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자기 여행 : 북유럽 편 유럽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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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 저자의 도자기 여행 시리즈 4권을 한꺼번에 읽고 쓰는 리뷰다. 내가 이 글을 스는 2017년 1월 현재, 이 시리즈는 동유럽 => 북유럽 => 서유럽 => 일본 큐슈, 순서로 4권 출간되어 있다. 앞으로 일본 혼슈와 동남아편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일본 큐슈편을 먼저 읽고, 이 저자분의 열정과 저작 방식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흔히 접하는 블로거들의 여행기 수준을 뛰어넘는 깊이, 직접 현장 답사로 찍어온 사진을 한 책마다 거의 1000장 정도 싣는 열정,,,, 이 책은 의자에 앉아서 인터넷 서핑으로 긁어온 자료와 사진으로 쉽게 구성한 책이 아니다. 그래서 책 자체도 재미있지만 이 저자분의 한 주제에 대한 집필과 준비 과정에 대해 공부하는 자세로 시리즈를 찾아 읽었음을 밝힌다. 그러니까, 내가 이 글에서 하는 비교는 다른 저자의 다른 작품이 아니라 저자의 다른 책들과 하는 비교다.

 

일단, 시리즈 2권인 이 책은 전편이자 시리즈 첫 권인 동유럽편에 비해 책 자체의 상태가 아주 좋아졌다. 사진은 일본 큐슈 편보다는 흐릿한 편이지만 편집, 사진 인쇄상태, 사진과 사진에 대한 설명 배치,,, 등등에서 전편인 동유럽편보다 좋아졌다. 지도도 필요한 부분마다 잘 들어가 있다. 책 날개 부분도 이때부터 일본편까지 일관되게 일러스트 지도가 들어가게 된다. 전편을 내고 새 책을 준비하면서 책에 대해 저자와 출판사에서 발전적인 고민을 한 점이 눈에 띈다.

 

반면, 도자기 기행 내용 자체는 시리즈 4권 중에서 가장 빈약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도자기를 다룬다. 앞부분 델프트 블루의 유래를 설명하는 네덜란드 부분과 끝부분 러시아 도자사 설명하는 부분 외에 중간 부분(약 4장~ 13장)은 로열 코펜하겐, 이탈라, 아라비아 등 브랜드 역사와 각 디자이너의 작품 라인 설명 위주이다. 마치 각 회사의 팜플렛이나 사이트에 있는 정보를 그대로 번역해서 보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시각은 도자기에 얽힌 역사를 보기 원하는 독자인 내 시각에서 본 것이다. 북유럽 도자기 수집하시는 분들께 이런 서술은 매우 유용할 것이다. 그리고 북유럽 도자기의 역사는 다른 유럽 지역에 비해 짧은 편이라 최근 디자이너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저자의 역량 문제는 아니다. 다음편인 서유럽편을 보면 저자는 이슬람 영향부터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으로 이어지는 빛나는 도편의 물결을 서술해 주시니까 말이다.

 

도자사가 나오는 부분은 이렇다. 북유럽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보다 앞서 독일 마이슨의 경질자기 비법을 터득해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1726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있는  뢰스트란드 도자기 회사에서 였다. 독일의 마이슨보다 16년 늦었지만 1719년 오스트리아의 로열 비엔나에 이어 유럽에서 세번째로 성공한 것이다. 북유럽 도자기는 실용적이며 단순하고 대범한 디자인이 특색이다. 북유럽 도자기를 찾아가는 여행은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시작한다. 명청 교체기에 중국으로부터의 도자기 수출이 끊기자 네덜란드 상인들은 일본 아리타 자기들을 대량으로 유럽에 수입해와 재미를 본다. 이어, 자신들도 아리타 자기를 흉내내어 도기를 제작한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도시인 델프트는 베르메르의 푸른빛 안료(코발트 블루)인 청금석(라피스 라줄리)를 수입하여 청화자기를 흉내낸다. 이게 바로 유명한 델프트 블루 자기의 역사다. 여기에는 현재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이 스페인의 통치를 받자 종교의 자유를 찾아 도공들이 영국 독일 네덜란드로 이주하게 된 연유도 있다. 1602, 1604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포르투갈의 상선을 강탈해 16톤 분량의 청화백자를 시중에 풀어놓아 유럽 왕실과 귀족집안에 시누아즈리(중국풍) 유행이 생긴 것도 재미있다. 1640년부터 100년은 델프트 자기의  전성기였다.  델프트 블루가 거꾸로 중국 일본으로 수출되기도 했으며 중국과 일본이 델프트 자기를 모방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이슨이 경질 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델프트 자기의 경쟁력은 떨어져 쇠락하기 시작한다.  장식용품만 생산할 뿐이다.  이어 저자는 로열코펜하겐 브랜드의 역사와 각 디자이너, 유명 라인을 소개한다. 로열코펜하겐은 마이슨처럼 덴마크 왕실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성립했다. 아라비아 등 유명 도자기 브랜드 서술이 길게 이어지고 러시아 도자기에서 책은 여정을 마친다.

