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한빛비즈 교양툰 2
솔르다드 브라비.도로테 베르네르 지음, 맹슬기 옮김 / 한빛비즈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누구에게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행복을 누리기 위한 노력에 걸림돌이 될 성차별적 요소는 없어야 한다는 전제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평등 목적보다는 사회 질서유지 차원에서 제정된 법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마다 상이한 생각을 형평성있게 규율하기 위한 명확성이 아직 부족하다. 그런 까닭에 남녀에 관련된 이슈들은 젠더갈등을 야기시키는 양태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았다. 남과 여가 공존하는 세상인 만큼, 남자 vs 여자의 이분법적인 해법은 특정 성별에 치우칠 수 밖에 없다. 현실과 괴리감을 보인 체 사회적 양극화를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기에 우리는 일면식도 없는 다른 사람들로 인한 영향을 받고 살아가고 있다.
 

「만화로 보는 성차별의 역사」 는 남녀평등에 있어서 절대적 소외를 당했던 그동안의 여성의 고단한 삶의 역사를 쉽게 만화로 풀어낸 책이다. 책 자체는 아주 가독성 높은데, 읽고나니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될 주제를 상기시키게 한다. 그것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의 가치를 전제로 할때, 그 유수한 시간속에 여성의 불평등이 당연시되었다는 점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여성의 잠재적인 능력 자체를 봉쇄하려는 야만적인 속성에 기인하기도 한다. 사람에 비해 육중한 몸집을 지닌 동물들을 사냥하던 수렵시절에도 가냘픈 여성들이 수확한 식량이 70% 정도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는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지금에 비해 저장기술이 발달되지 않은 척박한 환경에서부터 여성은 식량을 증식하는 기술을 터득해오고 있었다. 오로지 위험을 무릎쓰고, 거대한 동물을 사냥한 가치만이 인정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불평등 자체가 차별의 묵인에 기인한 면은 아니었다. 드물지만 고대에서부터 여성이 최고의 권력자로 군림하던 국가도 존재한다.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과부가 생겨나자, 수녀원에 은신하는 여성이 늘어났다. 각자의 독립적인 역량을 펼치기 시작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한 세습 권력 계층의 탄압으로 이어진다.
 

르네상스 시대엔 수많은 여성직업이 생겨났다. 여성의 적극적인 자유권이 태동하기 시작하고 불합리한 사회체제를 언급하는 순간 마녀로 지목되어 마녀사냥을 감행한다. 지금은 범죄로 규정짓는 많은 악습들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 즉 그 당시 통치질서에 반하는 세력으로 규정된 이상,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고결한 가치도 존중받을 수 없었다.
 

 무려 30만년 씩이나 이어져오고 있는 성차별의 역사를 보니, 참혹하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전반적으로 여성들의 사회진출은 확대되었는데, 중요한건 양극화의 측면이다. 동일직무 동일임금의 원칙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상당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점차 사회는 수평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기존에 선점한 조직질서 자체가 성평등과 괴리하기 때문이다. 조직 구조자체는 연공서열에 따른 직급을 갖추고 있는 반면, 갈수록 업무 자체가 파생적으로 발달한다. 즉 하위직일수록 많은 시간을 투입해 업무에 매진해야 하는 구조이다. 또한 개인적인 생각으로 학습된 무기력에 기인하는 바도 크다. 힘이 없으니 무기력하게 잘못된 관행을 방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성차별을 해결하려면 남녀간의 그릇된 인식이 극복되어야 한다. 즉 겪어보지 않은 선입견에 고착화된 판단 보다는 개별적인 주체로서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사람이 생활하다보면 알게모르게 외부효과를 발생한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이기적인 행동이 끔찍한 결과를 야기시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늘 조심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 나로 인해 선량한 다른 동성의 개별인이 피해보는 양상을 예방할 수 있다. 세상엔 나쁜 사람들 훨씬 이상으로 좋은 사람들이 많다. 다만 약육강식의 인식에 기인하고, 나약하게 무기력해지는 순간 그것은 수많은 방관자를 만들 뿐이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변하는 것은 없다. 잘못된 관행에 맞서 뭐라도 해야, 최소한 관행으로 여겨졌던 수많은 악습들을 근절할 수 있다.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곁들여 성차별이 근절되려면, 독립적인 주체로 이끌어주고 육성하며 다독거려줄 수 있는 따뜻한 리더가 많이 등장해, 푸근한 젠더감성을 삭막한 사회에 옮기는데 힘써야 한다.
 

