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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아시아 제52호 2019.봄 - 이 사람 An Asian Profile : 모든 생명의 친구
아시아 편집부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처음 읽어보는 계간지 였는데, 좋은 경험이었다.
계간 ASIA 는 문학잡지로 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문학을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잡지라서인지 중간중간 영어로 번역되어 있어서 영문과 함께 있는 잡지인것도 새로웠다.
이사람 코너 에서는 '모든 생명의 친구, 미야자와 겐지' 를 다루었다.
시인이자 동화작가로서 사후에서야 진가를 인정받은 미야자와 겐지는 1896~1933 을 사는 동안 주변에서 인정받지 못해도 힘없고 못사는 이웃과 함께 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제국주의의 광기를 더해가는 일본 내국인으로서 국가주의가 아닌 자연과 생물을 사랑하고 농촌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인용된 작품들을 보면서 권정생, 김연수 작가가 왜 그의 작품들을 좋아했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ASIA 의 작가 코너에서는 박민정 작가의 소설작법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아내들의 학교 라는 작품을 통해 내가 좋아하게 된 작가라서 특히 관심이 가는 코너였다. 소설의 인물에 대하여 작가 스스로 밝히는 고민의 지점들이 공감이 갔다. 결국 소설의 인물과 캐릭터성은 작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애초에 작가가 가졌던 의지대로 읽히긴 어려우며, 오히려 그렇게 읽히는 것이야말로 프로파간다적인 것은 아닌가 라는 작가의 생각에도 수긍이 갔다. 상대방과 직접 마주한 대화로서만 교육을 하고자 했던 소크라테스와 스승의 뜻을 이해했기에 글로 남기는 작품에 부정적이었음에도 글로 쓸 수 밖에 없었던 플라톤도 생각이 나면서, 직접적인 전달과 간접적인 전달 사이의 어쩔 수 없는 간극은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ASIA 의 시 코너에서는 베트남의 쩐 꾸앙 다오 와 중국의 레이핑양 글이 있어서 다른 나라의 작품을 읽는 신선함이 있었다.
ASIA의 소설 코너에서는 일본의 나카지마 교코 의 단편과 중국 쉬쿤 의 단편이 소개되었다.
나카지마 교코의 '네거티브 인디케이터' 는 히키코모리 를 화자로 하여 너무나 자연스럽게 별이유없이도 집안에만 있게 되는 현실이 내가 몰랐던 부분이라 신인류를 관찰하는듯한 느낌이었다.
마음이 가는 구절이 있었는데,
"상처만 받지 않으면 편안해질 수 있는데도 제멋대로 상처받고 마는 자신을, 그는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았으나 문득 누군가를 원망하려 하는 자신을, 가쓰로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숨기고 싶었다"
"방에 틀어박히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나가지 않는다' 가 '나갈 수 없다' 로 바뀌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고치에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이 들고 나니 지하 감옥에 갇힌 듯한 느낌. 지하감옥도 싫었지만 이곳에서 나가는 건 더한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문 안과 밖의 세상은 차안과 피안의 거리만큼 멀어지고 말았다"
라는 부분에서 누구의 탓도 아닌데도 집안에만 있게 된 히키코모리 의 감정이 공감이 되서 마음이 짠했다.
쉬쿤의 '어떤 외국인이 중국에서' 는 영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교수를 바라보며 10년 사이에 중국의 경제발전이 얼마나 급격하게 이루어졌는지 그로인해 중국인들의 외국에 대한 외국인에 대한 시선이 얼마나 급격하게 변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어서 '한강의 기적'보다 더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중국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의 급격한 변화가 느껴지는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E 시대라고! 세계화의 물결이 사람들을 휘감아 지구 전체에서 데굴데굴 뒹굴게 하는 시대라고! 외국을 숭상하고 아첨하는 초라함은 이미 지나가버렸어. 외국인 교수도 학생들 눈에는 학교와 가르치는 계약을 한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할 뿐이야. 왜 당신이 자기 나라 말을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우리가 당신을 숭배해야 해? 그런 논리는 좀 황당하잖아!"
10년 전 소설 속의 교수가 처음 중국에 왔을 때는 외국인을 높이 보고 외국에 나가고 싶어서 결혼을 갈망하는 여학생이 주변에 넘쳤는데, 10년 후 돌아온 중국은 교수가 적응할 수 없을 만큼 변해 있었고 오히려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교수를 불쌍히 묘사하면서 묘한 역지사지의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중국의 이러한 급격한 시선 변화를 보면서 우리나라는 50년 넘게 미국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 건가 하는 새삼스러운 질문이 떠오르면서 씁쓸하기도 했다.
K 포엣 에서는 이영광 의 시 몇편이 영문 번역과 함께 소개되고
K 픽션 에서는 우다영 의 창모 라는 단편 영역본과 그에 대한 평론이 실려 있었다.
'창모' 라는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인물에 대한 단편 에 대한 작가의 창작노트 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울타리를 세운 방어행위가 창모를 울타리 밖으로 밀쳐낸 공격의 행사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웅크림이 주는 폭력을 이해하게 된다' 부분에서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인물의 이해를 다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추천장이나 사용설명서도 아니고 입체영상을 보게 해주는 안경 같은 것이라 이걸 쓰면 사이코패스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자기 내면을 관찰할 수 있다' 는 평론을 통해 더 잘 이해되었다. 우연이라고 인식되는 불행을 마주하는 우리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마지막 구절이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메아리 코너에서는 윤동주의 시를 다루고 있었다.
익숙한 윤동주 의 시들이 영문 번역과 함께 있으면서, 한국 현대시를 번역하고 있는 다니엘 토드 파커 의 글을 통해 번역자의 입장을 읽게 되서 좋았다. 한국 시인의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은 외국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난제를 포함 하고 있다는 것에 수긍이 가면서, 한국인들에게는 영웅일 수 있지만 한국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외국인들에게는 시 자체로서 뭔가가 필요하다는 것이 번역에 참 어렵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가 윤동주가 남긴 시들이 그가 기록했던 개인적 위기들을 견뎌내길 바라는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으리라는 평에서 정말 그렇게라도 전달이 되는 뭔가가 있게 번역이 되면 참 좋겠다 싶기도 했다.
ASIA 통신 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의 대학풍경과 베트남의 문예창작 흐름이 소개되었다.
우리는 개발도상국 내지는 후진국이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으로 지칭되는 나라들의 모습이 그 새롭고 활기차 보여 호기심이 생겼다.
계간 아시아 라는 잡지를 처음 읽어봐서인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다른 나라 글들을 접해볼 수 있어서인지 읽는내내 전반적으로 새롭고 신선한 시간들이었다. 다음 호의 내용이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