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뒷골목 풍경 - 유랑악사에서 사형집행인까지 중세 유럽 비주류 인생의 풍속 기행
양태자 지음 / 이랑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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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비교종교학과 비교문화학을 전공하신 저자가 쓴 대중 역사서이다. 제목과 목차를 보고 악사, 사형집행인, 목욕탕, 매춘의 집 등등 말 그대로 유럽 중세의 뒷골목 풍경에 대한 새롭고 획기적인 이야기거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구입해 읽었지만 좀 아쉽다. 보다 전문적으로 깊이 있게 쓰셨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읽어가면서, 저자분이 더 많은 것을 아시는데 쉽게 전달하느라 많이 줄이셨다는 것이 행간에 느껴졌다. 하지만 중세 유럽 미시사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흥미롭게 시작할 수 있는 좋은 입문서가 될 것 같다.

 

저자분은 학자답게 객관적으로 수집하신 1차 사료를 정리해서 전달해주시고 있는데, 여기에서 그 '객관적'인 시각이 나는 조금 우려가 된다. 예를 들어 루크레치아 보르자 같은 경우는, 그 당시 연대기 등에 기록된 대로만 그녀를 서술해 주면 당연히 엄청난 탕녀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당시 보르자 교황(알렉산드르 6세)에 호의적이지 않은 시각으로 기록된 자료를 당시에 기록된 1차 사료라고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어차피 대중 역사서인데 저자분께서 조금 가이드를 해 주셔도 좋았을 뻔 했다. 나는 중세사의 에피소드를 너무 흥미거리로 소비하게 만드는 서술 방식이 싫다. 아, 이 저자분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일본 공동집필 대중 역사서 번역서에서 흔하게 보이는 기묘하거나 잔인하고 성적인 에피소드 나열하는 중세사 책들 말하는 거다. 이 책은 정말 객관적으로 자료를 충실히 전달해 주신다. 절대 흥미거리로 역사를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기에, 그 기본 자료가 어떤 맥락에서 기록되었는지, 역사 배경을 모르는 초보 독자들에게는 이 책도 흥미거리 에피소드 소비용으로 쓰일 수가 있을까봐 하는 말이다.

 

목판화 등 600점이 넘는 많은 자료를 수집하셨다고 하는데 책에 많이 실려 있지 않은 것도 아쉽다. 그리고 4부 뒷골목의 정치는 바르바라 한 사람 제외하고 다 웬만큼 행적이 많이 알려진 유명인이어서 책의 취지에서 약간 벗어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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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 : 잠들지 않는 전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35
장 마리니 지음 / 시공사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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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관련 자료를 찾다가 읽게 된 책이다. 사실, 자료 찾고 말고 할 것도 없다. 흡혈귀의 역사에 대한 한 권짜리 책은 이 책 밖에 없다. 나머지는 문학으로서 드라큘라 비평 몇 쪽짜리 글, 영화로서 드라큘라 비평 몇 쪽짜리 글,,, 뭐 이 정도 였다. 아니면 오컬트 쪽으로 마녀, 늑대인간과 같이 조금 서술된 정도. 생각 외로 자료가 없었다.

 

시공사 시리즈 답게 가벼운 가격에 묵직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도판, 사진 자료도 풍부해서 좋다. 저자는 고대부터 기록된 흡혈귀에 대한 신화, 전설부터 중세 연대기에 기록된 흡혈귀에 대한 기록들, 그리고 빅토리아 시대의 흡혈귀 문학 대유행 시기를 거쳐 그 정점,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다루고 그의 영화화로 흡혈귀의 전형을 완성하기까지 역사를 서술한다. 물론 그 이후 현대에 와서 이제는 흡혈귀가 사회 속에서 박해받는 소수자를 상징하는 존재로 영상 매체에 등장한다는 사실까지 빼놓지 않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까지, 책의 내용이다.