 검색만 하면 쉽게 원하는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디지털문화가 발달할수록 단편적인 정보에 의존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러다보니 현상을 일으키는 배경정보는 소홀히 하게 된다. 사실 (Fact) 보다는 이미 결론을 단정내린 제목에 의존한다. 이러다보니 정작 회복해야 할 권리는 소홀히 한 체, 특정 집단에 함몰되어 권력화되는 현상까지 빚어진다. 오랜 세월의 암울한 그림자를 바로잡아 권익을 향상시키지 못하고, 특정의 이해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단구성의 명목으로 전락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진정한 차별 해소는 끊임없는 자기성찰에서 비롯한다. 정작 남녀평등을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많은 시스템은 기계적인 평등에 일관한다. 그러다보니 평등을 위한 정책이 도리어 역차별을 가중시킨다. 평등을 이야기하는데도 여전히 약자의 관념을 관철할때가 많다. 현실에서 남녀의 생물학적인 차이가 일 자체의 능력을 결정짓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과연 여성의 경제활동자체가 제약되던 가부장적인 환경에서의 기준이 얼마나 오늘날의 스마트한 직무에 합리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까?
 

 성차별은 새로운 가치에 대한 배타적인 문화에 기인한다. 즉 기존에 가치로 인정받고 사회적 위치를 점한 세력들의 조직적인 반발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퇴행적으로 누적되면 하나의 악습이 관행으로 정착한다. 성차별은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의 총체라 할 수 있다. 약육강식의 습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상명하복 방식의 조직을 구성하는 형태이다. 즉 일사분란하게 명령 통제될 수 있는 체계부터 마련하는 것이다.
 

 다가오는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작년에서야 우리는 처음으로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다. 이 날만큼이라도 내 자신의 성평등 의식을 되돌아보는 계기점이 되었으면 한다. 끔찍하고 슬픈 일이 회자되며 공론화되는 순간에도 공감능력은 커녕 가십거리 삼는 경우가 허다하다. 적어도 '가까운 내 주변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항상 상기한다면, 가볍게 여길 수 없다. 또한 억울하고 끔찍한 일을 겪었을때 서슴없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따뜻하게 품어주는 정책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이 개선될때만이 성차별이 점진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그런데 매번 산발적으로 일률적인 할당제 관념에 사로잡혔다는 생각을 품어본다.

 오늘날 우리가 당당하게 누리게 된 권리 또한 수없이 이어져온 투쟁의 결실이다. 여전히 결혼자체를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지금의 현재에도 사람이 힘들게 감당해야 했던 많은 노동영역이 기계로 편리하게 대체되고 있다. 편리해질수록 그 틈바구니속에서 잠재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열려 있는 법이다. 다만 4차 산업혁명의 흐름대로 다변화되는 시대의 흐름에 발빠르게 정책이 쫓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더디게 하고 있다. 금기시되던 남녀의 성역이 역전되는 경우도 많다. 극히 일부에 국한하지만 가사영역을 전담하는 경우도 많다.
 