 

당시 도자기는 외교 활동의 꽃으로 가장 존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선물이란 가치를 지녔다. 그 당시에 도자기를 소유한다는 것은 그 삶의 위신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고, 당시 자기 공장들은 그 나라의 문화와 기술 수준을 집약해 나타내는 상징이었기에 자국 공장에서 생산한 화려한  자기들이 유럽 궁정들 사이에예술로 교환되었다.

- 196쪽

 

전체적으로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제품 라인 설명 분량이 많고 역사 배경 설명은 적다. 그러나 위 인용부분 같은 부분이 팜플렛 읽는 것 같아 지겨울만하면 곳곳에 있다.  영화 카모메 식당, 그룹 아바의 노래 가사 인용 등 대중적 흥미를 끄는 부분이 각 꼭지의 도입부와 마무리 부분에 보인다.

 

무엇보다 이 책이 돋보이는 점은 본문 설명글과 잘 어울려 배치되어 있는 사진들이다. 델프트 블루 도자기가 이마리 도자기의 영향을 받았다는 서술이 있는 페이지에 바로 델프트 블루 도자기와 이마리 카키에몬 사진이 나란히 있다. 카모메 식당에서 오니기리를 담아내던 아라비아 핀란드 제품 '24h 아베크 플레이트'와 일본 19세기 에도 시대 이마리 '그물무늬 접시' 를 같이 보여준다. 이런 장면이 한두 페이지가 아니다. 개그 콘서트에서 '내가 이럴줄 알고 ~ ' 소리가 저절로 들릴 정도로 절묘하다. 그러니까, 저자분은 일본 쿠슈까지 이미 답사를 다 하고 사진을 준비해 놓고 전체 시리즈를 구상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 놀랍다. 저자의 이런 자세, 배울만하다. 본문 편집 디자이너분도 정말 고생하셨다.

 

 

*** 오류

25쪽

귀노 다 사비노 => 귀도 다 사비노 

 

201쪽

웨일즈 왕자 => 영국 왕세자

이 부분은 저자가 몰라서 이렇게 쓴 것 같지는 않다. 저자의 다른 책인 <펍, 영국의 스토리를 마시다>를 보면 웨일즈 왕자의 유래 설명이 나오고 있으므로. 그러나 일반 독자를 위해 역사계에서는 '프린스 오브 웨일즈'를 '영국 왕세자'로 표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도팽'도 '도팽 왕자'보다 '프랑스 왕세자'로 표기하는 게 낫다.

 

537쪽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황제 => 프리드리히 대왕

프리드리히 2세 당시 프로이센은 왕국이었다.  Friedrich der Grosse(Frederick the Great)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1871년 이후에 프로이센 주도 독일제국 성립하므로 황제라고 쓰면 안됨. 단순한 호칭 문제가 아니라 역사 왜곡이 되어버림.

 

 

558쪽

결혼하고 8년이 지나서야 예카테리나는 남편이 아니라 귀족 출신의 법관인 세르게이 살티코프에게 순결을 바쳤다.

=> 처음으로 성관계를 했다,,, 정도가 낫지 않을까?