 

이제부터 내 생각 시작이다. 내가 관심있게 본 드라큘라와 관련해서 저자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상황만 서술하고 있어서 아쉬웠다. 서구 백인 남성이기에 그 정도 밖에 안 보이는가? 하는 건방진 생각도 들었고. 그리고 유명하신 국내 필자들께서 드라큘라 소설, 영화 비평 쓰실 때에 이 책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베꼈군, 하는 것도 다 보여서 좀 웃겼다. 왜들 천편일률적으로 빅토리아 시대의 이중적 도덕관 운운하나 했더니, 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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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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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같은 이야기이지만, 나는 모든 사물의 기(氣)를 믿는다. 특히, 책의 기(氣)를 믿는다. 내가 이번에 된통 앓아눕게 된 원인 중의 하나는 분명 이 책이 내뿜는 비극적 기(氣)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바이러스겠지만, 하지만, 내가 아프기 전에 머리 쥐어뜯으며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이 책이었고,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쓰러졌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이 책은 2차대전 수용소 문학을 대표하는 책이다. 저자인 프리모 레비는 1919년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태어난 세파라딤 유대인이다. 토리노 대학 화학과를 1941년 최우등으로 졸업했지만 유대계였기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한동안 방황하다 제2차 세계대전 말에 파르티잔 부대에 가담했다. 하지만 곧 파시스트 군인들에게 습격을 당해 포솔리 임시수용소를 거쳐 악명높은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같이 수용된 유대계 이탈리아인들이 사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운 좋게도 그는 가스실로 향하는 '선발'을 피해 1945년 1월 해방까지 10개월을 버티었다. 특히 작가는 화학 전공자였기에 나치의 화학 실험실에서 비교적 좋은 대우를 받으며 근무할 수 있었기에 살아남기에 유리한 조건에 있었다. 그는 실험실에서 이 글의 기초가 되는 원고들을 썼다가 해방후 고향으로 돌아가 이 책을 내었다.

 

프리모 레비의 이 책의 특징은, 나치에 대한 분노나 적개심 없이 없이 수인들에 대한 관찰 묘사과 자신의 인간 본성에 대한 사색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문장이 가능한지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오히려 읽어나가다 보면 잘 드는 회칼로 심장을 베는듯한 아픔과 무서움이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단테의 <신곡>과 오딧세우스의 귀향 부분을 시로 읊어대며 버티는 그의 문장, 얼음으로 만든 칼날이다. 그러기에 난 이 책을 어떻게 리뷰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이하, 본문에서 인용한 구절로 채워 리뷰를 진행한다. 부디, 내 친구들은 '날로 먹는다'고 나를 비난하지 마시길.

 

레비 일행은 밖에서 잠구는 수용소 기차에 태워져 물 한 모금 공급받지 못하고 아우슈비츠에 짐짝처럼 부려진다. 노동시킬 사람과 죽일 사람을 선별하는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그들은 구타당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거기서 우리는 최초의 구타를 당했다. 너무나 생소하고 망연자실한 일이어서, 몸도 마음도 아무런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무척 심오한 경이로움만을 느꼈을 뿐이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 (17쪽)라고 쓴다. 그리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작가는 시간이 한 방울씩 흐른다(27쪽)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이미 같이 기차를 타고 온 여자들과 아이들은 처형당한 후였다.

 

그리고 수용소의 일상의 폭력에 대면한 그는 곧 침착하게 모든 것을 기억하기 시작한다. 우리의 언어로는 이런 모욕, 이와 같은 인간의 몰락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34쪽)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모든 모욕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으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수용소는 우리를 동물로 격하시키는 거대한 장치이기 때문에, 바로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동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곳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똑똑히 목격하기 위해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57,58쪽)라고.

 

하지만 그는 나치에 대한 직접적 증오를 표출하지 않는다. 그에게 나치란, 얼굴이나 이름을 직접 대면해서 알 수 있는 실체가 아니어서 증오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 가까이 있는 동료 수용자들에게서 생생한 공포를 본다. 공포는 노예를, 증오는 주인을 움직이는 힘이(60쪽)라는 것을 알아채린 그는 자신들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는 노예가 되어, 이름 없는 죽음을 맞기 훨씬 전에 먼저 영혼이 죽어, 수백 번 행진하고 말없이 중노동을 했다. (81쪽)라고. 아아, 육체가 죽기 전에 이미 영혼이 죽어버린 자신을 의식하고 이를 기록하는 일은 얼마나 잔인한 고통이었을까!

