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토월 - 이문구 대표중단편선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4
이문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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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토월은 이문구 대표중단편선으로 암소, 일락서산, 행운유수, 녹수청산, 공산토월, 우리동네 , 우리동네 , 명천유사, 유자소전, 장동리 싸리나무 등 열 편의 소설이 실렸다. 암소와 장동리 싸리나무에는 이십 오년의 간격을 두고 있다. 문장들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읽는 재미가 있다.

 

황구만씨 집 머슴인 선출은 4년 동안 세경 팔만원을 제대할 때 찾는 조건으로 3부 이자로 주인에게 빌려준다. 황씨는 소창직 직조 사업을 했지만 인근 공업단지가 들어서는 바람에 문을 닫게 되었고, 농가부채로 빚을 신고한다. 선출의 계약서대로 송아지를 한 마리 샀다. 암소가 되어 송아지를 배자 선출은 팔아서 애인 신실이와 이곳을 뜨고 싶었다. 황씨는 팔지 않는다고 실강이를 벌인다. 황씨집에서 고사를 지내던 날, 술지게미 한 양푼을 소여물통에 쏟아주었다. 술동이 있던 광문이 열려있고 술독이 나자빠져 있고 바닥은 지게미와 찌꺼기로 뒤발하고 있었다. 술지게미로 목을 축인 소가 거나해지자 술내가 풍기는 광에 들어가 술 한 독을 다 먹고 펄펄 뛰다 탈진해버렸던 것, 소 주둥이에 녹두가루를 물에 타서 먹여도 봤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선출이의 사년간 모아온 아픔을 신실이마저 목놓아 울어대었다.(암소)

 

13년 만에 고향을 찾았다. 칠성바위들의 안부를 살피면서 옛 기억을 떠올린다. 양반가의 자제라 할아버지의 지시로 일가 손윗사람이 아닌 이에게 경어나 존칭을 써본 적이 없었다. 동네 사람의 거지반이 행랑이나 아전붙이여서 하대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관촌부락에 대사가 자주 있었지만 음식은 입에도 대지마라였다. 반면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이 부르면 막걸리값이라도 보태주며 탁주 한두 잔 사양하지 않았다.(일락서산)

 

서른이 넘은 나이에 옹점이를 생각하며 감상에 젖어 있었다. 그녀는 십 년이 위였고, 학교를 다닌 적이 없지만 국한문을 가리지 않고 터득했다. 지하조직 총책이던 아버지를 보고 찾아오는 손님이 있어 가택수색을 벌이면 옹점이가 나서서 막아 주었다. 미군들이 기차에서 물건을 던지는데 빵에다 가래침을 뱉아 던져주다니 너무 하네 하며 읽었다.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대로 무엇을 떨어뜨리고 가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옹점이 남편도 전쟁에 나가 행방불명 되었다.(행운유수)

 

희망 없는 애라는 별명으로 욕을 먹지만 에게는 듬직하던 친구 대복이를 추억한다. 못된 장난은 다 치고 고질화된 도벽을 키운 것은 사람들이 상종을 않으려고 하는데서 삐둘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나를 만나면 주머니를 뒤집어보여 잡혀나온 것이면 무엇이든 서슴없이 손에 쥐여주고 싶어했다. 참봉집 손녀딸을 건드리려 하여 붙들려 가고 그 집에 머슴으로 들어가서 일도 하였다.(녹수청산)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공산토월은 빈 산이 달을 토한다는 뜻으로 삼촌뻘인 신현석을 추모하기 위해 제목을 붙였다. 석공이라는 별명을 불리는 그는 몸을 사리지 않고 남을 도와 준다. 아버지가 구금되었을 때 사식 차입을 하였고, 할아버지 묘를 관리해주었고 어머니의 장례를 도와주었다. 서울로 이사할때도 도와주고 편지도 주고 받았다. 그가 백혈병을 치료하지 못하고 고향을 내려갈 때 택시를 타고 가면서 부디 잘들 살어하며 악수를 청할 때 나는 울었다.(공산토월)

