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의 영국사 - 케임브리지 세계사 강좌 4
W.A. 스펙 지음, 이내주 옮김 / 개마고원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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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케임브리지 강좌 시리즈의 이탈리아사를 아주 감명깊게 읽었기에 연달아 독일사를 읽고 영국사까지 읽게 되었는데,,, 아! 이 책은 나의 예상을 초월했다. 이 책은 보편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영국사가 아니라 정치사이다. 근대 영국의 정당들이 의회를 중심으로 자신들이 속한 집단, 계급의 이익을 위해 경쟁적으로 입법을 하고 서로 견제하며 선거법 개정을 위해 노력해온 결과, 다른 나라의 경우처럼 급격한 혁명의 경험 없이도 민주주의를 이룩한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몇 년도의 선거 결과는 어떠했고, 그 때 어느 당이 어떤 정책을 내세워 유권자에게 호응을 받거나 외면당하거나 했으며, 그 때 수상은 누구였는데, 왕은 어땠고,,,,, 하는 사실을 나열한 책이어서, 난 거의 멘붕 상태로 활자만 읽어 나갔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영국사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으로 소위 대영제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이 성립된 1707년부터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가입한 1972년까지의 근현대사이다. 딱 대처가 보수당의 신임 당수로 선출된 시점까지인데, 이 기간은 영국이 해가 지지않는 제국에서 서서히 물러나는 시기이지만 영국 대중에게 민주주의 참여의 폭이 넓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저자 W. A. 스펙은 이러한 영국 근대사를 휘그 사가의 관점, 즉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영국국민들이 의회를 중심으로 왕과 귀족세력에 대항하여 투쟁한 역사로 보고 서술하고 있다. (참고로, 토리적 관점, 보수주의적 관점은 영국사를 자유의 투쟁과정이라기 보다는 국왕을 중심으로 지배계급이 이해관계를 잘 조정하고 타협해왔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이룩했다고 보며, 마르크스 주의적 관점은 사회 경제적 관계를 중시하는데,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계급 갈등을 역사 전개을 동력으로 본다고 한다.)

 

영국 근대 정치사나 정당사에 관심있으신 분께는 강추. 그러나 기본적 영국사와 유럽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심지어 양차대전까지도 전쟁 진행 과정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전쟁에 임하는 각 정당, 정치인들의 입장과 유권자들의 선택 위주로 서술하고 있기에.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지 못했다. 리뷰를 남길만한 독서를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한 리뷰가 하나도 안 달려 있었기에 의무감으로 이 짧은 글을 남긴다. 주의하시라, 이 책은 일반적인 영국 근대사 통사가 아니라 정치사이다. 현재의 무식한 내 입장에서 얻은 소득은, 토리당과 휘그당만 나오다가 현대에 노동당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알아낸 일 정도. 그러나 나중에 다른 방향으로 공부하다보면 이 책을 다시 찾을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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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만들기 - 신화와 역사의 갈림길
서울대학교 인문학 연구원 '영웅만들기' 프로젝트팀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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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역사서적에 관심을 두고 읽어나가면서, 여러번 경악을 했다. 처음, 어릴적 읽었던  문학 서적이나 다른 쟝르 책들에도 어쩜 이렇게 서구편향, 강자 위주의 역사관이 바탕으로 깔려 있는가 하는 점을 알았을 때 난 눈을 가리고 비명을 질렀다. 또 역사책에 기록되어 다 객관적 사실이라 생각하고 읽었던 사실들이 다 어떻게 서술자나 서술되던 당 시대 혹은 정권의 이용가치에 따라 변형되었는가를 알았을 때, 이번에는 난 귀를 가리고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시야가 좁고 아는 것이 없어서, 내가 막연히 문제의식만 갖고 있던 주제들을 어떻게 학계에서 접근하는지, 어떻게 다루는지를 알 수 없었기에 답답했었다. 그래서 사방으로 검색하고 찾다가 만난 책이 바로 이 책. 절판되고 도서관에도 없어서 정말 고생해서 구해 읽었다! (이런 내가 기특하다!)