 남녀는 필연적으로 공생해 상호보완적인 작용을 한다. 소수의 지배계층에 기생하는 종속적인 습성이 강할수록 성차별 요소는 고착화될 수 밖에 없다. 반면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외치는 조직적인 목소리가 커질수록 외면할 수 없고 성차별은 퇴출될 수 밖에 없다. 18장은 다소 안타깝기도 하고, 아쉬운 대목아쉬운 부분이 가득했다. 특히 성범죄를 겪고서도 억울함을 신고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주변으로부터의 냉대와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다. 혼란한 사회질서를 통제 규율하는 차원의 법에 가깝다. 그러다보니 최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피해자의 존중 배려는 거의 발견하기 힘들다. 처절하게 투쟁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천부인권을 보장받게 되어있다. 나 자신의 권리는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권리를 명명백백하게 행사할때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나만 아니면 되지.'하는 무관심이 다수의 방관자를 양산하게 마련이다. 결국 성차별 문제는 개별적인 의식이 바뀔때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성별 차원을 떠나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자기 스스로의 만만함이 최대의 적이란 생각을 해본다. 상대방에게 만만하게 여겨지는 순간 일방적인 차별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만만하지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평소에도 솔직한 나의 목소리를 외쳐야 한다. 성차별에 있어서는 참는것이 독이 될 수 밖에 없다. 내가 외친 용기로 인해 동성의 누군가는 뜻하지 않은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나로 인해 나와 너를 든든하게 지켜줄 수 있을때 평등또한 자연스럽게 실현된다. 이제는 차별을 속앓이하며 견디뎌 하지 말고, 숱한 세월 그랬던 것처럼 독립적인 주체로서 당당하게 투쟁을 외쳐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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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여행자에게 - 여행을 마친 뒤에야 보이는 인생의 지도
란바이퉈 지음, 이현아 옮김 / 한빛비즈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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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돌이켜보면, 일상 한 가운데서 발견하는 특별함이 많다. 그 도시의 명소, 내가 사는 동네의 명소는 오히려 그곳에 살지 않는 사람들의 검색에 의해 알려지는 경우가 많은 현실. 원래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익숙할수록 특별함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는 편 이다. 걷다보면 펼쳐지는 조용한 풍경에 어수선한 마음까지도 내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익숙하지 않은 풍경속에서 마주하는 새로움은 보물찾기와 같은 즐거움을 준다. 여행은 늘상 동경의 대상이다. 홀가분하게 바쁜 일상을 미뤄두고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거주지역을 벗어나는 순간엔 만반의 채비를 갖춘다. 길을 나서면, 금새 사통팔달 전국으로 향하는 버스를 마주할 수 있는 내가 사는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아닌 이유이다. 여행을 통해 인생을 발견한 많은 이야기들이 책으로 펼쳐지곤 하는데, 대체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용기 자체를 고무적으로 여긴다.

젊을때 아니면, 떠나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일까?

 

워라벨 에 대한 인식이 이제야 싹트고 있는 현실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한 홀가분하게 여행을 떠나기는 쉽지 않다. 얽매이지 않고 떠날 수 있는 자! 좋은 직장에 다닌다는 증빙으로 봐도 될 것이다. 물론 요즘은 오히려 직장 스트레스에 맞서 온전한 자기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여행을 개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남'이 아닌 '나 자신'이 누려야 할 자존감에 대한 인식이 생성된 덕분이다. 갈수록 여행에 있어서도 자기 주도적인 설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점차 알뜰해지는 것이다. 『돌아온 여행자에게』는 여행의 과정을 설파하는 에세이는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한 가운데서 여행이 가진 의미를 발견하고 자기 주도적 삶을 개척하는 담론에 집중하고 있다.

일상이야말로 진짜 장거리 여행이다.

최근에야 나는 장거리 여행을 일상처럼 하기보다

일상생활을 장거리 여행처럼 하는 게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낯선 곳을 다녀옴으로써 새로운 활력소를 얻는게 여행의 주목적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떠난 여행의 과정자체가 도리어 남들이 많이 가는 곳을 추천받아 빠듯한 일정에 '쉼없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진 않을까? 쉼없이 이어진 바쁜 일상을 해소하려고 떠나는 여행이다. 그렇다면 일상 자체를 조금은 차근히 쉼없게 보낸다면 우리는 충분히 재충전할 수도 있다. 시종일관 이 책은 정말 인생을 통해 실감하는 사실들에 대해서 공감력있게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맹목성이 우선적이던 세대에선 여행은 일종의 사치에 그치지 않았다. 또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에 대해서도 편견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가족으로서의 신뢰 보다는 가부장적인 질서의 한계만 여실히 드러냈다.