 

563쪽

예카테리나의 '도자기 방'은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왕실과 귀족들의 단순한 호사취미를 넘어서, 스스로를 위무하고 치유하는 공간이었다. 바록 권력은 얻었지만 남편과 첫날밤도 치르지 못하고 그 남편을 권좌에서 끌어내렸으며 결국은 목숨을 잃게 한 '어두운 과거'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안식처가 필요했다. 그녀는 끝없이 밀려오는 허망함을 도자기를 통해 위로받았던 것이다.


=> 저자분은 아내를 둘이나 죽이고 둘과는 모욕을 주어 강제로 이혼한 헨리 8세의 경우는 '여자들을 정복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또  저자분은 그외 다른 유럽 군주들의 도자기 수집 전시 방을 서술할 경우, 성적 방종 부분은 서술하지 않고 그저 중국 유행에 따라 재력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도자기방을 만들었다, 정도로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예카테리나 여제의 도자기방에 대해서만 이렇게 서술한다.찾아보니 저자는 50대 중후반 남성이시다. 뭐 저자의 가치관 인생관 여성관에 따른 서술이니 오류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난 이 부분 읽으면서 매우 뜨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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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자기 여행 : 동유럽 편 유럽 도자기 여행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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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공력이 듬뿍 담긴 책이다. 책 제목은 '여행'을 내걸었지만 유럽 도자기 역사를 깊이 들어가는 인문 서적이다. 내가 리뷰를 쓰는  2017년 1월 현재, 저자는 도자기 여행 시리즈를 4권 냈다. 동유럽, 북유럽, 서유럽, 일본편이다. 이 책은 4권 시리즈의 첫 책인데, 대장정을 향해 가는 각오와 도자기를 향한 열정이 절절이 느껴진다.  내용도 풍부한데 실용적이기까지 하다. 각 꼭지 마다 여행 도움 정보가 실려 있어서 현지에 가볼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사진도 풍부하고 책 뒤에 유럽 도자기 연표도 있다.

 

저자는 독일 동부,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 모두 5개국 15개 도시를 여행하며 동유럽 도자기 역사를 추적한다. 여정의 시작은 독일 작센주의 마이슨. 마이슨은 도자기의 성지다.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에서만 생산 가능했던 경질 도자기를 유럽 국가 가운데 최초로 생산에 성공, 유럽 도자기 역사의 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 수입한 자기에 매료된 작센의 아우구트스 1세는 도자기 개발팀을 만든다. 드디어 1708년, 연금술사인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가 도자기 생산 기술을 알아낸다. 당시 도자기는 화이트 골드로 불릴 정도로 값진 것이었으니, 연금술사가 만들어 냈다는 것도 재미있다. 도시 이름인 마이슨은 곧 청화 백자로 유명한 브랜드가 된다. 대표적 청화백자로 양파 문양이란 뜻의 '쯔비벨무스터'는 동양에서 다산과 풍요를 의미하는 석류를 그린 것이었다. 마이슨은 도자 인형인 '피겨린'으로도 유명하다. 마이슨의 켄들러가 피겨린의 창시자였다. 동양에서 무덤 부장용으로 사용되던 토용이 전한 말기부터 도용으로 바뀌고, 당삼채로 이어진 바 있는데, 마이슨 사에서 도용 아니 피겨린은 유럽 왕실의 꽃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런 역사 맥락 이야기가 참 재미있다.

 

당시 유럽 사교계에서는 만찬 때 설탕으로 만든 인형이나 장식품으로 식탁을 장식하곤 했다. 설탕 장식품은 여간 품이 드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켄들러 피겨린의 등장은 설탕 장식품보다 값은 비싸지만 모든 요리사의 수고를 덜어주는 단비와도 같았다.