 

제목과 달리, 영웅 자체에 대한 담론은 없다. 6인의 전문 교수 필진이 서양사 근현대 속의 유명인물들이 각 국가별 시대별 정권별 요구에 따라 어떻게 영웅화되고 신화 속의 인물로 격상되어 이용되는지를 건조하게 짚어간 자료집 같은 성격이다. 연구진이 각각 다루는 인물들은 나폴레옹, 잔다르크, 엘리자베스1세, 비스마르크, 무솔리니. 이들은 영웅화와 신격화와 왜곡, 혹은 정권교체나 시대 변동에 따른 격하 등 부침의 과정을 거쳤지만 최종적으로 유럽 근현대 국가 형성 과정에서 각각 자국의 국민 정체성 형성에 강력히 이용되었던 인물들이다. 결국 우리가 위인전이나 세계사 책들을 통해 단편적으로 알고있던 이들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 객관적 사실'이란 강요당한 기억의 파편들일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들 남한의 독자들은 이들 서구의 위인들을 식민지 시대나 냉전시대, 독재시대의 요구에 맞게 변형시켜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책은 내게 아주 유익했다. 이 책을 골라 읽는 목적이 분명했기에. 이런 분들 덕분에 전공자도 아니고 그 나라 언어도 모르는 내가 편히 정보를 얻게 되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나에게는 참고 문헌 목록만 보아도 책값이 아깝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필자에 따라 수준차가 고르지 않았고, 각 인물의 생애에 대한 개괄적 서술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독자에 따라서는 좀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박지향 저자분의 엘리자베스 이야기는 그분의 다른 책에 나온 내용과 거의 겹치기도 했다. 그래도 친구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어릴 적에 유관순 열사나 화랑 관창 등 10대 소년 소녀 애국영웅들을 어른들이 찬양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어린이 위인전을 읽을 때면 무척이나 의아했다. 아니, 어른들은 뭐하고 우리 애들더러 나라를 구하래??? 뭐 이런 해묵은 궁금증이 어떤 영웅만들기의 매커니즘이었는지를 알게 되어, 늦게나마 삐딱했던 왕년의 소녀 독자, 지금 열대야 자정이지만 꽤나 상쾌한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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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험한 책 - 로마 제국부터 나치 독일까지 <게르마니아> 오독의 역사
크리스토퍼 B. 크레브스 지음, 이시은 옮김 / 민음인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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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장 위험한 책>이라는 제목, "어떻게 한 권의 책이 600만 명을 학살하게 되었나"라고 크게 적힌 띠지, 한 권의 책을 입수하기 위한 나치 친위대원들의 빌라 폰타데모 습격 과정이 영화의 오프닝처럼 표현된 이 책의 프롤로그,,,, 하하, 여기에 낚이셨는가? 

 

이 책을 읽어가면서 책 구입 당시의 기대와 달라 살짝 당황하거나 아예 이 책 읽기를 포기할지도 모르실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이 책은 <게르마니아> 본 책과 필사본이 세상에 등장한 경위와 <게르마니아> 오독의 역사를 건조하게 추적한 책이다. 결코 흥미진진한 픽션적 성격을 가미한 대중 역사물이 아니다. 물론, 이 책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읽을만하다. 독자 자신이 이 책을 읽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에 맞춰 기대를 하고 읽는다면. 그러나 기본적인 독일사와 대략의 유럽사를 모른 상태에서 읽는다면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바루스 전투에 대해 모른다면, 아르미니우스(헤르만)이라든가 토이토부르크 숲이 뭔지 모른다면, 유태인 학살 과정의 뉘른베르크법을 모른다면, 게르만 신화와 바그너 악극의 관련성을 모른다면,,, 이 책은 "낚였다!"라는 기분만 들게 만들 수도 있다.

 

<게르마니아>는 고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가 게르만족에 대해 쓴 역사책이다. 당시 타락해가는 로마 지배계층에 경고하기 위함인지 타키투스는 로마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인 게르만족의 야만성과 더불어 육체적 강건함과 전쟁시의 용맹함 등 미덕 또한 기록해 두었다. 이 책은 잊혀졌다가 근대 독일 통일 운동 시기에 독일민족 지식인들 사이에서 재조명 받게 된다. 고대 게르만의 사료가 양적으로 매우 부족한 실정에 게르만족의 장점이 정확히 문자로 기록된 이 책은 곧 민족이식이 없는 분열된 독일 민중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불어넣게끔 이용된다. 중세를 거치면서 필사되는 과정에 이미 약간의 왜곡이 가해진 이 책은 프로이센 주도의 통일과 나치 시절을 거쳐 대대적으로 왜곡되고 의도적으로 오독된다. 이러한 <게르마니아>의 오독 과정과 왜곡 실례 등을 저자인 고전학 교수 크레브스는 해박한 언어 능력을 가지고 방대한 자료를 추적하여 독자에게 전달해준다.

