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 스톡홀름신드롬의 이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
롤라 라퐁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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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17]퍼트리샤 허스트 납치사건을 조사해 보고서를 쓰는 임무를 맡은 30대 진 네베바와 10대 비올렌을 통해 퍼트리샤의 심리를 따라가며 사건의 이면을 낱낱이 파헤치는 실화소설이다. 197424일 미국 언론재벌의 상속자 퍼트리샤 허스트가 좌파 무장단체 SLA에게 납치되고, 그녀는 당시 19세였다. 얼마 지난 후 SLA와 퍼트리샤는 은행강도 사건을 연출한다. SLA 아지트 경찰이 급습하여 6명이 사살되고, 퍼트리샤는 도주했다. 그녀는 타니아로 개명하고 SLA의 동지가 됐음을 선언한다. 퍼트리샤는 14개월 만에 샌프란시스코에서 FBI에 의해 체포되었다. 징역 35년을 구형받았고 유명인사 등 탄원서를 제출하여 7년으로 감형되었다. 150만 달러 보석금으로 가석방되었다. 2001년 빌 클린턴 대통령 특별 사면을 받았다.

 

퍼트리샤가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퍼트리샤의 가족은 그녀가 세뇌당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세뇌를 증명해줄 전문가들을 찾아다녔다. 전문가들의 진술 결과는 예상과는 달랐다. 고용한 정신과 의사는 그녀가 세뇌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SLA의 여왕이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유명 대학교수 진 네베바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그녀의 무죄를 입증할 보고서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진 네베바는 방대한 자료를 받고 퍼트리샤 허스트와 나이가 같은 비올렌을 조수로 채용한다. 납치에 관련된 기사들을 종합할 수 있어야 하고 주어진 기간은 최대 2주일이었다. 비올렌은 19742월부터 그다음해 마지막 달인 197510월까지 자료들을 순서대로 정리하는 일을 책임지게 되었다.

 

SLA가 퍼트리샤를 납치했다고 주장한 성명서와 퍼트리샤의 메시지가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가 전달되었고, 처음 메시지는 전 정말 잘 있어요목소리만 반복했다. 퍼트리샤는 그들은 정중하게 대해주었고, 자신이 풀려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거라고 했다. 자신은 전쟁포로이고, 제네바협정에 따라 대우받고 있다고 말했다. 음식을 받기 위해 길게 줄 선 사람들, SLA를 찬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곧 녹음 테이프를 보내온다. FBI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엄마, 아빠의 무관심이 저를 힘들게 한다며 음식을 먹은 사람이 15,000명밖에 안 되는 데다가 1인당 비용도 겨우 8달러에 불과했다며 식사도 질이 안 좋은 것 같았고, 소고기나 양고기 요리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고 했다. 퍼트리샤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식량을 자신의 몸값으로 요구하고 있었다.

 

진 네베바는 비올렌에게 퍼트리샤 허스트가 납치범들에게 자발적으로 동조했는지 여부를 검토하고 종합하라는 임무를 내린다. 비올렌과의 토론은 퍼트리샤 허스트의 세뇌를 증명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무산시켰다. 그녀의 납치 사건 발생 당시, 언론과 대중은 퍼트리샤 허스트가 납치범에게 세뇌, 동화됐다고 믿었고, 퍼트리샤 허스트는 지금까지도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되는 현상을 일컫는 스톡홀름신드롬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 소설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납치당한 머시와 메리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여성들은 풀려났지만 가족들에게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여성들의 공통점은 편안한 미래를 버리고 자신만의 길을 갔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머시, 메리, 패티(퍼트리샤 허스트)에게 무엇이 그들이 살아온 세계에 등을 돌리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만든 것일까.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소설 [17]을 읽는데 솔직히 쉽지 않았다. 매우 복잡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고, 이야기속의 이야기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스토리가 뒤섞여 있지만 이 같은 독서의 어려움은 작품에 쏟아진 찬사를 생각하면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고 역자는 말했다.시간이 지난 뒤 재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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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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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들]은 띠지에 쓰인 글처럼 속이 시원했다. ’갑질 세상에 대한 통쾌한 복수가 시작됐다.‘ 검찰, 사법부, 정치권, 언론을 망라하는 대한민국 공조 카르텔, 이제 법의 이름으로 처단하지 못한 악질들을 철저히 도려내기 위해 집행관들이 나섰다.

 

역사적 모티브와 경탄할 만한 상상력을 연결해 흥미진진한 역사 추리소설로 탄생시켜 온 조완선 작가가 대한민국의 사회상을 저격한 현대 사회 미스터리로 독자들을 다시 찾는다. 베스트셀러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교양 문화 추리소설의 패러다임을 새로이 제시하고, [6회 롯데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영화처럼 생생하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독자들을 만족시켜온 작가다.

