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제와 문화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던 민간요법 약초 중 환각식물에 대한 책이다. 선사시대 구석기인들의 잊혀진 비법이라지만 현재 수렵채집 경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먼 과거의 지식이 아니다. 그러기에 민족식물학자, 인류학자들은 수렵민들의 환각 식물 사용법을 통해 구석기인들의 문화까지 재구성해낼 수 있다. 

 

책은 환각제로 쓰이는 식물들에 대해 설명한다. 수렵민들이 사용하는 환각식물들은 그냥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정한 용도를 위해 의미를 갖고 사용되었다. 샤머니즘 의식이나 이니세이션 의식을 행할 때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부족이 주로 사용하는 환각식물은 조상신이나 부족의 유래에 대한 신화를 설명해 주는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에 8종의 꽃가루가 엉켜있는 것은 그들이 장례의식을 행했다고 보는 증거가 되지만, 샤먼이 약초 치료를 했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샤먼이 사용하는 유명한 환각식물로 <베다>에 등장하는 '소마'가 있다. 소마는 광대버섯이다.

 

그밖에 저자는 여러 가지 식물들을 다룬다. 그런데 어떤 환각물질이든, 공통적으로 음용 후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우선 다양한 추상적 무늬가 보이는데 이는 경험자들 서로 간에 일치되며 각각 표의문자로서 일정한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또 환각 음료를 계속 먹고 더 취함에 따라 사람들은 신화 세계의 장면을 계속 이어서 보게 된다고 한다. 이 때 나타나는 것은 동물의 명확한 형상이다. 이 동물의 의미는 모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존경받는 샤먼이 해석해준다.

 

고대로부터, 환각제가 의식에 사용됨으로써 상징 체계와 무늬가 나타나고, 이것들이 해석됨에 따라 문화적으로 고착 또는 제도화되었다는 것이다. 또 그곳에서는 주술 종교적 전통의 수호자인 샤먼이 동시에 그 사회의 예술가였을 가능성이 많은데, 그는 예술품과 주위 환경에서 나타나는 상징적 형상을 해석하는 소임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86쪽에서 인용

 

그렇다면,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의 동물과 반인반수 그림들은 다 지하세계에서 행진해 올라오는 조상신을 환각상태의 샤먼이 보고 그린 것이라는 장 클로트의 견해가 맞는 것일까? 

 

환각제가 땡겨서,,,, 가 아니라 구석기 유럽 동굴벽화가 궁금해서 읽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동굴 벽화에 관심있다는 말을 다른 리뷰에 쓴 적이 있는데 고마우신 분이 그 리뷰를 읽고 이 책을 권해주셨다. 그 분 아니었더라면 이 책이 있는줄도 몰랐을 것이다. 그분께 감사! ^^ 

 

 

*** 참, 생각보니 송기원 소설 <인도로 간 예수>와 나카자와 신이치의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에도 소마가 등장한다. 영화 <엘프>에 '노란 눈을 먹지 말라'는 대사도 있었고,,,,음, 소마와 순록은 한 세트였군. 원래 신화에서 순록은 하늘을 날아 태양을 운반하던 우주사슴이었는데, 그 기본 능력에 소마까지 드셨다니, 루돌프와 그 친구들이 겁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도 이제 다 이해가 간다. ㅋㅋ

 

*** 알라딘에 이 책이 검색되지 않아 페이퍼에 올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구석기시대 세계 여성사 - 남자의 신 여자
장혜영 지음 / 어문학사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문학사에서 낸 책은 구입하기 전에 망설이게 된다. 일본 쪽으로 나오는 전문 분야 전공자들의 책들은 대개 내용이 좋다. 다른 분야 쪽은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검색해보니 여성사에서 구석기 시대만을 다루는 책은 이 책뿐이었고, 내가 관심 두고 있는 동굴 벽화 쪽 서술 분량이 많은 것 같아서 일단 구입했다.

 

책의 내용은 이렇다. 구석기 시대 여성의 활약은 크게 다섯가지. 출산과 육아, 채집, 살림과 잡역, 사냥꾼 육성과 예술(벽화와 조각 등) 창작, 장신구 생산과 소비. 그런데 이 다섯가지 사항이 다 해당되는 곳은 유럽뿐이라고 한다. 유럽 여성만이 예술을 꽃피웠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여성들이 예술 활동의 주체가 되려면 남성들이 사냥하러 떠난 후 동굴 등에 여성끼리 오래 남아 있어야 하는데, 중국 여성의 경우 여성들끼리 남아있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유럽에는 대륙을 관통하는 큰 하천이 없어서 남성들이 자유롭게 유랑할 수 있었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았기에 남성들이 오래 거주지를 떠나 있지 않았다고.

