절한 조언을 명심하길 바란다.

ps. Jegebel 을 구글번역기에 입력하니 노르웨이어로 '사랑해요' 라는 뜻이라고 나오는데... 아무래도 이 뜻으로 사용한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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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민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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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투자에 대해 소설로나마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디스토피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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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민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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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차는 숫자로 되어 있다. 숫자는 처음에서 뒤로 갈수록 계속 증가한다. 때로는 엄청난 상승폭으로 증가한다. 그러다 마지막에 가서 훅 내려간다. 머리속에 그래프로 그려본다면 쉽게 연상이 될 것이다. 투자경험이 있다면 더욱 이 숫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이 올 것이다. 가장 고점이 만배 이상 뛴 숫자다. 이런 숫자가 가능한 세상은? 암호화폐 시장이다!

내 학창 시절은 보잘것없이 흘렀다. 녹색 칠판으로 가로막힌 벽, 죄수복을 복사해 붙여 넣은 듯한 교복, 호르몬이 넘치는 남학생들이 뿜어내는 쉰내가 내 10대 후반을 정의했다. 묵은 빚을 안고 하루하루 사는 기분이었다. 이 빚을 다 갚는 날 교실을 빠져나가면 분명 다른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아니라도 좋았다. 그저 뭔가가 달라졌으면 했다. (p. 14)

이정환은 현재 29세 무직이다. 아르바이트로 치킨집에서 닭을 튀기고 있다. 집안 형편은 나아진 게 없었고 본인의 미래도 달라진게 없었다.

졸업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대학에는 들어갔지만 취업은 하지 못했다. 계층과 위계의 구분이 격자처럼 얽힌 세상에서 나는 분화되지 못한 종이었다. 남성으로 분류되게는 약자였고 젊은이라고 하기에는 패기, 야망, 열정이 부족했다. 재산으로 보면 소외 계층에 가까웠으며 그렇다고 여자나 아이도 아니었느니, 말하자면 종의 외곽에 존재하는 돌연변이였다. (p. 15)

시장 골목 안 치킨가게에서 닭을 튀기고 있는 정환에게 현기가 찾아온다. 현기는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다. 정환이 불량한 친구에게 머리카락을 라이터로 그슬리고 있을 때 그 라이터불을 끄게 만들어준 친구가 현기였지만 그렇다고 현기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담배를 피우며 몰려다니는 자신의 친구들을 정환에게 소개시켜준 것은 아니었다. 현기는 현기대로의 불량한 삶을 살았고 정환은 정환대로 착실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현재 둘이 처한 현실은 그닥 다를 게 없었다. 현기가 정환에게 제안을 한다. 돈을 줄테니 함께 살인을 하자고.

"법을 어기지 않고서도 다른 사람의 돈을 빨아먹을 방법이 있다고 했죠. 몇백 몇천이 아니라 억 단위로요" (p. 28)

현기와 정환의 삶과 정반대편에 살고 있는 사람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는 최닥은 치과의사였다가 주식투자자였다가 코인투자자가 됐다. 코인투자자라기 보다는 창조자라고 해야 하려나... 대선캠프에서 후보자의 토론 준비를 위한 참고인으로 최닥은 유 후보를 만나 자신이 어떻게 코인 세상에 발을 디디고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으며 그 세계가 어떤 식으로 수익을 내는지 설명하기 시작한다. 도덕적으로 옳은 건 아니지만 불법은 아니라면서.

"담합을 해서 조작을 시도하셨는데, 암호 화폐 시장에서는 공정한 전략인 모양이죠?"

