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 길 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 작가정신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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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작가님의 건달파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헤라클레스가 불교 도상에 미친 영향이 궁금해졌다. 헤라클레스, 금강역사를 넣어 이리저리 책 검색을 하다 보니 <오래된 지금>, <솔도파의 작은 거인들>과 더불어 이 책이 나왔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내가 궁금한 부분의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헤라클레스의 상징인 사자가죽과 몽둥이가 알렉산드로스에게 이어지고, 알렉산드로스 원정에 따라 간다라 지방 미술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부처님의 보디가드인 금강역사가 사자 가죽을 쓰고 제우스의 벼락인 금강저를 들고 있는데, 그 영향을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정도. 이렇게 이렇게 이어진다는 나열만 있고 왜 그런지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은 비단 헤라클레스와 금강 역사 뿐만이 아니라 우리 주위, 특히 유럽의 건축, 회화, 조각, 일상 생활문화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온갖 그리스로마 신화 속 상징에 대해 밝혀 준다. '풍요의 뿔'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사실 그동안 읽은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 시리즈와 그리 다른 바는 없었다.

 

책은 이윤기 저자의 다른 책들보다 더 구어체로 되어있고 도판이 많다. 강연한 내용과 슬라이드를 그대로 옮긴 것 같은 느낌이다. 그동안 저자의 다른 책을 읽었기에, 책으로 읽으니 그리 신선하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 이런 내용을 듣고 본다면 굉장히 지적 충격을 받고, 강연 내내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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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괴담 - 기묘한 일본문학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문 일본학총서 14
일본고전문학문화연구회 지음 / 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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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와 역사에 관심이 많다보니 만나게 된 책이다. 원래는 '이류혼인담'에 대해 깊은 분석이 담긴 자료가 필요해서 주문했는데, 내가 원하는 내용은 없었다. (나카자와 신이치 교수의 책이 오히려 이류혼인담 분석 쪽으로는 더 나은 듯. ) 하지만 각 장별 관련 일본 고전들을 많이 언급해 주어서, 이쪽으로 관심갖거나 글 쓸 일이 많은 분들은 한 권 구비해 두는 것도 좋을듯하다.

 

0장에서는 일본 괴담에 대한 소개 정도의 이야기가 있다. 1장은 고양이와 일본 문화, 괴담의 관계를 다루고 2장은 1장과 비슷한 구성으로 너구리 이야기를 다룬다. 3장이 내가 관심있었던 이류혼인담을 소개하고 있다. 여우부인, 거북부인, 학부인, 조개부인, 뱀부인, 설녀(유키온나),,, 참 부인도 많다. 원숭이 사위(사루무코)나 갓파 이야기는 없어서 아쉽다. 그리고 이런 다른 존재와 결혼하는 이야기의 의미나 역사적, 문화적 배경 분석이 없어서 아쉬웠다. 4장은 '혼을 깃들이는 나라 일본'이라는 제목 아래 검은 물, 저주 인형 등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본인 연구자의 글을 번역해서 실었는데, 글이 매끄럽지 못하다. 일본인이 한글로 쓴 글을 그냥 실었는지도 모르겠다. 5장은 외계인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에서 온 그 외계인이 아니라 말 그대로 외계, 일본 아닌 다른 곳에 사는 존재를 다룬다. 그러니까 에도시대 남만인 홍모인도 다 외계인이었던 것이다!!!!

 

전문 연구자가 썼는데도 전문적이지 않고, 이런 쪽으로 예는 이런 책에 있다, 정도 소개로만 끝나 버린 것이 아쉽다. 오히려 일반인 저자인 모로 미야가 쓴 책들이 더 예도 풍부하고 깊이 있어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각 장마다 흔히 보기 어려운 일본 고전 번역문이 실려 있는 것은 좋다. 「고양이 마을(猫町)」「여러 지방 백가지 이야기(諸國百物語)」「자세이노인(蛇性の淫)」「가나와(鐵輪)」「진세쓰유미하리즈키(椿說弓張月)」일부가 실려 있다. 하지만 어느 장에서나 <겐지 모노가타리>가 인용되고 있다. 아, 이제 드디어 히카루 겐지님, 당신을 만날 때가 무르익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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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역사 세계신화총서 1
카렌 암스트롱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감수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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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신화의 구조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찾아 읽은 책이다. 얇지만 깊은 통찰력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책장 넘길 때마다 읽을 분량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워 배고픈 강아지처럼 끙끙거리며 읽었다.

