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 - 진시황과 이사 - 고독한 권력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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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의 김태권 씨의 중국 진한시대 역사만화이다.

 

중학교 시절, 사회 시험문제에 '한자가 지금의 형태로 완성된 시기는?'이란 문제가 주관식으로 나온 적이 있었다. 예상 외로 많은 아이들이 틀렸는지, 답 맞춰 주시며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멍청한 놈들아! 한나라 시대에 완성되었으니까 '한자'이지! 다른 시대였으면 '당자','수자','원자','명자'가 되게?"

 

이렇게 '한자' 하나만 놓고 보아도 알 수 있듯 동아시아 문화의 기본 틀은 거의 한나라 시대에 완성되었다. 심지어 현재 우리는 장기를 두며 그 옛날의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투를 재현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익히 아는 <사기>와 <초한지>와 <삼국지>가 공통으로 이 한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이들 고전에서 유래된 고사성어는 지금까지도 우리 실생활에 사용되고 있다. 그외 등등, 말하자면, 한나라 시대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만큼이나 동양을 이해하는데 필수코스라고 하겠다.

 

책 내용으로 말하자면, 1권은 한나라 성립 이전 진시황의 중국 최초 통일과정을 다루는데 진시황의 업무능력과 인성, 그리고 이사의 법가 사상 실천이 주 내용이다. <사기>를 비롯, 이 시기 중국사서를 이미 읽으신 분들이라면 아는 내용 확인하는 정도 수준이어서, 이 시기 중국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쉽게 읽기 좋은 책이라 하겠다. 진시황의 친부가 여불위라든가 호(胡)때문에 진나라는 멸망한다는 예언 운운하는 이야기는 빼 버리고 확실한 이야기만 다루고 있어서 좋다. 딱 정식 코스대로 가는 책이다. '분서갱유'의 실제 모습을 밝혀 준 점 - 유학자보다 방술사 위주로 처형한 점 - 은 다른 책에 비해 신선했다. 단, 한가지 시황제 명칭의 유래가 본문 만화에 나오지 않아 의외였는데 뒤에 다른 분의 설명에 서술되어 있었다.

 

그림으로 말하자면, 후한시대 화상석(畵象石) 탁본에서 따온 그림이어서 저자가 고증에 노력한 티가 역력히 난다. 그래서인지 판화같은 느낌이 난다. 전작 <십자군 이야기>에서는 태피스트리 그림이라든가 스테인드글라스 그림같은 테두리를 강조한 그림이어서 중세 느낌이 낫듯이.  

 

그림과 함께 역사책을 보니 좋은 점이 있다. 전에 <사기>를 읽을 때, 진시황이 매일 한 섬(약 30kg)의 공문서를 처리했다고 나와 있어서 나는'우와~'하고 놀란 적이 있었다. 이 시기의 문서란, 종이 상태가 아니라 목간, 죽간 상태라는 것을 알면서도, 종이로 된 책에서 그 대목을 읽으면 당연 종이의 무게로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 170쪽에서 진시황이 목간을 들고 수결하고 있는 그림을 보니, 그제서야 <사기>를 읽으며 내가 혼자 얼마나 착각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하핫, 만화도 이런 앎의 즐거움을 준다!  

 

시시한 학습만화와 달리 유치한 개그가 없어서 좋았다. 십자군 이야기에서 보였던 '부시'당나귀 같은 캐릭터도 이번에는 없다. 독자를 가르치려는 저자의 개입, 논평, 교훈 등등도 없어서 더욱 좋았다. 물론 그래도 이 책을 읽는 우리는 소통 부재 독불장군의 진시황의 모습에서 누구를 떠올릴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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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2 - 항우와 유방 - 제국의 붕괴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2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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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이전 진의 통일 과정을 그렸던 1권에 이어 본격적인 한나라 이야기가 시작된다. 진승, 오광의 난과 한신, 항우, 유방의 활약을 주로 담고 있다. <초한지>등 항우와 유방, 한신과 관련한 드라마틱한 내용은 거의 배제하고, 기본 역사 서술 위주로 가고 있다. 후대에 기록되면서 더해진 부분, 전설 인용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인지, 내게는 좀 담담하고 재미없게 느껴졌다. 특히 '홍문연'부분같은 경우 말이다. 전체적으로 연표를 그림과 더불어 읽는 느낌이었다.

