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빛을 발하지 않는다. 죽어서 재가 되면 아무것도 남지않는다. 아니,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죽어서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말이 아닐까, 하고 아유미는 생각한다. 내가 아버지에게 했던 말, 어머니에게 했던 말은 한순간 공기를 진동시키고 차례로 사라진다. 그래도 부모님의 기억 속에 몇몇 말의 단편은 남을지도 모른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귓속에 머무는 기억으로 남는 일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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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 반드시 사람을 구한다, 잔인하지만 그런 건 없습니다. 각자에게 찾아오는 위기에 정답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장면에서 항상 정답은 없습니다. 만약 신앙보다 먼저, 빛보다도 먼저길 잃은 사람에게 닿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연민을 느끼는 마음도 아니고, 눈물을 흘리는 눈도 아닙니다. 그저 들어주기만 하는귀입니다. 얼마나 귀를 쫑긋 세우고, 얼마나 귀를 기울일 것인가. 이걸 잘못하면 바닥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에 두레박을떨어뜨리고 맙니다. 줄도 같이 말입니다. 두 번 다시 끌어올릴수 없게 됩니다. 밑바닥에 있을 지하수도 바싹 말라버립니다. 듣기에는 간단한 것 같지만 어렵습니다. 만약 입으로 말을 해야 한다면 완전히 다 듣고 난 후 주뼛주뼛해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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