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이전 대형 참사와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다른 참사들 대부분은 사건 후에 보도와 사진 등을 통해 전 국민들이 알게 되었으나, 세월호는 배가 침몰하면서 수백 명이 수장되는 장면이 TV로 여과 없이 생중계되었습니다. 배가 서서히 침몰하는 순간을 전 국민이 안타깝게 지켜봤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구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까지도 목격했습니다. 당시 생방송을 통해 모두가 고통의 순간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집단 트라우마‘로 발현되게 만들었습니다

- p211


슬픔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저 곁에 있는 사람을 통해 견딜 만한 것이 될 뿐이다

하루아침에 자신의 세상이 무너진 이들에게 ‘산 사람은 살아야지 살아야지‘라고 무심한 말을 던질 것인가, 아니면 ‘산 사람을 살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스스로와 주변에 던질 것인가. 사회적 비극을 대하는 우리의 윤리는 후자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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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세월호로 친구를 잃으면서 그게 마지막 눈물인 줄 알았는데 친구들을 또 잃었다. 누군가를 잃는 것이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길.˝
- 2022.11.4.이태원역 1번 출구 추모글

세월호참사가 있던 그날로부터 8년 뒤. 159개의 우주가 사라진 이태원참사 현장에 세월호 생존자이거나 희생자의 친구가 남긴 것으로 보이는 메모 한 장이 붙었다

심장이 조여온 건 우리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십 대 때 세월호를 겪고 이십 대에 다시 또래들의 죽음을 목격한 이들은 어떤 심정으로 이 지독한 사회를 살아내고 있을까

참사가 남긴 충격과 고통의 깊이만큼 이 사회가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변화하기를 바라는 열망과 다짐의 언어로 자신을 ‘세월호 세대‘라 부른다

열 번째 봄이 찾아오는 동안 그들은 어떻게
그 날들을 마주해왔을까. 그들의 삶에 어떤 지문을 남겼을까. 박근혜가 탄핵되고, 이태원에서 다시 시민들이 버림받고, 오송에서, 반지하에서 다시 누군가 물에 잠겨 목숨을 잃는 동안, 그들의 마음은 어떻게 요동쳤을까

10년 쯤 됐으면 끝내도 되지 않느냐는 반문도 있을 법하지만 참사는 진행형이다. 세월호가 단독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억울한 죽음을 의미하는 이 시대의 보편적 명사로 거듭나는 한. 권력이 진실을 가리고 엄포를 놓고 피해자들을 조롱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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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서 말씀드렸으면 합니다˝

2006년 2월,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였던 유시민 작가는 치열했던 인사청문회를 마무리 하면서 시 한 편을 낭송했다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여기까지 온 것이다/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 모르게 외롭고/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그 어떤 쓰라린 길도/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도종환 시인의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길‘ 이다


˝한 개인의 삶은 다 이런 것 같아요. 어떤 길은 가지 않았어야 했고, 어떤 길은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그 모든 길을 걸어서 내가 여기 있는거다˝

˝옳지 못한 일들, 안했더라면 더 좋았을 일들, 했더라면 더 좋았을 일들, 했지만 더 많이 했더라면 또 좋았을 일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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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계가 무너지면 그 옆의 수많은 세계가 잇달아 무너진다. 추모는 늘 그러한 상실 이후 일어난다. 떠난 이를 간절히 그리며 생각하는 일. 다시 말해 떠난 이와 연결을 유지하려는 힘이다. 그러므로 추모는 고요한 순간에조차 뜨겁다. 애통히 떠난 이를 그리는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룰 때, 그 행렬은 새로운 길이 되었다.˝

어떤 일을 ‘그들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시민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누군가의 하늘이 무너질 때 나의 세상도 잇달아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믿게 하려면, 그 공통 감각을 사이에 피어나게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러나 법과 제도를 바꿀 수도, 책임 있는 모든 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말하는 것. 지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 기억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고 세상에 전하는 것. 이 책에 담긴 것은 매일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서도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를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렇게 누군가는 망각의 역사를 기억의 역사로 바꿔 쓰며 10년을 버텨 왔다

-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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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는 그것이 어떤 공부든 타인인 고통에 응답하지 못한다면 공부로서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는 무거운 질문으로 읽힌다

저자는 일하지 않으면 당장 다음주 생계가 막막한 일용직 노동자에게 의학 교과서에 적힌 대로 “다친 허리를 치료하려면 며칠은 조심하며 누워 있어야 한다”고 해야 할 때 허망함을 느꼈다고 말한다. 가난과 가정폭력으로 우울증을 겪는 환자들에게 약을 처방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현대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해 약으로 증상을 치료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돌아가야 하는 곳은 이전과 다름없이 폭력적인 공간이었다. 이 같은 일련의 상황들은 저자가 임상의사가 아니라 보건학자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됐다

어떤 고통은 치료아니 응답이 필요하다
존재마저 지워진 채 고통받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차별은 공기처럼 존재한다
당신이 정상인이라면, 그것은 특권층이라는 뜻

한 사회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목숨이 계속 부당하게 죽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살아남은 목격자‘인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생존경쟁에서 이들을 취하고 있는 세력은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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