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위의 집
TJ 클룬 지음, 송섬별 옮김 / 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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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완벽하다는 평을 받은 [벼랑 위의 집]2014년 람다 문학상 수상 이후 꾸준히 자신의 입지를 넓혀온 작가 TJ 클룬의 스토리텔러 일인자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표작이다. 출간 이후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위싱턴포스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아마존 판타지 부문 1위에 올랐다.

 

DICOMY 관리부에서 마법아동 고아원을 조사하는 라이너스 베이커에게 어느 날 4급 기밀 업무가 주어진다. 마흔 살에 고혈압과 두둑한 뱃살, 배우자 없음. 자녀 없음. 출장이 길어도 그리워할 사람이 없는 존재감 제로였다. 마르시아스에 있는 고아원으로 파견을 나가는데 그곳은 특별한 곳이고 여섯 명의 아이들이 안전한지를 조사하고 또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한달 간의 여정으로 도착한 종착역, 마르시아스는 푸르디푸른 바다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마르시아스 섬의 보호자라고 하는 조이는 마을 사람들은 우리 같은 부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섬의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해서, 두려워서, 그 애들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라이너스는 오랜 세월 이 일에 몸담았고 일을 잘했다. 분석적인 사고에 능하고, 다른 사람들은 놓치기 일쑤인 작은 단서들을 알아차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제를 맡게 된 것이리라.

 

마르시아스 고아원의 여섯 아이들은 모두 위험한 존재로 불렸다. 7개의 파일을 열어보았다. 원장 아서 파르나서스. 나이는 마흔다섯 살 깡마른 남자의 흐릿한 사진 한 장이 다였다. 종말을 불러오는 피를 가진 <루시>, 정원을 사랑하는 노움 <탈리아>,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온갖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숲 정령 <>, 겁에 질리면 강아지로 변하는 <>, 새의 형상을 하고 있는 <시어도어>, 종족을 알 수 없는 초록색 덩어리 <천시> 등 아이들은 여러 고아원을 전전하다 아서 원장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집이란 그 어디보다도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곳이지. 우리도 그렇지, 얘들아? 우리 집에선 우리들 자신이 되잖아.p163

 

DICOMY(마법아동관리부서)의 승인을 받은 고아원이라면 어디에나 걸려 있는, 똑같은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관리자의 지시를 따르면 행복해져요.’ ‘조용한 어린이가 건강한 어린이입니다.’ ‘상상력이 있는데 마법이 왜 필요해?’ 같은 문구들이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누구도 아이의 눈을 바라보지 않는다.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악마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 침대 밑에 숨어 있는 괴물이라는 이유였다. 천시는 호텔 직원이 되고 싶은 꿈이 있다. 피는 풀숲을 더 울창하게 만드는 법을 배웠고, 시어도어는 단추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배웠다. 루시는 난 죽음을 가져오는 자이고 죽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제일 좋아한다. 샐은 이곳이 열두 번째 고아원이고 한 곳에서 가장 오래 머무른 게 이곳이라고 했다. 아서는 아이들의 과거, 종족, 편견 대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을 보고 있었다.

 

<자기표현>은 아서가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한 수업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다른 아이들 앞에 나서서 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법을 연습하는 동시에 창의력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DICOMY는 우리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마법적인 존재들을 격리했고, 등록이라는 제도로 그들을 통제하려 했다. 사람들에게 편견을 심어 놓은 것이다. 마법적 존재들은 두려운 존재라고, 그러니 무언가를 보면 말해야 한다고 그 말이 혐오를 당연시하게 만들었다.