 

역사학자 최주호 교수는 고교 동창 허동식의 전화를 받았다. 생존해 있는 유일한 친일파 노창룡에 관한 자료를 부탁했다. 허동식은 다큐멘터리 감독인데 작품 구상에 쓴다고 했고, 25년 만에 나타난 동창의 부탁을 외면할 수도 없고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았다. 며칠 후, 노창룡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연일 보도된다. 현장에 남아 있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고문 도구들과 피해자의 등에 새겨진 숫자들뿐이다. 최주호가 보낸 잔혹한 고문 자료가 살인 수법으로 그대로 이용되었다. 최 교수는 원치 않게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음을 직감한다. 고문수법에 관한 기사를 내보낸 신문사에 찾아간다.

 

수사팀의 우경준 검사는 노창룡의 사체 등에 숫자의 비밀을 풀어보면서 용의자들은 법을 불신하거나 법에 의해 깊은 상처를 받은 자가 가담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 희생자는 조선시대의 형벌을 사용하였다. 인터넷이나 시민들의 반응은 범인들에게 우호적이었다. 잔혹하고 엽기적인 살인 수법에는 관심이 없었고 민족정기에 방점을 찍었고, 사회 정의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했다. 이런 현상을 한 심리학자는 분노의 대리만족이라는 표현으로 여론을 분석했다.

 

칼럼을 쓰는 것으로 분노를 대신하려고 했다. 나라를 거덜낸 종자들이 제 잇속만 채워도, 그들이 특별사면을 통해 면죄부를 받아도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자신에게는 인간쓰레기를 단죄할 권한이, 그들을 응징할 수단이 없었다. 기껏해야 좀 더 자극적인 어휘를 골라 칼럼을 끼적대는 게 전부였다. 그것이 자신만의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허동식은 달랐다. 손에 피를 묻혀가며 직접 몸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p167

 

배동휘, 안희천, 정윤주, 윤민욱, 엄기호, 양세종, 이기호, 북극성, 허동식 등은 AB팀으로 구성되어 각자 역할 분담을 했다. 집행관들의 공통점은 분노와 상처가 있었다. 권력형 부패 사건을 다루는 사회부기자, 부패정치인과 비리 공직자를 공격하는 역사학 교수, 항명 사건으로 옷을 벗은 전직 특수부검사 출신의 변호사, 국방부 비리사건을 폭로한 퇴역 군인, 하나같이 부패와 비리에 맞서는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친일파, 부패 정치인, 악덕 기업인. 이 땅에 존재해서는 안 될 종자들만을 골랐다. 그러나 살인의 정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인간들, 그런 악행을 저지르고도 이들은 여전히 거리를 당당하게 활보하고 있지 않나. 오히려 부와 영화를 대물림해 주면서 잘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야. 이런 인간들을 어떻게든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대가를 치르게 해주고 싶었지. 노교수의 말처럼 법이 제대로 집행되었다면, 피해자들이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는 않았을까. [집행관들]을 처음 펼치자마자 술술 재미있게 읽었다. 분노와 자존심이 맞붙는 날카로운 심리묘사와 이어지는 반전은 통쾌하지만 한편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소설은 집행은 멈추지 않는다로 마쳤는데 2권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조금이라도 집행관들의 순수한 열정을 헤아린다면, 적폐들과의 전쟁 속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지는 않을까. 정말 그들의 바람대로 세상이 바뀐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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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친절한 세계사 -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김진연 옮김 / 미래의창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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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생각하기 위한 역사책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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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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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작가님 장편소설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이 책은 익명의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신경숙의 찬란한 헌사라고 쓴 것처럼 가족서사, 가족 전체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우리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잔잔한 울림과 감동이 있는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훌쩍 거리고 있었다.

 

언젠가 내가 아버지에게 당신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응수하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살아 냈을 뿐이다고.p7

 

소설의 시작은 엄마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서 집에는 아버지 홀로 남게 되었다. 엄마가 없는 집에 헌이는 5년 만에 고향 J시를 가게 되었다. 딸을 잃은 헌이는 부모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엄마와 여동생이 집을 떠날 때 아버지가 대문 앞에서 울었다는 말을 여동생에게서 듣지 않았다면 J시에 가 있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아버지가 종종 우는 걸 봤다.

