쥰에게
잘 지내니?
네 편지를 받자마자 너한테 답장을 쓰는거야. 나는 너처럼 글 재주가 좋지 않아서 걱정이지만

먼저 멀리서라도 아버님의 명복을 빌게.

나는 네 편지가 부담스럽지 않았어.
나 역시 가끔 네 생각이 났고, 네 소식이 궁금 했어. 너와 만났던 시절에 나는 진정한 행복을 느꼈어.
그렇게 충만했던 시절은 또 오지 못할거야.

모든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래전 일이 돼 버렸네.

그때 너한테 헤어지자고 했던 내 말은 진심이었어.
부모님은 널 사랑한다고 말하는 내가 병에 걸린 거라고 생각했고 난 억지로 정신 병원에 다녀야 했으니까.
결국 난 오빠가 소개해 주는 남자를 만나 일찍 결혼했어.

이 편지에 불행했던 과거를 빌미로 핑계를 대고 싶진 않아.
모두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해. 나도 너처럼 도망쳤던 거야.
그 사람과 내가 결혼식을 올리던 날,
우습게도 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람이 너였어. 모르는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이곳을 떠난 네가 행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어.

쥰아,
나는 나한테 주어진 여분의 삶이 벌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동안 스스로에게 벌을 주면서 살았던 거 같아.
너는 네가 부끄럽지 않다고 했지.

나도 더 이상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내 딸 얘기를 해 줄게. 이름은 새봄. 이제 곧 대학생이 돼.
나는 새봄이를 더 배울 게 없을 때까지 스스로 그만 배우겠다고 할 때까지 배우게 할 작정이야.

편지에 너희 집 주소가 적혀 있긴 하지만 너한테 이 편지를 부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한테 그런 용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만 줄여야겠어, 딸이 집에 올 시간이거든. 언젠가 내 딸한테 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용기를 내고 싶어.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을거야.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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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600일은 우리가 당연한 상식으로 여겨 왔던 것 역시 앞장서 지켜 내지 않으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 준 시간들이었다. 그렇기에 민주 시민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반증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는 단 600여 일 만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 대한민국을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우리 공동체의 기초와 품격이 실종된 나라’로 만들었다

정치, 경제, 사회, 노동, 인권, 안전, 국방, 외교 등 전방위적으로 펼쳐진 대환장 지경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우리 사회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저자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이 난리 통의 끝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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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을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다
이태원 참사 1주기. 10.29에 관한 글들이 너무 가슴 아프고 너무 미안하고 너무 죄스러워서 읽어내지 못하겠다

“사람이 그렇게 많이 사망했다면, 적어도 건물이 무너지거나 다리가 붕괴되거나, 겉으로 봤을 때 ‘아 저것 때문이구나’ 하는 뭔가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모든 게 그대로인데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사망자 158명이 나온 겁니다.”

“개인은 나약한데, 조직은 개인을 보호해주지 않는 거죠. 우리가 스스로 우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걸 이번 일로 알게 됐어요.˝

참사가 일어나고 초기에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놀러 가서 죽은 애들‘이라는 말이었어요. 맞아요. 우리 아이 놀러간 것 맞아요. 그런데 놀러 간 사람이 죽어서 돌아오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마약 사건들을 연이어 터뜨리길래 도대체 뭘 덮으려는 건가 추측해보려 했는데 뉴스들을 보니 덮어야 할 게 너무 많아 셀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런 것들을 일일이 찾아 기억하고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안 그러면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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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빚어내며 내일을 꿈꿨을 159명의 이야기가 이태원에서 멈췄습니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출간되는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창비)는 159명에 대한 애도이자 기억이다. 생존자와 유가족의 10월29일 이후의 삶을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이 9개월에 걸쳐 인터뷰집으로 완성했다

1년 전 10월 29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59명이 숨지는 전대미문의 참사가 발생했다