 

탈리아는 무단침입자인 인간을 비료로 쓰면 어떨까 겁을 주기도 하고, 시어도어의 와이번이 발치에 날아들어 발목을 휘감기도 하여 공포로 떨기도 하지만 라이너스는 그런 아이들의 매혹에 사로잡힌다. 아서라는 근사한 남자가 자기 마음을 열어 보이자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을 빼앗지 말아달라고 한다. 라이너스는 진짜 집이란 어디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러블리 판타지라는 이름답게 책 표지가 환상적인 [벼랑 위의 집]은 판타지면서 퀴어 소설이지만 그들의 자연스러움이 거부감이 없었다. 아이들을 지키려는 아서와 마르시아스 집을 지켜준 라이너스의 이야기는 감동적이고 따뜻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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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지켜낸 어머니 - 이순신을 성웅으로 키운 초계 변씨의 삼천지교 윤동한의 역사경영에세이 3
윤동한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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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최고 명장 이순신을 키운 어머니, 초계 변씨는 합천군 초계면이 본관이다.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고 성씨로 불리는 것이 안타깝다. 이순신 어머니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은데 기록을 찾아 책을 엮은 저자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순신은 서울 건천동(서울 인현동)에서 태어났다. 형 요신의 친구이고 동학을 같이 다녔던 류성룡을 만나게 된다.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이순신이 어린 시절부터 큰 인물로 성장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아이들과 놀라치면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고 전쟁놀이를 했으며 자라면서 말타고 활쏘기를 좋아하며 글씨를 잘 썼다. 어릴 때부터 대장이 되겠다고 했다.

 

승승장구하던 덕수 이씨 가문에 문제가 생긴다. 할아버지 이백록이 조광조와 함께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죽었다는 오해가 퍼져 있는데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기묘사화가 아니라 중종이 사망한 날 아들 이귀의 혼인 잔치를 했다는 이유로 집안의 대대손손 벼슬길이 끊기게 돼 아들 희신, 요신, 순신, 우신의 벼슬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이정과 변씨는 징벌이 너무 과하다고 조정에 사면을 요청한 기록이 남아 있다.

 

변씨의 시조는 변정실이다. 합천 율곡에 변씨 집성촌이 몇몇 있었고, 시조묘와 재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부친 변수림은 15세손으로 장사랑을 지냈으며 부인은 진보 조씨다. 슬하에 두 남매를 두었는데 아들은 변오이고 변씨의 오라비인지 동생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서울에서 변씨 친정인 아산으로 이주를 강행했을까 하는 의문의 답은 우선 사대부가의 불편한 소문을 잠재우고, 변씨 가문의 재력과 무과 경험에서 도움을 받으며 아산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라는 짐작이 타당성을 지닌다.

 

이순신의 중매는 영의정 동고 이준경이 선 것으로 되어 있다. 통영 시티 투어 관리자가 연구를 하고 관련 글을 남겼다. 관리자는 인물들의 생몰연대에 주목했다. 이순신의 조부 이백록과 방씨 규수의 조부 방국형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에 주목하고 몇 년에 걸쳐 파헤치며 의혹의 실마리를 찾다가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이준경과 이백록, 방국형 세 사람이 모두 생원 시 동방이었다. 같은 해 과거에 급제한 동기생들을 동년 또는 동방이라 한다.

 

여러 자식 가운데서도 변씨와 순신의 관계는 특히 돈독했는데, 순신이 어머니 변씨를 하늘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650일 중 어머니를 사모하며 편지와 일기를 쓴 것이 110일이 넘을 정도다. 그에게 어머니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어머니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으면 '안타깝다', 평안하다는 소식을 들으면 '다행이다'를 반복해서 기록했다. 어머니에 대한 효와 가족에 대한 사랑이 대단히 깊었고, 그것이 그대로 국가에 대한 ''으로 실현되었던 것이다.

 

여수 송현동은 변씨가 이순신의 승전을 간절히 염원하고 기도하며 정신적 안정을 지켜준 덕분에 이순신의 2323승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안전한 지리적 이점으로 이순신은 어머니의 안위를 염려하지 않고 5년여 동안 공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수시로 한산도에서 송현마을로 사람을 보내 안부를 확인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부디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야 한다"라고 간절히 당부했다. 저자는 극적인 장면을 읽으며 진한 감동과 눈물을 숨길 수 없었다고 했다.

