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마리아 - 살아남았으므로 사랑하기로 했다
김현 지음 / 원너스미디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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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떨어져 살아온 인생이야기를 읽으면서 목이 매인다. 똑같은 상황은 아니어도 마음고생이 생각났는지도 모른다. 부제목처럼 살아남았으므로 사랑하기로 한 그녀의 인생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네 살난 여자아이는 외할머니 손을 잡고 부여 이모엄마 집에 잠깐 내려가는 사이 6.25 전쟁이 나면서 부모님, 오빠, 남동생은 월북을 하게 되었다. 빨갱이 새끼라는 꼬리표를 달고 70년을 살았고, 아버지가 1956년 숙청을 당하고 총에 맞아 죽은줄도 모르고 평생을 원망하며 살았다.

 

이모는 아버지가 다른 엄마의 언니다. 이모를 엄마라고 부른 사연은 어머니 태몽에 거북이 한 마리를 주워서 이모 치마폭에 넣어주며 잘 키워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아버지가 공산당이라는 사실이 발각되어 부모님은 직장을 잃고 끼니를 못 먹을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부여로 양식 얻으러 간 사이 전쟁이 터져 월북할 때 따라 가지도 못했던 것이다. 서울이 수복이 되어 혹시나 찾아간 서울 집을 들어설 때 외할머니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고 충격으로 얼마 후 돌아가시게 되었다.

 

이모엄마는 마리아의 엄마를 좋아하는 각별한 자매였고 빨갱이라는 꼬리표 호적으로 살 수 없으니 이모 호적에 올리고 학교도 보내주었다. 이모와 13년 동안 살았고 열일곱 살에 쫓아내었지만 열아홉 살부터 이모를 부양했고 미국에 오신 후 마지막 13년 치매를 앓다가 아흔다섯에 돌아가실때까지 46년을 보살펴드렸다.

 

이모집에서 일하는 남자들이 추행을 하고 주일학교 교사였던 유 씨도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할 때 어린 마음에 남자들 구역에는 얼씬도 안했다. 이모에게 말하면 조용히 있지 않아서 그렇다 꾸중을 들을까 말도 못했다. 어린 나이에 마음 고생이 심했겠다 싶어서 마음이 짠해진다. 이모는 예쁘고 바느질 솜씨가 좋았는데 아들을 못 낳은 이유로 이모부가 첩을 여섯 명을 두고 이혼을 하게 되었다.

 

이모에게 쫓겨나 YWCA 여성의 집으로 갔던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곳에서 여군에서 영문 타자수 행정 요원으로 근무하는 미스 신 언니 조언으로 여군이 되고, 비록 헤어졌지만 지금의 두 아들의 아버지 존을 만나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존은 직장을 다니지 않는 불성실함에 지쳐 서른다섯 살 이혼을 하고 낮에 보험회사를 다니면서 미네소타주립대학을 다녔다. 졸업을 하고 미네소타주립대학 평의원이 되고 여성 전문가단체 이사 직책으로 일도 하게 된 것은 미스 신 언니 얘기를 듣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생각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미국 잡지를 읽으며 환상적인 푸른 잔디밭을 뛰어노는 금발의 백인 학생들 사진을 보고 로망이 된 미국에서 49년을 살아왔다.

 

국제결혼한 것을 양키하고 사는 양갈보라고 보는 시선은 따가웠다. 백인우월주의와 이중적 성격에 시댁에서도 달갑지 않게 생각하였지만 명절에는 아들들을 자신처럼 외롭지 않게 시댁에서 보내게 해주고 매번 혼자가 되었다.

 

부산 통신부대에 근무할 때 주일학교 유씨가 대위가 되어 찾아와서 수작을 부리는 것을 모면한 이야기는 통쾌했다. 1990년 봄, 북한 정부 초청을 받아 방문하여 가족을 만났고 아버지는 얼마 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 하였다. “널 뒤에 남기고 오면서 모두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네가 죽었거나 몸 파는 여자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온갖 나쁜 생각을 했는데..이렇게 널 보다니 꿈인가 싶구나어머니는 쓸쓸히 말씀하셨고 그때 뵙고 마지막이었다.