- 69쪽에서 인용

 

이어서 저자는 드레스든 츠빙거 궁전의 도자기 컬렉션을 취재한다. 바이에른 주의 도자기 가도를 따라 로젠탈, 빌레로이 앤 보흐 등 쟁쟁한 도자기 브랜드의 역사를 전해준다. 맥주만 유명한 줄 알았던 뮌헨의 님펜부르크 도자기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러고보니, 라거맥주 이전의 맥주잔은 유리잔이 아니라 도자기 잔이었군! - 이건 책에 없는 내 말 ^^) 이어서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로 향한다. 우리 어머니, 이모 세대의 혼수품이었던 금박 두른 장미 도자기 세트의 원조였던 '비엔나의 장미' '로열 비엔나' 도자기를 만든 아우가르텐으로. (역사적 내력을 읽고 사진을 보다 보니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주문한 '푸른 장미' 도자기가 갖고 싶어진다. ) 아우가르텐 사는 코발트 블루를 발견하여 유럽 도자기 역사에 기술혁명을 일으킨 회사로도 유명하다. 저자는 도자기 회사의 내력과 당시 유럽 역사를 함께 서술한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비엔나가 유럽 외교의 중심이 되면서 격식을 갖춘 외교 만찬이 자주 열리고, 이에 아우가르텐 도자기가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는. 그래서 아우가르텐 박물관의 도자기 컬렉션에는 그릇마다 당시 유럽을 지배한 군주들의 외교 네트워크 스토리가 있다고. (아아, 가서 보고 싶고 사고 싶다. )

 

이에따라 비엔나에서는 세력 균형을 추구하는 강대국 외교관들의 다자간 고위 만찬이 끊이지 않고 열렸으며, 그들의 식탁에 오를 고급 도자기가 불티나게 팔렸다. 고급 도자기는 외교에 필요한 선물로도 항상 최상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로열 비엔나 도자기가 다시 한번 부활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 214쪽에서 인용

 

저자는 도자기만 보고 쓰지 않는다. 오스트리아의 가우디라 불리는 훈데르트바서가 건축에 사용한 타일도 거론한다. 이어 체코로 향한다. 1790년대 보헤미아의 카를스바트 인근에서 엄청난 매장량을 가진 고령토가 발견되어 마이슨보다 80년 정도 늦었지만 체코에도 도자기 산업이 시작된다. 쯔비벨무스터도 만든다. 이어서 폴란드. 폴란드의 도자기 공업도 유서깊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 배경이 크라코프의 도자기 공장이었다. 폴란드 도자기의 색감과 문양은 경쾌해서 미국의 대중 식기로 대량 수출된다. 그 유명한 '폴카 도트' 문양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헝가리로 향한다. 마차시 성당 등 부다페스트 유명 건축물 지붕들에서 아르누보 타일을 보고, 헝가리의 유명 도자 브랜드인 헤렌드와 졸너이를 소개한다.

 

책은, 흔한 여행견문서적이 아니다. 참 쓰기도 힘들고 책으로 만들기도 힘든 기획이었을 것이다. 이런 책을 집에서 편히 앉아 읽을 수 있다니, 저자와 출판사 편집팀 모두에게 감사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첫 걸음이라서 그런지, 이 책에는 아쉬운 점이 좀 있다. 도자기 관련 내용과 기행 부분, 역사 부분, 저자의 감상 부분이 좀 겉도는 느낌이다. 대중 서적이지만 배경 지식 설명이 많지 않아서 유럽사에 기본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매우 불친절한 책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종이질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장점이 저자가 직접 답사해서 찍은 풍부한 사진인데, 컬러가 뿌옇고 흐리게 인쇄되어 있다. 편집 쪽으로 봐도 산만하다. 책  상태로만 평가한다면, 시리즈 4권 중에서 이 동유럽편이 가장 아쉽게 느껴진다.  ( 나는 이 저자분이 쓴 도자기 여행 시리즈 4권을 한꺼번에 다 읽고 이 리뷰를 쓰고 있으며, 이 분의 작업을 존경하는 입장임을 밝힌다. 괜히 흠 잡는 것 아님) 내가 읽은 책은 2쇄인데도 종종 오타가 있다. 이 점도 아쉽다.

