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 이야기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좀머 씨 이야기]는 소년의 키가 100미터에서 170센티미터가 될 때까지 성장 하는 동안 소년 기억속에 비친 좀머 씨의 인생을 담담하게 그린 성장소설이다. 장자크 상페의 삽화가 들어 있어 읽으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무 타기를 무척 좋아하던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는 <좀머 씨>라고 불리던 사람이 있었다. 마을에서 좀머 아저씨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아저씨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전혀 몰랐다. 하지만 우리 동네 사람들 중 좀머 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해가 뜨나 매일매일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언제나 걸어 다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상관없이 항상 호두나무 지팡이를 들고 배낭을 메고 다녔다.배낭에는 빵 한쪽과 우비가 들어있었다. 사람들의 질문에 혼자말로 중얼거리곤 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하고 지팡이의 직직 끌리는 소리를 앞세우며 멀리 사라져 버리곤 하였다. 제대로 된 문장을 말하는 소리를 나는 딱 한 번 들었다.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7월 어느 일요일 빗줄기가 우박으로 변했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날씨에도 좀머 아저씨는 걷고 있었다. 날씨가 안 좋은데 그렇게 걷다가 죽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그 말뿐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앞으로 계속 걷기만 했다. 어머니는 <좀머 씨는 폐소 공포증 환자야> 그 병은 사람을 방 안에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든다. 좀머 씨는 항상 경련을 일으키는데 자기가 떠는 것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으려고 항상 걷는 거였다.

 

우리 반에 카롤리나라는 여자아이를 좋아하였다. 부끄러워서 꿈에서만 그애와 놀기도 한다. 어느 날 함께 가기로 되어 비밀길도 알려주고 먹을 것도 준비해서 나뭇가지 위에 숨겨 두고 그날만 기다렸던 나는 약속이 취소되자 다리에 힘이 빠졌다. 그때 움직이는 작은 점이 눈에 띄었다. 작기는 했지만 좀머 아저씨의 다리 세 개를 찾아냈다. 그로부터 1년 후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피아노 선생님이 윗마을에 사는 선생님에게 배울 수 있어서 걸어 가면 한 시간이 걸리지만 자전거로는 133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자전거를 배운 이후 1주일에 한 번씩 수요일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혼자서 피아노를 배우러 다녔다. 어머니 자전거를 타고 가기 때문에 속도도 내지 못하고 금방 지쳤다. 선생님은 성격이 엄격하여 숙제를 시원찮게 해왔다거나 다른 건반을 눌렀다든가 하면, 삿대질을 하고 심한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야단을 맞으면 무서워서 벌벌 떨리고 땀도 나고 제대로 연주를 할 수가 없다. 그러다 피아노 건반 위에 떨어진 선생님의 코딱지 때문에 엉뚱한 건반을 눌러 버려 호되게 꾸지람을 듣는다.

 

선생님의 꺼져 버리라는 말을 듣고 비열한 세상에서 노력하며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작별을 하기 위해 자살을 하려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려는 순간 <---...> 소리가 났고 좀머 아저씨의 모습이 30미터 밑에 있었다. 아저씨는 아무도 없는 것을 살피더니 기이한 모습을 하고 한숨을 길게 몰아 내쉬었다.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싹 가셨다. 그까짓 코딱지 때문에 자살하다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던 내가 불과 몇 분 전에 일생을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사람을 보지 않았던가 말이다.

 

5~6년쯤 지난 후 좀머 씨가 호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여느 때처럼 목격하게 된다. 좀머 아저씨가 없어졌다는 소식은 2주일이 걸렸고 2주일이 더 지나 리들 아줌마가 실종 신고를 냈다. 나는 왜 철저하게 침묵을 지켰을까. 나무 위에서 들었던 그 신음 소리와 빗속을 걸어갈 때 떨리는 말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좀머 씨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쓰인 것으로 미루어봐서 좀머 씨는 전쟁 등 참혹한 경험 때문에 그렇게 두려움 속에서 피해 다니는 도망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좀머 씨의 삶과 죽음을 보며 그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면 좀 더 나은 삶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안토니오 G. 이투르베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안토니오 이투르베는 이 책의 저자이며 스페인의 언론인이자 작가이며 교수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으며 문화 잡지 대표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실존 인물 디타 크라우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화 소설로 대학살이 일어나는 끔찍한 공간에서 여덟 권의 책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소녀의 놀라운 이야기다. 디타 크라우스는 직접 들려준 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지만 안토니오가 부지런히 다른 사료를 수집한 사실들도 많다. 허구의 이야기지만 디타의 자신의 경험과 저자의 풍부한 상상력이 합쳐져 탄생하였다고 말한다.