"말씀하시는 담합이 별게 아니에요. 암호 화폐까 가격 변동성을 가지고 움직이려면 여러 조직이 각자 역할을 해야 해요. 코인은 상품이니까요. 세간에서 조작이라고 마하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고요. 마케팅이나 광고 행위를 문제 삼을 수는 없잖아요?" (p. 76)

최닥은 친구들과 코인 투자사를 만들었고 래더코인을 유통시켰다. 현기가 감옥에 가기 전 절도를 하러 들어간 집이 최닥의 집이었고 거기서 가지고 나온 것들 중에 래더코인 관련 문서도 있었다. 현기는 정환에게 코인이 뭐냐고 어떻게 사는거냐고 물어보고는 정환에게 대신 계정을 만들어 코인을 사달라고 하면서 투자금을 나눠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현기가 절도죄로 2년간 감옥을 다녀오는 동안 래더코인 가격이 엄청나게 뛰어버렸다. 그 뒤의 일들에 대해 현기나 정환같은 이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숫자만 보일 뿐이었다.

궤도를 이탈해 추락할 줄 알았던 수익율이 어느덧 4000퍼센트여싿. 현기의 500만원, 아니 우리이 500만원은, 이제 2억이 되어 있었다. 현기는 여전히 내게 같이 할 거냐고 묻지 않았다. 꾸준히 미끼를 던질 뿐이었다. 코인이 싸구려였던 시절이 차라리 좋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박정배를 납치하지 않는 대가로 내가 포기해야 할 기회 비용은 증가하고 있었고, 언젠가 이 활황이 정점을 찍고 고꾸라지기 시작할 때 내가 느끼게 될 상실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p. 83)

현기는 정환에게 박정배라는 사람을 납치해와 달라고 했다. 현기가 감옥에서 알게된 박정배라는 인물을 그저 남치만 해오라고. 잠이 드는 약도 줄 것이고 마지막은 자신이 직접 처리할 거니까 박정배를 자신의 눈 앞에만 데려다 놓으면 코인의 절반을 준다고 했다. 정환은 주식투자는 해봤지만 코인투자는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500만원이 2억이 되는 걸 보면서 정환의 모든 것이 흔들렸다. 현기의 제안이 점점 사소한 일처럼 할법한 일처럼 여겨지고 정환이 받게 될 돈이 점점더 탐이 났다. 가져본 적도 없는 돈에 대해 상실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돈은 욕망이 빚은 예술품이라는 사실을 머치 깨닫지 못했다. 인간의 욕망을 이해하지 못한 나의 패착이었다. 실체는 중요하지 않다. 종이 쪼가리건 금속이건 디지털로만 존재하는 개념이건, 욕망을 투영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우리는 허상을 주고받으며 욕망을 해소하니까. 화폐는 욕망 때문에 생겨난 존재이고 인간의 욕심에는 끝이 없을 것이다. 코인의 가격은 사람들의 욕망이 들끓는 만큼 솟구칠 것이다. (p. 91)

정환은 주식투자를 연습하며 커뮤니티 활동을 열심히 했었다. 커뮤니티에는 정보만 오가는 것이 아니었다. 온갖 풍문과 욕설과 야설이 엉켜드는 곳이었다. 커뮤니티를 드나들며 그러한 글들과 반응들을 보며 정환은 '무감각해졌다. (중략) 어지간히 지저분한 말에도 충격을 받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산성 물질 같은 패륜성 글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노골적인 성애 묘사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기꺼이 타인을 조롱했다. 사람들과 함께 진영을 이루어 상대편을 욕하고 있으면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인것처럼 느껴졌다. 비난의 대상은 누구라도 좋았다. 사회적 약자에게는 노력하지 않았다는 프레임을 씌웠고 강자는 위선적이라는 이유로 비난했다. 강자도 약자도 아닌 자에게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로 폭격을 가했고, 그마저도 통하지 않으면 외모를 품평했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숨기고 있던 본마음이 있었다. 환영받지 못하는 내밀한 목소리를 아무렇게나 배설하는 은밀함이 존재했다. 윤리와 규범의 경계가 무너져도 괜찮은 공간에서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p. 78)' 그리고 매일같이 래더리움 코인가격을 확인하며 마음이 점점 조급해져 갔다. 하지만