 

연작 소설 (우리동네 김씨)에서 가뭄에 다른 동네의 물을 몰래 쓰다가 들키기도 하고 민방위 교육에서 우리말을 쓰자는 것두 국가 시책인데 헥타르라고 한다고 토를 달고 따지는 김씨.(우리동네 이씨)에서 마을 이장이 확성기로 조합 빚을 갚을 것을 독촉하며, 농촌에서 망년회, 절미운동으로 모은 돈으로 부녀자들 관광여행이 붐을 이룬다. 이씨는 남보다 색다르게 해보려고 리낙천으로 문패를 바꾸어 달지만 밀주 단속반에 걸려 리낙천이 아니라 이씨라며 문패부터 새로 해야 행세가 바를 것 같다고 생각한다.

 

명천이라는 의 호를 지은 이야기와 문간방에 살던 최서방은 새경을 쥐던 날로 어디로 갔다 농사가 시작되면 들어오기를 몇 번 하다 어머니 타계 후 헤어지게 된다. 말년에 양로원에 있다던 그가 읍내에서 고구마를 허천나게 먹던 모습에 망연자실하다 여비 빼고 몇 만원을 쥐어준 일이 감사하다는 편지를 받는다.(명천유사) 유재필, 배우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어휘감각으로 보령 지방의 방언 구사에 소설 쓰는데 힘을 실어준 친구 유자라 불린다. 따뜻함과 배려를 가진 사람의 소중함을 보여 준 소설이다.(유자소전) 정년으로 고향으로 내려온 하석귀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난초를 키우며 지난날을 회상한다. 밤의 저수지에서 헛것을 보았고 그것을 깨닫고 난 후 장탄식을 날렸다.(장동리 싸리나무)

 

공산토월은 산업화에 휩쓸린 농촌의 풍경과 사람들을 실감 있게 그린 소설이고 작가의 이야기라기보다 작가가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품마다 인상적인 인물들이 많은데 다시 꼼꼼하게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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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두 번
김멜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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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미량의 빛을 포집하기 위해 확장되는 예민한 동공, 표지에서 나타내는 그림처럼 내용도 강렬하다. 일곱 편의 단편은 각양각색의 매력을 품고 있으며 성 소수자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드러내고 있다.

 

[호르몬을 춰줘요]구도림은 인터섹스(간성, 생식기나 성호르몬과 같은 신체적 특징이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구조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로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씩씩하다. 사춘기가 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대답해줄 사람들을 찾아 이태원으로 모험을 떠난다.

 

[적어도 두 번]은 레즈비언 여성인 는 시각장애인 청소년 이테에게 성적 접촉을 하고 자기 합리화를 유파고에게 고백하는 형식이다. 자신이 쓰는 글에서 지위라고 쓰는 것은 모두 자위로 읽어주세요 부탁의 말도 있다. 세 살 때부터 자신의 몸을 만졌으며 이테에게 같은 방법을 했던 것이다. 이런 행위를 자신과 악수 하는 중이라고 하였다. 경찰은 미성년자 성추행은 가중 처벌이야. 여자라고 봐주는 거 없어라고 말했다.

 

유파고, 저는 한 번도 이테에게 동정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저는 그 애가 불쌍해 견딜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죄를 묻는다면 추행의 죄가 아닌 동정의 죄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p82

 

[물질계]에서 는 논문을 끝내지 못한 연구실 조교다. 집안을 말아먹을 팔자를 타고났다는 무당의 저주를 피해 과학의 물리법칙 세계로 도망쳤지만 그럼에도 대학원에서 젊음까지 말아먹었다. ‘레즈비언 사주팔자전단지를 보고 레사를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레사는 사주팔자 명리학은 자기에게 적용하는 성찰이고 수양이지, 남에게 악담을 퍼붓는게 아니라고 했다.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면, 그게 모여 사주팔자가 된다는 것이다.