 

*** 역사 오류

 

298쪽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일한 상속녀인 마리아 테레지아'라는 부분이 있는데,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아버지 카를6세의 유일한 딸이 아니었다. 요절한 남동생 말고도 여동생이 둘 있었다. 마리아 아말리아와 마리아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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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와 느린 춤을 - 아주 사적인 알츠하이머의 기록
메릴 코머 지음, 윤진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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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메릴 코머는 미국 1980년대 방송 부분 여성 기자 첫 세대였다. 기자이자 토크쇼 진행자이며 제작자이기도 했다. 잘 나가던 그녀가 남편의 간병을 위해 젊은 나이에 일을 그만두고 19년간 간병한 기록이 이 책이다. 유능한 의사였던 남편은 50대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린다. 책은 아래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나와 한 집에 사는 이 남자는 내가 사랑해서 결혼했던 그 사람이 아니다. - 13쪽

 

발병 초기 메릴이 겪은 고통이 눈물겹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치매가 발병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당시 알츠하이머에 대한 정보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메릴은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남편 하비을 보며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생각에 고통스러워한다. 남편을 관찰하고 일지를 기록해 병원에 가지만 의사는 메릴의 말을 무시하고 같은 동업자 남성인 하비의 말만 듣고 이상 없음 소견을 내린다. (이건 뭐 맨스플레인의 전형적인! ) 하비는 메릴이 자신을 모욕한다고 생각하며 화를 낸다. 그러나 직장 일도 제대로 못하고 심지어 학회 참가하러 런던에 갔다가 발표를 망치고 혼자 파리로 가서 실종되는 등 문제가 나날이 생긴다. 하비는 직장 여성 동료들에게 성희롱 혐의도 받는다. 결국 하비는 58세에 정확한 진단을 받고 직장을 사직하게 된다. 몸은 건강하기에 체격 조건 우월한 하비가 폭력적으로 굴면 메릴은 그저 당하는 수밖에 없다. 입원도 시켜봤지만 차도가 없다. 메릴은 모든 정신적 기능을 잃고 몸만 살아 있는 하비를 거의 내내 집에서 간병한다. 간병인을 두지만 밤당번은 메릴이다. 직장 생활과 경제 상의 어려움은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도 고립된다. 메릴 스스로 친구들에게 징징거려서 지겹게 할까 걱정하기도 한다. 메릴은 자신이 느끼는 고립감을 일기에 틈틈이 적는다.

 

사람들이 우리를 버렸다. 하비가 예전의 그가 아니라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나까지 같이 버려져야 하나?

- 190쪽

 

힘든 시기, 메릴은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하비도 나를 돌보기 위해 자기 직업을 희생할까? 라고 생각하던 메릴은 돈은 대 줄지라도 아닐 것이다,란 결론을 내린다. 치매 발병 직전 하비의 외도를 목격한 일이 메릴을 회의하게 만든다. 메릴은 남편 하비의 세번째 아내였다. 그녀가 19년간 간병하는 동안 하비의 친아들은 방문하지 않는다. 하비와 피 한방울 안 섞인 메릴의 아들과 며느리가 간병을 돕는다.

 

이 와중에 설상가상, 메릴의 어머니도 치매가 발병한다. 메릴은 어머니 집에 간병인을 두고 두 집을 번갈아가며 간병하다가 어머니가 문제를 자꾸 일으키자 어머니도 모셔온다. 어쩌면 이런 삶이 있을까? 메릴의 남동생은 자살했다. 아버지는 자살을 시도했으나 살아 남아서 정신 온전하지 못한 상태로 12년 살다가 돌아가셨다. 물론, 맏딸로서 메릴이 뒤치닥거리를 하고 어머니를 받아 주었다. 그런데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니,,,

 

어머니가 우리집으로 오시게 되면서, 오래 묵은 감정의 응어리들도 함께 딸려왔다.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해묵은 상처들이 되살아났다.

 - 225쪽

 

아, 난 이런 감정이 어떤 느낌인지 대강 알겠다. 어떻게 메릴은 이런 상태에서 두 치매환자를 간병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일기 쓰기의 힘일까? 메릴은 쓴다. '손자손녀를 위해 이 글을 쓴다. 내가 남편과 어머니를 위해 해온 일을 내 아들이 나를 위해 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라고. 그녀는 자신이 길게 간병을 했을 수는 있지만 자신이 대단한 일을 했다거나 전문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는 방송 출연을 계기로 제프리 비 알츠하이머병재단을 운영하게 된다. 여기에 대해서도 메릴은 이렇게 쓴다.

