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율의 줌아웃] 암울하고 위대했던 2012~2017의 기록을 꺼내본다

2016년 11월 12일 아침이었다. 역사가 모든 길을 열어둔 날이었다. 시대가 바로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을 그렇게 몸으로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교착상태가 우리를 기다렸다. 여기에 이 시기 최대의 불확실성이 도사렸다. 분노의 수준이 대단히 높은, 당장 하야를 원하는, 100만 단위의 항의 시위가, 권위를 인정 받은 지도부도 없이, 광장으로 나온다. 광장은 인내도 전략도 요구하기 어려운 조건들만 잔뜩 안고 있었다. 그런데 긴 교착상태를 버텨내야 이기는 싸움이었다. 인내와 전략이 필요했다. 이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였다

˝니가 있다는 걸 내가 알아. 그리고 내가 널 알게 되었다는 걸 너도 알지.˝
100만 명 집회는 그걸 가능하게 한다. 사람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연결되는 것 이어야말로 권력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이제 권력은 협상 변경의 압박을 강하게 받게 된다. ˝모인다고 뭐가 바뀌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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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18일 국회법사위
노회찬은 ‘삼성 X파일‘ 관련 보도 자료를 통해 옛 안기부 불법 도청 테이프에서 삼성그룹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언급된 전.현직 ‘떡값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한다

˝국내 최대의 재벌 회장이 대선 후보에게 거액의 불법 자금을 건낸 사건이 ‘공공의 비상한 관심사‘가 아니라는 대법원의 해괴망측한 판단을 저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국민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1인 미디어 시대에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하면 면책특권이 되고 인터넷을 통해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면 의원직 박탈이라는 시대 착오적 궤변으로 대법원은 과연 누구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묻습니다. 지금 한국의 사법부에 정의가 있는가? 양심이 있는가? 사법부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저는 오늘 대법원의 판결로 판결로 10개월 만에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고 다시 광야에 서게 되었습니다. 안기부X파일 사건으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서도 뜨거운 지지로 당선시켜주신 노원구 상계동 유권자들께 죄송하고 또 죄송할 뿐입니다. 그러나 8년 전 그 날, 그 순간이 다시 온다하더라도 저는 똑같이 행동할 것입니다.
국민들이 저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것은 바로 그런 거대 권력의 비리와 맞서 싸워서 이 땅의 정의를 바로 세우라는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대법원 판결은 최종심이 아닙니다.
국민의 심판, 역사의 판결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오늘 대법원은 저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지만 국민의 심판대 앞에선 대법원이 뇌물을 주고 받은 자들과 함께 피고석에 서게 될 것 입니다. 법 앞에 만명만 평등한 오늘의 사법부에 정의가 바로 설때 한국의 민주주의도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 오늘 국회를 떠납니다. 다시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


노회찬의원이 그립고
역사는 진정 진보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가득한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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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

‘개인 노무현‘이 불가능한 언설임을 안다
그에 대한 모든 기억과 판단은 사회적일 수밖에 없다. 이 분명한 사실이 가장 안타깝다. 이 움직일 수 없는 자명한 역사가 나를 좌절케 한다. 어느 세월에나 ‘그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식이 가능할까

일천한 독서 경험이지만 노무현의 유서는 상당한 명문에 속한다. 담백하다. 완전하게 지쳐서 미련이 남지 않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증상의 전형성(˝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다.˝), 호소(˝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없다.˝), 구체적 이유(˝너무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 성숙한 자세(˝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느냐.˝), 타인에 대한 배려(˝너무 슬퍼하지 마라. 미안해하지 마라.˝), 소박한 요구(˝화장˝, ˝작은 비석˝). 그가 겪었을 고통을 감안하면 놀라운 정신력이 아닐 수 없다

운명은 구조의 힘에 대한 나의 대응이다
그것이 균형을 이루는 이루는 경우는 드물다
극단으로 기울어질 때 개인은 생사의 기로에 선다. 자살. 타살 여부는 부차적이다
즉 모든 자살은 사회적(타살)이다. 대개 구조가 개인을 압도하기 때문에 우리는 팔자를 타령한다. ‘운명을 극복‘한 경우는 복잡한 세상의 우연 덕분이다. 이 과정에서 ‘승패‘와 무관하게 악의 그물에 걸려 몸이 헌신될 수 있는데 이른바 ‘역사의 밀알‘이 되는 것이다

˝운명이다˝는 구조, 즉 당시 정권에 대한 노무현의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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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라는 말을 처음 배운 아이가
서현숙 교사에게 건넨 쪽지에 있는 말이다
˝저를 늘 환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인간의 최소한의 조건은 서로 환대하는 것이다

어떤 이의 평범하고 무료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가 닿을 수 없는
이상이 되는 현실은 얼마나 서글픈가

삶의 탄착지점은 정직함과 성실함의
각도가 아니라, 학군과 부동산을 향한
예민한 후각에 달려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회의가 계속 들었다

나는 어쩌면 이들이
법적 사회적 표현 수단을 상실한
사회적 문맹이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이 왜 핍박받는지,
어쩌다 이런 처지로 내몰렸는지,
뼈 빠지게 일해도 왜 대를 물려 가난한지,
가난도 지긋지긋한데 왜 가족 간에
폭력이 난무하는지 그 사회적 원인과 맥락을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들
부당하다는 건 알지만
정확히 그게 무엇 때문인지 몰라
변변한 항의조차 못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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몆 편의 소설로 전 세계 SF계 신화가
되어버린 작가 테드 창의 작품 중
[네 인생의 이야기] 라는 소설의 대목

˝미지의 언어를 습득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 언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이와
직접 교류하는 것뿐입니다.
여기서 교류하는 건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 일 등을 의미합니다.˝

외계인의 언어를 해석해달라는 정부 당국의 말에 언어학자는 위와 같이 말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세대 논쟁의 실마리를 엿본 것 같았다

요즘 세대를 향한 ‘밀레니얼이 온다‘
‘Z세대가 온다‘ 같은 표현에서
새로운 세대에 대한 기대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분위기를 읽는다

그러나 사실 돌아보면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다
내가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왔을 때도
그 당시의 기성세대는 우리를 두고
‘신세대‘ 라고 칭하며 경원시했고,
‘X세대‘ ‘오렌지족‘ 같은 표현으로
사회에 새롭게 진입하는 젎은이들을
별종 취급했다
‘너희는 우리와 다른다‘ 라는
뿌리 깊은 시선이 이 말들 속에 있다

그들에게 질문하라고 다그치지 말고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한다
입을 열기 전에 귀를 먼저 열어야 한다
그들을 관찰하고 분석하려고 하는 대신
애정을 갖고 포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서히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대화를 위한 노력을 먼저 해야 하는 사람은
힘이 있는 쪽이다

결국, 어른은 우리가 아닌가?
힘을 가진 쪽은 우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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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2-10-11 14: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교류, 대화, 질문. 기억하겠습니다.

나와같다면 2022-10-11 18:45   좋아요 1 | URL
고양이라디오님하고 저하고는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이 겹치는 부분이 우연히 많은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