 

[모여 있는 녹색 점]에서 해연은 친구인 미아가 비행기 사고로 실종된 후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린다. 강투는 해연과 미아 사이에 우정 이상의 감정이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은 하지 않았는데 해연과 통화가 안되는 날 자살시도를 하였다. 미아는 외국어를 배우듯 애인을 사귀었고 벤과 결혼하고 헤어졌다. 다시 파비앵이란 남자를 만났다. 미아는 남자를 만날때마다 물고기를 사서 똑같은 이름을 달아주었다. 강투는 그녀가 사라진 후 자신이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콜]에서 스물넷부터 지금까지 조직의 일원이 되기 위해 한우물을 파고 있는 중이다. 3년차 순공 시간이 열다섯 시간을 넘기기도 했다. 사람은 저마다의 밥그릇을 갖고 태어난다라는 말이 우리 시대에서는 태어날 때 이미 수저의 계급이 정해진다로 바뀌어버렸다. 옆집 사는 여자의 벽 너머로 들려오는 통화로 직업, 사생활을 알게 되면서 측은한 마음도 생긴다. 각자의 방에 갇힌 채 제 앞의 생존 경쟁에 몰두하는 여성들이 맞선 운명론에 응답하고자 하는 갈망이다.

 

[스프링클러]에서 스프링클러 감열체를 수리하는 세방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보험금을 타기 위해 형인 세준을 만나러 가고 있다. 젊을 때 부모님이 다니는 회사에 불이 나고 아버지는 엄마를 구했다. 엄마는 유일한 생존자였고 여공 열두 명은 목숨을 잃었다.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던 엄마는 집에 불을 내기도 하였다. 뜻밖의 지진을 만나고 세방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다고 생각한다.

 

[홍이]에서 경찰인 중경은 보신탕을 먹는 직장 선배들과 함께 앉아 구역질을 참아야 했다. 사촌 동생 홍이는 잔인하게 죽인 동물 사체를 전시하는 일을 반복한다. 예전에 키우던 개(홍이)를 잡아먹어서 불운해졌다고 삼촌은 자책한다. 생존을 위한 아버지들의 억척스러운 세계가 만들어낸 것은 자기보다 약한 신체를 살해하고 전시하면서 쾌락을 얻는 것이라니 섬뜩하다.

 

작가도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한번 설명해보려고 한 시도들이라고 하였다. 퀴어적 소설을 읽다 보니 소수성에 대해 조금 이해를 할 수 있을거 같지만 아직은 생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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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메이르 -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 클래식 클라우드 21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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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은 모르지만 <진주 귀고리 소녀>그림은 책을 통해서 봤고 동일 제목으로 책이나 영화도 나왔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3대 화가 중 한명 이었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에 대해 흔히들 그림이 반짝거린다는 식의 표현을 많이 한다. 정말로 그의 그림들은 놀라울 정도의 광채를 지니고 있다. <뚜쟁이>는 여러모로 특이한 작품이다. 전원경 작가는 텔프트에서 평생을 살았던 그의 발자취를 찾아 300년 전 페르메이르가 살았던 때와 똑같을 게 아닌가 그의 생가가 있는 <델프트 풍경>을 그렸던 강변에도 가보리라 하였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이라는 이름은 암스텔강에 쌓은 댐이라는 뜻이다. 암스테르담은 놀라울 정도로 세심하게 조직된 사회였다. 모든 남자는 저마다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직업별로 구성된 조합(길드)의 소속원이기도 했다. 네덜란드 화가의 장르는 역사화, 종교화, 풍속화, 초상화, 정물화로 나뉜다. 네덜란드 황금시대 그림이 밑바닥에는 근면함과 성실함을 강조하고 차가운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전거를 탄 채 달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400여 년 이상을 이어온 성실하고 자주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네덜란드인들의 전통을 본다.

