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인 에바에게 사랑받지 못합니다. 케빈의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습니다. 태어나고 보니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 의해 길러지고 있군요. 이것은 엄청난 불행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엄마를 사랑하지 않기로 합니다. 엄마가 애초부터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듯이, 엄마에 대한 사랑이 애초부터 없었던 아들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죠. 케빈은 도대체 왜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린 케빈으로서 그것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해 불능이기 때문에 자신도 이해 못 할 행동을 하는 것이죠.

자신이 자발적으로 사랑받지 못하는 아들이 되는 것이, 자신의 이해 불능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에바가 애초에 케빈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케빈은 에바에게 위악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케빈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은 이미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쓴 바 있습니다. 저는 신형철이 쓴 문장보다 케빈의 마음을 더 정확하게 표현할 재주가 없습니다

에바는 케빈을 찾아가 물어봅니다.
도대체 왜 그랬냐고. 케빈은 답합니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모르겠어
(used to think I knew, now I’m not so sure)

그리고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을 열지만, 교도관이 말합니다.
시간 다 됐습니다(Time’s up).

영화 <케빈에 대하여>가 가장 탁월한 지점은 바로 이 마지막 순간입니다.

이 마지막 대사를 위해 린 램지 감독은
케빈과 에바의 비극적인 운명의 이야기를 연출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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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문재인입니다>를 보고 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이라 행복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퇴임 1년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많은
나날들도 행복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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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특히 윤석열 정부와 그 주변의 엘리트 사이에선 ‘경제개발을 왜 했는지‘ 자체가 의문스러워지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1인당 GDP가 3만5000달러에 달하는 나라에서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라거나 ‘싼값으로 외국 여성을 수입해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자‘ 같은 대책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

사실 한국은 저런 형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를 발전시킨 것이다.

반 농담처럼 말하자면, 신자유주의는 ‘선진국이 후진국처럼 되자‘라는 주장이다. 시장규제 완화, 노동권 약화, 환경규제 무력화 등을 강행하면 지금의 가난한 나라들과 비슷해진다.

하루에 15시간씩 일하고, 노동자들이 조금만 조금만 목소리를 내면 경찰이 와서 두들겨 패고, 산재 당해도 보상받지도 못하고, 복지도 없는...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그런 세상에 살아봤다. 1970~1980년대엔 남성들이 장시간 노동을 하고 대다수 여성은 출산. 육아를 맡았다. 여성들이 엄청난 문화적 억압 밑에서 희생당했기에 한국은 복지 없이 버틸 수 있었다. 상류층 여성들은 ‘가사도우미‘들을 데려와 싼 임금으로 착취했다.

이런 옛날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인가? 한국이 남미처럼 되기를 바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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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3-05-07 22: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윤석열은 너무나도 무지하고, 무능하며, ‘더블 마이너스의 손‘을 가진 인물로 보입니다.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하루를 보내면 대한민국은 이틀 퇴보하는듯 합니다.
대한민국에게 지속적인 손실을 가져올 인물이라면 하루빨리 퇴진하는 것이 옳습니다.
자의인가 타의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군요. 어리섞은 자는 흔히 타자의 뜻에 의지하는 법이긴합니다만...

나와같다면 2023-05-07 20:58   좋아요 1 | URL
윤석열 대통령 1년 동안 신자유주의는 부활하고, 수구는 귀환하고, 냉전은 회귀하고, 역사는 역행했다. 거대한 퇴행이 거듭됐다. 그러나 이런 퇴행들보다도 더 우려스러운 것이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후퇴다
 

분명히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기어이 한 발을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송곳은 위해적인 특성을 지닌 물건이다. 저자는 송곳에 곧은 인성을 부여한다.
탄압과 무시를 일삼아도 하나쯤은 비집고 나오는 존재. 노조설립을 불허하는 절대권력에 대항하는 용기.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신념.
송곳이란 인간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두번째 세상을 여는 묵직한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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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지금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까‘가 궁금한 이들이 있다. 자기는 잘났거나 억울한데 남이 보기엔 ‘사회악‘, ‘걸어 다니는 재앙‘인 사람들을 자주 본다. 자신이 무슨 일을 왜 하는지 매 순간 생각을 놓치지 않는 것,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자세가 직업 자체여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 종교인, 지식인은 성찰이 업무이다. 따라서 이들의 생각하지 않음은 죄악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가운데 “100년 전 일을 가지고 (일본에)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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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4-30 0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깜냥을 넘어서는 직분을 맡게 되면 문제가 생기고 직분이 높을수록 그 문제는 더 커져 사고가 됩니다. 사기업이나 공기업에서는 그런 경우에 경질이나 사퇴를 시킬 수 있는데 가장 높은 직분에 있는 사람이 그런 경우 우리 역사상 단 한번의 기록밖에 없는 탄핵 외에는 방법이 없어 골치가 아픕니다. 지금은 정희진 선생님의 책 제목처럼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쓰는 수 밖에 없어 서글퍼집니다.

나와같다면 2023-04-30 16:42   좋아요 2 | URL
˝세상은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이 아니라,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자들 때문에 파괴될 것이다˝

침묵하지 않고, 지지 않으려고 쓰고, 소리내고, 끝까지 지켜보는 대다수의 선한 사람들 때문에 망하지는 않을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