우린 모두 떠도는 사이에 어른이 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떠도는 사이에 어른이 된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수 있어야 어른이다. 집 떠나보면 집이 그리워진다. 떠도는 순간 순탄치 않기 때문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스스로 챙겨야 한다. 스스로 챙기지 못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된다. 그러다보니 수동적인 자아에서 벗어나 능동적일 수 밖에 없다. 남이 챙겨주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 챙기고 준비하게 된다. 막연히 피할 수 없고, 떠도는 순간은 어떻게든 극복해야만 하는 상황의 연속이다. 그러다보니 현실의 실체를 눈으로 보고 느끼고 몸으로 겪을 수 밖에 없다. 떠도는 과정 속에 어른이 되어간다.

여행은 세상의 어려움과 고통을 느끼기 위한 것이다. -P27-

알베르 카뮈는 <이방인>에서 어쨌든 나는 실제로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 지 확신할 수 없지만, 무엇에 관심이 없는지는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 고 말했다. -P92-

 

여행을 통해 저자가 얻은 성찰적 고찰이 이렇게 후련할 수가 없다. 구구절절 공감대를 자극하는 통찰력깊은 시각이 담겨있다. 대표적인게 여행을 막는 아홉 가지 부정적인 말의 유형인데... 대체로 이러한 것이다. 험난한 세상속에서 든든한 울타리 역할에 충실해야 할 부모님이 전혀 그렇지 못하고 안절부절 불안한 상황인 경우가 많다. 심지어 어떤 발언권도 허용되지 못하고 종속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행을 떠나지도 못하고 갇혀 지내게 된다. 현실적으로 여행을 떠날 용기조차 사라지게 하는 원인이다. 그러함에도 소중한 우리 자신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라도, 세상속에 온전한 내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라도 용기를 내어야만 한다. 인생을 통해 우리는 함께 돌아보는 지혜를 발견해야 한다.

혼자 하는 여행은 스스로를 잘 돌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둘이 하는 여행은 서로를 잘 돌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여행은 여러 사람이 함께 돌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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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불렛저널
Marie 지음, 김은혜 옮김 / 한빛비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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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좋은 습관이 생활을 바꾸고, 결국엔 기본적인 운명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옛말이 틀릴것 없는것이 결코 좋지 않은 행동습성을 버릇이라 한다. 고쳐야 하는데 결코 쉽게 고쳐지지 않는 악순환의 유형이다. 새해가 되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모두들 시작한다. 2019년의 달력도 이제 첫 장을 넘겨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올해는 제대로 기록조차 못하고 있다. 새롭게 시작할 엄두를 못내게 하는 의욕상실의 일들이 이어지고나니, 기약없이 일정이 멈춰서 있는 상태에 있다. 사실상 해야만 하는 당의적인 일들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날짜로 구분되는 현재, 과거, 미래의 장벽에 스스로 갇혀 있기 때문이다. 당장에 현재 시점만 충실하면 되는데, 현실은 과거에 하지 못했던 일과들을 떠올리며 머뭇거리고 있다. 일의 우선순위가 뒤죽박죽된 여파이다. 시간을 거슬러 이미 하지 못한 일들을 되돌릴 수도 없고, 아쉬워 할 필요도 없는데...

더미에서 우선 벗어나는것 부터 불렛저널 시작하기

 

가득 쌓인 '더미'들 속에서 당장에 해야 할 일들부터 정리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책상 위를 가득 점령한 물건들을 치우고 나니, 한켠에 수북하게 쌓인 메모들을 발견했다. 간편하게 떼었다 붙일 수 있는 포스트잇도 있지만, 유독 애용하는건 이면지의 A4용지들이다. 한면만 인쇄된 용지들을 가지런히 놓고 8등분으로 잘라서 사용한다. 필기구의 종류에 상관없이 빠르게 써내려갈 수도 있고, 살갗에 닿은 종이의 촉감이 편하다.