 

통제영은 조정으로부터 한 푼의 지원도 없이 돌아가는 자립자영 체제였다. 둔전에서 식량을 공급받아 자급자족이 가능한 작은 조정이 통제영이었다. 임금의 명을 불복한 죄, 군령을 소홀히 한 죄, 남의 공을 시기하고 가로챈 죄 등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죄목이었지만 한 마디 변명이나 소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변명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다. 관료들은 당장 목을 베어 효시하라고 난리지만 한쪽에선 그를 살리려고 백방으로 탄원서와 상소문을 올렸다. 신구차를 올린 우의정 정탁의 지혜는 이순신과 원균의 비교이고 선조가 부인할 수 없도록 조근조근 설명하는 구절들이 감동적이다.

 

아들의 하옥 소식을 들은 모친 변씨는 이번 일로 아들을 잃을 수 있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서울행을 과감하게 결심한다. 아들 손자가 말리는 와중에도 그녀는 내 관을 짜서 배에 실으라, 나는 죽어서도 서울에 가서 통제사 아들을 만나고야 말 것이야라고 외쳤다. 병약한 모친이 육로로는 움직일 수가 없자 뱃길로 길을 나서는데 작은 선박으로 외해로 나가기 어려워 내해 뱃길을 이용, 울돌목을 지나 법성포까지 갔다가 안개속에서 배가 표류하는 바람에 엿새를 고생하고 도착 직전 사망한다. 긴 여정을 버텨낸 초인적인 모습에 감동하게 된다. 어머니의 부고를 전해 들은 이순신, 백의종군 길로 가야 하는 쉰 넘은 장군의 몸부림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애통의 현장이었다.

 

방진의 딸이자 이순신 부인 방씨는 남편의 무과 급제에 영향을 미칠 만큼 내조를 확실하게 했다. 그녀는 시어머니 변씨와 남편, 자식과 조카들을 두루 챙기며 여든이 넘어 세상을 떠났다. 방씨는 순신과의 사이에 회, , 3형제와 딸 하나를 두었다. 어떤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좌절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자식들을 위해 터전을 만들었던 변씨는 영웅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단락이 끝날 때마다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 본문 요약 해둔 별도의 장이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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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사람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김욱 옮김 / 청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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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사람]1972년 출간된 해만 192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작품이 되었고, 영화와 드라마, 연극으로 제작되었고 일본의 노인복지제도의 근간을 바꾸었다고 한다. 저자 아리요시 사와코는 집 근처에 사는 치매 노인 가정을 취재차 방문했고, 이렇게 시작된 취재는 10년간 지속되었다. 소설이 50년 전 발표되었는데 노부토시가 전쟁에 나간 것과 아키코의 직업이 타이피스트라는 것 말고는 오래 되었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소설은 후지에다 법률사무소에 타이피스트로 일하는 아키코는 퇴근 후 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집으로 가는 길에 시아버지 시게조와 마주친다. 눈이 내리고 있는데 시게조의 옷차림은 넥타이에 구두를 신고, 외투는 없이 와이셔츠 바람이었다. 시부모님은 별채에 따로 생활을 하기에 자주 뵙지를 못했는데 시어머니가 쓰러져 돌아가셨다. 황당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시게조의 노망이었다. 아키코가 결혼한 후 잔소리에 음식 타박을 하며 까따롭게 굴던 시게조였는데 아들과 딸은 못 알아보고 손자와 며느리 얼굴과 이름만 알아본다.

 

시게조의 말투는 타인에게 말을 걸 듯 이야기하고 존댓말을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노부토시 눈에는 아버지가 황홀한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게조가 집을 나가도 바로 찾아오는 것을 보니 꿈과 현실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시어머니가 시게조를 수발 들다가 지쳐서 일찍 돌아가신 것은 아닐까 아키코와 교코는 생각했다. 까다로운 남편을 50년 넘게 섬겨왔으면서도 혈색이 좋았고 얼굴에선 늘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시어머니 인품을 좋아했다.