 

아버지는 1933년 초여름에 태어났다. 여섯째였으나 전염병이 돌아 형 셋을 잃고 장남이 되었다. 조부는 아들 셋을 잃고 두려움에 차서 아버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슬하에 두고 소학을 가르치고 명심보감을 외우게 했다. 학교에나 보내주실 일이제, 조부에 대한 원망을 내보냈다. 아버지는 전염병으로 부모님을 차례로 잃었다. 학교 문턱도 못 가본 아버지였지만 6명 자녀의 교육열은 뜨거웠다. 학사모를 쓰고 찍은 사진을 차례로 걸어놓았지만 헌이 자리만 비워있었다. 아버지 인생이 우리들 학사모 쓰고 찍은 사진이었을까. 니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잘하고 있냐? 는 아버지의 물음. 등단 소식을 아버지에게 알렸을 때 등단이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좋은 일이냐고 물었다.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고요, 제가 꼭 하고 싶은 일이에요.

 

부모를 잃은 아버지를 안쓰럽게 여긴 아버지의 외가에서 송아지 한 마리를 건네주었다. 열네살에 양친을 잃은 아버지는 남의 밭과 논에 쟁기질을 하여 품삯을 받아 고모에게 주었다. 고모는 남동생들만 두고 시집을 갈 수 없어 고모부를 마을로 들어오게 했다. 아버지가 열 두살에 해방된 것도 실감이 안 났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소집령을 받자 전주 할아버지의 지시에 손가락이 잘렸다. 종손이 군대에 못 가게 했던 것 같다.

 

언젠가 신문에 나의 아버지라는 에세이를 청탁받아 쓴 적이 있었는데 큰오빠는 그것도 패널로 만들어 책장 앞에 세워두었다. 네가 쓴 글을 아버지에게 읽어드렸다고 했다. 아버지는 너가 별것을 다 기억한다고 하시더라 했다. 아버지가 가게를 완전히 접은 후로는 행방이 묘연했던 나무궤짝 안에는 큰오빠가 리비아 파견근무를 할 때 편지들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편지 말미에 나는 더 바랄 거시 업따로 끝맺는다. 큰아들은 아버지 전 상서, 그동안 무탈하셨는지요?' 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글자 안 틀리게 잘 쓰고 싶어서 야학에 나가 한글을 배우신다고 편지에 적었다. 이런 아버지의 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둘째오빠와 엄마, 아버지와 함께 전쟁을 겪어낸 박무릉아저씨와 조카 등 다른 인물들을 통해 소외되어 있었던 아버지를 한번도 개별적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다. 아버지는 수면장애를 겪고 있었는데 자다가 안보여서 찾아보면 마루 밑에 숨어 있다가 어서 도망가라고 했다는 엄마의 말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난 뒤부터인 거 같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어디 나갔다 집에 오면 집 안을 둘러 보며 형만 찾는 것이 각인 되어 둘째가 겪는 설움이다.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살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한가지밖에 없다고 그것이 대학에 가는 것이라고 하시더라. 젊은 날 알게 된 박무릉은 빨치산에게 잡혀 두 다리를 잘리게 되었고, 아저씨 모르게 생필품을 가져다 준 이야기는 전쟁이 낳은 아픔이었다. 은퇴한 큰오빠가 집에 왔다 서울로 가는 기차안에서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장남이라는 무거운 짐이 힘들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딱 한번 집을 나간 적이 있는데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이름 김순옥과 잠깐 살림을 했었다.

 

아버지는 내 말을 니가 좀 적어둘 테냐? 했다. 큰오빠에게 외투와 나무궤짝 안의 편지들을 남긴다. 동생들에게 너를 아버지로 생각하라고 했던 것이 후회로 남는다. 니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 것이냐. 홍이에게는 북하고 북채와 전축을 남긴다. 셋째에게는 시계와 술 한병을 남긴다. 헌이는 헛간에 세워놓은 새 자전거를 남긴다. 아버지는 자전거를 사놓고 너를 기다렸다고 했다. 새 공기를 마시며 달려보려고 했는데 늦은 일이 되었다고. 다섯째에게 내 선글라스를 남긴다. 막내는 텃밭의 우사 허무는 일을 맡아라. 마저 하려했으나 엄두가 안 나는구나. 헌이 엄마 정다래에게는 내 통장을 남기네. 소설을 읽고 나의 아버지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안부 전화를 할 수 있게 해 준 이 책이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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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내 책 - 내게도 편집자가 생겼습니다 난생처음 시리즈 4
이경 지음 / 티라미수 더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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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내 책]은 이경 작가의 세 번째 책이다. 예순여섯 곳의 출판사에 투고한 끝에 메타소설인 첫 책을 출간하고, 두 번째 책은 스물네 곳의 문을 두드린 끝에 출간했다. 이 책은 출간의 여러 방법 중에서도 투고를 통해 편집자를 만나고 출간을 해낸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전한다.