   

 

1632년 태어나 1675년에 죽은 페르메이르는 평생 소도시 델프트에 살았다. 가난한 직물 장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카타리나 볼너스와 결혼한다. 처가는 가톨릭 신자였고 아내의 종교를 따라 칼뱅파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성 루가 길드에 가입해 화가의 길을 걷는다. 페르메이르는 화가인 동시에 그림 중개상이기도 했다. 페르메이르는 그림 한 장을 그리는데 많은 시간과 비싼 재료를 쓰는 스타일이어서 큰돈을 벌기 어려웠고 열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를 낳았고 그중 열한 명이 생존했다. 일년에 서너 점만 그렸지만 처가의 경제적 지원과 그림을 사주는 후원자가 있어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작품에는 여인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우유를 따르는 하녀>는 그녀의 근면하고 성실한 일상에 동참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편지를 쓰는 여인과 하녀>의 두 여자는 각기 자기 세계에 빠져들어 있다. 하녀는 두 연인 사이 사랑의 전령사 역할을 할 참이다. <진주 귀고리 소녀>가 도쿄에 전시되어 화제를 일으켰다.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은 2012년 개보수 작업을 하느라 2년간 문을 닫으면서 인근의 헤이그 미술관에 옮겨 전시되었다. 이 작품은 일본 미국 이탈리아를 순회하며 전시되었고 도쿄를 거쳤으며 이제 미술관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연구팀은 페르메이르가 이 그림을 어떤 순서로 그렸는지도 밝혀냈다. 화가는 맨 먼저 배경인 초록 커튼을 그린 후 소녀의 얼굴, 노란색 웃 옷, 흰 옷깃, 푸른 터번 순으로 그림을 완성해나갔다. 귀고리는 가장 나중에 그려넣었다고 한다. 페르메이르는 밑그림을 그리면서 소녀의 포즈를 두어 번 수정했다.p184

 

30대 후반까지 페르메이르의 인생은 평온했다. 타격은 외부에서 왔는데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침공하자 각 지역은 수문을 열어 영토 침범을 막으려 했다. 처가의 농지가 물에 잠겨 자금 사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화가들은 다른 나라로 떠나거나 파산하였다. 빵을 외상으로 가져오고 빈곤이 스트레스로 심장병으로 죽게 되었다. 그가 43세로 사망한 후 카타리나는 파산 절차를 밟았고 이 와중에 모든 그림을 내다 팔아야했다. 현재까지 그의 그림은 35점이 남아 있다. 1668년에 완성한 <회화의 기술>은 페르메이르가 사망할 때까지 스튜디오에 남아 있었다. 힘겹게 빚을 갚으며 건강을 잃어 가던 카타리나도 세상을 떠났다. 큰딸 마리아에게 그림을 가르쳤다고 하는데 아버지의 직업을 이은 자녀는 나오지 않았다.

  

 

  

화가의 유명세가 높아지면서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유럽 각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세계로 퍼진 그의 그림들은 뉴욕과 런던, 파리와 드레스덴과 빈에서 수많은 관람객들을 만나며 델프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평생을 살았던 화가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주고 있다. 책을 읽으며 페르메이르의 작품에 흠뻑 빠져보는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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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은 가을도 봄
이순원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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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옛날 추억이 있는 곳이어서 설레면서 읽었다. 이 소설은 1970년대 후반 그 무렵 춘천에서 청춘을 보낸 한 소설가의 회고담이다. ‘유신의 한중간으로부터 ‘5의 초입에 이르기까지 이십 대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은 주인공 김진호가 대학에 입학 후 시위에 참여하여 제적 처분과 기소유예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사건과 두 번째로 입학한 대학에서의 시간을 그렸다. 얼룩의 팔 할 이상은 나를 둘러싸고 있던 가정환경과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학교생활, 시작부터 쓸쓸한 이별을 예감한 한 여자와의 사랑에 있었음을 고백한다.

