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 성당, 거룩한 신비의 빛
강한수 지음 / 파람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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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어린 시절 성당은 그야말로 삶의 자리였다. 사춘기 청소년이 되었을 때도 성당은 변함없는 친구였다. 천주교 의정부교구 사제이기 전에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로마네스크 성당, 빛이 머무는 곳] 전작에 이어 두 번째 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고딕 성당이 로마네스크 성당에 비해서 건축 구조가 한층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로마네스크로마다운이란 뜻이었다면, ‘고딕은 게르만족의 하나인 고트족을 가리키는 고트인의란 뜻을 지니고 있다. 건축의 영역에서 로마네스크와 고딕의 전환 과정과 철학의 영역에서 스콜라철학 이전과 이후의 전환 과정이 평행현상을 띤다는 것이다.

 

레세에 영향을 준 캉의 생테티엔 성당은 처음에 목조 평천장이었던 것을 6분 볼트의 석조 천장으로 바꾼 것이다. 천장은 두껍고 리브와 대응 기둥의 구조 체계도 불완전했다. 리브 그로인 볼트가 있다고 해도 생테티엔 성당은 확실히 로마네스크다운 성당이다. 레세의 삼위일체 수도원 성당은 로마네스크와 고딕 사이의 건축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의 동시 발생을 설명하면서, 고딕건축을 시작한 사제요 수도자이며 건축가인 쉬제를 언급했다. 후대 역사가들은 그를 공정하고 성실하며, 화합을 중요시하면서도 우유부단하지 않고, 활동적이지만 인내심이 있으며, 전체와 부분을 동시에 볼 줄 아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고딕 구조의 발전은 우선 리브의 발달에서 시작되었다. 리브란 볼트를 받치고 있는 갈빗대 모양의 부재이다. 볼트가 수직으로 교차하는 것을 그로인 볼트라고 하고 그것에 리브가 더해진 것이 리브 그로인 볼트이다. 리브와 복합 기둥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룬 곳이 상스 대성당이다.

 

빅토르 위고는 [파리의 노트르담]을 출간했다. 고딕 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위고는 랭스 대성당의 모습에 매료되어 건축 여행을 다니게 되었다. 위고는 대성당의 양식을 평가하기를 순수 로마네스크 양식도 아니고 순수 고딕 양식도 아니며, 과도기적 양식의 성당이라고 말한다. 외적 장식물에 상관없이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차원에서 성당은 항상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상리스, 누와용, 랑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모두 파리를 중심으로 하는 일 드 프랑스 지역에 위치해있다.

 

고딕 구조로 포인티드 아치, 리브 그로인 볼트, 플라잉 버트레스 세 요소가 있다. 벽과 천장과 기둥이라는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하중을 견디며, 서로에게 부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하중을 나누어 담당하는 그렇게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작용하여, 더 가벼우면서도 더 높이 성당을 올리는 것이다.





스콜라철학의 명료화의 습성이 가장 잘 나타난 분야가 전성기 고딕 건축이다. 전성기 고딕은 신학과 도덕과 역사와 자연을 모두 구현하고 건축 구조의 요소들을 충분히 나열하여 전체성을 이루고, 네이브와 트란셉트의 회랑 개수라던가 네이브와 아일의 볼트의 형태 같은 상동적인 부분들 간의 체계적인 배열을 이루었다.

 

노력의 결실로 고딕 구조는 완성 단계로 들어서게 되는데, 첫 번째가 샤르트르 대성당이다. 샤르트르의 장인들은 플라잉 버트레스포인티드 아치를 이용해서 천장이 견뎌야 하는 하중을 분산시킴으로써 구조 부재의 하중을 줄이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갔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구조 방식은 초기 고딕과 전성기 고딕을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일 드 프랑스에서 생겨난 고딕 양식은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었는데 비교적 통일된 양식으로 전파되었다. 프랑스에서 고딕 양식이 시작되었을 때도 독일은 국제적 흐름보다는 로마네스크의 완성에 집중했다. 이탈리아는 로마네스크 전통이 강했던 토스카나 지방을 중심으로 선택적으로고딕 양식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5세기에 들어 토스카나에서 베네치아로 이동했다. 제노바와 지중해의 패권을 다투던 베네치아에는 그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많은 성당과 공공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그중에는 대형화된 성당도 있었다.

 

성당의 건축구조는 어렵게 느껴지지만 친절한 설명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유럽의 유서 깊고 고풍스러운 성당들이 그냥 이국적인 풍경으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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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전해 준 것
오가와 이토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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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베스트셀러 [달팽이 식당], [츠바키 문구점] 작가의 최신작으로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새를 키웠던 추억을 바탕으로 10년에 걸친 구상 끝에 완성한 장편소설 [바나나 빛 행복]을 원작으로 탄생한 또 하나의 사랑스러운 이야기다. 올겨울을 따스함으로 물들일 따뜻한 어른 동화이다.