 

사실 고대의 게르만족이란 매우 추상적이고 범위가 넓은 민족 개념이었고, 현대의 독일 민족울 비록 '게르만'이란 단어로 표기한다고는 해도 그때 그 고대 게르만족의 직계 순혈 후손이라고 볼 수도 없다. 히틀러나 나치 친위대 총사령관 히믈러, 그외 독일의 권력자들이 그렇게 주장했더라고 해도 이는 역사적 근거가 있어서 한 이야기가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현실적 이익을 얻기 위해, 자신들의 주장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역사적 권위를 지닌 <게르마니아>를 인용했을 뿐이다. 결국 위험한 것은 고대 문헌인 <게르마니아> 책 자체가 아니라 책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보고 한 구절을 침소봉대하여 이용하는 현재의 독자들이었다.

 

'낚이셨는가'라며 건방지게 이 글을 쓰기는 했지만, 사실 나도 이 책의 진가를 제대로 알고 읽지 못했다. 라틴어와 독일어를 모르기에, 저자 크레브스가 필사본 변형 과정을 추적한 부분의 묘미를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 읽기를 주저하거나 겁낼 필요는 없다. 대중 역사책 읽기에서 중요한 것은 세부사항의 정확한 이해라기보다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주제의식 느끼기라고 난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좋은 대중역사서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확실한 주제의식, 즉 왜 우리가 이미 지난 과거 역사를 알고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독자에게 명확히 주기 때문이다.

 

비단 <게르마니아>에 대한 해석 뿐이겠는가. 과거 역사 해석을 놓고 벌어지는 국가별 분쟁이나 겨우 스포츠 행사일뿐인데도 과도한 민족 이데올로기의 주입을 유도하는 지배계층의 행태를 보라. 자신이 속한 계급의 이권을 정확히 드러내는 정치인의 역사 발언을 보라. 역사 왜곡과 민족 신화를 주입하여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고 600만 유태인을 학살한 나치는 지금도 우리 곁에 널려 있다. 이렇듯 과거 역사를 해석하고 이용하는 시각을 보면 현재의 각 집단간의 이권얽힘이 보여 그들의 정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역사서 독서, 매우 유익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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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 보는 악과 악마
이경덕 / 동연출판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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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일부러 찾아 읽은 게 아니라 내가 관심가는 분야를 읽었을 뿐인데도 계속 만나게 되는 저자, 역자분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이신 이경덕씨도 그렇다.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강상중 선생님 책들의 역자로만 알았다. 그런데 신화, 종교, 일본 역사 쪽으로 읽어나갈수록 자꾸 이분을 만나게 되지 뭔가. 아무래도 내가 독자로서 스토킹에 나서야 할 저자분이신 것 같다.

 

책은 전반부에서는 '악이란 무엇인가'하는 철학적인 문제를 놓고 신화, 철학, 고대 종교에서의 악의 개념을 다룬다. 후반부에서는 일반인들이 갖는 악의 이미지를 생활속에서 살핀다. 민담이나 풍습, 문학작품을 통해서. 내겐 후반부의 여러 사례들이 훨씬 재미있었다.

 

책이 두껍지는 않지만, 담고 있는 내용이 워낙 방대해서, 요약 소개가 불가능한 책이다. 그래도 인상깊은 부분을 잠깐 적어 보겠다. 신화 쪽에서 악의 탄생을 서술한 부분이다. 신화는 인간이 자연을 객관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즉 고대의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면서 자연과 신을 객관적으로 상정하고 사고하기 시작하는 데에서 신화가 탄생했다는 말이다. 천둥벼락이 치면 천둥의 신을 만들고 하는 식으로. 이 과정에서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공포가 악신으로 인격화된다. 그런데 이 인간과 자연의 분리과정 때 일어나는 긴장이 신화에서는 선과 악을 각각 대표하는 쌍둥이의 싸움으로 표현된다는 것! 수많은 종교 경전과 신화 속에 등장하는 쌍둥이의 갈등이 바로 그런 거였다니, 정말 흥미롭다. 또 고대사에서 전쟁에 패배한 종족의 신이 악마의 지위로 전락하여 승리한 종족의 신화나 민담 체계에 편입되어 악마가 탄생하기도 했다라는 설명도 재미있었다. 악은 선에 대응해서 그려지므로 다신교에서의 악마들보다 유일신교에서의 악마들이 더 강력하다는 것도 역시 재미있다. 물론 내게 제일 흥미로운 부분은 몽마(인쿠부스, 스쿠부스), 늑대인간, 마녀, 흡혈귀 같은 서양 중세 민담 속의 소악마들 이야기였다.

 

이 책 자체는 좀 산만하다. 논문 같은 느낌이다. 중언부언하는 내용도 조금 있다. 자신이 아는 방대한 지식을 어떻게 담아낼지몰라 저자 스스로 글쓰면서 곤란해한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저자분이 30대 후반에 쓰신 책이다. (한 저자분을 스토킹해 읽으면서 이 분이 어느 연령대에 이 책을 쓰셨는지, 그 앞뒤로 비슷한 소재나 주제를 가지고 쓰신 다른 책의 수준은 어떤지 비교하면서 읽는 버릇이 있음) 이 저자분은 40세 이후로 대중적 문장 전달력을 갖게 되신 듯 하다. 저자분이 40대 초반에 쓰신 <우리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와 비교하면 이 책은 (죄송하지만) 이 책은 난삽해 보일 정도로 전달력이 아쉬운 편이다.