 

이 책은 역사라서기보다는 문학사나 종교사 책이다. 이렇게 뜻밖에 보석같은 책을 만나게되면, 모든 史자 붙는 책에 열광하는 나의 습성도 꽤 쓸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책 전체를 7장으로 나누어 신화의 역사를 조곤조곤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그 시대 구분 기준은 일반적인 통사서 기준과 같다. 1장에서는 신화의 기능에 대한 대략적 설명을 해 주고 2장부터 본격적 신화의 역사를 서술하는데, 그 시대는 구석기, 신석기, 기원전 4000년경부터 800년 경까지의 초기 문명 시대, 그리고 현대의 종교 기반이 발생한 기원전 800년경에서 200년경까지의 기축시대를 다룬다. 저자는 기축시대에 이어서 탈기축시대를 기원전 200년경에서 기원후 1500년경까지로 잡는다. 16세기의 종교 개혁 시대를 신화의 역사와 관련해서 주요한 분수령으로 보는 것이 재미있다. 마지막 제7장 신화의 대변혁기는 1500년경부터 현재까지이다. 현재 신화가 하던 역할은 소설이 하고 있다는 말로 신화의 역사가 끝난다. 역사의 새 시대로 들어설 때마다 인류와 신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바뀌고, 이는 신화에 반영되는 것이다.

 

제1장인 '신화란 무엇인가?'에서 저자는 본격적 신화의 역사를 이야기하지 전에 신화가 갖는 의미와 기능부터 밝힌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기에 인간의 상상력은 종교와 신화를 만든다는 것. 신화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겪는 곤경에서 헤어날 수 있게 도와줘서 이 세상을 더 열심히 살아가도록 만든다는 것. 그래서 신화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다음 장인 2장에서는 기원전 2만년 경에서 8000년경까지 '구석기시대-수렵민의 신화'를 서술한다. 나약한 인류는 자연을 접하면서 하늘과 대지에 대한 신화를 만들어낸다. 네안데르탈인의 장례 풍습을 통해서도, 알타미라와 라스코 동굴 벽화를 통해서도 구석기시대의 신화의 형성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수렵민들이 사냥 과정에서 죽음을 목격하고 종교와 신화에 대한 관념을 가지게 되었음을 말한다. 특히 이 시기의 샤먼와 영웅신화 형성 부분이 읽기에 재미있었다.  신석기 혁명을 거쳐 인류는 농경을 체험하고 씨앗이 죽어서 부활하는 과정을 신화에 반영하게 된다. 또한 고된 농업 노동 과정을 잃어버린 낙원의 신화로 반영하기도 한다. 초기 문명시대는 흔히 세계 4대 문명시기라고 불리는 시기인데, 도시가 건설되면서 새로운 도시의 건설과 유지에 대한 경험이 신화에 반영된다. 도시 경험을 한 인간들은 자신들을 독립적인 개체로 보게 되어 인간의 역사가 신화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 시대 신화의 재해석이 이 시기에 일어나 신앙의 공백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 공백은 기축시대에 놀라운 예언자와 현인들이 등장하여 인류 신앙의 발전에 중추역할을 함으로써 메꿔진다. 유교, 도교, 불교,힌두교, 중동의 일신교,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등장한 시기이다. 이 시기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격변이 있던 지역에서 신화에 내적이고 윤리적인 해석을 부여하는 변화가 일어나 현재까지 인류의 종교와 신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칼 야스퍼스는 이 시대를 기축시대(Axial Age)라고 불렀다. 이어지는 탈기축 시대는 16세기까지인데 기축시대의 일신론을 다시 언급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약진을 다루고 있다. 이 서구의 세 일신교는 부분적으로나마 신화적인 아닌 역사적 바탕을 갖고 있는데, 이 역사적 사건은 종교적 영감을 주기 위해 제의 등으로 신화화된다. 마지막 시대는 종교 개혁이후 현재까지이다.  이 시기는 산업 혁명 등으로 로고스가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 신화의 빛을 잃게 한 시대이다. 그리고 종교 개혁가들은 전시대까지 상호보완적이던 신화와 종교의 관계에서 신화를 분리해냈다. 그러나 로고스는 인간 의식의 심연을 설명해주지 못했고 신화를 잃은 현대인들은 아노미 현상을 겪고 있다. 이에 저자는 로고스가 대신할 수 없는 신화의 몫을 인정하고 현대의 신화인 소설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성장하기를 권한다. 예전에 신화가 했듯이. 그러므로 신화는 매번 다시 쓰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화의 도움을 받아 일변 무질서하고 산만하게 보이는 사건들에서 핵심을 파악하고 우리가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화란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주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에게 유효하기 때문에 진실인 것이다.