 

리본이라는 작은 왕관앵무에게 새로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준 건 회색앵무 할머니 야에 씨였다. 할머니는 전쟁 전에 태어났다고 했다. ‘슬픔을 겪은 새들이 모이는 곳에서 태어나 모르는 것투성인데도 늘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리본이 그 전에 일을 떠올리려고 하면 몸이 오그라드는 것이다. 야에 씨는 인간한테 무서운 일을 당했나보다 말했다.

 

인간이란 자기들이 제일 똑똑한 줄 알고 두 발로 걷고 날지도 못한다고 했다. 착한 인간이 있으면 나쁜 인간도 있단다. 어느 세계든 마찬가지야.





야에 씨는 젊고 예쁠 때 인간의 말을 능숙하게 할 수 있었다. 전쟁이 찾아왔고 사육사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백화점 옥상에서 재주를 보여 준 적도 있었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꼴로 살다가 보건소로 끌려갔는데 이곳에서 구해 주었다고 한다.

 

리본이 흥얼거리는 것을 듣고 무슨 노래냐고 했다. 야에 씨 말만 들었는데 자기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 노래를 알 속에서 들은 것 같았고 졸릴 때 그 노래가 들리면 마음이 편해졌다. 알 밖으로 나가는 게 기다려졌단다.

그 노래를 평생 잊으면 안 돼.” 야에 씨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너희 엄마가 들려준 소중한 노래니까.

 

야에 씨는 엄마를 만난 적 없지만 대신 최선을 다해 보살펴 준 사람은 사육사였다. 너무 좋아서 결혼하고 싶단 생각까지 했단다. 리본은 엄마를 상상해 봤지만 아무리 애써도 기억나지 않았다.

 

다정한 날개의 주인이 되렴.”

야에 씨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새는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니까. 사자란 심부름꾼이란 뜻인데, 네 날개를 행복을 위해 쓰라고 했다.

 

모험을 계속하면서 다양한 인간을 만났다. 어느 집에서 살게 돼었고 소녀 미유키의 보살핌을 받게 되었다. 미유키가 갓 태어나 두 발로 서서 걷게 되었을 때 말을 걸어왔다. 틈만 나면 새장으로 놀러 오기 시작했다. 소녀의 어머니는 병원을 가면서 애원했다. 내가 가고 나면 네가 잘 다녀왔어? 하고 가족들한테 말해 주라고 한다. 리본은 혼자 연습했고 마침내 잘 다녀왔어? 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별은 갑자기 찾아왔다. 미유키가 새장 밖으로 꺼내주면서 도망치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하늘을 날지 않아서 나는 법을 잊지 않았을까 조마조마했지만, 잊지 않은 것 같았다. 미유키가 알 수 있도록 깃털을 하나씩 땅에 떨어뜨렸다. 바람에 나부끼는 날개가 빛 조각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그런 내 날개를 보는 게 아주 좋았다. 말 상대가 아무도 없이 날이면 날마다 그저 한결같이 하늘을 날았다.

 

눈에 익은 동네 위를 날고 있었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나뭇가지에 앉았을 때였다. “오랜만이구나, 어른이 다 됐는데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무가 말을 하고 있었다. 나무가 말을 하는 거 처음 들었다. 나무가 말했다. 혹시 너희들만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냐? 사람에겐 사람의, 새에겐 새의 말이 있다. 네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지 나무에겐 나무의, 돌에겐 돌의 말이 있는 거라고 했다. 너희한테는 날개가 있지. 생명체는 모두 주어진 역할이 있어. 그걸 완수하는 게 인생인 것이다.

 

리본은 마침내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냈다. 나를 다정하게 싸안아 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할아버지 나무 곁에 있으면 언젠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마음에 위안을 주는 이야기, 연말과 새해를 맞아 소중한 사람에게 다정한 위로의 메시지를 담아 선물하기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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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이름이라도 - 나의 생존과 운명, 배움에 관한 기록
임승남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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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고아 출신 생계형 범죄자에서 출판사 대표가 되기까지 임승남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은 에세이다. 소설 [걸밥]을 출간한 후 인간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다.