 

김진호는 법관이 되리라 청운의 꿈을 안고 첫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재학생 문예 작품 현상 공모에서 4.19세대(당숙)의 삶에 대해 쓴 소설이 당선되어 상금은 하숙집 정파(정신파탄)서당 선배들과 함께 광고 탄압을 받고 있는 [동아일보] 기자들을 격려 광고를 내는데 보탠다. 2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선배들과 시위에 합류하게 되면서 네 사람의 선배는 구속 후 바로 기소되면서 1년 반에서 2년 반까지 실형을 받았고 진호는 제적처분을 받아 고향인 명진으로 돌아온다.

 

일제강점기 증조할아버지는 친일에 힘입어 술도가 양조장을 일으킨다. 아들이 셋 인데 막내는 배다른 태생이다. 두 아들은 양조장의 누룩을 띄우고 술도가의 잡부를 감독했다. 1945년 여름, 38선이 그어지면서 두 아들은 잡부들 손에 몰매를 맞아 죽고 전 재산은 몰수 당한다. 막내할아버지가 항일 단체에 가담했던 일로 마을 사람들로부터 아버지를 보호해주는 방패막이가 되었다. 삼년 간의 전쟁에 명진이 수복되면서 잃었던 땅과 양조장을 되찾았다. 가네야마(金山)는 날로 번창하였다. 대의원 선거가 있을 때 아버지 김지남은 학력을 빼고도 감투가 아홉 개나 되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입후보하여 두 번이나 당선된다. 후보의 등록과 사퇴 과정, 선거운동, 당락의 변수는 흥미진진하다. 진호가 기소유예로 풀려난 것도 가네야마(金山)막걸리, 통대의원 아버지 덕을 본 것이다.

 

서울대에 합격하고 서울대를 졸업한 명진 유일의 시인인 당숙은 4.19때 다리를 다쳤다. 똑똑한 사람이 다리가 결딴나 고향으로 내려온 다음부터 제 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당숙에게 진호는 능력이 된다면 글을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형의 결혼식에 가지 않기로 했는데 그날 아침에 독재자의 유고를 확인한다.

 

진호는 일년 반 동안 칩거하다 춘천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인간관계를 끊고 공부에만 전념하다 학보사 수습기자 모집에 지원하여 활발하게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원고를 청탁하기 위해 찾아간 신입생 채주희에게 거절당하지만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주희의 엄마는 미군 부대 캠프 페이지 장미촌 출신이다. 주희는 미군을 아버지로 둔 혼혈인으로 아니노꼬이며 튀기라 말한다. 채주희는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의 모습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나서 쏘아대는 낯선 시선들을 피해 늘 공중에 걸린 간판을 읽고 다녔다. 주희의 엄마는 딸에게 미국으로 갈 것을 애원하다 더는 상처 입지 않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며 농약을 마셔 목숨을 끊는다.

 

동생 정혜는 가정교사를 하며 동네 선배인 박길우 고시공부 뒷바라지를 해주다 합격을 하고 나니 정혜가 가르친 장군의 큰딸과 결혼을 하면서 배신을 해버린다. 드라마에 나오는 한 대목을 보는 듯 하다. 주희와 연애는 계속 되었지만 제대 두 달쯤 남았을 때 마지막 휴가를 나와 공항에서 아메리카로 떠날 그녀와 이별했다.

 

유안진 시인의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에서 제목을 허락해 주었고, 저자는 돌아보면 얼룩조차 꽃이었던 내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절을 보낸 춘천에 감사와 헌사로 바친다고 하였다. 이 소설은 비틀거리고 방황하는 청춘에게 따뜻한 위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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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마리아 - 살아남았으므로 사랑하기로 했다
김현 지음 / 원너스미디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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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떨어져 살아온 인생이야기를 읽으면서 목이 매인다. 똑같은 상황은 아니어도 마음고생이 생각났는지도 모른다. 부제목처럼 살아남았으므로 사랑하기로 한 그녀의 인생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네 살난 여자아이는 외할머니 손을 잡고 부여 이모엄마 집에 잠깐 내려가는 사이 6.25 전쟁이 나면서 부모님, 오빠, 남동생은 월북을 하게 되었다. 빨갱이 새끼라는 꼬리표를 달고 70년을 살았고, 아버지가 1956년 숙청을 당하고 총에 맞아 죽은줄도 모르고 평생을 원망하며 살았다.