 

이상 이 책의 내용을 간추려 보았다. 쓰다보니 너무 거칠어서 오히려 이 책의 이해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오해를 하게 만드는 요약같다. 책의 곳곳에 신화와 인간의 삶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문장이 많은데, 이렇게 간추리다 보면 그 내용을 다 놓치게 되어 안타깝다. 그래서 맛보기로 본문 인용을 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씨앗은 곡식을 만들어내기 위해 죽어야만 했다. 가지치기는 사실 식물에게 도움이 되었으며 새로운 성장을 촉진했다. 엘레우시스의 입문식은 죽음과의 대면이 정신적 재탄생으로 이어지며 인간 가지치기의 일종임을 보여 주었다. 영생을 가져올 수는 없었다. 영원히 사는 것은 신들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화는 죽음의 얼굴을 침착하게 바라보며, 이 세상에서 더 당당하게, 따라서 더 알차게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실제로 우리들은 매일, 이미 일정한 위치에 도달한 자신의 모습을 버리길 강요받는다. 신석기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통과의례에 관한 신화와 의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유한한 삶을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변화하고 성장할 용기를 갖도록 도와주었다.  - 본문 64,65쪽

 

이 책을 읽는 내내 위의 인용부분 같은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와서 목이 메었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우울할 때 신화나 소설 등을 무작정 읽어대면서 품었던 질문이 풀리면서, 그동안 묵은 응어리 같은 것이 함께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이론서인데 좋은 문학 작품을 읽은 것처럼, 누군가의 따뜻한 품 안에 안겨 있는 것처럼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영웅신화를 통해 개인의, 어린 소년의 성장 과정을 설명해주는 부분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이 저자분은 깊고도 넓은 자신의 지식을 독자에게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엄청나시다. 자신의 지식을 체화해서 육성으로 전달해주는 사람 같다. 저자의 이력을 읽고, 자서전을 검색해서 정보를 알아보니 이 분의 글이 내게 와락 안기는 그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다. 심지어 이 저자를 좀더 일찍 만났더라면 나의 20대, 30대가 좀더 평온했을까하는 생각까지도 든다. 책을 다 읽었지만 리뷰 쓰기 전에 저자분 검색해서 전작 읽기 리스트를 만든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아, 이런 인문서를 이렇게 감상적으로 리뷰랍시고 써 놓아도 될 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정신줄 놓고 쓴 리뷰를 내가 봐도 창피하지만, 지금 나는 매우 감동에 벅차 잠도 안 오는 상태임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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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
신동흔 지음 / 우리교육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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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 베텔하임의 <옛 이야기의 매력 1,2>를 참 재미있게 읽고, 우리나라의 옛 이야기를 분석한 책도 있었으면(구비문학 개설 말고 대중적인 책) 하고 생각하다가 드디어 만난 책이다. 작년 발간 당시 구입해 띄엄띄엄 읽다가 이번에 통독하고 리뷰 남긴다.