 

한고조 유방의 출신을 객관적으로 드러내고자 시종 '유막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점이 독특했다. 또한 두 호걸(어쩜 한신까지 셋) 위주로 당시 역사를 서술하는 다른 책과 달리 농민봉기의 모습에 페이지를 많이 할애한 점도 좋았다.

 

1권처럼, 이번에도 책 뒤에 '키워드로 읽는 한 나라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여기에서 한자 夷자의 유래를 갑골문, 금문 등을 총해 楚를 가리킨다는 점을 밝혀준다. 초나라는 장강 유역을 지배했던 남방의 강대국으로서 황하 유역의 다른 나라들과 문화가 달랐기에 중원의 나라들은 초나라를 주변 오랑캐로 취급했다는 것. 그래서 춘추시대 제후국들의 '존왕양이'는 주왕을 모시고 초나라를 물리친다는 강력한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었다고 한다. 이 부분은 내가 몰랐던 부분이었다.

 

그림으로 말하자면, 1권에서는 거의 후한시대 화상석(畵象石) 탁본에서 따온 그림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목판화, 그림자 연극에 쓰인 가죽 인형, 토용, 기타 유물의 문양 등으로 더욱 다양하게 고증하여 그렸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경우, 정면 얼굴, 흉부까지의 클로즈업 그림이 나오는데 기본적 그림 하나를 각도를 달리 그린다거나, 명암이나 손동작을 이용하여 심리를 표현해주는 점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 점은 정말 나의 쓸데없는 감상인데, 이 작가는 천한 출신의 인물을 그릴 때는 구강구조를 돌출해서 그리고, 귀족 출신의 경우 야무진 입매무새로 그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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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 베이징 古家와 중국근대사 인물이야기에서 역사를 보다
천광중 지음, 박지민 옮김 / 현암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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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 답사 가기 전에 읽고 기록 안하고 서가에 꽂아 버린 책이다. 오늘 다른 책 검색하다 찾아보니 리뷰가 한 편도 안 달려 있기에 안타까워서 읽은 지 몇 달 지나 세세한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몇 자 적는다.

 

한 마디로, 이 책 참 좋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아, 행복해!'하고 혼자 중얼거렸는지 모른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책 갈피에서 은은한 차향이 풍기는 것 같고 온 정신과 몸이 기분좋은 노곤함에 빠져든다. 

 

이 책은 베이징의 낡은 뒷골목인 후퉁에 숨은 사합원과 회관에 대해, 그곳에 머물던 중국 근현대사의 기라성같은 문인과 혁명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국 근대문학의 대가 루쉰이 살던 사오싱 회관, 변법자강운동의 캉유웨이가 살던 미시 후통의 난하이회관, 중국의 국부 쑨원이 살던 주차오지에의 중산회관, 마오쩌둥이 잠시 머물렀던 란만후통의 후난 회관,,, 등등 베이징의 수많은 회관과 그곳을 거쳐간 유명인이 이야기는 역사책에서 건조하게 만나던 이들을 그들의 공간에 담긴 육체가 있는 존재로서 다시 만나게 해 준다. (중국의 회관이란 명, 청시절 동향 사람들에게 주거를 제공하고 모임의 장소를 마련해주는 목적으로 수도 베이징등 대도시에 설립한 일종의 관사이다)

 

회관 아닌 사합원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미로같은 후통을 보물찾기하듯 더듬어 가 보면 위안스카이(원세계)를 피해 차이어가 베이징 미엔화후통을 탈출하는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베이징 대학 초대 총장이었던 차이위안페이(채원배)가 살던 동청취 동탕즈후통의 옛집, 반청 혁명가 장즈지엔과 그의 딸 장한즈와 결혼한 중국 외교계의 거물 차오관화, 2대의 역사적 유명인이 살았던 스지아후통, 아, 나는 동청취 베이고우옌 후통 23호 량치챠오(양계초)의 사합원에, 시산티아오의 루쉰의 서재 '호랑이 꼬리'에 가 보았어야 했다! 이 책에서 나는 좁은 후통을 지나치는 그들의 낡은 옷소매자락을 몇 번이고 스치며 그들의 몸내음을 맡는다. 옷자락을 도대체 몇 번이나 스쳐야 나는 이 남자들의 진면목을 알게 될까.