누렇게 변한 책을 넘길때마다 손끝에 느껴지는 아날로그 감성과 만난 느낌과 일맥상통한다. 빼곡하게 적어둔 메모를 보니, 지나온 과거의 경험의 흔적들과 생생하게 마주하는 감회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시점의 감정상태, 배경 상황 까지도 떠오를 정도였다. 그렇게 정리의 과정을 거치고 나니, 한결 비좁기만 하던 공간도 여유를 찾아갔다. 가득쌓인 공간의 답답함에서는 실감할 수 없었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텁텁하고 답답한 심리적 상태에서 안정을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불렛저널』 방식의 편리한 기록을 떠올린 라이더 캐롤의 당시 상황또한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혁신적인 방식의 다이어리 기록으로 손꼽히는 불렛저널은 알고보면 오래전부터 효과적인 메모의 방식으로 정착해왔다. 노트필기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네모체크리스트에 넣어 기록하며 항목별로 구분하는것이 드물지 않았다. 꾸준한 기록의 습관을 이어가다보니, 터득된 습관의 유형이다. 최근 불렛저널이 주목받는것은 책의 형태로 체계성을 갖췄다는 데 있다. 즉 쉽게 흉내낼 수 없었던 맛의 비결을 레시피 형태로 정형화된 지식으로 옮겨오면서 손쉽게 요리감각을 높일 수 있게 된것과 같다.

생활의 기록을 일목요연하게 시작하는 비결

 

아무리 좋은 책도 딱딱하기만 하면 보는 내내 나른함과 악천고투를 벌인 체 덮는 일이 수두룩할 것이다. 다이어리 기록또한 마찬가지다. 흔한 작심3일의 예가 새록새록 기록하겠다는 연초의 각오가 무색한 새하얀 종이의 발견에 있다. 뭣이 중한지 핵심만 시원하게 간추려주는 일의 순서는 고사하고, 그 흔한 중요일정도 적혀있지 않을때가 많다. 하루의 일정이 일정하지 않은데 1/2장~1장 정도로 배정된 날짜 속지에 기록해야 한다는 강박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고 이미 지난 날짜에 기록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불렛저널은 편리하다. 꼭 매일 일정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최우선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검정 하드커버의 불렛저널이 원서를 번역한 버전이라고 한다면, 『나의 첫 불렛저널』은 대한민국 버전으로 재구성한 실생활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즉 실제 불렛저널을 통해 꼼꼼한 기록을 이어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활용한 다양한 교육법을 블로그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사실 불렛저널 책을 처음 읽게 되었을때서야 비로소 불렛저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원리는 간단한데, 다소 서술에 있어 복잡하다는 생각했다. 『나의 첫 불렛저널』 은 불렛저널의 개념을 인지하지 못한 분이라도, 읽어보면 고개 끄덕할 만한 흥미로운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

소책자 같은 가독성 높은 구성방식

 

불렛저널에 관한 활용 전반을 소개하고 있는데, 책 자체가 두껍지도 않고 가볍게 되어있다. 손에 쥐고 다니기에도 간편해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 쓱쓱 읽어나갈 수 있는것이 매력이다. 저자는 엉망진창 흐트러진 일상에서부터 메모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그리고 우연히 2013년 불렛저널에 관한 기사를 접해 입문했다고 한다. 전작의 불렛저널을 접하면서 사실 불렛기호를 사용한 항목별 정리 방식은 쉽게 이해갔지만, 습관이 되지 않아 실제 적용하는것이 쉽지 않았다. 어쩌면 『나의 첫 불렛저널』을 발간한것도 나와 같이 아직은 습관되지 않은 기록자들이 많은 덕분일 수도 있다.

노트와 펜만 있으면 빠르게 기록하고 싶은데,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필기환경은 짧은 시간에 손가락의 힘을 마비시킨다. 위 아래로 춤을 추려는 필체를 진정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다보면 습관도 정착되기 전에 기본적인 성격만 변질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스쳐지나가는 바람처럼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을 당장에 기록해두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일쑤다. 한참 일정표 범주에서 벗어난 순간에야 깜빡 잊은 자체를 떠올리며 후회하는 일이 많다. 늘 오늘 생각난 일을 미루는 순간 차일피일 결국엔 하지도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일상이다. 기록을 효과적으로 한다는건 일상의 효율을 높여주는 측면이다.

