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스테이크라니
고요한 지음 / &(앤드)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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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문학사상][작가세계] 신인문학상에 동시에 당선돼 문단에 주목을 받으며 등단한 소설가 고요한의 첫 창작소설집. 그의 단편소설 종이비행기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번역문학 전문저널 애심토트에 소개돼 주목받은 바 있다.

 

[사랑이 스테이크라니]는 제목처럼 예상치 못한 결말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남편은 아이에 대한 집착으로 대리부를 고용해 아내와의 잠자리를 계획한다. 진한 쌍커풀 진 눈, 우뚝한 코, 선명한 입술, 180센티미터 키의 영국 유학파였다. 열 살 어린 제임스가 마음에 들었다. 제임스는 유학 중에 좋아했던 스테이크를 주문한다. 남편은 스테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펙에 따라 정자는 A급에서 C급으로 나뉜다. 아내는 반대했지만 백화점 진열된 상품처럼 내가 직접 내 아이의 아버지를 고르는 것이다.

 

남편은 이 정도 유전자면 A급이지말했다. 세 번만 하면 아이를 갖게 해 준다고 했단다. 아내가 발끈하며 제임스 성격을 아느냐 사이코패스면 어떡하냐고 물었다. 아내의 나이는 마흔이 된다. 불임의 원인도 나에게 있기 때문에 팔 년동안 불임클리닉에 다녀도 아이가 생기지 않고 몸도 마음도 지쳐 갔다. 불임 치료를 받고 있던 남자가 가장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일러주어 인터넷 카페에 정자를 제공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아내는 임신이 되었다. 여기저기 축하를 받았음에도 뭔가 찝찝했다. 배 속의 아이는 제임스의 아이였으니까. 아내는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당신은 스테이크를 좋아하지 않잖아? 두 번 다시 만나지 말자고 했던 제임스가 레스토랑에 나타났다. 출산용품을 사서 집으로 배달시키기도 하고 냉장고에 스테이크용 소고기가 쌓여 갔다. 스테이크만 구워 먹는 아내를 보면서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지우게 해 주십시오 기도를 드렸다. 한 집에서 따로따로 생활했다. 어둠 속에서 아내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같은 임산부이겠지 생각했다. 아내의 출산이 임박해지고 양수가 터졌다. 휴대폰이 울린 건 그때였다. 액정에 뜬 이름은 제임스였다. 아이를 원하던 남편 이제는 아내와 아이 둘 다 잃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밤마다 아버지를 찾아 병풍 속으로 들어가는 남자가 있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서재방을 잠갔다. 그는 어릴 적 스님이 된 아버지를 꿈속에서 애타게 찾는 것일까?[몽중방황] 이성을 향한 왜곡된 집착을 종이비행기에 접어 보내는 남자의 기괴한 이야기 [종이비행기] 프랑스 영화라면 셋이 살 수 있다고? 여자 한 명 사내 두 명 말이 되나[프랑스 영화처럼]

 

눈을 떴을 때 나는 빨래줄에 반으로 접어 널어 놓은 셔츠처럼 나뭇가지에 엎어져 있었다. 기억은 안나는데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한 나뭇가지를 끌어안았다. 오른쪽은 터널이었다. 아파트 사 층 정도의 높이였다. 봉고차는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우회전을 해서 산길을 내려갔다. 휴대폰이 울렸지만 주머니에 없었다. 문짝이 떨어져 앞부분이 찌그러진 차가 나뭇가지에 끼어 있었다. 그 차를 본 순간 기억이 떠올랐다. 조수석에 휴대폰 옆으로 십자가가 보였다. 십자가는 사고 위험에서 지켜 줄거라 믿었는데 사고가 났다. 두 달 사귄 여자와 만나기로 되어 있어서 삼십 분 후면 도착할 겁니다터널로 들어가면서 여자에게 말했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아내 서연이 때문이라고 빰을 때리게 되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서연을 때릴 때마다 고백성사를 보았다. 성당에 소문이 나고 끝내 이혼을 했다. 또 벨소리가 울리고 여자는 내가 오지 않자 음식점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전화를 했을 것이다.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지나갈 때 사람 살려,하고 외쳐도 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주님 저 택시 사고 나게 해 주세요제 기도를 들어주신다면...택시가 사고 지점에 굴러떨어졌다. 택시 기사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위를 쳐다보다가 나를 발견하고 입이 벌어지면서 휴대폰이 떨어졌다. 뒷걸음질을 치다 뒤로 넘어졌다. 내가 한 기도는 단지 사고가 나라는 것이지 누군가의 죽음은 아니었다. 택시기사의 죽음으로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일까. 소설에 실린 단편들은 인간의 욕망을 그려낸 우아하고 기괴한 이야기다. 욕망은 반드시 비극을 불러온다는 고전의 법칙을 깨고 더욱 불온한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하는 발칙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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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거닝 - 채식에 기웃거리는 당신에게
이라영 외 지음 / 동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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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런저런 이유로 비건에 기웃거리거나 지향하고 있지만, 완벽하지 않아 쑥스럽고, 그렇다고 완벽해질 엄두는 나지 않아 고민인 회색 채식인들을 위한 가늘고 긴 비거니즘 이야기다. 나는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육식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몇 년 사이 자주 먹게 되었다.