 

기쁘고 다행한 일은 '호랑이 꼬리'라 불린 작디작은 방에서 역사적이고, 문학적이고, 혁명적인 루쉰이 만들어졌고, 동시에 평범한 인성을 가진 루쉰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 방에서 루쉰은 입체적이고 완전하고,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 121쪽

 

우리가 보존하는 것은 단순히 보통 명사의 집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을 보존하는 것이고 그들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에 대한 존중인 것이다.  - 269쪽

 

베이징 자유여행 가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저자분이 직접 찍으신 흑백사진의 풍경, 직접 보고 느끼고 싶지 않으신가. 베이징 도시 재개발로 인해 이 유서깊은 후퉁들이 사라지기 전에 이 풍경을 오롯이 맘 속에 담아 오고 싶으시다면, 이 책이 답이다.

 

,,, 그리고 이 책이 내 마음에 들어온 지극히 사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공학을 전공한 저자분이 나이 마흔에 하던 일을 때려 치고 낸 책이라는 것. 그런데도 문장과 서술 방식이 오래오래 고민하고 공부한 티가 난다는 것. 나는 이런 열정적인 비전문가의 생생한 역사 이야기를 읽는 것이 참 좋다. 닮고 싶다.

 

*** 사소한 지적

 

본문 92쪽의 朝花夕拾은 조화석'십'이 아니라 조화석'습'이라 읽고 표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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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수도, 베이징
조관희 글.사진 / 창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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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여행 서적이야 많다만 실용적인 교통과 숙소, 관광명소, 음식점에 대한 정보 위주여서 학구적인 궁금증을 가진 독자는 읽을 거리가 없다. 그런 책에 이따금 역사나 문화에 대해 구색맞추기 식으로 들어가 있는 내용들은 오래전 상황이거나 근거 없는 낭설과 야담, 허접한 흥미거리 위주여서 읽다보면 짜증이 난다. 그렇다고 너무 전문적인 책을 읽노라면 분야별로 여러 권을 찾아 읽어야해서 번거로운데, 이 책은 딱 한 권으로 베이징의 과거 현재 역사와 명소, 베이징 시민들의 현재 삶까지 다 접할 수 있어서 좋다. 그것도 전문가의 신뢰성 있는 서술로.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별로 나눠져 (내가 읽기에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보이지만) 계절별로 그 계절에 가 보면 좋은 베이징의 명소를 소개한다. 모든 소개에는 역사를 곁들여 말해주고 있는데 그 서술에 깊이가 있다. 봄 부분에서는 베이징의 호수인 베이하이(北海)와 중난하이(中南海)의 춘경을 소개한다. 원 시절 마르꼬 뽈로의 다리로 유명했던 루거우챠오(盧溝橋)를 소개할 때에는 관련 한시와 중일전쟁 발발까지 설명해 주신다.이어 저자는 종축선을 따라 설계된 계획 도시 베이징의 의미를 설명해 준다. 베이징의 배꼽이라고 톈안먼(天安門)광장을 칭하기도 한다. 여름 편에서는 옌징(燕京)과 베이징대학, 베이징의 후퉁(胡同)을 소개한다. 에드거 스노우가 살았던 후퉁 사진도 있다. 거지 선완싼(沈萬三)과 스차하이(什刹海) 전설을 들려 주시기도 한다. 징항운하(京杭運河) 이야기도 이어진다. 가을편에서는 베이징의 가을 풍경 이야기로 시작하여 쑨원의 일화가 얽힌 비윈쓰(碧雲寺)와 베이징 주변의 장성의 역사를 서술한다. 그리고 드디어 자금성 - 구궁(故宮)에 대한 본격적 설명이 시작한다. 이 부분만 읽어도 베이징 관광가면 보는 것이 다르게 보인다. 겨울 편에서는 칸발릭이라고 불렸던 원 시대의 베이징, 원 이전의 베이징,,,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저우커우뎬(周口店)의 베이징원인(北京猿人)까지 설명한다. 그리고 쓸쓸한 겨울에 어울리게도 명 마지막 황제의 최후 이야기를 들려 준다. 하지만 저자분은 마냥 감상에 빠지지 않고 베이징 일반인들의 겨울 나기 풍경(탕후루와 훠궈 먹기)과 베이징의 명동, 왕푸징(王府井) 풍경 묘사를 통해 현재 베이징에 살고 사랑하고 먹고 숨쉬는 사람들의 현실로 독자들을 다시 데려다 놓는다.