불렛저널을 잘 활용하는건 시간활용성을 극대화하는 비결

 

불렛저널은 나 자신이 나에 관련된 일들을 주체적으로 기록 정리하는 연속선에 있다. 나 자신에게 좀더 전념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해준다. 즉 남으로부터 방해받을 시간을 어느정도 제어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루를 부지런히 보냈음에도 정작 일과를 마치고 나면, 한 일을 별로 떠올릴 수 없는건 중요치 않은 일들을 반복적으로 시간소비도구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불렛저널을 잘 활용한다는건 그만큼 시간 가용성을 축적할 요소를 비축한다는 의미이다. 선택과 집중의 문제에 있어서, 보다 기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여지를 제시한다. 지금은 매 순간이 고민의 연속이다. 정보 과잉의 시대로 불려도 충분할 만큼 많은 선택지들이 있기 때문이다. 누가 대신 선택해주길 바랄 정도의 햄릿증후군 상태의 요즘에서 불렛저널은 일목요연하게 일의 흐름을 개선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도 없고,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할 수도 없다. 시간은 우리가 하고 싶은 욕구에 대비 현저하게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뒤죽박죽 혼돈을 경험하는 사람이라면 불렛저널 방식의 기록을 통해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탈피할 수 있다. 당장에 하지 않아도 되는 미완료 상태의 리스트들 덕분에 마음의 여유를 누리기 힘든 경우가 허다하다. 즉 꼭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숙제와 같다. 미처 숙제를 하지 못한 아이가 안절부절 숙제검사 없기를 은근히 바라는 심정과 같다고 할까? 홀가분하게 끝내놓고 나면 오히려 참잘했어요. 도장을 받기위해 기다려지는 법이다. 일상의 숙제를 홀가분하게 마무리한 사람의 여유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사람의 감성은 디지털 문명을 통한 편리함보다는 아날로그 방식을 통한 전달에 익숙한 측면이다. 꾹꾹 써내려간 긴 편지 자체로도 그 사람의 마음이 읽혀질 때가 많지만, 장문의 메세지가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 착각을 불러일으킬 때가 많다. 지나치게 "빠른 전달"에 익숙한 나머지 최소한의 마음배려를 생략하기 때문이다. 노트와 펜 그리고 꾸준한 습관으로 이어지면 충분한 불렛저널은 그런 면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고양시키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펜보다는 키보드에 익숙해지다보니 갈수록 기본적인 필체도 나빠질 수 밖에 없다. 글씨를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 최소한 고사리같은 아이손으로 그려낸 글씨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깔끔하게 정리된 불렛저널 기록들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마다 얼마나 뿌듯할까? 손으로 쓰는 학습만큼 좋은 사고습관도 드물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당장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고립된 것처럼 불안하다. 당장에 연락해야 할 전화번호는 머릿속에서 사라진 즈음이다. 단순히 불렛저널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일의 진행상황을 체크하는 것을 떠나서 기록을 하다보면 의식적으로 해야 할 일의 순서가 정리될 수 있다. 일일히 훑어보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기억하려는 노력을 촉진한 결과이다. 일일히 당장에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수정하기 귀찮아서라도 꼭 해야할 일들 위주로 정리해 일사천리로 정리하는 습관이 키워질 수 밖에 없다.