 

이 책은 전쟁 중에 빨갱이로 고아가 된 한 어린 여자아이가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남았는지를 기록한 것이고 성공한 스토리는 아니라고 하지만 진정으로 성공한 여자의 인생 스토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저자는 고독과 절망 속에서도 삶의 행로를 스스로 결정해간다. 가난과 차별을 잘 이겨내고 부지런하시고 열심히 잘 살아온 것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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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신부 2 민음사 모던 클래식 45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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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는 헝가리 탐정 해리엇이 지니아를 알아낼 것이라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전에 토니가 쌍둥이들에게 읽어 준 책을 발견한다. [도둑 신랑]은 숲속의 성으로 순진한 아가씨들을 데리고 가서 몸을 토막 내 먹어 치우는 돈 많고 잘 생긴 남자가, 신랑감을 찾는 예쁜 처녀 앞에 나타나는 내용이다. 지니아는 고급 창녀에 불과하다. 도둑 신부보다 도둑 갈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고 로즈는 눈물을 흘린다.

 

로즈의 아버지는 유대인이었다.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하숙을 치고 있었다. 어머니는 노처녀였다. 폭력배들에게 41로 맞서다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어머니가 간호하는 것에 사랑을 느껴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학교 다닐때는 아이들이 로즈를 난민이라고 놀렸다. 아버지는 전쟁에 나가고 엄마가 하숙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기 때문에 로즈는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였다. 아버지가 돌아오고 하숙생 몰리부인은 하숙비를 떼어먹고 도망을 가버렸다. 아버지와도 정을 통한 사이라고 하였다.

 

아버지는 일을 안하지만 가끔 돈 다발을 가져다 주었다. 알고 보니 밀수꾼, 도둑, 영웅이라고 삼촌들이 말을 했다. 전쟁 전이나 전쟁 중,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림, 금 등 숨겨 놨다 팔 수 있는 온갖 물건들을 팔았다. 그렇게 돈을 모아 회사를 차리고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된 것이다.

 

미치는 아버지의 계약서 작성을 맡은 회사에 근무하는 신참 변호사였다. 첫눈에 반해 데이트 하는 날부터 미치에게 끌려 다닌거였다. 미치는 로즈를 사랑한 것이 아닌 돈을 보고 결혼하였다. 어느 날 지니아가 나타나 로즈의 아버지는 영웅이었고 전쟁에서 자기를 구해주었다며 접근을 한다. 로즈 회사 <와이즈우먼월드> 잡지사에 취직도 시켜 주었다. 지니아가 고모와 같이 살고 있을 때 로즈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다. 토니에게는 백계러시아인이라고 했고, 캐리스에게는 어머니가 루마니아에서 농민의 돌멩이에 맞아 죽은 집시라고 했던 말은 과거를 지어내서 했다는 것이다. 전조도 없이, 힌트도 없이, 남겨 둔 편지도 없이, 미치와 지니아는 자취를 감추었다.

 

미치는 돌아왔지만 로즈는 받아주지 않았다. 지니아가 남자들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능력, 비법은 뭘까? 갑자기 지니아가 세상을 떠났다고 장례까지 치뤘지만 미치는 오지 않았고 그 후 몸을 던진것인지 사고였는지 호수에 빠져 죽었다.

 