 

대 하천들 이를테면 황허와 창장은 물론이고 회하, 위하 등 큰 강들이 구석기 시대 인류의 생활 공간을 겹겹이 둘러쌈으로써 이들의 이동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어떠할까? 여성과 연관된 석기 예술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 본문 388쪽

 

이게 뭔 말씀인가? 내가 다른 책에서 읽기로는, 1만 4000년 ~ 1만 1000년 사이에 기온이 상승해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함에따라 거대한 강들이 이 때 생겨났다고 하는데. 유럽 구석기 시대의 중요한 유물과 예술작품들은 이미 그 이전에 다 만들어졌는데? 그때는 중국에도 대 하천들이 없던 시기인데?

 

유럽과 중국의 구석기 시대의 이러한 차이점은 신석기를 지나 고대사회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그 이유야 어찌 됐든 미술과 소장품 제작을 통해 충분하게 과시된 유럽의 구석기 시대 여성들의 눈부신 활약이 궁극적으로 근현대 서양 여성 신분상승의 입지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면 미술과 소장품 제작에서 보여준 중국과 아시아 구석기 시대 여성들의 지속적인 부진은 결과적으로 근현대 동양 여성의 비천한 신분을 결정짓는 근원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423쪽에서 인용

 

이건 또 무슨 말씀인가? 유럽 구석기 동굴벽화가 근현대 서양 여성 신분 상승과 무슨 상관이 있나? 유럽 여성참정권 시위 나선 여성들이 걍 자갈돌을 던졌지 뭐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도 던졌나? 중국, 아시아 여성들이 예술창작에 부진했다는 근거는 뭔가? 나무 등을 소재로 만든 유물은 남아 있지 않으니 그렇게 보일뿐인 거 아닌가?

 

이 책에서 동굴 벽에 찍힌 손자국을 여성의 것이라고 밝힌 부분은 재미있었다. 2009년 딘 스노 교수의 발표 등 최신 학설을 소개해 주어 흥미로웠다. 그런데 손자국의 목적을 작가 수인으로 보고 동굴 벽화의 목적을 아래와 같이 내린 것으로 봐서, 저자는 1994년 발견된  쇼베 동굴 쪽은 공부하지 않으신 것 같다. 이 책은 2015년에 내면서. 그렇다면 이 분은 자신이 이미 결론으로 정해 놓은 쪽의 자료만 보신 거 아닌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동굴은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훌륭한 사냥꾼으로 배양하기 위한 교육 장소였으며 벽화는 이 교육을 위한 교재였다고 할 수 있다.

- 101쪽에서 인용

 

또한, 구석기 시대 남성은 여성에게서 섹스를 제공받고 고기를 바치고, 여성은 배란기를 숨겨서 이익을 보고,,, 이런 '러브 조이 가설'로 계속 남녀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도 저자분이 좀 안이하게 공부하신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러브 조이 가설'은 학계에서 이미 10년 전에 폐기되었다.

 

 

현생 인류의 진화과정 서술  부분도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 많았다. 뭐 인간이 털이 없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거야 사실인데, 여성이 남성보다 더 털이 없어진 이유가 동굴이나 거주 캠프에서 아이를 돌보며 누워 있거나 기대어 있으며 시간 대부분을 보냈기 때문에 마찰로 인해 털이 없어졌단다. 무슨 말씀이신가? 여자는 아이를 데리고 채집활동에 나섰는데?  몰이 사냥에도 참여하고. 남자가 사냥해 가져다줄 고기만 기다리며 누워 있던 것이 아닌데. 게다가 성관계할 때 바닥에 누워 있다보니 마찰로 여성은 체모가 없어지게 되었다는 주장도 하시는데, 정말 뜨악하다. 그러나 최고로 뜨악한 서술은 바로 아래.

 

처녀막은 과연 무엇을 차단하거나 경계하는 것인가? (중략) 그런데 여기서 소변과 월경혈은 가운데에 연필 1자루 정도가 들어갈 만큼 1~2개 뚫려 있는 자그마한 처녀막의 구멍을 통해 조금도 지장 없이 배설된다.

