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에서 이처럼 당당하게 포부를 밝혀놓고는 너무 거창하다 싶었는지 곧이어 슬며시 '경고'도 있지 않는다.
'나는 불가지론자이면서 비종교인다. 조직화된 종교 단체의 일원이 된 적도 없고 그런 단체에 속하고 싶다는 마음을 한번도 품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에 반대하지 않는다. (...) 그들의 의미 탐구가 과학적 사실을 존중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p. 15)'
사실 내가 이 책에 흥미를 느낀건 거대한 프롤로그보다 솔직한 이 '경고'였다. 서양역사에서 기독교가 워낙 다방면에서 오랜 세월 동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보니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서양인을 보면 나는 좀 신기하다. 서양인들은 과학자도 종교인이 많으니까 말이다. 서양인이지만 나와 비슷한 입장을 취하는 과학자가 설파하는 '실존'에 대한 질문이라... 흥미롭지 않은가?! ㅎㅎㅎ
차례를 보면 이 책이 얼마나 커다란 실존적 질문을 던졌는지 한눈에 확인이 된다.
과거는 정말 어딘가에 존재하는가
물리학은 우주의 시작과 끝을 밝혀낼 수 있는가
물리학적으로 젊음을 되돌릴 수는 없는가
우리는 그저 원자가 든 자루일 뿐인가
정말 다른 세계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가
물리학은 자유의지를 부정하는가
우주는 우리를 위해 만들어졌는가
우주는 생각하는가
인간은 예측 가능한 존재인가
그래서 이 모든 것의 목적은 무엇인가
총9장으로 구성된 이 9개의 질문과 에필로그의 마지막 질문까지 어떤가? 정말 대단한 질문들이지 않나?
너무 어려워보인다고 지레 겁이난다면 이 책을 읽는 팁 하나를 추천하고 싶다. 각 장의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간단한 답변' 먼저 읽고 본 챕터를 읽는 것이다. 질문이 어려워 보이니 답부터 알고 설명을 읽으면 왠지 더 아는 것 같은 기분적 착각이 하나의 팁 이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간단한 답변'이 정말이지 아주 간단하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