 

늙어 망령이 난 아버지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 저편에 서 있는 또 다른 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늙음의 끝은 결국 이런 것인가, 라는 생각에 착잡해졌다. 죽음보다 어둡고 깊은 절망이었다.p71

 

시게조가 자기 인생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고 한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처럼 되기 전에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만 하면서 며느리는 밤마다 시아버지 배설을 도와주는데 노부토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잠만 잔다는 것이 화가 치민다. 오죽하면 사토시가 엄마 아빠는 저렇게 오래 살지마라고 말한다. 아키코는 이웃집 할머니가 시게조를 모시고 노인회관에 간다고 도시락 두 개를 싸주기도 하였다. 시게조는 노인회관에 가면 나이 많은 할머니만 있다며 싫다고 했다. 정신이 없는데도 젊은 여자를 좋아하는 노인이었다.

 

노인회관 시설을 직접 둘러보러 간 곳에서 아흔 살 할아버지가 바둑을 두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목격하고 아키코는 심란해졌다. 노부토시는 매일 밤 시게조가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볼일을 해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미안해, 이라는 말을 하면서 아내 얼굴을 마주 볼 용기가 없었다. 노인복지과 전문가가 집을 방문하였다. 시게조처럼 배회증이 있으면 양로원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망령은 노인성 치매라고 하고 환각 때문에 도둑이 들었다고 소란을 피우는 건 노인성 우울증이라고 했다. 꼭 시설로 보내고 싶다면 정신 병원 밖에 없고 입원시켜도 진정제밖에 투여하지 않는다. 그럴 바에야 자택에서 요양하시는 편이 낫다는 말을 듣는다.

 

시게조는 걷다가 빗속에서 화려하게 피어 있는 꽃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양옥란꽃을 보고 있는 시아버지를 보고 아름다움과 추함의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아키코는 감동했다. 시게조는 욕조 물에 빠져 급성 폐렴이 왔지만 살아났다. 그 후로 자주 웃었고 귀여운 미소를 짓는 듯했다.

 

치매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다. 친구의 엄마는 알콜성 치매로 술을 달라고 하였고, 어떤 치매는 성격이 난폭해진다. 내 아버지는 아버지 큰아버지 집으로 양자로 갔는데 할머니가 노망이 들었다. 배고프다고 밥을 안 준다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고 막바지에는 벽에 그것도 칠했으니 엄마의 고생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노인의 병마 중에서도 나이가 들면 가장 무서운 것은 노망이다. 속된 말로 벽에 똥칠한다라는 노망은 암이나 다른 질병보다 잔인하고 저주스럽다. 인격의 상실, 자아의 붕괴 같은 거창한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이 추락할 수 있는 최악의 단계다. 치매에 걸려 자식을 알아보지 못해도 아버지이며 가족이다. 치매 전문 병원 건립보다 우선해야 될 가치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다. 내가 아키코가 되어야 한다면, 노부토시가 되어야 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치매에 걸린 사랑하는 부모님을 황홀한 사람이라고 불러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옮긴이의 글을 깊이 새겨 본다. 누구나 늙어 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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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80년 생각 - ‘창조적 생각’의 탄생을 묻는 100시간의 인터뷰
김민희 지음, 이어령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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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제자인 저자와 ‘80년 창조적 생각에 대한 생생한 대화의 기록이다. 인문, 예술, 철학, 역사는 모든 수업에서 한데 융합되었고, 어느 수업에든 그만의 시각과 해석이 녹아 있었다. ‘어떻게 저런 발상을 해낼까?’ 그를 볼 때마다 든 생각이라고 했다.

 

코로나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데 모든 타자와의 거리를 발견한다. 그동안의 삶의 방식, 그동안의 삶의 속도와 다른 삶을 살면서 잊고 있던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혼자 있는 시간을 침잠하다 보면 진짜 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내면성이 강하고 시선이 안으로 향한 사람들은 방에 혼자 갇혀도 고독하지 않지만 평생 타인지향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방에 갇히면 못 견뎌한다.

 

눈물 한 방울이 말을 마지막므로 이 시대에 남기고 싶다고 하신다. 눈물로 치면 우리가 그리스보다 선진국이라고 했다. 코로나가 아니라도 벌써 그런 상황은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었고 이 눈물 없이는 황무지의 삶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가. 무엇을 위해 아껴두었던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인가.