 

저자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네다섯 살 때 고아가 됐다. 어두컴컴한 거리에서 울다 남대문지하도에서 겨울을 났다. 시장 아주머니들이 만든 칼국수, 수제비, 팥죽을 팔고 있었는데 그때 먹은 팥죽 맛은 잊지 못한다. 최초의 기억으로 어머니가 하얀 가운 차림의 남자가 놓은 주사를 맞고 돌아가셨다. 형과 누나 남동생까지 6남매였는데 아버지는 몸이 불편한지 누워계시다 돌아가셨고 무작정 거리로 나와서 고아가 되었다.

 

남의 집 대문 앞에서 밥 좀 달라고 동정심이 일어나도록 구슬프게 처량하게 소리를 길게 외쳤다. 초상집에서 시라이막에 돈을 주고 초상집 문방을 서주기도 했다. 앵벌이를 하다가 단속에 걸려 아동보호소로 들어가게 되었고 도망가는 아이는 죽도록 매를 맞았다. ‘꼬마딱지를 떼고 이쁜이라고 불렸다. 도둑질 하다 소년원에 가게 되었다. 친구들을 내보내고 혼자 독박을 쓰기로 결심했다.

 

태어나서 10대 후반까지 머리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동물처럼 살았다. 환경은 배고픔, 도둑질, 싸움, 고문, 신고식, 징역, 죽음 같은 일이 언제 어떻게 시작될지 모르는 정글 같은 세계였다.

 

유치장에서 며칠을 살고 자백을 해도 형사는 고문을 멈추지 않았고 자백이 목적이 아니라, 남의 고통을 즐기는 게 목적 같았다. 그러나 살려고 하는 변화의 의지와 배움의 용기가 생겼다.새로 부임한 원장은 정신이 똑바로 서야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가진 사람이었다. 방마다 보름에 세 권씩 책을 의무적으로 신청하던 시기였다. [마음의 샘터]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격언을 엮어놓은 책인데 훗날 새 인간이 되는 계기가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교도소의 감방장과 배식 반장은 왜그리 때리고 걷어차는지 이 책을 읽고 있으면 화가 안 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짜환자 엿장수를 도와주었다. 보답을 하겠다는 말을 듣고 샘터 책이 생각났고 [새 마음의 샘터] 책을 구해주었다.

 

교도소를 출소하고 사회 나와서 일반인처럼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웠다. 교도소로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임승남 이름 석자를 잘 쓰고 싶어 글씨 연습을 했다. 감방에서 책 읽는 것은 힘들었고 필기도구도 빼앗아 갔지만 교도관의 눈을 피해 글씨 연습을 했다.

 

결핵에 걸렸고 환자라는 것을 잊고 약도 먹지 않고 버텼다. 출소하는 날까지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무시한 채 계속 책을 읽고 마음을 닦았다. 마산교도소로 이감되어 결핵을 치료했다. 76년 저자는 마지막 26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출감했다. 교도소에서 알았던 대학출신 수감자 정 형의 도움으로 출판사 영업사원으로 취직한다. 월급 3만원의 영업 배본사원이 되었다.

 

막노동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버거워지는데 반해, 책은 처음 들고 나갈때는 힘들어도 서점에 내려주고 나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이 재밌었다. 그렇게 다니는 걸 창피하게 여기는 영업자들도 있었다. 개구리가 넓은 세상으로 나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처럼 즐겁게 일했다.

 

책으로 인해 나라는 한 인간이 바뀌었기에 책에 대한 애착이 기본적으로 굉장히 크기도 했지만, 인문사회 쪽에 관심을 갖게 됐다. 좋은 책을 내면 사회라는 흐린 물을 맑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업부장 설문 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로 나왔고 다른 출판사로 옮겨보라는 제의를 받는다. 많은 일들을 겪고 출판에 회의감이 들었지만 좋은 일을 하려다 도망 다니는 사람들의 뒷바라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버텨보기로 했다. 재정이 어려워진 돌베개를 인수하게 되었다. 서대문 치안본부에 끌려갔을 때, 고아라고 간첩 아니냐 했지만 스스로 양아치, 도둑놈에 인간 말종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지만 간첩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임승남을 세상에 알리는 자전소설 [걸밥]을 출간했다. 잃어버린 형제들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지만 단서도 찾지 못했다. 19934월 돌베개를 떠났다. 직원들은 13년 동안 잘 이끌어줘 고맙다는 감사패와 행운의 열쇠를 선물로 주었다. 이 책은 처절하고 치열한 생존기이지만 인간의 삶을 꿈꾸게 하는 뭔가가 있다. 수감 중에 공부해서 마음을 잡아보겠다고 결심을 했으니 책은 정말로 위대한 힘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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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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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순례의 여정 속에서 만난 깨달음의 산문이다. 저자는 3년 전, 서울을 떠나 하동군 평사리에 정착하여 고독 속에 스스로 유폐하고, 평화와 행복을 되찾아가던 어느 날 예루살렘으로 떠나기로 한다. 죽음을 거쳐온 사람들, 상처 입은 사람들, 광야를 헤맨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전하고 싶다.

