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함께 법고전 속으로 들어가는 산책을 시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법고전은 21세기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가르키는 나침반 역할을 할 것 입니다. 이 책을 통해 고전의 힘을 느끼시길 소망합니다.

2022년 가을 초입에. 조 국



대학 입학 후 평생 법을 공부하고 가르친 사람으로서 기소가 되어 재판을 받는 심정은 무참합니다. 저 자신과 가족 일에 철두철미하지 못했던 점, 면구하고 송구합니다. 자성하고 자책합니다. 법정에서 저의 소명과 해명이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기에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읽고 씁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법고전 저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잠시 시름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비운이 계속되고 있지만, ˝너를 죽일 수 없는 것이 결국 너를 더 강하게 할 것이다˝ 라는 니체의 말을 믿으며 견디며 또 견딥니다. 한계와 흠결이 많은 사람의 글이지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목에 칼을 찬 채로 캄캄한 터널을 묵묵히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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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서 156명이 골목에서 압사당하는 참사는 ‘막을 수 없는 일‘과 ‘막을 수 있는 일‘ 가운데 어느 쪽이었을까. 분명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정작 국가는 그 거대한 책임 방기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발생 4시간 전부터 시민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직접적으로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국가가 외면한 셈이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저버렸다는 첫번째 증거다

59명에서, 120 명으로, 156명으로 전광판에 적힌 사망자의 숫자는 끊임없이 바뀌어왔다.
수치는 되돌릴 수 없지만,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게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죄책감 속에 무기력해지는 것만이 애도의 방식은 아니다. 더 이상 국민들은 책임감 없는 국가를 참아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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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우짜노, 노 대통령이 돌아가실 것 같다.˝
˝노태우 대통령요?˝
˝아니, 노무현!˝

몹시 당황하며 급히 TV를 켰다. 속보를 전하던 뉴스 화면이 잠시 멈추더니 기자들에 둘러싸인 문재인 이사장이 냉철한 표정으로 서거 소식을 알렸다. 한동안 넋이 나간 듯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내와 나는 눈만 마주치면 훌쩍 거렸다

다음 날, 정신을 차리고 분향소라도 찾을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했다. 아내가 집에 분향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탁상용 액자에 우리 부부의 사진을 빼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 사진을 넣었다. 커다란 거실 테이블에 사진, 향초, 향을 피운 작은 분향소가 만들어졌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우린 서로 마주 보며 바보처럼 웃었다

떠나시는 날 아침, 아내는 정성스레 밥을 지어 올렸다. 그리고 우리는 노제에 갔다. 남기남도 내 마음과 같았다


지난 25년간 큰 웃음을 주었던
정훈이 작가님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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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2-11-08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가님 별세 소식에 맘이 아픕니다 명복을 빕니다

나와같다면 2022-11-08 16:07   좋아요 1 | URL
씨네 21<정훈이 만화>를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거예요

시대를 역행하는 우울한 시대를 살면서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낄낄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너무 갑작스런 이별이 슬프네요

2022-11-08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8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우 2022-11-09 0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왜, 라고 했는데 갑자기가 아니군요. 아직 한창 나인데 너무 맘이 아프네요. 명복을 빕니다.

나와같다면 2022-11-09 10:28   좋아요 2 | URL
어느날 갑자기 동시대를 살아온 이의 부고를 들으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참 두텁지 않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 이라고 한데 묶어서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

이 말과 비슷한 충격을 안긴 것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다음 말이었다.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dividual)끼리의 연결을 파괴하는 짓이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저 말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6분을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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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서시> 한강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는 아름다운 시가 많은데 내가 유독 <서시>에 끌린 것은 언제가부터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때가 잦아진 탓이다. 그런데 이 시는 죽음에 대한 시가 맞기는 한가?
˝어느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운명을 만나 그가 내게 행한 일을 돌이켜 생각하게 되는 때는 생의 마지막 순간이지 않을까. 그러니 죽음에 대한 시가 맞을 것이다. 아니, 맞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독특하고 아름다운 죽음윽 시라고 해야 하리라. 운명을 이렇게 그릴 수 있다니 말이다.

운명이 고전 비극에서처럼 대결과 투쟁의 대상으로 그려지거나, 간구하고 복종해야 할 초월자/절대자로 그려지고 있지 않다.
이 시의 빛나는 착상은 운명을 의인화한 데에, 게다가 수평적으로 평등한 대상으로 설정한 데에 있다. 이 운명이 내 앞에 나타나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 운명이다. 어떻게 이 운명의 멱살을 잡거나 그 앞에 무릎을 끓을 수 있겠는가. 화자는 운명과의 만남을 미리 상상해본다. 제 운명을 껴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를 생각한다. 이것은 마치 태어나자마자 헤어진 쌍둥이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최초의 상봉을 앞두고 하는 생각들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날이 오면 화자는 말을 아끼겠노라고 말한다. 말없이도 서로를 다 이해할 수 있을 것이므로. 떨어져 있었지만 늘 함께였던 나와 내 운명. 그 애증의 세월을 이제는 다 뛰어넘어서. 그저 운명의 얼굴을, 그 얼굴에 새겨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보겠다는 것. 그것이 곧 내 삶의 ˝그늘과 빛˝이기도 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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