 

1만 자의 메일을 보내준 편집자가 한 작가 지망생의 구원 천사가 되어줄 수 있을지, 혹은 기대감으로 잔뜩 부풀어 오른 마음을 다시금 반려라는 바늘로 터트려버릴지. 편집자의 의견대로 원고를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한 편집자는 인터뷰를 통해 편집자 인생 7년간 투고 원고로 책을 낸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글을 쓰고 출간을 준비하는 과정은 한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이 기간 동안에도 마음속으로 구원의 천사라고 부르기 시작한 담당 편집자와 꾸준히 메일을 주고받았다. 김서령 작가가 한 일간지에 쓴 <교정지>라는 글을 읽었다. 교정을 본다는 건 원고와 작별 인사를 나누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미련 많은 여자처럼 자꾸 뒤돌아본다고도 썼다.

 

책 제목 못지않게 저자명도 고민스러웠다. 본명이 중성적이기는커녕 여성이 많이 쓰는 이름이라는 점에서 고민이 들었다. 이름에서 한자를 떼고 이경으로 정했다. 첫 책을 준비하면서 표지 날개에 들어갈 저자 소개 글을 써야 했고, 그 마지막에 이렇게 적어 두었다.

필명 이경은 아내가 불러주는 이름이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사람들은 책의 보도자료를 얼마나 신뢰할까. 사실 독자들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를 믿지 않을 확률이 높다. 100통이 넘는 메일을 주고받고, 책도 한 권 낸 그 시간 동안 전화 통화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급하다 싶을 때는 문자를 주고받았을 뿐, 신기하리만큼 전화 통화 없이 일을 진행해나갔다.

 

출판사 대표가 기획하는 글을 써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기획하고 목차까지 짜주는 거니 1쇄에 대한 인쇄는 없다고 했다. 책이 망해도 저자에겐 책이 남지만, 출판사로서는 출간하는 모든 비용을 대고서 망하면 곤란하니, 결론은 제가 즐겨 듣지 않는 음악이라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는 말로 메일을 보냈다. 글을 쓰며, 출간을 준비하며 겪은 단연 가장 이상한 사람이었다. 작가 지망생이 이런 제안을 받는다면 헐값에 자신의 글을 팔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가끔은 작법서 한 권보다 글쓰기에 관한 짧은 명언이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짧고 명쾌한 문장은 의외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준다.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는 글쓰기 팁 대부분은 글쓰기라는 삶 속에 앞서 뛰어든 사람들의 명언이다. 신춘문예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화려한 등장에 있을 것이다. 새해 첫날 신문에 글을 띄우며 멋스럽게 등장할 수 있지만, 꾸준히 글을 쓰지 못한다면 상금 한 번 받고 잊힐 수도 있다. 신춘문예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출판사 문을 두드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걸리는 병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내 글 구려 병이고, 하나는 정반대 성격의 작가 병이다. 내 글 구려 병에 걸리면 자신감은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을 향해 가라앉는다. 작가 병에 걸리면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이 넘쳐흐르게 되고 주변의 어떤 이야기도 안 들리는 지경에 빠진다.p176

 

<소년의 레시피>를 쓴 배지영 작가와 랜선 친구가 되었고 1년간 글을 주고받았다. 비밀댓글을 달아가며, 책 이야기, 원고 이야기, 투고 이야기 등을 나누었던 것. 그렇게 나눈 이야기는 데뷔작의 소재가 되어 이른바 메타소설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가제에 쓰인 구원의 천사는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에 등장하는 표현이었다. <난생처음 내 책>은 분명 글쓰기 관련 에세이지만, 실용적인 내용은 그리 많지 않고 이제 겨우 두 권 낸 초보 글쟁이의 경험담과 생각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실용적인 팁을 하나 건넨다면, 제목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늘 어딘가에 글을 써오긴 했지만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은 도통 하지 못한 채 서른 중반을 넘긴 직장인, 그런 저자가 누군가의 '책 한번 내보면 어때?'라는 말에 혹해서 출간의 꿈에 빠져든다. 마냥 꽃길은 아니지만 수없이 투고하고, 희박한 확률 속에서도 계속 문을 두드리니 화답해주는 출판사가 있었고, 편집자를 만나, 첫 책을 내고 작가의 꿈을 이룬 사람이 전하는 글쓰기와 출간에 관한 이야기, 저자의 경험담이 작가 지망생이나 책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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