 

신동흔 선생님은 <한겨레 옛 이야기> 시리즈를 기획하신 분이다. 애들 읽는 시리즈 책을 이따금 보면서 이 분은 누구시길래 흔한 전래동화뿐만 아니라 아기장수와 바리데기와 제주 무가의 주인공까지 과감하게 전집에 넣으셨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 분의 저서 한 권을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문학이나 역사를 다룬 대중서를 읽으면 나는 그 텍스트 자체 분석보다(사실 정답을 알려 읽는 것은 아니니까) 그 텍스트를 보고 삶에 적용하는 저자의 시선,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배경 지식에 더 관심이 간다. 이분은 이야기를 통한 개인의 성숙에 관심이 많으신 분 같다. 베텔하임 쪽이다. 그런데 아기 장수 설화에서는 민중의 영웅을 지키는 법에 대해 역설하시기도 하다.

 

단순 권선징악이 아니라 과거와 절연, 고개를 넘어 새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하는 장자못 전설, 구렁이가 인간에서 용으로 삼단 변신하는 이야기에서 사랑과 믿음의 중요성을 말하고 선녀와 나뭇꾼에서 아내, 내 곁의 여신을 말하는 등 개인의 성숙과 인간 관계의 지혜를 말해주는 20여 편의 설화.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 글들. 아, 재미있다.

 

책을 덮고 나니, 대학 도서관에서 까만 벽처럼 보이는 <한국구비문학대계>를 한 권씩 뽑아 읽으며 설레던 생각이 난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듣던 생각도 난다. 우리의 이야기가 내게 얼마나 큰 재산인지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은행에 넣어두고 잊었던 유산을 되찾은 기분이다. 덕분에 이 책을 읽은 후 고전문학과 설화를 다룬 책들을 죽 검색해 읽고 있다. 문학과 역사 이야기는 늘 나를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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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의 매력 1
브루노 베텔하임 지음, 김옥순.주옥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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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15년을 함께 한 책이다. 1998년, 예스 블로그 하기 전에 읽었기에 블로그에 리뷰로 남긴 적은 없다. 그 사이에도 계속 이 책을 군데군데 읽기는 했지만, 어제 다시 맘 잡고 통독하고 리뷰 올린다. 사진을 곁들인 이유는, 이 책이 얼마나 낡았는지, 내가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이 책을 좋아했는지를 내 친구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어서이다. 좋아하는 동화책을 모서리가 낡을 때까지 두고두고 읽는 어린이는 있어도, 좋아하는 동화 이론책을 모서리가 낡을 때까지 두고두고 읽는 어른은 아마 드물 것이다. 핫핫.

 