최후의 희생자는 내가 아닐 거라는 확신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폭탄을 돌리면서, 최고점에서 매수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자신이 아닐거라 믿었다. 자신이 투자하는 시점은 남들보다 조금은 더 빠른 순간일 것이라고, 매수 후에 곧바로 매도를 한다면 조금 더 운이 나쁜 누군가에게 폭탄을 건네면서 자신은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p. 118)

최닥은 유 후보에게 코인투자는 철저한 도박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그래서 빠져드는 것이라고. 그 세상에는 조작이 불법이 아니었다. 어차피 법으로 관리되는 세상이 아니었으니까. 코인회사는 관리자와 기타 운용팀과 계약을 맺고 서서히 시장을 조종한다. 일반 사람들 눈치채지 못하게 자신들의 투자금으로 서서히 코인의 가격을 올려나간다. 점점 가팔라지는 코인가 상승세를 보며 서서히 일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시장에 유력종목이라는 투자조언을 뿌리면 사람들은 점점 더 투자금을 올리기 시작한다. 이제 초반 투자비용을 넘어 순전한 투자금이 들어오면서 코인회사의 순이익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코인가를 섬세하게 조절해 나간다. 언제나 작전이 중요하다. '나는 남들과 다른 거라는 희망을 품고 떠내려가 절망의 소용돌이에서 뱅글뱅글 돌다 익사해 버리고 마는 곳(p. 122)' 이라는 것을 코인투자라는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처음엔 코인을 믿지 못했던 정환도 그 수익률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듯이.

리딩방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만 바라봤어요. 손을 모으고 계시를 기다리는 거예요. 이걸 사라, 저걸 사라. (p. 133) 그러면 우리가 말하는 대로 돈이 움직여요. 무슨 교주라도 된 것 같더라고요. (p. 134)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자신의 미래가 절망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상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무리 현실이 시궁창 같아도, 세상 사람 모두가 망가지고 무너지더라도, 자신에게는 한 가닥 희망이 빛을 비추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음에 병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런 입에 발린 소리를 해 주는 곳에 마음을 기대는 법이다. 최닥과 친구들이 이용한 건 바로 그 연약한 마음이었다. (p. 135)

현기와 정환이 코인투자를 적극적으로 열심히 한건 아니었다. 현기가 우연히 얻은 도둑문서로 알게된 래더코인을 훔친돈으로 사놓고 감옥에 다녀왔을 뿐이다. 하지만 그 사이 엄청난 금액이 된 코인가격을 보며 정환은 현기의 제안을 점점 뿌리칠 수 없어져갔고 매일같이 코인가격을 확인하며 점점 커져가는 욕망에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게 되어 갔다. 점점 나빠져가는 상황이 정환을 점점 더 코너로 몰아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신은 없다.

사람들이 말하는 신은 없다. 신이 있다면 현실이 이럴 수는 없다.

나는 믿는다. 나는 신이 아닌 것을 믿는다. 나는 사실을 믿는다. 나는 숫자를 믿는다. 나의 신은 숫자다. 모니터에 뜬 숫자가 나의 신이다. 욕망에 따라 오르내리는 이 정작한 그래프가 내 신의 가격이다. 나는 이 신이 내게 번영을 가져다줄 것을, 나의 신념을 알고 나를 위로할 것을 믿는다. 나는 기도한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향해 손을 모으고, 속에 담은 말들을 중얼거린다. 당신을 소환한다. 당신에게 토로한다. (p. 181)