- 본문 292쪽에서 인용

 

이 부분에서는 걍 어이가 없었다. 소변이 왜 처녀막 구멍으로 나오나? 소변은 질이 아니라 요도로 나온다. 그리고 '처녀막'이란 용어도 적절치  못하다. '질 주름'이다.혹시나 모를만한 나이신가, 싶어서 저자 약력을 다시 봤다. 저자분은 1955년 출생하셨다. 

 

구석기 시대 쪽으로 다른 책들을 두루 읽으신 독자라면 이 책도 한번 읽어볼만하다. 내가 보기에수긍은 가지 않으나, 열심히 자료 찾고 추적한 노고가 느껴진다. 참고 도서 소개도 좋다. 하지만, 구석기 시대에 대한 책들을 처음 읽는 독자가 이 책을 맨 처음으로 읽기를 권하지는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마도 올해의 가장 명랑한 페미니즘 이야기
케이틀린 모란 지음, 고유라 옮김 / 돋을새김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국의 유명 컬럼니스트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유머러스하게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체중이나 첫사랑의 고민, 불편한 하이힐 등 여성들이 공개적으로 자주 이야기하는 내용도 있고 초경이나 음모 기르기, 섹스, 포르노그래피, 자위, 인공임신중절 수술 경험 등 대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내용도 있다. 저자는 명랑하게 자신의 흑역사를 까놓기도 한다. 레이디 가가 등 멋진 언니들을 인터뷰한 이야기도 있다. 여튼 저자는 자신의 모든 경험을 통해 이런 조언을 한다.

 

중요한 것은 현대적인 여성으로서 존재하면서 마주치는 온갖 쓰레기 같고 짜증스러운 일들에 대해 소리를 지르거나 내재화하거나 말다툼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정확히 지적하고 "하 !"하고 코웃음을 쳐야 한다는 것이다.

- 28쪽에서 인용

 

이런 원칙에 입각, 저자가 쓰레기 같고 짜증스러운 직장 성희롱에 대응한 방법은 아래와 같다.

 

분과 에디터가 자기 무릎에 앉아 '승진'에 대해 상의하고자 했을 때, 그를 놀리고 싶었던 나는 그의 무릎 위에 있는 힘을 다해 푹 눌러앉았고, 그 상태로 담배를 피웠다.

"혈액순환 안  되시죠?" 나는 명랑하게 물었고, 그는 땀을 흘리며 기침을 했다.

- 183쪽에서 인용

 

어떤 책을 읽든 시대적 배경과 연관해서 읽는 나로서는, 1978년생 저자가 성장한 당시 영국 사회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책 <비밀 일기>와 영화<디스 이즈 잉글랜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소년들이 성장하던 대처 시대의 암울함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저메인 그리어의 책들과 다이애너비의 삶이 당시 영국 소녀들에게 얼마나 큰 각성의 계기가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론서가 아니고 유명인의 경험을 담은 칼럼 모음집이라고 보면 되겠다. 유머러스하긴 하지만 영국식 유머다. 어느 대목에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는 부분이 종종 있다. 10대부터의 환각제 흡입이나 섹스 등등의 에피소드가 와 닿지 않는다. 이거, 내가 어느덧 꼰대 세대가 되어 나만 이해 못하나 싶기도 하다.

 

여기서 문제는 포르노그래피 자체가 아니다. 포르노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었다. 네안데르탈인 - 어느 행복한 날, 그는 원숭이 허물을 벗고 나타났다 - 의 첫 번째 행위는 동굴  벽에 거대한 성기를 지닌 남자 그림을 그리는 거였다.  어쩌면 그것은 네안데르탈인 '여성'의 첫번째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도 성기와 장식에 큰 흥미를 갖고 있으니까.

- 56쪽에서 인용

 

성적인 언급이 많은 편인데, 위 부분을 읽으면서는 정말이지 흥분했다.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네안데르탈인의 거대한 성기 그림이라니! 우리 그이를 이렇게 왜곡하다니! 구석기 시절 유럽의 동굴 벽화는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크로마뇽인이 그렸다고요! (네안데르탈인도 동굴벽화를 그렸다는 주장이 최근 나오고 있기는  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균호 선생님의 <독서 만담>을 읽었다.

 

 특히 아래 부분이 감동적이었다.

 

 

 

 

 

 

 

 

 

 

얼마전부터 갑자기 알라딘에서만 <백마 ~ > 판매량이 늘었다.

 

 아무래도 박균호 선생님의 <독서만담>덕분인 것 같다.

 

 박선생님, 감사합니다! ^^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균호 2017-02-24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럴리가요. 책이 워낙 좋아서 잘 팔리겠지요.