 

생명 처리장인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 밤낮으로 하덕에서 시체를 태우는 이곳에서 청소년 담당 체육 교사였던 프레디 허쉬는 가족캠프로 알려진 이 BIIb 캠프에서 막사를 마련해 아이들을 모아놓고 돌보면 그 부모들의 노동력을 동원하기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독일 관리당국을 설득했다. 다만 놀이 등의 보육활동은 허용되나 학습은 안 되는 것이었다.

 

역사상 독재자며 폭군들은 인종과 이념을 막론하고 하나같이 을 가혹하게 핍박했다. 책은 아주 위험하다. 나치는 책을 금지하고 샅샅이 색출해낸다. 삼엄한 검열 속에 책의 공유가 이루어진다. 허쉬가 학교를 세웠다는 사실을 나치 대원은 모르고 있다. 디타는 열네 살이고 사서가 되었다. 프레디는 나치가 널 죽일 수도 있어. 내가 필요한 사람은 위험을 아는 사람이지만 계속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다고 하였다. 여덟 권의 책은 망가지거나 낡은, 적갈색 곰팡이가 잔뜩 핀, 훼손되기까지 하였다. 지리학, 문학, 수학, 역사, 언어 전부 소중한 것들이었다. 디타는 목숨을 걸고 이 책들을 지켜낼 것이다.

 

여덟 권의 종이책과 어떤 책을 특별히 잘 아는 교사들이 있으면 이들은 살아 있는 도서관이었다. 인간 책들은 반마다 순회하며 자기가 기억하는 대로 아이들에게 책 내용을 들려주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디타는 마지막 점호 전 책을 전부 원래 자리에 숨겨두어야 한다. 확인하는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와 지리 수업을 한다. 슈바츠후버 지휘관과 멩겔레 박사 등은 수천 명의 아이들을 날마다 죽음으로 몰고 가는 바로 그 사람들이었다.

 

그러던 중 디타의 아버지는 고열로 사망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부재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프레디는 [착한 병사 슈베이크]라는 소설이 어린 아가씨들에게 적절한 책은 아니라고 했다. 오타 켈러가 아이들에게 화산에 대해 수업을 하고 있다. 4천여 명에 달하는 9월 입소자 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 루디는 반란을 일으키려고 프레디 허쉬를 만나러 가는데 그가 침대에 늘어져 있었다. 의사가 와서 약물 과다, 진정제 과다 복용으로 손을 쓸 수 없다고 하였다. 허쉬가 자살했다는 소문은 캠프를 퍼져 나간다. 디타는 책을 어루만지며 프레디가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거란 생각에 기쁘다. 그럼에도 슬픔은 떨쳐지지 않는다. 프레디는 왜 포기한 걸까?

 

이날 밤 수천 개의 목소리가 다시는 영원히 들리지 않게 되었다. 194438일 밤 BIIB 가족캠프에 있던 3,792의 수용자들은 가스실로 보내져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제3화장장에서 소각됐다. 탈출을 시도했던 러시아인들 네 명은 처형되었다. 루디와 동료는 탈출에 성공하게 되었다. 나치 대원 빅토르는 레더러와 탈출을 하고 아우슈비츠로 다시 와서 체포되었다. 비르케나우에서 살아남은 디타와 어머니는 다시 베르겐벨젠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19454월 모녀는 마침내 해방을 맞았지만 안타깝게도 디타의 어머니는 되찾은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도 못 하고 불과 몇 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나마 어머니가 자유를 얻은 후에 마지막 숨을 거뒀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 된다.

 