최닥은 자신이 마치 교주가 된 것 같았고 정환에겐 숫자만이 신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세상은 둘다 가상의 세계, 암호화폐 세상이었다. 숫자가 신이 될 수 있을까? 적어도 숫자가 종교가 될 수는 있어 보인다. 이 소설 속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최닥은 어떻게 됐을까? 정환은 현기의 제안을 어떻게 했을까? 숫자는 과연 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주었을까? 그 세상은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읽는 내내 <달까지 가자> 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달까지 가자>는 코인투자에 관한 유토피아에 가까웠다면 <당신의 신은 얼마>는 디스토피아에 가까웠다.. 코인투자의 초기 이익을 올린 개미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달까지 가자>를 읽었을때 그 소설이 유토피아적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개미투자자들이 어떻게 이용당하는지 <당신의 신은 얼마>라는 소설을 통해 알고나니 그건 거의 유토피아였다. 디유토피아는 현실의 긍정성을 바탕으로 더 나아진 세상을 그려내고 디스토피아는 현실의 부정성을 바탕으로 더 나빠진 세상을 그려낸다. 유토피아를 꿈꾸다가 디스토피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현실은 더이상 유토피아의 긍정성이 먹혀들지 않을 때다. 디스토피아는 현실적이라는 점에서 늘 더 큰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달까지 가자> 에서 가능했던 얼마간의 개미의 성공이 이제는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당신의 신은 얼마>라는 작품이 말해주는 듯 했다. 카지노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카지노 사장이듯이 코인투자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결국 그 회사 뿐인것을, 황량한 사막같은 현실에서 오직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개미는 모래구덩이에 빠져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계속 모래만 파고 있는데, 그때 개미들의 신은 과연 무엇인 것일까... 보이지 않는 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숫자가 아니라 보이는 현실을 믿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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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임진왜란에 관한 뼈아픈 반성의 기록 클래식 아고라 1
류성룡 지음, 장준호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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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임진왜란을 경계하며

유성룡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고전읽기를 좋아한다면서 국내 고전에 대해선 읽은 게 거의 없는 것 같다. 서양고전에 대해서는 수메르신화부터 고대그리스로마 그리고 중세까지 세계사를 관통하는 책들을 수두룩 읽어오면서 사이사이 동양고전을 공자 맹자 순자 등 중국철학서 몇 권 읽은 것 외에 한국의 고전 읽기는 과연 무엇이 있었나;;; 사실 역사서와 고전이라는 책이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한국사 책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기에 좀 애매한 감도 없잖아 있지만 <징비록>을 읽고나서 알았다. 우리의 고전도 이토록 생생하게 있었구나 우리의 고전도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구나 라는 것을.

[시경]에 이르기를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경계하여 뒤의 근심거리가 없도록 조심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징비록]을 저술한 까닭이다. (p. 10) 비록 볼 만한 것은 없지만 당시의 사적들로 버릴 수 없었다. 이로써 시골에 살면서도 성심으로 나라에 충성하고자 하는 나의 간절한 뜻을 나타내고, 또 어리석은 신하가 나라에 보답하지 못한 죄를 드러내려고 한다. (p. 11)

<징비록>은 익히 알려진대로 유성룡이 임진왜란 이후 다시는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후대를 생각하며 임진왜란 이라는 전쟁을 되짚어본 책이다. 따라서 반성과 후회, 깨달음과 나아갈 바를 두루 적은 역사적 기록이자 일종의 전쟁사 이다. 전에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땐 별로 마음이 동하지 않아서 미루었다가 근래 영화 <한산>을 보고 나니 아무래도 이번엔 읽어봐야지 싶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 재밌어서 놀랐다. 이미 아는 전쟁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토록 긴박하게 읽히는 책이었을 줄이야!

대체로 성은 견고하고 작아야 좋은 것인데, 당시에는 오히려 넓지 않은 것을 걱정하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군정의 근본, 장수를 뽑는 요령, 군사 훈련의 방법 등이 백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도 정돈되지 않아 결국 전쟁에 패한 것이다. (p. 23)