 

그렇지만 동서양 신화와 종교, 문학을 넘나들면서, 기성 종교와 민중 신앙까지 넘나들면서 (가톨릭과 오컬티즘 쪽  같은) 버라이어티한 예를 들어 어려운 주제를 패기있게 다뤄 주신 점은 정말 감탄스럽다. 나는 이 책에서 여러 방면으로 두고두고 많은 도움을 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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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에서 본 중세 - 책, 안경, 단추, 그 밖의 중세 발명품들, 역사도서관 003 역사도서관 3
키아라 푸르고니 지음, 곽차섭 옮김 / 길(도서출판)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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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미있다, 재미있다! 어떻게 역사서인데, 강단 사학자인데 이런 서술이 가능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감탄하고 즐거워하고 샘나서 아토피 돋은 피부가 마구 가려웠다. 아, 이렇게 위의 두 문장을 쓰고 나니 더 쓸 말이 없다. 약간 또라이 같지만, 책에다 대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당신,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난 거죠? 왜? 왜? 왜? 남자라면 넥타이 잡고 목이라도 조르고 싶다.

 

(계속 이렇게 쓰다가는 친구분들이 걱정하실 것 같군. 워워, 진정하고 계속)

 

키아라 프루고니의 이 책은 서양 중세의 발명품들의 역사를 가볍고 재미있게 들려준다. 안경의 발명자를 추적하는가 하면 중세 성화 속에 등장하는 안경을 놓고 안경의 변천사를 들려준다. 곧이어 대학, 마취약, 대학 교과서와 관련한 책 제작술, 활판 인쇄술의 발명으로 이야기는 거침없이 뻗어간다. 마취약과 아라비아 숫자와 영(0)의 사용과 전파 과정,  카드, 타로 카드, 체스 등의 중세에 발명된 오락과 잡기들의 역사, 카니발과 사순절의 관계, 연옥의 탄생과 도시의 시간, 시계의 발명,  도레미파솔라시 음계의 이름이 붙게된 경위, 단추와 탈착식 소매의 발명, 사치품인 팬티와 바지, 스타킹 착용의 얼마 안 되는 역사까지 중세 발명품들의 소소한 역사가 당시 민중들의 삶과 함께 펼쳐진다. 저자는 마치 구연 동화 들려주시는 할머니처럼 구수하게 대상을 넘나들며 서술하시는 능력자이시다. 포크의 사용사를 말하다가 포크 보급에 지대한 공헌을 한 마카로니의 역사로 넘어가고, 다시 마카로니의 재료인 밀가루 이야기로 넘어갔다가는 밀가루를 만드는 방앗간과 중세의 수력 풍력 사용을 논한다. 재미있어서 미칠 지경이다! 그리고 읽다보면 어느새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중세를 암흑기로만 보고 중세의 가치를 간과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내가 그동안 조금이나마 읽었던 유럽사의 저자들은 대부분 영, 프, 독 국적이었는데 이렇게 이따금 이탈리아 사학자의 책을 읽어보면 서술방법이나 접근방법에서 같은 미시사, 생활사라 해도 매우 개성적인 스타일을 지닌다는 느낌이 든다. 이 부분은 내 공부가 부족해서 아직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저자분이 이탈리아 중심의 중세 역사를 말하고 있는 점은 좀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하겠다. 내가 보기에는 나침반이나 국수, 화약의 발명 등에서 동양의 영향을 언급하지 않는 점은 좀 아쉽다.

도서출판 길의 '역사 도서관'시리즈에 속한 책들은 정말 매혹적이다.현재까지 나온 9권 중 이 책 <코 앞에서 본 중세>와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중국의 서진> 이렇게 3권을 읽었는데 읽는 동안 눈 깜빡이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읽고 또 읽고 싶었다. 마지막 장을 읽고 덮고나니 저자분과 역자분 모두에게 샘이 나서 몸에 열이 오르는 것 같다. 멋진 독서 경험이었다. 아, 이런 헛소리 쓸 시간에 계속해서 더 읽어야지! (혹 오해 있을까봐 밝힘. 3권 모두 나 스스로 구입해 읽은 책임. 심지어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는 품절되었기에 중고서점에서 정가보다 더 비싸게 주고 어렵게 구해 읽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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