 '내가 알츠 하이머 관련 활동을 하는 이유는 누구도 나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그녀는 현재 알츠하이머병의 조기 발견과 예방을 위한 활동에 힘쓰고 있다. 이 책의 제목과 관련한 이야기는 책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하비와 나는 여러 해 동안 어떤 낯선 이와 느린 춤을 추었다. 알츠하이머는 하비와 나 둘 다를 사로잡았다. 그 병은 훌륭한 정신 하나를 파괴했고, 더불어 우리의 인생을 파괴했다. (중략) 내가 다음 춤 상대가 되는 건 단지 시간 문제인 걸까?

- 323

    

2016년 내내 엄마 문제로 힘들었다. 그랬던 2016년 마지막날에 읽은 책이다. 그런데 2017년 첫날에 눈 떠서 어제 다 읽고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잔 이 책을 보니,,,, 메릴이 겪은 19년과 같은 시절이 내게도 20년간 계속될지도 모른다, 오늘이 그 첫날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어 끔찍했다.

 

책은 참 좋은데, 읽고 나니 막막하고 가슴이 휑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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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조절 -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나를 지켜 내는 방법
권혜경 지음 / 을유문화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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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한 일 겪으며 멘붕이 왔다. 약오남용하듯 마음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다가 이 책을 만났는데,,, 오! 책 참 좋다. 리뷰 처음부터 '강추'라고 외치고 싶어질 정도로. 

 

책의 제목인 '감정 조절'부터 짚고 시작하자. 감정조절은 무조건 참으라는 것이 아니다. 또 부정적 감정을 억압하라는 것도 아니다.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화 나면 화 내라는 식이 아니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 감정이 내 몸과 생각, 인식, 대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  또 감정조절이란 내가 원하는 좋은 감정만 선택적으로 느끼는 것도 아니다. 슬픔이나 분노를 안 느끼게 해 버릇하다보면 긍정적 감정도 못 느끼게 되니, 그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감정 조절을 잘 하려면 반드시 안전감을 느껴야 하는데 안전감은 개인적 차원의 안전과 사회, 집단 안에서의 안전 두 가지를 다 이른다고 한다. 어라, 이거 출발부터 느낌이 좋은데? 개인적 차원의 수양만 말하는 책들과 다른걸?

 

책은 자기계발서 스타일로 나온 심리서적들 같이 가볍지 않다. 전공 서적처럼 딱딱하고 어렵지도 않다. 저자는 독자의 지식욕을 만족시킬 정도의 전문적 내용을 잘 풀어서 설명해 준다. 내용을 소개하자면,1장에서는 감정과 감정 조절의 개념을 설명한다. 감정 조절의 필수 조건이 안전감이라는 것을 밝힌다.  2장에서는 우리 몸과 감정 조절의 신경 생물학적 매커니즘을 설명한다. 최신 경향의 뇌 연구 현황을 소개해줘서 좋다. 파충류의 뇌 등등이 그 예가 되겠다. 안전이 위협받는 가운데 감정 조절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생존을 위해 방어 기제를 쓰게 된다고 한다. 싸우기, 도망가기, 얼어붙기 등. 흠, 나는 도망가기 스타일이었구나, 이렇게 자신의 문제 스타일을 살펴보며 읽는 재미가 있다. 뭐 굳이 지난 과거를 복기하며 또다시 괴로워할 필요가 있겠나,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하다만, 그래도 살펴 봐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 문제의 패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어떤 경험을 많이 하고 어떤 방어기제를 많이 쓰느냐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초기 설정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었을 때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닥치면 다양한 방어기제를 유연하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늘 쓰던 방어기제를 쓰게 된다.