톡시크에 세 여자가 지니아 이야기를 한다. 가짜 죽음을 알린 것은 미치를 떼어내려고 수를 쓴 것이었다니. 토니에게 웨스트가 재미없는 사람이라 쫓겨난 것이다. 캐리스에게 죽을병에 걸렸고 여비를 마련해주면 떠날 것이라 하였다. 빌리는 워싱턴에서 살고 있고 닭은 빌리가 죽인것이고 그런 남자는 잊으라 한다. 캐리스는 지니아가 무슨 짓을 했더라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즈에게 문제가 뭐냐면 바로 너야! 하였다. 래리는 게이고 그 사실을 엄마한테 폭로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지니아는 입만 열면 거짓말인지 읽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다. 캐리스는 지니아의 환영을 봤다. 호텔에 잘 있는지 확인차 갔지만 죽어있었다. 경찰조사 결과 난소암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발코니에서 발견된 주삿바늘이 있었고 떨어지기 전에 과다복용으로 사망하였다. 전쟁둥이로 태어난 세 여자들은 마음이 약하다. 지니아에게 곁을 내주는 성격도 같다. 내가 만든 괴물이었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와 얽혔던 것은 하나같이 자발적인 선택이었고, 그녀가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은 너무나 솔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악당인지 아닌지 각자가 판단할 몫일까? 지니아를 살해한 범인은 누구일까? 실족사가 아니라 살해된 것이 맞기는 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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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비웃는 숙녀 비웃는 숙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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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다시 비웃는 숙녀로 노란옷을 갈아입고 나타났네요 최강의 악녀 미스터리 만나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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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의 방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4
버지니아 울프 지음, 김정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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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 플랜더스 부인은 아처, 제이콥, 존 세 아들이 있고 남편 씨부룩은 죽었다. 플랜더스 부인은 과부가 된지 이년이 지났다. 플랜더스 부인이 재혼을 않는 것은 바풋 대령이 있어서라고 스카보로의 여자들은 말했다. 바풋 부인은 환자였고 바풋 대령이 플랜더스 부인에게 가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대령의 관심이 플랜더스를 활짝 피어나게 하고, 그녀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하고, 그녀의 얼굴을 기쁨으로 물들게 하고 눈물짓게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하루 세 번 정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플로이드 목사가 쓴 쪽지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읽고 있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그녀보다 훨씬 젊은데다 좋은 사람이고 학자라고 생각한다. 아이 셋이 막대기를 휘두르고 놀고 있는 것을 보고 결혼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열아홉의 제이콥 플랜더스는 케임브리지에 가게 되었다. 제이콥의 방에는 탁자 하나, 낮은 의자가 있고 어머니 사진, 사교 모임의 명함들, 쪽지들과 파이프들, 에세이 종이가 놓여 있었다. 책은 많은데 프랑스 책은 거의 없었다. 제이콥은 여행을 시작한 뒤로 책을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다. ‘나는 제이콥 플랜더스가 좋아라고 듀란트의 동생 클라라는 자신의 일기장에 썼다. 듀란트 부인은 제이콥이 기품 있는 얼굴이라고 말했다. 프랜더스는 아처에게는 낭만적이고 존에게는 부드러웠지만 제이콥이 집에서 서툴게 구는 것에 짜증이 났다. 바풋 대령은 세 아이들 중에 제이콥을 가장 좋아했다.

 

아버지가 병으로 죽었고 어머니는 왕족인 주인의 신임을 누렸고 플로린다 자신이 공주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주로 취했을 때의 일이다. 제이콥은 거리의 여인 플로린다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녀는 순결하다 생각했다. 플로린다는 자신의 연애편지조차 제대로 읽는 법을 못 배웠지만 그녀 나름의 느낌이 있었고 어떤 남자를 다른 남자들보다 더 좋아하고 온전히 삶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플랜더스는 아들 제이콥에게 편지를 쓴다. 하고 싶은 말은 절대 쓰지 않고 동네에서 일어난 일을 적는다. 플랜더스 부인은 몇 년 동안 소식이 없는 모티 오빠에 대한 생각에 빠져든다. 이 소설에는 편지를 많이 쓴다. 이메일이나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그럴 것이다.

 

닉 브램험이 화가인 패니 엘머를 소개 하는데 정말 멋진 목소리네!’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젊은 남자가 얼마나 품위가 있으며 초연한지, 그걸 의식하지 못하는지, 어떻게 제이콥의 옆에 조용히 앉아 그를 바라볼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제이콥은 잠시 그녀가 두려웠다. 칸막이를 붙잡고 사랑에 빠져 있는 모습이.

 

셋 중에 제이콥이 늘 내 친구였는데, 자비스 부인이 말했다. 목사의 아내 자비스 부인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면 황무지를 걸었다.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게 힘들었다. 너무도 고요했다. 바람도 없었고 줄달음치는 것도, 날아다니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없었다.

 

제이콥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백 파운드를 가지고 여행한다. 낮과 밤을 여행하고 이탈리아의 심장부에 와 있다. 그리스 여행에서 산드라를 만난다. 그녀는 여행하고 있는 영국 청년에게 눈길을 준다. 멋을 아는 숙녀는 여러 벌의 옷을 갖고 여행을 한다. 제이콥은 남편 말을 듣고 있는 산드라가 아름다워 보였다. ‘저 사람은 인물이 아주 출중해산드라는 마음을 정했다. 제이콥은 자신이 사랑에 빠진 산드라 웬트워스 윌리엄스를 떠올렸다.