주로 전쟁의 패인을 짚어 나가는 책이지만 서술이 연대기순으로 되어있다보니 전쟁이 임박해올 수록 혹은 전쟁이 진행될 수록 마음졸여 가며 읽게 되는 쫄깃한 책이었다. '신립은 하나라도 살피거나 깨닫지 못하고 가버렸다. (p. 27)' 장군의 지략없이 고집세고 자만심만 강한 신립 같은 장군의 모습을 읽으면 화가 나고 '우복룡은 군사들이 말에서 내리지 않는 것에 화가 나서, (중략) 모두 죽이니 시체가 들판에 가득 쌓였다. (p. 33)' 일본군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데 인사하지 않는 병사들을 죽이는 장군을 오히려 승진시키는 조정에 기가막혀서 '일본군이 길을 나누어 멀리까지 말을 달려 여러 고을이 연이어 함락되었는데 감히 막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p. 32)' 라는 과정이 너무도 당연스런 나머지 한숨조차 쉬어지지 않았다. '성첩은 3만여 곳인데 성을 지킬 사람은 겨우 7천 명이고, 그것도 다 오합지중이라서 모두들 성을 넘어서 도망갈 생각만 했다. (p. 43)' '불행히 경상도 수륙 장수들은 모두 겁쟁이였다. (p. 47)' 전쟁 초기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지금 후회한다고 하더라도 소용은 없으나 뒷날의 경계까 되는 것이므로 자세히 적어 두는 것이다. (p. 48)' 그나마 유성룡 같은 학자가 있었던게 당시의 천운이라면 천운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징비록>은 당시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비난 받았던 책이었다. 아마도 자신들의 잘못을 세세히 들여다보기 부끄러운 사람들이 천지라 그랬던 것이리라...

임금의 행차가 평양을 떠난 뒤로 인심이 무너졌다. 난민들이 지나는 곳마다 창고에 들어가 곡물을 약탈했다. (p. 81)

요동에서는 우리나라에 왜변이 있다는 말을 듣고 곧 조정에 보고하였으나, 조정의 논의가 다들 달랐으며 심지어는 우리가 일본을 인도하고 있다고 의심하기도 했다. (p. 83)

임금이 의주로 피난갈때까지 민심은 점점더 무너졌고 그 빠른 괘멸 속도에 명나라는 그 상황이 사실이라고 믿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휘몰아치는 전쟁이 다 쓸어버리고 나서 그 진격 속도가 더뎌지자 조선도 조금씩 다시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임금이나 지배층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각 도에서 의병이 일어났고 명나라의 군대가 오면서 일본군은 그제야 주춤하게 된다. 명나라군과 평양성을 탈환하며 후퇴하는 일본군을 말끔히 소탕했어야 했는데, '김경로는 다른 핑계를 대며 듣지 않았다. ... 김경로는 일본군과 싸우는 것이 두려워 피해버린 것이었다. ... 만일 우리 군사가 고니시 유키나가, 소 요시토시, 겐소 등을 사로잡았다면 경성에 있는 일본군은 저절로 무너졌을 것이다. .... 한 사람 김경로의 잘못으로 사태가 나라의 운명에 관계되었으니 진실로 통분하고 애석한 일이다. 나는 임금께 글을 올려 김경로의 목을 베자고 요청했다. (p. 119, 120)' 그러나 김경로의 목은 베이지 않았다. 전쟁전 전쟁중 전쟁후 에도 내내 그랬다. 상받아야 할 사람들은 감옥에 가고 벌받아야 할 사람들은 승진을 하기 일쑤였다. 그때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천운이라면 또 천운이다. 여하튼, 전쟁의 분위기가 전환되었던 초기 기세를 잡지 못한 것에 유성룡은 크게 통탄한다. 그뒤로 명나라군은 조선땅에 있었으나 제대로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때의 유성룡의 통탄은 더욱 뼈아픈 역사적 순간이 되고 말았다.

