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복수와 단죄
죽어 마땅한 자를 죽였습니다
선악이 모호한 주인공들이 엮이면서 예측 불가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우연히 악인만 골라서 죽이게 된 이탕이 과연 심판을 받아야 할 죄인일지, 혹은 단죄가 마땅하지 않은 영웅인지에 대한 딜레마를 담아내 많은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 웹툰이다

‘살인자ㅇ난감‘은 정의에 대한 딜레마를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작품 속 이탕이 우연히 죽이는 사람은 모두 흉악범으로 사회에서 어쩌면 죽어도 마땅한 사람으로 치부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과연 죽어도 마땅한 사람이라는 점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범죄자를 사법 당국이 아닌, 한 개인이 처단했을 때 이를 ‘정의‘라 부를 수 있을까
‘죽어 마땅한 사람‘은 누가 결정하고, 어떤 심판을 내려야 할까 ‘살인자ㅇ난감‘은 이러한 묵직한 질문들을 던진다

다크히어로가 각광을 받는 건 악랄한 범죄자들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고 있다는 대중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다

법에는 구멍이 나 있다
이제 내가 그 그멍을 메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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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하고 촌스럽기로 이만하기도 힘들다.
책 표지 이야기다.1992년 경 서울지방경찰청 화보용 사진 촬영 사진이라고 한다. 드라마 [시그널] 이 떠오른다

30여 년간 경찰 최초의 여성 강력계 형사로서 살아온 시간을 되짚는다. 만삭 의사 부인 살해사건, 신창원 탈옥 사건, 유영철 연쇄 살인등 굵직한 사건을 맡아온 오롯한 현장 경험이 담겨있다

나는 늘 이야기한다. 형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현장은 사람의 이야기였고, 그 자체가 철학이자 인류학, 거대한 인문학의 산실이었다. 사람들의 욕망과 슬픔이 바글거리는 그 현장에서 나는 결코 이기적일 수 없었다. 때론 기꺼이 이익 앞에 물러나고 불편함을 감수한 것은 그것이 곧 형사의 삶이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는 순간 마주하는 두려움이 있다. 형사는 두려움 없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알고도 달려 들어야 하는 일이다

내 눈앞에 펼쳐진 이 잔혹하고 믿기 힘든 범죄 현장 너머엔 인간의 선이, 사람 사는 도리가 있다고 적극적으로 상상해야만 했다. 그렇게 눈 앞의 절망을 보고도 끝내 희망하는 습관이 체질화되고 삶이 되어버린 것이, 형사 30년 세월의 동력이자 이유가 아니였을까

아, 지난 시간을 전생처럼 살 수도 있구나.
그래, 나도 이제 형사는 전생처럼 기억하고,
그 전생의 업을 지금 살아야 할 현생에서 또 다른 방법으로 풀어보리라 마음 먹었다


한 시절을 치열하게 보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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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죽음에 한걸음씩 가까워지고 있지만 실생활에선 자각하지 못한다. 그러다 주변에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면 번뜩 정신이 든다. ‘아, 죽음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구나!‘

모든 사람과 모든 짐승, 심지어 풍경까지 죽는다. 그러나 주변을 보면 언젠가 자기 차례가 오리란 걸 알면서도 다들 자기만은 안 죽을 것 같은 얼굴들뿐. 그러나 지금 살아 있다는 것 또한 정말로 죽는다는 의미 아닌가. 죽음의 실질적인 공포는 모든 기억이 소멸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몸이 나인 줄 알았던 동일시와 비동일시, 그 틈새를 잇던 의식이 비워지고, 자국 하나 없는 어둠 속에 영원히 갇히는 절대 공(空)의 상태

삶의 영원성을 깨닫게 될 때에만 현생의 삶은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되고, 윤리와 도덕에 대한 확신이 가능해진다

흥미로운 사실은 육신을 벗어난 영적 존재들은 유사한 주파수를 가진 영적 존재들끼리 모이고, 사후 세계에는 수많은 그런 영적 존재들의 그룹이 있다고 한다. 어떤 영들은 서로 모여 사랑과 행복을 나누고, 어떤 영들은 서로 모여 질시하고 미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유사한 영혼들끼리 모이는 공간은 굳이 사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 땅에서도 영혼이 닮은 사람들과 만나 위안과 사랑, 기쁨과 행복을 많이 나눌 수 있을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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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만 아이가 없는 대학 동기 앞에서 육아가 화제가 되었을 때 신속하고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는 친구.
시한부 선고를 받은 가족 앞에서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며 저녁 식사를 하는 가족들.
카페 옆자리에 서 시끄럽게 소음을 내는 자폐 아동에게 무관심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책으로 눈길을 돌리는 대학생.

이들은 모두 서로의 연기가 품고 있는 의도를 공유한다. 친구가 나를 배려해서 화제를 돌리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아픈 사람도 아프지 않은 사람도 함께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평범한 일상을 조금이라도 더 함께하고 싶기에 시덥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저녁 식탁에 마주 앉는다
자폐 아동의 부모는 소란 속에서도 태연히 책을 읽는 대학생이 무관심한 척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안다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하는 상호작용은 실제를 공유하면서 그 존중을 강화한다. 모르는 척해주는 익명의 대학생이 고마워서 그를 존중하며 자신을 존중하려 애쓰는 자페아 부모의 노력을 아는 대학생은 더더욱 무심한 척 책으로 눈길을 돌린다. 타인이 나의 반응에 다시 반응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타인을 존중하게 되며 나를 존중하는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을 다시 존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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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Maus]는 그래픽 노블 역사에 남을 명작이라는 평을 받는 작품이다. 그래픽 노블 사상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작품이고, 만화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확장했다

이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유대인의 이야기를 생존자의 자식이 그대로 다뤘다는 점 때문이다

생존자인 부친(블라덱 슈피겔만)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그 영향으로 고집불통에 인종차별주의자로 묘사되지만 아들인 주인공(아트 슈피겔만)은 부친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부친을 비롯한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남긴 ‘불가항력의 재앙‘과도 같았던 홀로코스트의 잔학성과 비극성이 더욱 부각된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서사가 전개되는
[쥐 Maus]의 연출은 과거가 그저 단절된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는 사건임을 암시한다 또한 이는 특정한 역사를 통과한 사람이 그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사람이 세상과 맺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주목하며 ‘역사 이후의 삶’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나는 궁금했다. 국가가 거대한 파도를 만나 거칠게 출렁일 때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뒤바뀌는지. 혼란 속에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으며 어떤 삶을 어떻게 이어갔는지 말이다

신께서는 왜 이런 고통들을 쓸어버리지 않으시는가? 어쩌면 신은 우리에게 서로를 부축하라고, 서로에게 의지처가 되어주라고 명하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쥐 Maus]의 등장인물들은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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