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로 산다는 것 - 가문과 왕실의 권력 사이 정치적 갈등을 감당해야 했던 운명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가문과 왕실의 권력 사이 정치적 갈등을 감당해야 했던 운명

요동치는 정국에 자신을 맡기기도 했고

적극적으로 정치적 역할을 쟁취하기도 했던 왕비들의 파란만장한 삶

'조선시대 최고 전문가 신병주 교수, 왕과 참모에 이어 이제는 왕비다!" 라는 홍보문구 옆에 저자의 사진이 박혀있다. 티비를 잘 안보는 편임에도 즐겨 애청하는 티비프로에서 낯을 익힌 저자의 책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극적인 삶을 살다간 왕비 한명에 초점을 두고 소설처럼 야사처럼 풀어낸 책들은 봐왔어도 조선왕조 전체 왕비를 다루고 있는 책은 처음이라는 설레임 속에 책을 펼쳤다.

필자가 보기에 조선시대의 왕비는 결코 동화나 사극 속 왕비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릴 수 있는 것보다 제약이 많았다. 어쩌면 조선의 왕비는 엄격한 궁중에서 자유가 제한된 채 비슷한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힘든 직업을 가진 존재였다. (p. 5)

세자빈이 되었어도 왕비에 오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종의 왕비 명성왕후 김씨는 세자빈, 왕비, 그리고 아들 숙종이 오아이 되면서 대비에 오른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만큼 세자빈에서 왕비로 그리고 대비까지 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았던 것이다. (p. 6)

조선왕조오백년이라지만 그 긴 세월동안 이어진 왕조는 사실 적통으로만 이어지지 않았다. 아니 적통이 오히려 드물었다. 그렇게 왕들도 살아남기 힘든 왕실에서 왕비는 오죽했겠는가. 역사에서 화려한 왕의 그림자속엔 왕비가 있곤 했다. 왕비는 그림자처럼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존재였다. 사실 여성이라는 자체가 늘 힘든 직업이었음은 어느 시대 역사라도 조금만 펼쳐보면 바로 확인이 될 것이다. 동화속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지 몰라도 구중궁궐 속 왕비는 잠시잠깐도 행복하기 힘들었다.

책은 각각의 주제로 묶여있는 듯 보이지만 대체적으로 연대순이라 좋았다. 안그래도 헤깔리는 왕조의 계보가 순서마저 뒤섞여 있다면 그야말로 잡학적 흥미거리일 뿐 역사로 읽어내기가 힘들기 마련인데 순서대로 차근차근 나열되니 정리해가며 읽기에 좋았다. 이는 자료로서의 가치도 충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왕이었으나 존재감이 없던 왕, 그런 왕과의 사이에 자식마저 없던 왕비는 역사에서 거의 잊혀졌던 존재가 아니었을까... 게다가 후궁의 소실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지해주었다는(혹은 지지해주어야만 했을) 그런 왕비들을 만날때마다 역사가 주는 씁쓸함이 배가 되곤 했다. 가끔 야심만만한 왕비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항상 끝이 안좋았다. 비교적 이름이 알려진 왕비들에 비해 처음인듯 생소하게 다가오는 왕비들의 이야기에는 더 마음이 쏠리기도 했는데, 조선초기 야심만만한 아우덕에 갑작스레 왕이 된 정종과 40년 가까이 해로했지만 자식이 없던 정안왕후, 남편을 왕으로 만든 최고의 정치적 동지였으나 정작 남편이 왕이 된 후에는 자신은 물론이고 친정 가문까지 철저하게 탄압받다 말년에 존재감없이 살다간 원경왕후, 단종과 사별후 옷감에 물을 들이며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82세의 천수를 누린 정순왕후, 비교적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는 수렴청정을 했던 정희왕후등 조선 초기의 왕비들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그랬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왕비들의 삶이 헤깔리는 이유 중 하나는 호칭 때문이었다. 불리는 명칭이 너무 다양했다;;; 예를들어 소혜왕후 한씨는 성종의 어머니인데 인수왕비(=인수대비)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혜경궁 홍씨로 유명한 왕비도 정식 명칭은 헌경왕후 였다. 왕이 바뀌면서 달라지는 신분에 따라 왕비의 존칭도 달라지곤 했으니 헤깔린다 헤깔려;;; 가계도를 정리해서 참고자료로 붙여주셨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왕조 관련 책은 가계도가 꼭 있어줘야 하는데 말이다...

가끔 사진 자료가 참고내용이 있곤 했는데, 그중 가장 놀라웠던 내용이 효령대군 이야기였다. 태종과 원경왕후의 둘째아들 효령대군은 동생 충녕이 세자로 책봉되자 불교에 심취했고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까지 큰 사건들을 거치면서 91세까지 장수했다는!! 불교에 귀의도 아니고 심취했기 때문에 자식도 두었고 왕족이니 나름 윤택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의 삶이 몹시 궁금해진다.