 

이렇게 이미 영혼이 죽어버린 시점에서 인간의 고귀함이나 연대의식 따위는 사라진다. 타인에 대한 선의나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 대한 양보 따위도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루 치 배급받는 빵이나 죽이다. 우리는 다시 무자비하게 잠에서 깨어나 벌거벗고 연약한 상태에서 잔인하게 모욕에 노출된다. 이성적으로는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다른 날과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너무나 춥고 너무나 배고프고 너무나 힘이 들어 그 끝은 우리와 더 멀어진다. 그러므로 회색빛 빵 한 덩이에 우리의 관심과 욕망을 집중시키는 것이 더 낫다. 빵은 작지만 한 시간 후면 틀림없이 우리 것이 된다. (94쪽)에 서술되어 있듯.

 

수용소 내에서는 오로지 자신의 생존과 빵, 죽만이 중요했기 때문에 박해받는 유대인끼리의 동병상련 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치는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혹은 유대인들의 연대의식 생성을 막기 위해 일부의 유대인들에게 특권을 부여하여 조수 비슷한 임무를 맡긴다. 이를 보는 작가 레비의 시선은 이렇다. 유대인 특권층이 만들어내는 인간상은 슬프면서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 과거, 고래의 고통들, 이방인에 대한 전승되고 학습된 적개심이 그들 안에서 하나가 되며,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을 비사교적이고 무례한 괴물로 만든다. 그들은 독일 수용소가 구조적으로 만들어낸 전형적인 작품이다. 노예 상태에 있는 몇몇 개인에게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리, 어느 정도의 편안함과 높은 생존 가능성이 제공되는데, 대신 그들은 동료들과의 자연스러운 연대감을 배신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137쪽)

 

이런 수용소 생활의 면면에 대해서 우리는 우리의 평소 상상과 다름에 의아함을 느끼게 된다. 약자들의 연대라든가 조직적인 저항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려울 때에 더욱더 빛을 발하는 인간애의 모습은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억압당하던 유대인의 일부는 자신들이 특권층이 되면서 나치에게 당한 것 이상으로 동료 유대인을 억압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모습을 작가는 담담히 묘사한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피억압자들에 대해 갖는 이미지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이 피억압자들은 저항을 하면서,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고통을 참으면서 서로 결속한다. (중략) 그러나 우리 시대에 이민족의 침략을 받은 모든 나라에서, 지배를 당한 사람들끼리 적대감과 증오심을 느끼는 유사한 상황이 전개된 것은 사실이다. 다른 인간적 특성들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수용소에서 특별히 잔혹한 증거들을 포착할 수 없다. (138쪽)

 

이 절망의 구덩이에서 이렇듯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작가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가 차라리 빵 한 덩이에 목숨 걸고, 나치에 대한 증오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인간 유형이었다면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작가는 끝까지 이들 인간아닌 인간 군상을 보면서 자신의 인간됨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니, 자신의 인간됨을 끝까지 지키기를 소망한다. 자신의 도덕 세계의 한 부분이라도 포기하지 않은 채 생존하는 것은, 강력하고 직접적인 행운이 작용하지 않는한, 순교자나 성인의 기질을 타고난 소수의 뛰어난 사람들에게만 허용될 뿐이었다.(140쪽)라고 화학 실험실에서 몰래 숨어서 이 책의 초안을 작성한 작가는, 순교자도 성인도 아닌 자신의 한계에 직면하고 그러니까 무엇보다 먼저 내적 해방을 위해서 (작가의 말 중) 이 책을 쓴 것이었다. 수용소에서 살아 남았지만, 영혼까지 살아 남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우슈비츠에서 육체가 살아 남아 이 책을 쓴 작가 프리모 레비는 1987년, 끝내 자살했다.

이것이 프리모 레비, 그란 인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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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 16세기와 17세기의 마법과 농경 의식 역사도서관 2
카를로 긴즈부르그 지음, 조한욱 옮김 / 길(도서출판)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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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절판된 책이어서, 그동안 다른 역사책에 인용된 부분만 읽으면서 감질나 죽을뻔 했다. 그러다 드디어 온라인 헌책방에서 이 책을 구해 읽게 되었다. 오, 명불허전! 읽어가면서 책의 한 장 한 장이 넘어가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무지무지 재미있었다. 한편 독학의 한계랄까, 답답함이랄까,,, 그런 감정에 빠져 들기도 했다.