처음에 원균은 이순신이 와서 구해준 것을 은덕으로 여겨 서로 사이가 매우 좋았다. 얼마 후 전공을 다투어 점처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원균은 성품이 험악하고 간사했다. 또 중앙과 지방의 인사들과 수시로 연락하여 이순신을 모함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p. 157) 임금께서는 (중략) 성균사성 남이신을 파견하여 한산도에 내려가서 사실을 조사해오게 했다. 남이신이 전라도에 들어서자 군민들은 길을 막고 이순신이 원통하게 잡혔다는 것을 호소했다. 그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남이신은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고 (중략) 이순신이 하옥되자 (중략) 사형을 감하여 삭발한 다음 군대에서 복무하도록 했다. 이순신의 노모가 아산에 있었는데, 아들이 옥에 갇혔다는 말을 듣고 애를 태우다가 죽었다. (중략)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몹시 슬퍼했다. (p. 159, 160)

원균이 한산도에 통제사로 부임했는데, 그는 이순신이 정해 놓은 제도를 다 변경하고, 이순신이 신임하던 장수와 군사들도 모두 내쫓아버렸다. (중략) 이순신이 한산도에 있을때 운주당이라는 집을 짓고, 밤낮을오 그 안에서 지내면서 여러 장수들과 함께 군사에 관한 일을 의논했다. 비록 졸병이라고 해도 군사에 관한 일을 말하려고 하는 사람은 와서 말하게 했다. 군대의 상황을 소통하게 하였으며, 매번 싸움을 할 때 장수들을 모두 불러 계교를 묻고 전략이 결정된 뒤에 싸웠기 때문에 패한 일이 없었다. 원균은 애첩을 데려다 운주당에 살게 하고 이중으로 울타리를 쳐서 안팎을 막아놓으니, 여러 장수들은 원균의 얼굴을 보는 것도 드물었다. 또한 원균은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날마다 주정을 부리고 화를 내면서, 형벌에도 법도가 없었다. (p. 161) 원균은 도망하여 바닷가에 이르러 배를 버리고 언덕으로 달아나려 했으나, 살이 찌고 몸이 둔하여 올라가지 못하고 소나무 아라에 앉아 있었다. 좌우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흩어져버렸다. 어떤 사람은 원균이 일본군에게 살해되었다고도 말하고, 어떤 사람은 그가 도망하여 죽음을 면했다고 한다. 그 사실은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p. 163)

<징비록>에서 이순신의 비중은 상당하다. 말미에 있는 세개의 장이 모두 이순신에 대해서 라고 할 수 있다. 9장 이순신의 재기용과 명량해전, 10장 일본군의 퇴각과 노량해전 모두 이순신의 해전이 임진왜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친 승리였는지 설명하고 마지막 11장에선 아예 '이순신의 인품' 이라고 이순신에 대한 간략한 전기로 징비록을 마무리 하니 만약 이러한 유성룡의 기록이 없었다면 이순신의 업적이 후대에 이토록 잘 알려졌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순신의 해전이 큰 승리이긴 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지 않았다면 아무리 이순신이 있었어도 조선의 운명이 어찌되었을지 알수 없다. 노량해전 에서 이순신이 죽기 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다. (명량-한산 에 이어 이순신 영화 3부작이 마지막은 아마도 노량해전이 될 터인데 유성룡의 회고로 영화를 구성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그리고 징비록도 끝났다. 그러나 뒤이어 [녹후잡기]가 이어지는데, '녹후잡기는 유성룡이 [난후잡록]의 체재를 달리하여 초본 [징비록]을 저술하면서 본문에 포함하지 못한 [난후잡록]의 기사를 [징비록] 뒷부분에 '잡기'라는 형태로 부기한 것이다. (p. 188)' 아무래도 잡기의 기록은 앞선 징비록의 기록만큼 치밀하지 못한 감이 있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보다 총체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중요한 내용들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태평세월이 백 년 동안이나 계속되어 백성들이 전쟁을 알지 못하다가 갑자기 일본군이 쳐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엎어지고 넘어져 멀고 가까운 곳 할 것 없이 바람에 쓰러지듯이 모두 넑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열흘만에 도성에 들이닥쳐서 지혜로운 사람은 계책을 도모하지 못하게 했고, 용감한 사람은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게 했다. 인심은 무너져 수습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병가의 좋은 계책이며 일본군의 교묘한 계책이었다. 그러므로 도성을 뺏은 것을 교묘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때 일본군은 항상 승리했던 위세를 믿고 뒷일을 돌보지 않고 여러 도로 흩어져 나아가서 마음껏 미쳐 날뛰었다. 군사가 나누어지면 세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중략) 적군의 잘못된 계책은 우리에게는 다행이었다. (p. 193, 194) 당시에 우리는 너무 쇠약하여 이것을 능히 처리할 수 없었다. 명나라의 여러 장수들도 또한 이런 계책을 쓸 줄 몰라 일본군에게 조용히 오고 가게 했다. 이 때문에 적이 조금도 징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갖은 방법으로 이것저것 요구하게 되었다. 이때 일본에게 대처하는 전략은 하책에서 나와서 봉작과 조공으로써 그들을 견제하려고 했으니 탄식할 일이며 애석한 일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더라도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분격할 일이다. (p. 195)