중종의 부인인 장경왕후를 간호했던 의녀가 드라마 대장금으로 유명한 장금이었다는 내용도 새삼 흥미로웠다.(드라마를 봤었는데 어느 왕때였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더라는;;;) 장경왕후가 출산에 따른 후유증으로 출산 7일만에 승하하면서 의녀였던 장금에 대한 처벌 논의가 많았다는데 중종은 장금의 처벌을 면하게 해주었다는 것을 보며 드라마적 상상의 나래가 잠시 펼쳐지기도 했다.

역사서임에도 아니 역사서라서인지 저자의 견해가 많이 들어간 책은 아니었지만 가끔 발견되는 저자의 견해를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성종 시대부터 유교국가로 자리를 잡아가고 성리학 이념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왕비 이전에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법도가 본격적으로 강조되었다. 여성이 여성다운 모습을 보여야 하고 특히 왕비는 더욱 모범이 되는 여성상을 지켜나가야 했던 시대였다. 또한 폐비 윤씨의 사사는 조선 전기 대세가 되었던 원경왕후나 정희왕후와 같은 여걸형 왕비의 몰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p. 129)

수원에 있는 심온 선생의 사당 사진을 보자 가봤던 곳이라 왠지 반가웠던 한편으론 역모에 의해 처형된 집안의 사당이 그렇게 크고 귀티나게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다. 물론 세종이 부인을 위해 사후관리를 해주었을 수도 있지만 왕비의 가문이 이렇게 지금까지 잘 관리되어진 곳이 또 있던가... 여하튼, 왕비가 먼저 떠나고 계비를 들이라는 신하들의 건의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은 세종의 의리를 후대의 왕들도 본받았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새삼 들게 하는 유적지였다. 세종의 며느리잔혹사는 다시봐도 참 안타까운 역사의 '만약에' 순간이었다. 하지만 가장 아쉬웠던 '만약에 이랬더라면' 싶었던 생각이 들게 하는 존재는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였다.

중국을 통일한 후 거침없이 뻗어가던 청나라는 군사대국일 뿐 아니라 문화대국으로 성장하는 중이었다. 당시 청나라는 아담 샬과 같은 선교사를 통해 천주교와 더불어 화포, 망원경과 같은 서양의 근대 과학기술을 적극 수용하고 있었다. 소현세자는 아담 샬과의 만남을 통해 조선에도 이러한 서구의 과학 문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p. 258)

소현세가 왕이 됐더라면 정조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근대문화를 일찍 맞이한 조선이 일본에게 망하는 굴욕을 경험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오히려 일본을 압도하는 대국으로 성장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역사에 '만약에'는 의미가 없다...

사실 조선의 왕 27명 중 적장자 출신이 7명이니, 일단 3단계 과정을 모두 거칠 수 있는 왕비의 숫자는 7명으로 제한된다. 여기에 적장자 출신의 왕 중 문종의 왕비는 세자빈의 신분에서 사망했고, 단종의 왕비와 연산군의 왕비는 폐출되었다. 인종의 왕비는 후사를 보지 못했고, 숙종의 후계도 소생의 아들로 이어졌다. 마지막 적장자인 순종의 왕비는 후사없이 승하했다. 조선의 왕비 중에서도 정통성의 측면에서는 최고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명성왕후는 누구인가? (p. 273)

현종이 후궁이 없었던 이유로는 현종의 건강 상태와 더불어 명성왕후의 강한 성격이 언급되기도 한다. 그녀의 강한 성격은 아들인 숙종이 왕이 된 후에 일정 부분 드러나게 된다. (p. 276)

명성황후와 앞에 명칭이 같은 명성왕후에 대해 전혀 몰랐다(왕비의 이름들이 같은 이름으로 붙은 경우가 없던데 명성황후는 왜 명성왕후와 같은 호칭을 받은 것일까? 궁금하다궁금해.. 하지만 책에서 이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이유를 알수가 없어 슬펐다 ㅜㅜ). 세자빈으로 간택된 후 남편이 왕이 되어 왕비가 되고 아들이 왕이 되어 왕대비의 지위에 오른 유일한 왕비라는 명성왕후 김씨, 그녀의 남편은 역사에 그닥 존재감 없는 현종 이다. 예송논쟁으로 혼탁한 정국과 스스로 병약하여 국정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현종은 왕으로서의 존재감은 약했을지 몰라도 조선의 왕 중 후궁이 한 명도 없었던 왕이라는 점에서 강한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물론 그 이유가 좀 아쉽긴 하지만 ^^;;; 하지만 강한성격이라는 명성왕후는 숙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음에도 수렴청정을 하지 못했다. 했다면.. 문정왕후보다 더강했을까? ㅎㅎ 수렴청정 하면 문정왕후가 떠오르지만 사실 기억해야 할 왕비는 따로 있는 듯 하다.