자유도비 2017-02-28 21:11   좋아요 0 | URL
박선생님의 필력 덕분입니다. b^^d

한기호 2017-02-25 0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일이 더욱 많아지기를. ^.^

자유도비 2017-02-28 21:12   좋아요 0 | URL
신기합니다. 출간된지 4년 넘었는데, 오랫만에 세계사 베스트 순위에까지 다시 올랐네요.

낭만인생 2017-02-25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백마탄 왕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책이 책을 부르네요.

자유도비 2017-02-28 21:13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으셨다는 말씀, 감사합니다.
 
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작년에 읽은 책이다. 두께와 상관없이 술술 잘 읽히고, 이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 것 같은데, 이 책을 보는 내 생각을 나도 모르겠어서 당시에 리뷰는 못 썼다. 이번에 데이비드 크리스천과 신시아 브라운의 책을 비롯, 다른 빅 히스토리 류 서적을 읽은 김에 정리하고저 짧게 리뷰 남긴다.

 

책의 내용은 명확하다. 호모 사피엔스 종이 출현하고 지금까지 세 번의 혁명을 통해 현대 문명에 이르렀다는 말. 그런데 곧 망할 것 같다는 말.

 

조금 더 써 보자. 첫번째는 인지 혁명이다. 언어를 기반으로 인류는 신화를 공유하며 협력 사회를 만들어냈다. 두번째는 농업 혁명이다. 신석기시대에 시작한 농경 덕분에 잉여 생산물이 생겨나면서 계급이 발생했다. 종교와 정치, 돈이 세계의 질서를 움직이게 되었다. 최근의 혁명은 과학 혁명이다. 여기까지, 세 번의 혁명이 일어나는 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으며 인류는 더더욱 지구 환경을 파괴하고 다른 종을 멸종시키고 있다. 인류 문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호모 사피엔스는 이제 스스로를 파괴해 역사를 끝낼 지도 모른다. 그러니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뭐 이렇다.

 

다른 분들 리뷰를 보니 농업 혁명 부분에 대한 언급이 많다. 중고교 시절 교과서에서는 신석기 혁명이라 부르며 굉장히 긍정적 의의를 부여하고 있었기에 그런가보다. 그러나 농경의 시작과 더불어, 이 시기에 현재 인간이란 종이 자행하는 모든 악행의 기본틀이 다 만들어졌는걸. 식물을 길들이고, 동물을 길들이고, 그리고 여자를 '집 안의 가축'으로 길들이고, 노예를 '말하는 가축'으로 길들이고,,,,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사실은 동식물이 자신들의 유전자를 널리 퍼트리고 살아남고자 인간을 이용했다, 농경 시작 이후 인간의 삶의 질은 더 떨어졌다,,,,는 식으로, 독자들의 기존 사고 방식을 깨 주기는 한다. 사실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지나간 자리에는 다른 종들의 멸종이 자행되었다는 것을 밝혀 주기는 한다. 반면 여성 쪽 언급은 짧게 얼머무리고 지나간다. 아쉽다. 인간을 종 단위로 서술하는 '빅 히스토리'여서 그런 것일까? 그럼 여기에서 인간종은 남성만인가? 그거야 말로 반만년 역사를 유지해온 신화 아닌가? 인간종이 같은 호미닌인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키거나 다른 거대 포유류 종들을 멸종시킨 부분은 명시하면서, 다른 대륙에 살던 원주민들을 학살한 이야기도 명시하면서, 왜 페미사이드 부분은 강하게 쓰지 않았을까?

 

이 책과 다른 빅 히스토리 류를 읽으면서, 내게는 계속 그런 의문이 남는다. 이 책의 저자는 다른 빅 히스토리 류에 비해 지구 환경의 영향보다 문화의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를 걱정한다는 것이, 우리의 문화를 반성한다는 것이 과연 어때야 할까? 아놔, 생각이 많아진다.

 

아, 그러나 '지금의 세상이 이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세상이 지금 이 제도로 굴러가는 건 이 제도가 올바르고 훌륭해서가 아니라 과거에 이런 선택을 했기 때문에 생긴 우연이다,,,, ' 이런 입장에서 계속 서술하는 것은 참 좋았다. 종종 우리는 단지  그 사건 이후 시간이 흘러 가다보니 이런 결과가 되었을 뿐인데 그것이 '진보'라고 착각하기도 하니까.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과거의 선택을 합리화하기도 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