 

저자는 적막과 침묵, 자연 속에서 외롭지 않았다. 새벽에 기도 방으로 가서 촛불을 밝힌다. 온전히 혼자란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학 졸업 이후 내내 가장이었고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썼고 차례차례 터지는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불행에게 쫓겨 다녔다.

 

고요하고 싶어 3년 넘게 남들에게 글을 내비치지 않고 살았다. ‘고요하고 싶어이 질문과 대답은 화두처럼 남았다. 당나귀 등에 올려져 있는 강아지를 입양하고 동백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동백이 전 주인은 대책 없는 사람 같았다.

 

어느 날, 지인의 죽음은 세상에 태어나 죽는 사람을 처음 보는 것처럼 가슴은 툭 내려앉았고 힘겨웠다. 예루살렘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예루살렘이야? 정확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걱정은 되었지만 결심했다.

 

요르단은 처음이었다. 느보산 모세 기념 성당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니 성당만 빼고 눈앞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광야였다. 누런 광야, 저 아래 요르단강이 흘러가는 왼쪽 끝으로는 사해가, 오른쪽으로는 예리코가 보였고 눈앞으로 멀리 이스라엘 땅의 전경이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나자렛은 길들이 좁고 가팔라서 마치 울릉도를 연상시켰다. 무슬림 지역의 작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일행은 주님 탄생 기념 성당으로 갔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안전한 지역인지 물어보니 치안이 개판인 지역이라 여자는 절대로 혼자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날아왔다.

 

오래전부터 사막에 가고 싶었다. 한국의 일행이 떠나고 혼자 예루살렘에 남았다. 비싼 호텔비를 지불하였지만 지하실방이나 길 앞의 방을 배정해주어 큰 소리로 항의를 하니까 왜 중년 여성이 혼자 여기에 왔냐는 것이었다. 20년 전 수도원 기행을 할 때 만났던 수녀님과 신부님 기억을 떠올린다. 이스라엘 곳곳의 가톨릭 성지에서 프란치스코회 수사복을 입은 신부님을 마주치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예루살렘 성당들을 순례하고 상상했던 십자가의 길을 수녀님의 안내를 따라나섰다. 라틴어로 비아 돌로로사라고 불리는 십자가의 길은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은 본시오 빌라도의 법정에서부터 시작한다. 베로니카는 십자가의 길 근처에 있다가 예수의 얼굴을 닦아드렸는데 그 형상이 그녀의 수건에 찍혔다고 전해진다. 십자가 밑에 서 있던 예수의 지지자들도 모두 여인이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그 힘든 와중에 여인들을 보고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해 울어라하시는 장면을 봐도 그렇다.

 

고통은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저자는 고통이 주는 이점이 있는데, 그것은 겸손해진다는 것이다. 산을 오르거나 책을 하나 쓰려고 할때도 말할 것도 없이 고통이 온다. 원고를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는 망상이 깨지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천 일이 넘는 칩거 동안 세 남자에게 매혹되어 있었다. 프란치스코와 샤를 드 푸코, 십자가의 성 요한이다. 요르단에서부터 주님의 발자취를 지키고 싶어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열렬함을 이어받은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님들을 만났고, 이제 샤를 드 푸코 성인을 만나고 싶었고 어린 시절 읽었던 소설 [하이파에 돌아와서]를 읽고 하이파라는 곳을 가보고 싶었다.

 

예루살렘으로 떠나려고 할 때 동백이가 걸렸는데 이웃이 돌봐준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동백이가 펄쩍 펄쩍 뛰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고독하게 산다고 해도 누군가 좋은 이웃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백이 전 주인이 욕설을 하고 싸움이 일어나고 시비를 걸고 이 시골에서 뒷담화해서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뜨리고 폭력을 당해 간 경찰서에서 폭력을 당한 건 아니지요?”라고 묻는 이곳이 갈릴래아라고 했다.