정순왕후는 여군 또는 여주로 자처하면서 3년반 동안 수렴청정을 하며 정조가 구축해놓은 탕평정치의 기반을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단순히 사학으로만 규정되던 서학(천주교)을 금기시하여 서학을 믿던 사람들을 국가반역자 집단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으니 이것이 1801년의 신유박해다. 그녀는 정조의 개혁정치를 지원하던 세력들을 대거 제거하면서 경색 정국을 이끌어가는 중심이 되었다. (p. 338)

정순왕후는 66세의 영조가 계비로 맞이한 15세의 신부였다. 그리고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사건의 관련자였다. 정조에게 부담스러운 어린할머니였던 정순왕후는 정조사후 정조가 이룬 거의 모든 것을 망쳐놓은 셈이다. 하지만 순조는 그녀의 묘비에 송나라의 선인태후에 비교하는 문구를 바쳤다. 선인태후는 송 영종의 비이자 철종의 모후로 수렴청정하며 여자 중의 요순으로 칭송받은 인물이라고 한다. 하긴 왕후 한명이 하면 뭘 얼마나 어쨌겠는가.. 왕후를 내세운 가문이 권력을 휘두른 것이었을 테지만 역사는 이름을 기억한다. 왕비의 이름이 역사에 남은 것은 대부분 안좋은 기록들이다. 그렇다면 이름이 기억되지 않는 왕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10세의 나이 때부터 세손빈과 왕비 그리고 대비를 거치며 무려 60년 가까이 궁궐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효의왕후에 대한 기억이 적은 까닭은 뭘까? 영조, 사도세자, 혜경궁 홍씨, 정조, 정순왕후 등 그녀 주변의 인물들이 너무나 강한 개성을 지녔기 때문은 아닐까? (p. 366)

라고 저자는 정조의 아내 효의왕후에 대한 생각을 밝히지만 글쎄... 저자가 책의 서문에서 극한직업이라고 표현한 왕비라는 삶에 가장 가까운 생애을 살았던 왕비가 효의왕후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려졌으나 사라지진 않았던 왕비에 대해 한참 생각이 머물렀다. 60년이라...

경복궁 중건은 흔히 흥선대원군의 대표적인 사업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효명세자가 원래 착수했던 사업이었고 신정왕후가 남편의 유업을 계승한 사업이기도 했다. (p. 383)

흥선대원군에 대해서 역사책은 많은 부분을 할애하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이 어린 아들 고종을 앞세워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었던 뒷배경로 신원왕후가 있었다.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와 혼인하여 세자빈의 자리에 올라 남편이 왕이 되는 것은 못보았지만 아들이 헌종으로 등극하는 것을 본 신정왕후는 시어머니인 순원왕후 사후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을 내보일 수 있었고 그동안의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막을 내리게 한 사람이었다. 신정왕후가 동의하고 지지해주었기에 흥선대원군이 활개를 펼칠 수 있었다. 하지만 왕위승계문제가 불거질때만 존재감 있었던 왕비들은 늘 역사에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렇다고 왕위계승문제 뿐만아니라 정치에 개입한 왕비라고 해서 역사에 명성을 남겨놓은 것도 아니다. 왕비의 삶은 이러나저러나 극한직업이었던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책은 전반적으로 조선의 왕비들에 대한 얼개를 갖추는 선에서 그치고 만다. 누구의 딸이고 누구의 아내이고 누구의 어미였으며 어느 릉에 묻혔다로 서술되는 왕비들의 요약된 기록에서 정작 그녀들이 살아낸 생은 잘 알 수 없었다. 대부분 '이런 왕비의 이름을 들어본 적 없을 것이다' 로 시작해서 변경되는 호칭들의 나열과 최소한의 생의 기록에 비하면 비교적 상세한 왕릉에 대한 기록은 이 책의 기본틀이 왕릉의 연대기인건가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무엇보다 본문으로 뚝 하고 끝나버리는 책의 마무리가 아쉬었다. 나는 서문 보다 후기에 의미를 두는 편이라 본문으로 전개된 내용에 대한 정리가 있으면 참 좋던데...

그럼에도불구하고 이 책은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봄직한 책이었다. 전문가인 저자가 알려주는 내용들은 자료적 측면에서 신뢰도가 높았고 이런 기초자료가 있을때 호기심도 생기고 다른 확장된 내용도 찾아보기 쉽게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나중에 시간이 여유로울때 왕비들도 함께 나열된 조선왕조 계보도를 그려볼까 싶은 욕심이 들게 하는 책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빈약하게 서술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조선왕조의 왕비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만으로도 이 책은 '왕비로 산다는 것' 이 어떤 삶인지 느끼게 해주는 책인 것 같다. 다 읽은 책들은 대부분 밖으로 처리하게 하는 크지 않은 나의 책장에 꽂혀있는 조선왕들의 책 옆에 이 한권의 책도 함께할 자리를 마련해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