 

작품 속 여성 인물들의 기억과 뒤섞인 모든 욕망은 피할 길 없이 우리의 존재의 무게로 되돌아 오는 것이다. [제이콥의 방]에서 많은 여성이 나오는데 바풋 부인과 자비스 부인의 삶은 허무했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은 나에게 언제나 쉽지 않으며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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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네임 - 이름이 지워진 한 성폭력 생존자의 진술서 너머 이야기
샤넬 밀러 지음, 황성원 옮김 / 동녘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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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름을 숨긴 채 살아가는 성폭력 생존자의 일상에 관한 슬프고 아름다운 기록이다. 원래는 판사에게 보내는 글인 에밀리 도의 피해자 의견 진술서를 재판에서 낭독한 뒤 나흘만에 조회수 1100만을 기록하게 된다. [에밀리 도는 여성 범죄 피해자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명 중 하나다]

 

20171, 스물두 살이던 저자는 팰로앨토에서 살며 직장에 다녔다.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고, 길바닥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두 행인의 목격자도 있었고, 증거도 있었으며, 그 남자는 도망쳤지만 붙잡혔다. 너무 명백한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해 그가 사과를 하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길을 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변호사는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파티광인가요?” “바람을 피워본 적이 있나요?”“살면서 필름은 몇 번이나 끊겼나요?”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내렸지만, 스탠퍼드대 장학생이자 수영 선수였던 터너 브록은 징역 6개월, 그리고 3개월의 감경받는다. 친구 맷은 에밀리라는 걸 몰랐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숱하게 했다. 대학시절내 길잡이가 되어준 손때 묻은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을 꺼냈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은 당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다른 사람의 어두운 일을 가지고는 당신 글을 쓸 수 없다. 당신 글은 당신 것만으로 쓸 수 있다.”(p348) 부록으로 수천만 명의 마음을 뒤흔들고 담당 판사를 파면시킨 <에밀리 도의 피해자 의견 진술서>가 수록되어 있다. 나는 내 진짜 이름을 되찾고 싶었다. 그 기억의 이름표를 떼고 싶었다. 이 책을 쓴 건 그래서다. 나의 진실을 털어놓기 위해. 나는 피해자이지만, 그게 나라는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누구도 나를 정의 내릴 수 없다.

 

나는 대학을 마치고 나서 7개월 내에 성폭행을 당하고, 프로비던스에서, 그다음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살고,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법정 증언을 하다가 흐느껴 울고, 열두 장짜리 글을 써서 전 세계의 반향을 얻고, 키 큰 남자와 작은 개와 같은 집에서 살고, 2년 반을 글을 쓰면서 보내게 되리라는 건 전혀 알지 못했다. 나는 고통 속에서 자아를 만들어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폭행은 이제 그 큰 이야기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다. 그건 내 인생을 이루는 사실의 일부였다.(p498)

 

캘리포니아 폴리테크 주립대 3학년인 동생 티파니가 연휴를 보내기 위해 집으로 왔고 티파니 친구 줄리아와 스탠퍼드 남학생 사교클럽 파티에 가게 되었다. 집에서 10분 거리도 안 되는 곳이기도 하고 지루하고, 마음이 풀어졌고, 술에 취했고, 너무나 피곤하고 내 나이에 걸맞지 않은 기분이었다. 거기서 암전되고 필름이 끊긴다. 눈을 뜨니 병원이었고 경찰은 성폭행을 당했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였다. 강간 키트 검사를 받고 옷을 벗고 사진을 찍고 아라레와 대변인 브리를 만나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며 이 책을 500페이지가 넘기도 하였지만 읽어나가기 힘들었다.

 

사람들은 왜 그 남자에게 맞서 싸우지 않았어요? 묻기도 하고, 대학 다닐 때 남학생 사교클럽에 들어간 여자 신입생은 도살장에 들어간 양에 비유됐다. 만난지 몇 달 되지 않은 남자친구 루카스는 처음에는 당황하였지만 많이 이해해주었다. 재판이 이어지고 저자는 브록이 수업을 듣고 상담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면죄 선언으로 오해했다. 가해자는 의식이 없는 상태의 피해자를 언제고 그녀가 반응이 없다고 생각했으면 그 자리에서 멈췄을 거라고 대응했다.

 

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사건 이후 일상이 어떻게 뒤죽박죽이 되어가는지, 치유가 실제로 가능한지,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자로만 정의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섬세한 에세이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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