 

중문학을 전공하신 분 답게 곳곳에 중문학 명시와 명 문장들을 인용해 놓으셔서 읽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고맙게도 참고문헌을 통해 출전까지 밝혀 주셨다. 그래서 나는 지금 매우 아쉽다. 이 책은 감상적이거나 정체불명의 정보 나열인 다른 여행서적과 비교도 안될 정도여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나는 앞으로 이 책을 두고두고 참고하며 많은 도움을 얻을 것 같다.

 

여튼 베이징 여행을 앞두고 있는 분께 강추! 그리고 여행 계획이 없으신 분에게도 강추!중국 통사류 책들을 읽을 때 곁들여 읽으면 좋은 책이므로 중국 관련 독서 계획 있으신 분들께도 강추! 흔한 여행서적이 아니라 깊이있는 인문서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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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을 찾아서 2 이산의 책 7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김희교 옮김 / 이산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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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의 2권은 명말에서 시안사변까지 다룬 1권에 비해 내게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읽으면서 조금 힘들었다. 대개 중국사 역사책은 1945년 이후에는 중공 성립 과정 조금, 그리고 바로 경제개방 이야기로 넘어가기에 그 사이의 빈 역사는 위화의 소설이나 장예모 영화나 보면서 채워갔기에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아마 이 부분은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러실 것 같다)

 

1권에 이어, 큰 의미는 없지만 이 책의 내용을 일단 요약해 보기로 한다. 2권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시작한다. 일본이 일으킨 중일전쟁으로 동부해안지역을 상실한 중국은 분열된 상태로 일본과 전쟁을 해야만 했다. 충칭에는 국민당 정부가, 옌안에는 공산당 정부가 각각 들어선 것이다. 일본의 항복이후 미국의 엄청난 지원에도 불구하고 국민당군은 패배하여 대만으로 가서 2,28학살을 저지르고 대륙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한다. 곧이어 한국전쟁에 참전한다. 이어서 저자는 중국의 정부 구조, 군대 개혁, 외교정책을 다루며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의 실패를 다룬다. 사이사이 티벳 문제와 중소 국경분쟁, 닉슨 방문등 굵직한 문제들도 서술한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거물 정치인을 희생시켜 돌파구를 찾는듯한 정치인들의 권력 투쟁 모습도 담담히 묘사한다. 저자는 뒷부분으로가면 덩샤오핑 집권이후 문호개방과 경제특구 등 개혁 개방 쪽 역사를 깊이있게 다룬다. 그리고 1989년의 천안문 시위군중을 학살한 사건으로 책을 마친다.