 

생태와 다양성, 종차별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나의 입으로 여전히 버터가 들락날락한다. 상대적으로 전보다는 확실히 버터 소비를 줄였다. 그러나 종종 실패한다는 고백을 안 할 수 없다. 이런 내가 비건 지항이 될 수 있을까.

 

과도한 육식을 하는 사람보다 지구를 생각해 육식을 줄이는 나를 독려하되, 식습관은 물론 다방면에 걸쳐 삶을 친환경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우러러보며 머무름이 없이 계속해서 그 방향으로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음식 문제로 기분 나빠할 때가 아니다. 모두가 자기 몫을 함으로써 생태적인 문명으로 함께 나아가야 할 때이다.

 

비건 지향의 실천을 한번에 시작하기는 어려웠다. 일주일에 하루는 비건 식사의 날로 정하고 조금씩 그 정도를 늘려갔다. 좀 뿌듯한 느낌에 트위터에 비건 식사를 올렸다. 누군가 비건이세요?”라고 물어봤다. 자신이 없어서 그땐 플렉시테리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언젠가부터 집 안에 논비건 음식을 들이지 않았다. 비건 식단에 도전하는 날들은 늘어갔고, 누구도 죽이지 않는 식사에 감사함과 뿌듯함을 느꼈다.

 

축산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 환경에 얼마간의 파괴를 일으키지만, 밖에서 기르는 것보다 더 파괴적인 것은 없다. 이유는 비효율성이다. 방목은 살짝 비효율적인 게 아니다. 동물 농장과 축산의 종말은 받아들이기 힘들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강인하고 적응할 줄 아는 종이다. 우리는 놀라운 변화를 수없이 겪은 존재이다.

 

그럼 전문 요리사나 식당을 찾아야만 맛있는 비건 식사를 할 수 있는 걸까. 아니다. 오히려 비건 채식 경험의 화룡점정은 평범한 가정에서 만났다. 군산에서 취재차 만난 황윤 다큐멘터리 감독이 내어줬던 비건 샌드위치와 샐러드는 가장 강렬한 경험이었다.

 

처음의 굳은 맹세는 어디로 가고, 나는 고기를 먹고 싶은 욕망을 정당화해줄 논리를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짐을 의식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고기를 먹는 경우도 점점 늘어갔다. 공연히 <동물해방>을 번역해 쓸데없는 골칫거리를 평생 안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왜 그리 짜증이 밀려오던지...

 

한국에서도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영국과 유럽 각지에서 벌어지는 커다란 흐름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실하다. 회식에는 삼겹살, 배달에는 치킨의 야성이 굳건하고, 밖에서 식사할 곳을 찾으려면 부대찌개, 감자탕, 닭갈비, 보쌈 등 육식 메뉴가 점령하고 있어 채식할 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지속 가능한 건강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삶으로써 온갖 억측을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축산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비건과 관련된 다양한 편견들에 타협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채식은 다층적이고 복잡한 현실을 놓치지 않고 마주하게 한다. 먹는다는 행위는 원초적이고 관계적인 행위이며 반복되는 일상인 만큼, 내가 누구와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 매번 자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스스로를 어떤 범주에 포함시키고 자신을 강박하게 된다. ‘비건이냐 아니냐를 구분하기보다 좋은 식습관에 대해 알아가고 조금씩 새로운 시도와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자본을 위해 만들어진 신화와 관습에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인 삶의 경험은 새로운 문이다. ‘비건 지향적 삶은 충분히 즐겁고 설레는 선택이 될 것이다.