이 책은 심리학자인 저자의 입장에서 옛이야기가 어린이의 성숙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각 이야기의 예를 들어 서술하고  있다.  옛이야기는 전혀 비현실적이지 않다. 이야기는 환상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어린이가 가진 현실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준다. 구성은 단순하다. 선과 악의 구분도 명확하다. 이를 두고 요새 전집 장사꾼들이 '옛날 이야기는 단순하고 전형적이어서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워주지 못하니 창작 동화부터 먼저 읽히시라'고들 한다는데 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단순함과 권선징악과 행복한 결말, 이는 아이들이 앞으로 헤쳐나가야할 무시무시한 세상에 대한 공포를 덜어준다. 물론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선과 악은 혼재되어 있다. 그러니 이런 단순한 이야기부터 몸에 익혀 항체를 만들어야 한다. 지나치게 잔인하다고 옛 이야기를 순화시키거나 결말을 바꾸는 것도 좋지 않다. 아이들은 악인이 확실히 징벌받는 것을 확인해야 안심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적용시키는 것은 좀 그렇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옛이야기의 기능은 부모를 떠나 세상에 나가기 전의 아이들을 성숙시키는 것, 이 해석은 참 좋다. 이야기 속 가난한 아이는 왕이나 왕비가 된다. 그러나 누구나 현실의 왕과 여왕이 될 수는 없다. 이야기를 읽고 힘을 얻어 건강하게 성장한 아이는 그 자체로 자신의 왕국의 왕이 된 거다. 즉,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 말이다. 아, 좋다.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힘든 일이 있을 때 나는 이상하게 그리 힘들지 않았다. 바닥을 치며 울다가도, 나는 나 자신의 능력을 항상 믿었다. 내 마음 속에는 시련을 겪기도 전에 이미 완성된 진주가 만들어져 트윙클 트윙클 빛나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를 '자뻑'이라 할 지 몰라도, 나는 이 이상한 자신감이 내가 읽은 책들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에서. 난 길 떠나 모험을 하는 아이, 버림받은 신부, 왕국에서 쫓겨난 공주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맷집을 키웠다. 수많은 내 인생의 여러 길들을 시뮬레이션했다. 힘든 일이 닥쳤을 때, 내 머릿속에는 이미 두꺼운 매뉴얼북이 있었다. 펴서 읽고, 실천만 하면 되는 거였다. 이것이 바로 옛이야기의 힘이다. 이런 생각을 마음 속으로만 하고 있다가 이 책을 만나니 어찌나 반가운지! 가슴 속에 품고 읽고 또 읽었다. 변태같지만, 읽다가 감동받아 울기도 했다. 더이상 어린이가 아닌 난 동화책이 아닌 이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을 위로하고 꿈을 꿀 수 있었다. 고마운 책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 웃긴 리뷰에는 반전이 있다.

 

저자인 브루노 베텔하임 (1903년8월28일~1990년3월13일)은 독일계 유태인으로 오스트리아 빈 출신이다. 단박 프로이트가 떠오른다.1938년 빈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디하우와 부헨빌트에 있는 유태인수용소에 1년간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뒤 미국으로 이주해 1944년부터 시카고 대학교에 몸 담았다. 그는 어린이 심리와 자폐아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정신의학자였다. 그런데 이 책이 국내 발간되고 2년 후인, 1990년, 그가 자살했다. 부인을 암으로 잃은 후였고, 유태인 수용소 경험이 있기에 난 그의 자살 이유를 그런 쪽으로만 생각했다. 아, 아무리 마음 속에 옛이야기의 힘을 갖고 있어도 현실은 만만치 않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사실은 자살 직전, 그의 치부가 폭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식으로 심리학을 배우고 학위를 받은 적이 없었다. 운좋게도 나치가 빈 대학기록을 파기시켜 버려 그의 신분을 확인할 수 없었기때문에 그는 자신의 경력 위조와 사칭이 가능했다. 시카고 대학에서 환자에 대한 폭언이나 신체적 폭행, 성적 학대를 자행한 사실도 폭로되었다. 실험 결과에 대한 조작 의혹도 제기되었다. 심지어 수용소 탈출과정에서 독일 군인 매수설까지 떠돈다. 현재 사후의 그에 대한 존경심, 그에 대한 업적 평가는 프로이트에 비견되던 생전만 못하다. 물론, 이런 사항은 각 인터넷 서점의 이 저자 소개글이나 책 날개에 나오지 않는다.

 

아, 이건 뭘까? 이런 인생은 또 뭘까? 이런 책을 쓰고 이런 행동을 한 사람의 마음 속에는 뭐가 있었을까? 자신이 역설한 '옛이야기의 힘'은 어디로 갔나?

그래도 이 책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 다른 저자의 옛이야기 분석하는 글마다 나는 베텔하임의 그림자를 느낀다. 나 역시, 동화나 민담을 다룰 때, 그의 시각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글은 평생 쓰지 못할 것이다. 여튼, 이 책을 읽으며 지난 15년, 나의 개인사와 저자의 개인사가 얽혀 이 책은 더욱 내게 의미심장하다. 여러면으로 잊지 못할 내 인생의 책. 아듀, 내 오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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