 

순례를 통해 자신의 죽어 있던 시간을 떨구고 다시 일어났다. [토지]의 배경이기도 했던 평사리로 돌아왔고 저자의 멘토였고 존경했던 소설가 박경리를 떠올리며 다시 펜을 들었다. 세상의 미혹을 뒤로하고 스스로 고통과 어둠으로부터 회복하는 저자의 현재와 과거는 진한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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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딱 한 해만, 다정한 이기주의자 - 한 달에 한 번, 온전히 나를 아껴주는열두 달의 자기 돌봄
베레나 카를.안네 오토 지음, 강민경 옮김 / 앵글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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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1년쯤은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일상에 지친 워킹맘과 심리학자가 함께 실천하고 기록한 나부터 행복해지는연습이다. 심리학자의 월별 미션과 30일간의 실천, 그에 대한 심리학적 피드백까지 세 가지 절차를 밟아가며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낸다. 미션, 실행, 피드백은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 지금부터 시작해보자.

 

일년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심리학자 안네가 코치를, 작가 베레나는 피실험자 역할을 맡았다. 자기돌봄 방법을 설명하고, 각각 접근법에 과학적 지식과 근거가 있는지 알려주기로 했다. 한 달을 기준으로 두 사람이 나눈 편지글을 그대로 담았다.

 

1월 미션은 명상하기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업무 시간이 일정치 않아 힘에 부칠 때, 다음에 할 일을 까먹기도 하는데 명상이 도움이 될까? 의문이 들었지만 자애 명상을 따라 하면서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열두 달 동안 다른 활동을 하면서 명상은 계속 해야 할 것 같다.

 

뜨개질이나 베이킹이든 내손으로 하기, 먹고, 마시고 나를 사랑하기, 꿈 일기 적기, 몰입을 위한 고독, 시네마 테라피, 지인이나 친구와 연락을 줄이기, 타인에게, 자신에게 넉넉한 정을 베푸는 연습 등이 있다. 마음챙김 연습 방법은 다양하다. 양치질, 요리, 청소, 세차, 장보기를 비롯한 일상적인 행동을 집중해서 애정을 쏟는 것이다. 글쓰기나 창작에 관한 책을 읽어봐도 좋다. 저자는 줄리아 캐머런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를 추천한다.

 

미션을 거치는 동안 모든 미션들에 공통점이 있다고 느꼈다. 어떤 미션을 수행하든 자신의 몸을 집중해서 느껴야 했으니까. 스스로의 몸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말고, 배려심이 넘치는 친구처럼 바라봐야 하는 자기돌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베레나는 프리랜서로 일을 하니 언제 휴식이 필요한지, 스트레스가 쌓이는지를 항상 살펴봐야 하고 알람이 울리면 하던 작업을 중단하고 다른 행동을 해야 한다. 일하는 시간에도 15분 정도 산책하는 시간을 끼워 넣는 것도 좋겠다.

 

꿈을 탐구하는 건 자기돌봄이기도 하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꿈의 내용을 메모로 적어두는 일련의 과정은 자기돌봄에 가깝다. 감정을 소모시키는 험담을 줄여야 한다. 2주 동안 다른 사람의 행동, , 다른 사람이 소유한 것, 사무실이나 모임 등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 등 여러분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것들을 무시하고,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아티스트 데이트란 여태까지 몰랐던, 자세히 보지 않았던 사물이나 장소를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반드시 박물관이나 미술관일 필요는 없다. 문구점이나 도서관, 식물원일 수도 있겠다 열린 마음과 호기심이 중요하다. 심리학자나 심리치료 전문가들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우울증, 불안증 등을 앓는 사람들에게 시네마 테라피를 추천한다.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한다. 모든 감각을 동원해 자연을 느껴야 한다. 자연을 맛보고, 냄새 맡고, 보고, 듣는 거다. 베레나는 10월을 아주 좋아한다. 조깅을 하면서 자연과 가까워지는 연습부터 시작한다. 2주 동안 계속해서 명상과 호흡을 연습했다. 아침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5분씩 내 마음과 현재의 상태를 살피고, 답답할 때는 심호흡을 했다. 내뱉는 숨결에 마음의 짐을 실어 내보내듯이 말이다.

 

자발적으로 사람들과 거리를 뒀을 때 어떤 감정이 생기는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일상 속에서 느껴보았다. 선행이 꼭 기부이거나 선물일 필요는 없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베레나는 진정한 자기돌봄이 무엇인지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독자들에게 다른 고민과 다른 행복을 품고, 다른 삶을 사는 모든 사람들의 자신만의 행로를 찾았으면 좋겠다. 안네는 미션을 진행한 지난 1년 동안 두 가지 행동을 마치 의식처럼 반복했다. 하나는 분노나 행복, 슬픔 같은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되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매일 하루 30분은 꼭 산책한다.

 

책을 읽으며 딱 한 해만, 오직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여러가지 중에서 좋았던 것은 명상하기와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고독을 즐기는 것이다. 행복이란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오로지 나를 돌보는 고독의 시간에서 비롯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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