 

80여 년 평생 이 시대 최고의 지성’‘말의 천재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니는 것을 거부했다. 내 인생은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고 가는 삶이었어. 누가 나더러 유식하다, 박식하다고 할 때마다 거부감이 들지. 궁금한 게 많았을 뿐이라고 했다. 50년 만에 풀린 제비의 비밀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인데, 벌레를 먹은 새끼는 입을 덜 벌리고 배고픈 새끼는 더 많이 벌리니까 어미는 입 크키만 보면 누가 배고픈 새끼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령식 독서론을 부연하면 어려운 독서를 통해 추리력이 길러지고 뇌세포도 활성화된다. 아이들한테 수준 높은 책을 읽힐 필요가 있다. 아이마다 성향과 기질이 다 다르겠지만, 너무 단순한 내용의 책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아이들의 두뇌개발을 오히려 제한할 수도 있어 적절한 자극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교수는 22세에 <우상의 파괴>로 문단에 파문을 던짐 같은 식이다. 젊은 세대 기수론을 담은 일종의 선언문으로, 인습의 벽에 갇혀 시대의식을 담지 못하고 권위주의에 매몰된 기성 문단을 싸잡아 비판한 글이었다.

 

80여 년에 걸쳐 이어령 교수가 쌓아온 창조물은 유무형을 망라하지만 그 최고봉은 역시 이다. 도시의 자투리땅에 세운 작은 공원을 쌈지공원이라 이름 붙인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정보사회의 키워드로 제시한 학술용어 디지로그새천년 밀레니엄 베이비를 즈믄둥이도 그가 낳은 표현이었다.

 

이어령하면 굴렁쇠 소년을 먼저 떠올린다. 88서울올림픽의 굴렁쇠 소년은 그가 의도했든 안 했든 대표적 창조물로 꼽히고, 전 세계 다양한 분야의 명사들로부터 칭찬과 감동의 피드백을 차고 넘치게 받았다.

 

노태우 정부는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연다라는 기치 아래 문화 정책을 폈고 이어령 교수는 초대 문화부 장관을 맡았다. 장관 취임 직후 문화행정에 딱딱한 관료주의의 벽을 허무는 일에 역점을 두었다. ‘33운동을 제안했는데 3불은 문턱 없이 말하기, 생색내지 않고 말하기, 사심 없이 말하기였고, 3가는 문화의 우물가에 두레박 놓기, 부뚜막의 부지깽이 되기, 바위의 이끼 되기였다. 계산 없이 솔직하게 터놓고 말해야 조직에 활기가 돌고 창조적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는 것이 3불 운동의 취지였다.

 

한국 사람은 무엇이든 잘 버린다. 내버려에서부터 먹어버려, 쓸어버려, 잡아버려, 잊어벼려. 그런데 한국인은 절대로 버리지 않는 민족이다. 김치가 쉬면 버려야지 하지만 두어묵은지로 만들어 삼겹살을 싸 먹으면 기막히게 어울리고 화려한 변신을 하는 것이다.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은 이어령 교수의 대표 타이틀 중 하나다. 새천년의 첫 순간은 전례 없는 대규모의 글로벌 방송으로 기획됐다. 영국은 우주장비를 이용해 불꽃놀이를, 미국 뉴욕은 타임스퀘어에서 4톤에 달하는 색종이 조각을 흩뿌렸고, 요르단 베들레헴에서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2000마리를 날려 보냈다. 한국은 새천년이 되자마자 태어난 새 생명의 우렁찬 울음소리. 이른바 즈믄둥이의 탄생장면을 실시간 중계로 세계를 향해 쏘자는 것이 이 교수의 계획이었다.

