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 에 절대 안 간다며 피하다가 마지못해 팀에 간 지 얼마 안 돼 ‘엽기토끼와 신발장-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의 마지막 퍼즐’ 편을 만들어 큰 화제가 됐죠

당시 한 선배가 “원래 너 같은 애가 <그알> 잘해.”라고 했다고 하는데, 피디님은 이 말을 TV를 보는 보통 시청자들의 시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어요

막상 해보니까 취재하고 방송을 만들어내는 데 대단한 사명감과 정의감이 필요한 건 아니더라고요. 그건 그냥 따라오는 거더라고요. 어느 사건의 피해자나 범인을 만나다 보면 당연히 분노나 공감, 슬픈 감정이 들고요. 그렇게 되면 자연히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그건 당연한 감정이에요. 방송을 만들면서 따라오는 거지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실제로 부딪쳤을 때는 그런 것보다 어떤 사건이나 이슈를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게 장점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 문제를 얘기해야지’ 하고 시작하는 것보다 잘 모르는 채로 시작해서 어느 정도 눈높이까지 가는 방식이 시청자 분들도 같이 공감하면서 따라갈 수 있게 되고요. 제가 했던 방송을 기억하시거나 공감하는 분이 많았던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밑도 끝도 없는 부자 박씨네 집안에서 ‘파묘‘는 시작된다

‘파묘’의 흥행 돌풍의 이유는 영화가 품고 있는 비밀스러운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 묘 이장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극이 진행되면서 뜻밖의 방향으로 흐른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 땅에서 벌인 비극적인 역사를 바로잡고자 하는 ‘항일의 메시지’ 다

‘파묘‘는 과거의 잘못된 것을 꺼내 없앤다는 것이 핵심 정서였다

우리나라,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땅, 우리의 과거를 생각하면 우리는 상처와 트라우마가 많은 피해자였다. 발바닥에 박힌 티눈을 뽑아 제거하듯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진 상처를 영화로 ‘파묘‘하고 싶었다

이 영화에서 담고 있는 일제의 잔재도 그런것 같다. 일제강점기의 혹한은 이미 지났지만 한국 사람의 기억과 한국의 생활속에 남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괴롭히고 있다. 어느정도 정리되고 우리의 삶으로 돌아간 것 같지만, 이따금씩 우리의 삶을 괴롭히고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강제 징용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이 땅에 뿌리 내린 아픈 역사의 비극과
그 트라우마가 파묘 되기를...



한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수 있나니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4장12절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4-09-22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22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22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격자가 된다는 것은 도망칠 수 없다는 뜻이다. 무서운 것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아무리 달려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꿈처럼, 나는 내가 목격한 것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 침묵을 지키며 보지 않은 척한다 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해도, 무엇인가를 본 이후는 그 이전과 같지 않다



대학 1학년 때 과 친구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어. ˝너는 네가 이 나라에 안 태어 났어도 데모를 했을 거라고 생각해?˝ 같이 가두시위를 나가자고 친구에게 권했더니,
그 친구가 짜증을 내며 내게 묻더구나.
나는 대답하지 못했어. 길거리 좌판에 마르크스 책을 늘어놓고 팔아도 아무 죄가 안되는 나라에서 내가 태어났다면 나는 데모를 했을까.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땅의 중력에 끌어 당겨져, 내가 누구인가를 증명하며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너는 상황 논리를 살고 있는 것이니, 아니면 너의 진심을 살고 있는 것이니를 묻는 것 같았던 그 말은 언제나 내 마음 속에 남아 있 었지만, 나는 내가 속한 중력에 충실하고자 했었어. 세상의 아흔아홉 사람이 슬퍼하는데, 나만 행복하거나 기쁠 수는 없다고, 나는 너무나 그렇게 선택받은 사람으로 살아왔다고 죄책감 없이 행복이나 충만 같은 단어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 시간은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 p179



당신이 잘 지내는 것이 나의 안녕 조건이라는 문장에 마음이 내내 멈춘다


아.. 사진은 1992년 동아일보 파업 현장에서 선배 기자가 찍어준 것이라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론인 손석희는 서른여덟이 되는 해에 책을 한 권 썼다. 1993년 가을이었다

언론. 정의. 그리고 손석희에 끌렸던 30년 전의 나는 [풀종다리의 노래] 를 구입했고 버리기 좋아하는 나는 절판된 이 책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칭찬한다