 

이모는 아버지가 다른 엄마의 언니다. 이모를 엄마라고 부른 사연은 어머니 태몽에 거북이 한 마리를 주워서 이모 치마폭에 넣어주며 잘 키워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아버지가 공산당이라는 사실이 발각되어 부모님은 직장을 잃고 끼니를 못 먹을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부여로 양식 얻으러 간 사이 전쟁이 터져 월북할 때 따라 가지도 못했던 것이다. 서울이 수복이 되어 혹시나 찾아간 서울 집을 들어설 때 외할머니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고 충격으로 얼마 후 돌아가시게 되었다.

 

이모엄마는 마리아의 엄마를 좋아하는 각별한 자매였고 빨갱이라는 꼬리표 호적으로 살 수 없으니 이모 호적에 올리고 학교도 보내주었다. 이모와 13년 동안 살았고 열일곱 살에 쫓아내었지만 열아홉 살부터 이모를 부양했고 미국에 오신 후 마지막 13년 치매를 앓다가 아흔다섯에 돌아가실때까지 46년을 보살펴드렸다.

 

이모집에서 일하는 남자들이 추행을 하고 주일학교 교사였던 유 씨도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할 때 어린 마음에 남자들 구역에는 얼씬도 안했다. 이모에게 말하면 조용히 있지 않아서 그렇다 꾸중을 들을까 말도 못했다. 어린 나이에 마음 고생이 심했겠다 싶어서 마음이 짠해진다. 이모는 예쁘고 바느질 솜씨가 좋았는데 아들을 못 낳은 이유로 이모부가 첩을 여섯 명을 두고 이혼을 하게 되었다.

 

이모에게 쫓겨나 YWCA 여성의 집으로 갔던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곳에서 여군에서 영문 타자수 행정 요원으로 근무하는 미스 신 언니 조언으로 여군이 되고, 비록 헤어졌지만 지금의 두 아들의 아버지 존을 만나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존은 직장을 다니지 않는 불성실함에 지쳐 서른다섯 살 이혼을 하고 낮에 보험회사를 다니면서 미네소타주립대학을 다녔다. 졸업을 하고 미네소타주립대학 평의원이 되고 여성 전문가단체 이사 직책으로 일도 하게 된 것은 미스 신 언니 얘기를 듣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생각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미국 잡지를 읽으며 환상적인 푸른 잔디밭을 뛰어노는 금발의 백인 학생들 사진을 보고 로망이 된 미국에서 49년을 살아왔다.

 

국제결혼한 것을 양키하고 사는 양갈보라고 보는 시선은 따가웠다. 백인우월주의와 이중적 성격에 시댁에서도 달갑지 않게 생각하였지만 명절에는 아들들을 자신처럼 외롭지 않게 시댁에서 보내게 해주고 매번 혼자가 되었다.

 

부산 통신부대에 근무할 때 주일학교 유씨가 대위가 되어 찾아와서 수작을 부리는 것을 모면한 이야기는 통쾌했다. 1990년 봄, 북한 정부 초청을 받아 방문하여 가족을 만났고 아버지는 얼마 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 하였다. “널 뒤에 남기고 오면서 모두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네가 죽었거나 몸 파는 여자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온갖 나쁜 생각을 했는데..이렇게 널 보다니 꿈인가 싶구나어머니는 쓸쓸히 말씀하셨고 그때 뵙고 마지막이었다.

 

이 책은 전쟁 중에 빨갱이로 고아가 된 한 어린 여자아이가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남았는지를 기록한 것이고 성공한 스토리는 아니라고 하지만 진정으로 성공한 여자의 인생 스토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저자는 고독과 절망 속에서도 삶의 행로를 스스로 결정해간다. 가난과 차별을 잘 이겨내고 부지런하시고 열심히 잘 살아온 것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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