막을 수 있었고, 살릴 수 있었다. 사고 발생 4시간 전인 6시 34분부터 참사를 우려한 신고가 빗발쳤지만 누구하나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그 시간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를 막느라 여념이 없던 수백명의 경찰력은 사고 발생 후에야 현장에 도착했고, 구조요원들도 속속들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뒤엉켜 쓰러져 가는 인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세월호 참사 8년 만에 우리는 또다시 ‘과연 국가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참사 당일부터 지금까지 대통령도, 총리도, 장관도, 경찰도, 누구 하나 ‘내 탓이오’ 말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정부는 참사 지우기에 혈안이었다. 애도 기간은 단 일주일뿐이었고, 추모 공간은 지하 35m 속으로 묻어두려 했으며, 유가족을 향한 온갖 혐오와 조롱이 가짜뉴스로 활개를 쳐도 아무런 제지조차 하지 않았다. 목숨과도 같은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고도 유족들은 국가로부터 어떤 위로도, 공감도, 치유도 받지 못한 것이다.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그러나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다 돼가도록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박근혜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윤석열 정부는 그날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해 이제라도 반성하고, 유족들 앞에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명명백백 밝힐 것을 약속해야 한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야말로 국가가 해야할 진정한 애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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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10-25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1주기가 다가오는군요 ㅠㅠ
아직도 충격적인데요~~

나와같다면 2023-10-25 18:45   좋아요 1 | URL
누군가의 시간이 영원히 멈춘다는 것은 너무나 무섭고 슬픈 일입니다. 윤석열 정부도 그날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해 반성하고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밝히기를 바랍니다.

슬픔의 연대를 통해 위로가 확장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차트랑 2023-12-25 0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탄핵~!!!!!!!!
 

지난해 10월29일 밤, 김초롱씨(33)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골목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김씨는 당사자로서 사회적 참사가 개인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지켜봤고, 사회가 타인의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목격했다. ‘생존자’라는 무게감에 짓눌릴 때마다 김씨는 고통 속에서 경험한 삶의 변화를 기록했다.
책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는 참사 이후 319일간 남겨온 기록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참사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통이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보통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김초롱씨는 기록을 통해 알리고 싶은 바를 이같이 설명했다

참사 현장을 목격한 그날부터, 김씨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집에 돌아왔는데도 온몸이 떨렸다. 이틀 내내 잠을 미루며 그는 미친 듯이 뉴스 화면만 쳐다봤다.

그러면서 여러 감정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귀여운 텔레토비 친구들에게 꽂혀서 바로 뒤로 사람이 실려 가고 있었음을 몰랐다는 ˝무지함˝, CPR을 해달라는 요청을 듣고도 모른 척한 ˝비열함˝, 놀았던 흔적을 인스타에 올렸다가 삭제한 후에 밀려든 ˝창피함˝이 스쳐 지나갔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분노가 치밀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떠들고 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우울증에 빠졌다

책은 김씨의 일상이 무너진 과정을 담고 있다. 김씨는 “어디까지 솔직하게 써야 하는지가 가장 큰 집필 기준이었다”며 “‘일상이 무너졌다’는 간단한 표현에 다 담기지 않는 실제 모습도 적나라하게 썼다”고 했다.

참사 당일 인파에 휩쓸려 숨이 막히고 발이 동동 뜨는 경험을 한 김씨는 그 자신도 트라우마의 피해자였다. 간신히 골목을 벗어난 그는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찾아왔다고 했다. 김씨는 “내가 대신 죽을 수도 있었는데 ‘내가 저 사람 삶의 일부를 가져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점에서 내가 사과를 하고 싶었다”며 “동시에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 대다수가 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사과를 받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핼러윈은 참사의 원인도, 본질도 아니다. 축제에 나선 사람들은 죄가 없다˝며 ˝축제는 삶의 한 부분이고 이를 부정하는 것은 삶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안전을 도외시하는 이들을 용납하지 않고, 안전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도록 목소리를 낼 것˝이라며 ˝지금껏 유족과 생존자들이 참사 폄훼와 냉대 속에서도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함께 하겠다‘고 손 내밀어 준 시민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 ˝돌이켜보면 나를 살린 것은 ‘연결감‘이었다˝ 이 세 글자는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가서 사람의 위안과 회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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