- 75쪽

 

3장은 개인적 안전감과 감정 조절을 설명한다. 여기서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나오는 유아기 부모와 관계,  애착 유형을 말한다. 최근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과거의 경험을 현재 상황에 투사하는 확률이 거의 90%라고 한다.  사람은 과거 경험을 통해 형성된 세상과 사람에 대한 청사진으로 내 눈앞에 있는 사람과 현상을 본다고.  마치 수십년 전에 만들어진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운전하듯 확신에 찬 목소리로 엉뚱한 길로 가 버리는 데에 문제가 생긴다고. 여기서 잠깐 절망한다. 그럼 애착 유형의 문제에 나는 평생 지배당해야하나? 과거는 못 바꾸는데 어쩌라구?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변한다. 변할 수 있다,라고. 우리 뇌는 평생에 결쳐 우리가 반복하는 것, 경험하는 것에 따라 변하므로 새로운 시도를 반복해서 만족스럽지 못한 인간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유레카! 나도 구원받을 수 있는 건가?

 

이어서 4장.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인데 사회적 안전감과 감정 조절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사건과 그 트라우마의 대물림 설명 부분이 나는 특히 좋았다. 2003년 미국의 어느 연구결과에 따르면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손자손녀들이 소아 정신과를 찾는 비율이 일반인들에 비해 300% 더 높다고 한다. 부모가 자신들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 책임을 자손이 대대손손 지게 되는 것.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 이런 트라우마 대물림 현상에 저자는 세월호와 남아선호 풍조도 함께 넣어 말한다. 아, 나는 이 부분이 정말 좋았다.  

 

이런 대물림의 가장 끔직한 아이러니는 피해자들이 자신의 무력감을 자신들보다 약한 희생양을 찾아 또 다른 피해자로 만들면서 극복하고, 이로 인한 피해자들은 또 자기보다 더 약한 누군가를 찾아 가해자가 됨으로써 자신의 무력감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195쪽

 

의식적으로 문제의식을 갖거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어릴 때 형성된 청사진대로 삶을 살아가게 되고, 이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세대 간의 저주, 트라우마가 대물림되는 바탕이 된다.

- 20쪽

 

그럼 트라우마의 대물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개인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자신의 것과 부모에게 속하는 것을 구분하고 트라우마를 전달받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고. 부모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구분되고 부모와 나 사이 분리가 일어나게 해야 한다고. 이는 부모를 비난하거나 부모와 절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 반면 사회적 측면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사회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파악하고 사실 그대로 인정, 피해자와 가해자들을 명확히 파악해 내고 피해자의 치유과 회복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희생을 보상하며 가해자는 엄중히 처벌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한다고. 개인의 고통을 양지로 끌어내어 이슈화, 이를 통해 개인의 부담을 줄여 줘야 한다고. 이어 저자는 세월호를 말한다. 이 책이 촛불집회와 박대통령 탄핵 이전에 나온 것임을 생각해 볼 때, 저자의 발언은 내게 더욱 가치있게 느껴진다.

 

마지막 5장은 감정 조절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결국 감정 조절 능력이란 살면서 불가피하게 위협받는 신체적, 심리적 안전감을 보다 빨리 유연하게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능력이 부족하면 우리는 주변 환경과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해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자신 방어하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어  지적 심리적 신체 유연함이 떨어지게 된다.  오오, 주위에 이런 분들 많지 않은가? 다들 집 쇼파에 한 분씩은 계시지 않은가? 나이 들어가면서 맨날 서운해하고 화 내고 별 거 아닌 일에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분들 말이다. 아니, 그 인간이 바로 나였나? 흠. 그럴지도. ㅋㅋ

 

근래 읽은 대중적 심리서적 중에 제일 좋았다. 지식 요약 설명 부분도,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를 말하는 부분도 좋다. 무엇보다 개인의 잘못이나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잘못된 양육 탓으로만 몰아가지 않는 점이 좋다. 변할 수 있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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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같은 글쓰기 -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와의 대담
아니 에르노.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지음, 최애영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아니 에르노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동료 작가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와 메일로 대화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주로 자네가 질문하고 에르노는 답한다.  