실제로 사서로 일했던 인물은 디타 크라우스, 교사로 나오는 오타 켈러는 오타 크라우스다.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강제수용소 안에 아주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베르토 망겔의 책 [밤의 도서관]에 약간 언급이 되어 있다. 저자는 가족캠프의 흔적을 찾고 또 따라가보기 위해 아우슈비츠로 여행을 떠났다. 크라코바로 날아가 거기서 오시비엥침행 열차를 탔다. 평화로운 이 소도시의 광경만 봐선 근교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 경험을 담은 책들이 나와 있긴 하지만 목숨을 걸고 책을 보호하고 끔찍한 곳에서 살아남은 디타는 영웅이다. 디타가 마지막까지 의문을 가지던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프레디 허쉬처럼 차분한 사람이 왜 수면제를 과용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폴리 4부작 세트 - 전4권 나폴리 4부작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릴라와 레누의 60년간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 읽어보고 싶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온한 것들의 미학 - 포르노그래피에서 공포 영화까지, 예술 바깥에서의 도발적 사유 서가명강 시리즈 13
이해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서가명강 13번째 책 [불온한 것들의 미학]은 서울대학교 미학과 교수이자 분석미학자인 이해완 교수의 첫 대중서다. 이 책은 미학에서 흔히 다뤄지지 않았던 위작’, ‘포르노그래피’, ‘나쁜 농담’, ‘공포 영화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통해 미와 예술의 철학적 문제를 다룬다.

 

미와 예술을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으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성찰하고 문화와 세계를 조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을 미학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예술 바깥에 있거나 경계에 있는 ‘B예술을 키워드로 제시하였기에 미학이 이런 것도 다룬다고? 이런 말이 나올법하다.

 

1부는 위작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위작 사건으로 불리는 판 메이헤런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위조했다. 물감의 재질, 잉크, 세월의 먼지까지도 위조했다니 탁월한 사기꾼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위작을 비난하는 예술적 이유가 있을까 위작의 패러독스를 중심으로 논의를 이끌어 간다. 실제로 모 화가의 위작 논란에 관한 기사의 댓글에는 도덕적 가치나 역사적 가치 같은 예술의 외적 가치는 다르겠지만 그렇다고 작품의 예술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당신이 작품을 투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탐미로 즐기는 데는 위작도 모자람이 없다.”올라와 있다. 예술철학적 논의를 매우 풍부하게 만든 두 인물 굿맨과 단토의 이론과 위조 논의를 연결하면 현대 예술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해준다.

 

2부는 포르노그래피를 중심으로 미와 도덕에 대한 논쟁을 전개한다. 포르노그래피는 정말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할까? 포르노그래피도 예술이 될 수는 없을까? 이처럼 포르노그래피는 법과 제도의 측면에서는 물론, 거기에 근거를 제공하는 철학적 차원에서도 충분히 다뤄볼 만한 주제이다. 포르노그래피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양립 가능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뒤샹이 화장실 설비와 눈 치우는 삽을 예술로 만들었고, 리히텐슈타인이 만화책에서 잘라낸 한 컷을 확대해 그린 그림을 예술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양립 불가능한 것들을 제시하였다.

 

3부는 농담이 비도덕적일 수 있을까? 여성 비하적 시각이나 인종차별적 관점에 동의하기를 요청하는 농담은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비도덕성 때문에 농담의 가치라고 할 재미와 유머 반응이 반감되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농담과 유머와 웃음은 매우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어 느슨한 의미로는 서로 교환 가능한 것처럼 쓰이기도 한다. 무심코 건네는 의도된 농담은 도덕적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4부는 좀비, 흡혈귀, 귀신, 외계인 등 끊임없이 변주되며 인기를 끄는 공포물을 통해 허구와 감정에 대한 미학적 논의를 시도한다. 공포물 혹은 호러 장르는 코미디 못지않게 B급 장르의 한 축을 담당한다. 공포물과 스릴러를 즐기는 현상은 어떻게 허구인 줄 알면서도 감정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합리적 설명이 필요하다. 작품을 통해 연민, 공포, 슬픔, 분노 같은 일상적인 감정들을 플롯에 집중하게 하고 다음 전개를 예상하게 하는 등의 허구적 내러티브를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아직 뭔지 잘 모르는 것들을 마주해 이름을 붙이고 범주를 정해 사유의 집을 지어보는 것이 철학이 하는 일이니, 아직은 미지의 영역이 더 많은 감성 역시 철학의 연구 대상이다. 성적인 욕망, 뒤틀린 유머, 공포와 연민 같은 감정에도 지적 조망이 이루어져야 한다면, 나서서 그것을 맡을 학문은 미학일 것이다. 미와 예술의 철학인 미학은 또한 감성의 철학이기도 하다. 친근한, 일상의 소재로 미학에 쉽게 다가가고 있다. 예술 관련 서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미학 입문서로 제격인 [불온한 것들의 미학]을 추천해본다.

 

이 도서는 21세기북스의 협찬을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 망다랭 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송이 옮김 / 현암사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적 사건들로 여성의 관점과 이야기를 통해 다른 진실을 보여준다는 소설 기대가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