방송 시작 삼분 전, 스튜디오의 내 자리에 앉아 주머니 속의 리본을 만지작거리는 사이 뉴스 타이틀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광고 방송 몇 개가 나가고 나면 내 얼굴이 잡힐 것이다. 적어도 문화방송의 모든 사람들이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리본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한 최대의 수치스럽고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다. 나는 그 리본을 양복 깃에 달지 않고 옷 안쪽 와이셔츠 주머니 위에 달았던 것이다. 나는 뉴스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괴로운 자기합리화의 싸움이었다. 화면 밖의 사람들은 모두가 내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았고 나는 붉어지는 내 얼굴을 느낄수록 더한 당혹감에 빠졌다. 뉴스시간 내내 양복 깃에 가려 반쯤 보일락 말락했던 리본은 그대로 썩어빠진 내 양심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거의 한 잠도 이루지 못하였다 아마도 그 때까지의 내 삶에 있어서 그날 밤만큼 괴로웠던 적은 없었을 것이었다

- p179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리본

서른을 넘긴 나이에 아내와 아이가 있는 직장인. 그가 거기에서 번뇌를 멈췄다면 지금의 손석희 앵커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다음 방송에서 리본을 바로 달고 나왔다
인간 손석희가 언론인 손석희로 거듭나는
순간 이었다


수의를 입고도 웃던 환한 모습. 4.16 세월호 침몰 사건때 팽목항을 지키던 모습. 단원고 아버지와 전화 연결하려는데 따님이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통해하며 울음을 참는 모습. 앵커 브리핑 ‘L의 운동화‘를 읽던 모습. 동갑내기 노회찬을 추모하며 목이 메던 모습... 내 기억속의 손석희 앵커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방송’이 얼마만큼 이뤄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가 ‘좋은 방송’을 위해 노력하는 동안, 우리는 주류 언론 속에서 양심을 거스르지 않고, 대중의 신뢰와 지지를 받으며 성공까지 한 언론인을 얻었다. 손석희가 정말로 해낸 변화는, 우리 사회를 그런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 수 있는 곳으로 바꿔 놨다는데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회가 더 많은 손석희를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은 지금부터 우리의 몫일 것이다


손석희 앵커와 한 시대를 살았다는 것에 감사하고 그의 진실된 뉴스를 들으며 같이 슬퍼하고 분노하고 웃었던 시절에 감사한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고양이라디오 2024-09-11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ㅠㅠ 이 글도 너무 좋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손석희씨 책 빌린 거 있는데 얼른 읽어야겠습니다!!!

너무나 멋진 언론인입니다. 세월호이야기는 감동적이네요.

나와같다면 2024-09-11 18:18   좋아요 1 | URL
세월호는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현재처럼 기억됩니다

전 세계 저널리즘사에 기록될, 521일간 이어진 팽목항·목포항의 세월호 현장 보도는 손석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정부 탄핵의 트리거는 저는 세월호였다고 생각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4-09-11 23:07   좋아요 1 | URL
그러네요. 정말 탄핵의 트리거였네요.
 

“그동안 가난했으나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널 보내니 가난만 남았구나.”

단원고의 한 학부모가 이런 말을 써서 팽목항에 내걸었다. 이 짧은 말의 밑바닥에 깔려 있을 절망감의 무한함까지 시간의 홍진 속에 가려지고 말 것이 두렵다

우리는 전란을 만난 것도 아니고 자연재해에 휩쓸린 것도 아니다. 싸워야 할 적도, 원망해야 할 존재도 오직 우리 안에 있다. 적은 호두 껍데기보다 더 단단해진 우리의 마음속에 있으며, 제 비겁함에 낯을 붉히고도 돌아서서 웃는 우리의 나쁜 기억력 속에 있다. 칼보다 말이 더 힘 센 것은 적이 내부에 있을 때 아닌가. 죽은 혼의 가슴에 스밀 말을, 짧으나마 석삼년이라도 견딜 말을 어디서 길어 올리고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잊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당할 수 없는 부조리와 기묘함의 광경 앞에서, ‘기억함’으로써 이 사건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였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잊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것은 망각이라는 순리를 거슬러야 가능한 일이고, 헛될 수 있음에도 노력하는 일이다. 그것은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려는 노력이며,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연결하는 일이다



기억합니다 세월호 10주기
내 맘은 변함없다
기억은 힘이 세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