 

우선 저자 소개부터. 카를로 긴즈부르그는 현대 서양사학계에 '미시사'라는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제시한 세계적 역사학자이다. 잘은 모르지만, 현대 서양사학계가 실증주의의 독일 사학에 대한 반동으로 프랑스 아날학파가, 또 그 아날학파의 계량경제사학을 바탕으로 하는 거시사적 역사분석에 대한 반대편 연구 입장으로 이탈리아 미시사 사학이 생겨난 것 같다. (더 묻지 마시라, 이 부분은 좀더 공부해야 할 듯) 이 미시사 연구의 시초가 된 사람이 카를로 긴즈부르그이고, 그 시발점이 되는 책이 저자가 27세에 박사논문으로 발표한 이 원고이다. 

 

베난단티(복수형, 단수형은 베난단테)라는 존재는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이탈리아 프리울리 지방의 종교 재판 문서에 나타난다. 이들은 병자들을 치료해주고 마녀들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양막을 쓰고 태어난 이들은 때가 되면 대장의 부름을 받아 영혼이 빠져 나가 일년 사계절이 바뀔 때마다 들판에 모인다. 이들 베난단티는 수숫대를 든 나쁜 마녀들에 대항하여 회향목 가지를 들고 밤새 싸우는데 그들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기록을 보면 이 지방의 베난단티들은 수없이 많으며 그 진술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그외에도 베난단티는 죽은 자들이 고향 집에 돌아오는 행렬에 참여하기도 한다. 즉, 그들은 풍요의식을 거행하고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샤먼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종교재판관들은 이런 베난단티를 사악한 마녀들과 동일시하는 유도심문을 한다. 그래서 후대에 내려올수록 베난단티는 마녀와, 그들의 풍요 의식은 마녀의 사바트와 동일시된다. 말하자면, 기독교에 민중 신앙이 굴복한 셈.

 

그런데 저자는 프리울리 지방의 종교 재판 관련 문서들을 소개하면서 건조하게 재판 진행 과정과 베난단티 신앙의 변모 과정을 나열하기만 할 뿐, 역사적 해석을 가해서 독자에게 들려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문학 작품도 아닌데 빈 부분을, 역사적 의미를 나 스스로 읽어가면서 계속 생각해야만 했다. 보다 대중적인 역사서를 읽을 경우, 저자가 읽고 공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저자가 역사를, 세계를 어떻게 보고 해석하고 가치를 부여하는가, 하는 점이 독자인 내게 확연히 보이는 반면,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현재의 내 수준에서 읽기에는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해가면서 기존 고대부터의 기층 민간 신앙에 압력을 가하여 유럽 민중의 일상 생활까지 지배하려 하는 시도, 그 과정에서의 민중 신앙의 변모 과정이 보여 흥미로웠다. 하지만 솔직히 이 사료들을 어떻게 해석하며 읽어야할지 답답한 점이 더 많았다.

 

그렇기에, 책을 읽어 가면서, 마치 먹을 것을 양 손에 가득 받았는데도 감격에 겨워 무엇을 어떻게 먹고 소화해야 할 지 몰라 당황해하는 거지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 아, 어쩌랴! 책은 다 읽었지만, 나는 여전히 배고프고 목마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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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미국사 - 인종과 문화의 샐러드, 미국 처음 읽는 세계사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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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역사 교사 모임'의 야심찬 '처음 읽는 세계사' 시리즈의 두번째 책이다. 첫번째는 터키사였는데 그 책이 아주 좋아서 이 책도 별 고민 없이 선택했다. 전체적으로 책은 괜찮은 교과서같은 느낌이다. 지도, 사진, 도표가 풍부해서 더 교과서같은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세계사 통사에서 짧게 미국사를 접하고 처음으로 미국사를 전체 한 권으로 읽기를 원하는 독자에게 좋은 입문서 역할을 할 것 같다. 중학생 이상이라면 누구나 쉽게 침대에 누워 읽을 수 있다.