 

무슨 까닭인지 모르지만 나는 이어령 책 두 권을 대출했고 [읽고 싶은 이어령]을 읽고 리뷰를 올리고 난 다음 날 이어령 선생님은 돌아가셨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믿을 수 있는 건 우주에 살아 있다는 것, 생명력이라는 말에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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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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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도서로 읽었던 [소년이 온다]를 다시 꺼내 읽는다. 1980년 그때 서울에 있었던 나는 그날의 일을 세월이 한참 지나 한강 소설과 다른 에세이와 소설, 영화를 보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 광주는 한 번씩 다녔지만 도청에 가보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친정 부모님께 그때 어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보성읍에 군인들이 진을 치고 사람들 못 지나가게 했제. 무서웠다고 했다. 어디서든 이런 이야기는 허심탄하게 나누지 못한다.

 

소설은 1980년 광주, 5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당시 중3, 열여섯 살 동호는 친구 정대를 찾아서 상무관으로 왔다. 군인들이 정대를 실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정대 남매는 동호네 집 문간채에서 자취를 하였다. 정대 누나를 찾으러 나갔다 정대가 계엄군 총에 맞아 쓰러져 죽게 되었다. 고등학생 은숙, 노동자 선주, 대학생 진수는 상무관에서 한조가 되어 시민군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동호는 엄마가 찾으로 왔을 때 여섯시에 문 닫을 때 집으로 간다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되었다. 두루마기 차림의 노인은 화순서 경운기 얻어타고 왔고 경운기가 시내로는 못 들어온다고 해서 산길을 겨우겨우 넘어 갖고 왔다. 아들과 손녀를 찾으러 온 노인은 숨을 몰아쉰다. 정대의 혼이 나와서 넋두리를 하고 있다.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그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김은숙, 지난 오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이다. 그해 겨울, 입시에 실패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그녀에게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지원했다. 살인마 전두환을 타도하라고 외치며 데모하는 대학을 휴학하고,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돌보고,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다 복학하자 다시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했다. 교수의 추천으로 작은 출판사에 입사했다. 편집자로 일하면서 담당 원고의 검열 문제로 경찰서로 끌려가 일곱 대의 뺨을 맞는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면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것이다.

 

대학생 김진수는 연행되어 왼손에 모나미 볼펜을 끼우게 했다. 처음엔 견딜만 했는데 날마다 같은 곳에 하니까 상처가 깊어졌다. 성기 고문을 하고 석방된 뒤 거의 매일 밤 벌레와 관련된 악몽을 꾸었다. 체포 당시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아 단순 가담자로 분류된 사람들이 차례로 석방되고, 이른바 극렬분자, 총기 소지자들만 상무대에 남았다. 고문의 양상이 달라졌다. 진수는 출소 후 힘들어하다 자살을 하고 만다. 나는 날마다 싸운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임선주는 중학교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일을 시작했다. 교도소에서 보낸 일년여의 시간을 제외하면 노동을 멈춘 적이 없다. 성희 언니에게 노동법 강의를 듣고 한자 공부를 해서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 수십명의 노조원들을 곤봉과 각목으로 때려 닭장차에 집어넣었다. 사복형사가 배를 밟고 옆구리를 걷어 차여 장 파열 진단을 받고 입원했고 해고 통보를 들었다. 방직 공장 경력을 포기하고, 광주 충장로의 양장점에 미싱사 시다로 일하다 상무관에 합류하게 된다. 경찰에 연행되어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키고 그 후 이년 동안 하혈이 계속 되었다. 이름 대신 빨갱이년으로 불렸다. 과거 여공이었고 노조 활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년 동안 지방 도시의 양장점에서 숨어지내며 간첩 지령을 받아왔다는 각본을 완성하기 위해 날마다 조사실 탁자에 눕혔다. 무엇보다 사투리로 하는 동호 엄마의 울음의 소리는 눈물이 안 날수가 없다.

 

동호는 실제 인물이다. 작가의 아버님이 중학교 교사로 있을 때 제자였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모든 자료만 읽다가 어느 꿈 때문에 중단하고 동호 형님을 만나러 갔다. 어머니라면 당연히 만났을 텐데 자신은 만나면 뭐하나 할말도 없는데라며 대신 잘 써주셔야 한다고만 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야 합니다. [소년이 온다]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듯이 작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썼는지 알 수 있다. 더 이상 억울한 영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다시 오월이 오고, 꽃 핀 쪽으로 소년이 오고 있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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