전쟁에 대한 인식이나 준비성 등 임진왜란 당시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겠으나 가장 큰 실책이라면 명나라군이 왔을때 반전기회를 잡지 못한 것이었다. 빠르게 공격받은 만큼 빠르게 물리쳤어야 했다. 하지만 명나라군도 조선도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당시 일본군의 위력은 대단했다. 징비록의 마지막 장을 이순신에 대해 쓴것과 비슷하게 녹후잡기의 마지막 장은 심유경 이라는 명나라 관리에 대해 썼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조정에 조선을 적극적으로 비호했으며 일본군과의 협상에 담대하게 응했던 심유경이라는 인물의 발견은 징비록을 읽으며 얻은 빼놓을 수 없는 수확이었다.

이 책의 절반 조금 넘는 분량이 징비록 본문과 녹후잡기 본문 즉 고전 본문 이라면 남은 절반은 [해설] 이다. <징비록>이 역사적 사료로 쓰일만큼 중요한 문헌이니 자세한 해설은 필수라고 하겠다. 역자는 해설에서 징비록이 어떤 책이고 유성룡은 어떤 인물이며 임진왜라 당시 동아시아 3국의 정세가 어떠했는지 자세히 설명해준다. 그럼으로써 이 시대 <징비록>을 왜 다시 읽어야 하는지 생각케 한다.

과거를 공부한다고 해서 미래를 반드시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예측불가능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기술과 지혜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인간사에서 과거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전개될 미래의 해석에 도움이 되기 위해, 과거의 정확한 지식을 열망하는 탐구자들을 위해 <펠로폰네소스전쟁사>를 썼다고 했다. 유성룡이 <징비록>을 남긴 이유도 투키디데스의 의도와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p. 357)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사>를 얼마나 감탄하며 읽었던가? 서양전쟁사는 그렇게 읽어놓고 <징비록>을 이제야 읽게 된것이 못내 부끄럽다. 역사서는 승자의 기록이고 역사가가 아무리 객관적으로 쓰려 했다해도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기록이다. 그러니 시대를 달리하며 다르게 읽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먼 과거일수록 지금의 현실과 직접 연결되지 않을수록 오히려 미래를 예측해보는데 더욱 중요한 기록이 된다고 생각한다. 거리두기는 역사읽기에도 필요한 것이다. 역자는 <징비록>이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되기를 염원하며 이 책을 마무리했지만 나는 이 책이 이시대에 보다 널리 읽히길 더 소망한다. 징비록에서 읽혀지는 리더의 모습과 리더 주변의 관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당장 임진왜란처럼 외세에 의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전쟁과 다를바 없는 혼란스런 국내 정세를 보며 독자로서 깨달아지는 바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명량- 한산 에 이어 이순신 영화 3부작의 마지막편이 나오기 전에 <징비록>을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분명 영화못지 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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