 

10인의 작가들은 채식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이들에게 불완전한 채식이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응원한다. 일단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고기 없는 월요일이나 고기 없는 아침을 정하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다고. 완벽함을 벗고 여유를 가지면 충분히 즐겁고 자유로운 비건 라이프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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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단편전집, 개정판 카프카 전집 1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주동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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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프란츠카프카 결정본의 완간을 읽을 기회가 왔네요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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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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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신 소설향 시리즈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30년 동안 살아온 스무 평이 조금 넘는 집에 어른 넷과 아이 둘이 살고 있었다. 3년 전 동생은 남편의 폭력을 벗어나 세 살과 백일 지난 아이를 품에 안고 왔다. 쌍놈의 새끼 감옥에 처넣어야지 세 모녀는 울었다. 나는 베껴 쓰던 시의 마지막 문장을 마저 적어 내려가며 오늘은 쓸 수 있을까. 저 창문에 흔들리는 목련 가지에 대해서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누워버렸다.

 

동생은 낮에는 회계사 사무실에서, 퇴근 후에는 파트타임으로 두어 군데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엄마는 고시원 건물의 청소원이고, 아버지는 그 옆 재건축 아파트 공사장의 야간 경비원이었다. 아버지는 크게 하던 사업을 제대로 말아 먹은 뒤 목련빌라로 이사 온 직후에 엄마는 맞벌이를 시작했다.

 

두 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빨래를 개고 집안 정리를 마쳐야 하루가 끝이 났다. 매일매일, 3년 동안 해온 일인데도 저녁 설거지를 할 때쯤 체력이 다 떨어진다. 그 깊은 어둠 속에서 노란 민들레가 대견하게 꽃을 피우며 새벽을 부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쓰고 싶었다. 쓰고 싶지만 써지지 않았다. 연필 잡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고, 벙어리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고 누구에게든 털어놓으면 이 갑갑증이 좀 나아 질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의 전공이, 마흔 살이라는 중압감이, 두 조카들에게 꼼짝없이 손발이 묶인 나의 현실이, 내가 자처한 족쇄에 엉켜 탈출 할 수도 없는 이 집이, 나에게는 육중한 관처럼 느껴졌다.

 

동생이 집으로 돌아온 이후, 3년 전부터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쓸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쓸 것들은 오히려 많아졌다. 그러나 쓸 시간이 없었고 머릿속을 정리할 공간이 없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장래 희망에 없음이라고 적었던 나는 지원했던 대학에 떨어지고 공무원 시험이 제격이라는 아버지 권유에 공시 학원을 다녔다. 넉넉하지 않은 집의 장녀로 자랐으면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욕망도 없이 그저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는 아이일 뿐이었다.

 

동생은 공부도 잘해서 계획에 따라 자신을 설계하고 대학을 다니면서 과외로 학비를 벌었고, 대학원까지 마쳤다. 동생이 대학 3학년이고 내가 스물일곱 살일 때 무심히 물었다. “언니는 글을 쓰고 싶은 거지?” 동생은 평생교육원에서 시 창작 수업을 듣게 해주었고 시를 쓰거나 시인이 되기 위해서 꼭 대학을 나와야만 되는 건 아니지만 동생의 권유와 지지로 다음해 야간전문대학의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졸업을 앞둔 겨울, 그간 써온 시를 추려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당연히 연락 온 곳은 없었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엔 시를 썼다. 신춘문예에 매년 떨어졌다. 시인이 되는 운명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면 결락된 것은 무엇인지 찾고 싶었다. 기어이 왜 시인이 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되묻는 일이었다.

 

조카들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 대책 없이 집을 나오라고 한 것도 나였으니까 대학교에 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고 대출까지 책임져 준 동생에게 빚을 갚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위해 살 수 있을까.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건 서점이었다. 그는 여섯 살 연하였고 휴학을 하고 고모가 운영하는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복학할 때까지 매일같이 서점을 들락거렸다. 시집을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직접 읽어주기도 했다.

 

그 사람과 헤어지게 된 것은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가끔 안부 문자를 보내오기는 했다. 아이들과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그 사람을 만났다. 동생의 짐을 왜 언니가 지는지 이해를 못했다. 어느 날 급성 심근 경색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집을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아버지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엄마의 울음을 뒤로 하고 그 사람 집으로 임시로 들어갔다.

 

다시 시를 쓰기 위해 방을 구했고 일자리도 구했다. 엄마나 아이들을 위해선 나의 손이 점점 더 필요해질 것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잠시만이라도 나는 나로 살고 싶었다. 이 소설은 장녀로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여서 공감이 갔다. 자신만의 시를 쓰기로 용기를 내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잘 묘사하였다. 주인공의 상황에 처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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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의 지혜와 잠언
다봄 지음 / 다봄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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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의 지혜와 잠언으로 삶의 의미를 배워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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