 

아니 에르노는 20년전에 책세상 출판사에서 나온 <아버지의 자리>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어떤 여자><단순한 열정><탐닉>을 읽었다. 에르노는 자신의 삶을 글쓰기의 소재로 삼는 데 적극적이다. 정치적으로 좌파이고 페미니스트이며, 부모의 삶이나 연인과의 성애를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냉정하게 기술한다거나 하는 점때문에,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 견해를 가진 평단과 독자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저자는 독특한 문체를 구사한다. 초기작인<아버지의 자리>에서 내세운 글쓰기 입장을 시종여일 지키고 있다. 절제하는 문장 그리고 정확하고 첨예하게 진실을 허구의 바깥에서 탐구하는 입장 말이다. 이런 작가에게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는 아니 에르노만의 작품 색깔을 결정짓는 것은 무엇이며 왜 그러한 글쓰기 형태를 추구하는 건지? 등등을 질문한다.   

 

아니 에르노는 답한다. 자신의 삶과 글쓰기에 대해. 파리 외 지방 하층 계급 출신으로 신앙심 깊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카톨릭 기숙 학교를 다니던 성장기. 두 아이를 낳고 20대에 이혼. 교사로 일하며 가사와 육아를 혼자 해결하며 글쓰기. 2시간만도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웠던 환경. 불법인공유산의 경험. 여성 작가에 대한 편견,,,, 담담히 읽어 내려가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 에르노는 참으로 여러 가지와 싸우며 글을 써 왔구나.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구나.

 

내겐 글쓰기가 칼처럼 느껴져요. 거의 무기처럼 느껴지죠. 내겐 그게 필요해요.

- 47쪽

 

정치적으로 좌파인 저자는 문학교사로 작가로 안정적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이 출신 계급을 배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한 삶을 속죄하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한다고.

 

속죄의 다른 방법은 글쓰기를 통해 세상에 대한 지배적인 관점들을 전복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 69쪽

 

'당신은 자신을 여성작가라고 생각합니까?'라는 후진 질문에는 ‘남성적 글쓰기라는 분류는 없다. 유독 여성들에게만 해당된다고 명쾌히 답하며 아래와 같이 덧붙인다.

 

하지만 난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역사를 통해 형성되었으며, 그 역사가 글쓰기 속에 살아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러니까 가족소설, 출신 환경, 문화적 영향, 그리고 물론 성과 관련된 조건이 그 속에 포함되겠지요. 내 내면에는 여성으로서의 역사가 있어요. 그런데 그 역사가 한 순수한 작가만을 내 작업대 앞에 남기고 사라져 버리는 기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어요? 게다가 그 순수라는 개념이 참 묘하잖아요.

129  ~130쪽

 

내 출신성분이 피지배 사회계층이라는 사실과 여자아이들에게 인위적으로 주어진 조건이 부과하는 이중적 무게가 내게는 무척 무거웠다는 사실을 힘주어 말하고 싶군요. 거의 파탄 지경까지 이르렀던 적도 있답니다. 그리고 보부아르를 만나게 되었지요. (<2의 성> 읽은 이야기가 이어진다)

- 133쪽

 

외설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단순한 열정>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남성들이 쓴 텍스트에 대해서는 그런 비난을 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그들 작품 속 남근중심주의적 형태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남성 시각의 성애물에 익숙한 것이라는 말일 것이다. 작가는 이어서 말한다. 

 

사람들이 흔히 여성의 글에서 기대하는 로맨스’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그 책이 성적인 외설인 셈이었던 거죠. (중략) 내가 속해 있는 성에 내 존재를 빗대 이야기하는 아주 부당한 이중적 비방이었어요. 이렇게 말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좌파라고 일컫는 자들이었답니다.

- 143쪽

 

이런 식으로 '여성' 작가로서 프랑스에서조차 받아내는 공격과 비난에 대해 아니 에르노가 당당히 말하는 대목이 특히 인상 깊었다. 저자나 질문자나 다른 프랑스 작가나 작품, 프랑스의 문화 풍조 등등을 광범위하게 인용하며 말하지만 이 관련해서 책 뒤에  주석 설명이 잘 되어 있어 그리 정신없지는 않다.

 

참, 아니 에르노는 단순과거시제는 거리를 두려는 태도처럼 느껴져서 복합과거시제를 사용한다고. 프랑스어의 복합과거시제는 과거에 일어난 사실의 결과나 여파가 현재까지 미칠 때 사용하는데, 이거 원서가 아니라 번역본을 읽으니 그 차이를, 맛을 모르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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