 

일단 책 자체가 분량이 있으므로 다른 역사서에서 대강대강 큰 사건 위주로 지나가던 일련의 사건들을 제대로 전후 관계를 파악하며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1권에서도 느꼈던 점인데 저자는 공산당이나 국민당의 편을 들거나 비판하거나 호의적으로 그리려는 시도 없이 비교적 사실을 성실하게 서술하고 있다.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각 나라들 묘사하듯 말이다.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를 자세히 서술한 점이 좋았다. 이렇게 중-미 관계사를 읽다보니 뜻밖에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시야의 폭도 넓어지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또 이 저자분의 서술에서 재미있었던 점은 16세기 명말부터 한 흐름으로 중국근대사를 다뤄주시다보니 어떤 중국사의 보편적 맥락에서 현대의 제반 문제까지 보고 분석해 주시는 점이었다. 예를 들자면 명 청 시대의 관료제나 현재 공산당 지배계층이나 같은 맥락에서 부정부패의 문제점을 지적한다거나, 현재 중국이 진행하는 개혁과 개방 정책도 자신들의 (공산주의) 이념의 순수성은 유지한 채 서구 자본주의의 장점만 취하려는 태도에서 19세기적 오류(아마 양무운동인듯)가 보인다고 지적하는 점 같은 부분말이다. 대표적으로 천안문 사태를 평가한 아래 인용 부분을 한번 볼까. 

 

일부 중국 시민과 노동자들의 전례 없는 분노와 잔인성의 폭발은, 그것이 바로 그들이 죽인 군인들의 가혹한 행동 때문에 촉발된 것이라 할지라도 또 다른 종류의 전통을 드러내고 있다. 거의 또는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하고 특별한 지도 이념도 없는 보통 중국 인민은 자신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저항하여 들고 일어났다. 더 나은 삶에 대한 막연한 희망, 내적인 절망감, 비참한 생활환경, 바로 이런 것들이 비타협적이고 무관심한 정부에 대항하도록 자극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무기 없이 군인을 죽이려 하는 사람은 적의 무기고를 점령할 때까지 맨손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명 말의 농민반란, 왕룬의 절망적인 추종자들, 린칭 또는 백련교도, 염군, 의화단, 20세기 후난과 상하이의 농민과 도시 노동자, 이들 모두가 그들이 참을 수 있는 냉대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 본문 348-9

 

여튼,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읽으면서 독자인 나 자신은 여러번 딴길로 샜건만, 이 저자분은 16세기 명말부터 1989년 천안문 사태까지 일관된 시야로 이 방대한 역사를 들려 주셨다. 이 아래 인용 부분을 보시라. 1권의 처음과 2권의 마지막 부분인데, 말도 안되는 비유지만, 완벽한 수미상응이지 뭔가.

 

교토에서 프라하까지 그리고 델리에서 파리까지 각 수도에는 거만한 국가적 상징물이 있게 마련인데, 그 도시들 가운데 베이징에 있는 궁전처럼 정교함을 자랑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엄청난 성벽 뒤에 자리잡은 베이징의 황궁에서는 번쩍이는 황금색 지붕과 자금성의 넓은 대리석 정원이 황제의 위엄을 상징하고 있었다. 줄지어 서 있는 각 건물과 알현실의 넓은 계단과 거대한 문들은 기하학적 순서로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베이징 남쪽을 향해 세워진 아치문과 일직선을 이루고 있어서 모든 방문자들에게 만물의 이치가 중국어로 하늘의 아들(天子), 바로 황제에게 체현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 1권 처음부분

 

지난 4세기 동안의 지도자들이 그랬듯이 1980년대의 중국 지도자들에게도 정치적 저항이나 통치행위에 참여하려는 욕구는 여전히 불충의 증거이자 무질서의 전조로 보였다. 그러나 중국이 허약한 무능력의 악순환에 다시 빠지지 않으려면 1990년대에는 그런 태도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자금성의 번쩍이는 황금색 지붕과 넓은 아름다운 정원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지만, 그것들은 지금 그 앞에 펼쳐진 거대한 열린 공간으로부터의 새로운 도전을 반사해 버리고 있다. 인민이 그들의 목소리를 되찾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근대 중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2권 끝부분.

 

2권 뒷부분에 수록된 가나다 순 용어 해설도 매우 유익했다. 서가에 오래오래 간직하고 참고할만한 내 인생의 책이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중국사는 춘추전국시대나 삼국시대 등 고대사만 알고 오히려 현대사는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 또 이유 없이 현대 중국을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아마 한반도인으로서 중국을 무시하는 시대를 살아본 세대는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싶다). 그런 분들께 스펜스의 이 책 2권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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