 

책의 구성을 보면, 원래 미국의 주인들의 문명, 역사 이야기가 1장에 걸쳐져 있다. 전체의 1/8분량이다. 2장은 유럽인의 침략, 3장은 독립전쟁과 미국의 탄생, 4장은 미국의 서진과 완성, 5장은 남북 전쟁, 6장은 19세기 후반부터 1차대전까지, 7장은 대공황과 2차 대전까지, 8장은 냉전시대부터 911을 거쳐 오바마까지를 다룬다. 다른 책에 비해 원주민과 그들을 몰아낸 서구인들의 미국 건국, 형성 과정을 비중있고 올바르게 다루고 있다. 그 분량이 책 전체의 절반이나 된다. 바로 콜럼버스(멀쩡히 잘 존재하던 미대륙을 '발견'했다고 묘사하는)와 독립전쟁, 남북전쟁의 의의 나열로 들어가버리는 다른 책들에 비해 아주 맘에 드는 구성이어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상하게도, 베트남 전쟁이후 현재까지의 미국사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2차대전 이전까지의 미국사는 별 문제의식 없이 보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데 현재 미국의 대외적 패권구사의 문제점은 이미 미국 형성과정에서 다 드러난 점의 재판이자 삼판이자 전지구적 확대재생산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대내적 정책의 실패는 이민으로 인한 미국 형성과정에서 기득권을 놓고 벌어진 일들의 재판, 삼판인 것이고. 그런 정확한 지점을 알려 주기에 이 책의 이런 구성은 아주 맘에 들었다. 또 20세기 이후의 미국사는 세세한 자국사보다 전체 세계와의 관계 위주로 서술해 주신 점도 좋았다. 어차피, 우리 입장에서 보는 미국사니까 그렇다.

 

책을 읽어가면서 혼자 실실 웃었다. 이 책을 집필하신 선생님께서 얼마나 고심을 하셨을지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실제의 미국과 우리(특히 전쟁 원조를 기억하시는 어르신들)가 생각하는 미국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채워 서술할 것인가, 쓸 데없는 태클은 피하면서,,, 하는 고민을 하신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덕분에 이 책은 하워드 진이나 브루스 커밍스의 역사책보다는 온건한 표현으로, 기존 교과서 서술보다는 진보적 시각을 담는 성과를 이룩했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좀 싱거웠다. 좀더 세게 서술해도 될 것을! 하하. 예를 들어, ''고립주의 원칙이 미국이 내세우는 대외 정책의 기본 노선이었다. 물론 라틴 아메리카 등지에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 원칙은 기꺼이 포기되었다(본문 292쪽)" 혹은 "트루먼 독트린은 이후 30여년간 미국 외교 정책의 기본 방향이 되었다. 미국은 소련과 공산주의에 반대하기만 하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억압적인 독재 정권도 지원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런 미국의 행위는 미국이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 국민을 희생시킨다는 이유로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본문 316쪽)"와 같은 문장. 저자의 고심이 느껴져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세계사 책에서 미국사 부분 요약된 부분만 읽으면, 사건 연대와 그 의의 위주로 저자의 시선만 따라 읽게 된다. 식민지 엘리트들의 이권을 챙기기위한 독립전쟁은 민주주의를 지키기위한 위대한 혁명이 되어버리고, 연방의 와해를 막기위해 명분을 획득하고자 선언한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은 인류애가 가득한 선언으로만 보게 된다. 미국의 생산품을 소비할 시장 확보와 공산주의 확장을 막기위한 마샬 플랜은 유럽의 전후 복구를 위한 형제애로 여기게 된다. 미국의 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실력행사였던 70년대의 오일 쇼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단지 이기적인 아랍의 자원 민족주의 탓으로만 알게된다. 아아, 미국 혹은 모든 강자들이 내거는 '명분'은 일단 한번 의심해 볼지어다!

 

결국, 1차대전 패전국 식민지에만 적용시키려는 전후처리용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를 믿고, 미국의 지원을 오해하며 3,1운동 일으킨 우리 조상님네들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역사의 진행 과정을 다 자신의 눈으로 목격하고 판단과 의의는 자신이 내려야 한다. 그리고, '명백한 운명'이후 미국인들이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 이면의 구린내를 늘 맡아내야만 한다. 안 그러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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