거듭 『나의 첫 불렛저널』을 통해, 1년을 마무리할 시점되면 차곡차곡 쌓인 기록들을 마주할 수 있길 바라며, 지금부터라도 당장 해야만 하는 것들부터 망설임없이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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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혜 지음 / 비타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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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골절을 겪은 이후 부쩍 자세에서부터 척추에 좋은 운동들을 살펴보게 된다. 요가는 빠질 수 없었다. 그런데 남성들은 배우고 싶다고해서 쉽게 접하긴 힘들다. 자연스럽게 요가 동작을 조용하게 익히는 데 열중하게 된다. 사실 생활속 동작이 체계적으로 운동으로 정착된것이 대부분이다. 요가의 경우에도 그렇다. 원래의 기원자체가 심신수양 마음의 평정상태를 목적으로 하는 균형의 목적이다. 그러다보니, 우연의 일치로 뻐근할때 하던 동작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나의 동작을 하더라도 올바른 자세로 동작을 취하는것이 중요하다. 제대로 된 교본이 필요한 이유이다. 

 

 

 

 

 

 

 25만 팔로워를 이뤄가는 요가 인플루언서 김다혜 저자의 「누구나 거꾸로 설 수 있다」 책은 요가를 통한 삶의 변화를 담고 있다. 또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인 헤드스탠드 동작을 취할 수 있도록 친절한 안내를 담고 있다. "그거 어떻게 해요?" 하는 질문을 수도 없이 접했을 법 하다. 일명 물구나무서기의 헤드스탠드 이기에 요가를 접하지 않은 사람들도 익숙하다. 하지만 처음 발을 천정을 향해 내디는 순간의 망설임을 순간 떠올릴 수 있었다. 원래 탁월한 운동능력 제로인자인데, 운동회의 매스체조 동작으로 물구나무를 하다보니 정말 공중으로 다리를 곧게 뻗어내는 순간  나도 할 수 있다는 무한 운동긍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원래의 상태보다 균형이 흐트러진 현재의 척추상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여 책을 읽어봤다. 가끔은 헤드스탠드의 역동작으로 누운체로 다리를 뻗어 하늘자전거를 하기도 한다. 즉 목뒤로 깍지 쥔 상태에서 서서히 몸을 뻗어 페달밟듯 다리 스트레칭을 한다. 이러고 나면 몸 전체를 짓눌렀던 통증도 덜해지고 한결 가벼운것을 느낄 수 있다. 책을 읽기 전만해도 헤드스탠드에 대한 동작 설명으로 일관하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실제 실시한 4주간 챌린저 프로그램 내용을 바탕으로 기승전결을 이루고 있다. 그에 앞서 헤드스탠드를 접한 다양한 수강후기를 담고 있다. 왜 요가를 해야 하고, 주의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 일목요연하게 말해주고 있다. 서술방식도 간결해 가독성높은 독서효용을 느낄 수 있다. 

 

 헤드스탠드 동작을 취하기전에 충분한 스트레칭 동작 숨고르기에 관해서도 핵심만 짚어 이야기해준다. 직접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순간 그 분야에 관한 책들을 모조리 찾아 읽는 습관이 있는데, 요가에 관한 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름다운 몸의 곡선을 만들어주는데 집중하다보니, 책속의 동작 하나하나를 끝까지 터득하기 힘들다. 중간에 흥미를 잃기 쉽다. 헤드스탠드는 요가의 동작중에서도 고난도로 분류하는데, 역설적으로는 자신을 믿고 발을 내디딜 수 있느냐에 승패가 결정된다. 물론 이는 물구나무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떠올려본 개인적인 생각이니, 실제와 다를 수 있다.  

 

 

 

 

 요가를 직접 보고 느낀것이 아니다보니, 책속에 담긴 자세한 설명과 자연스런 전개는 인식 자체를 깨우치게 하는 것 이었다.  어느정도 요가를 꾸준히 연마한 사람일수록 이 한권의 책이 화룡점정의 효과를 누리게 할 것이다. 운동동작이 몸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알고 접근한다면 보다 심도있으면서 생활속의 좋은 운동 습관으로 정착할 수 있다. 사실 건강하다 자부하는 순간엔 정작 건강엔 무관심한 경우가 많았다.  건강이 위협받는 순간일수록 관심을 갖게 된다. 몸의 균형이 무너지면, 마음의 평정심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단순히 거꾸로 설 수 있는 헤드스탠드 동작의 효용 차원이 아니라, 거꾸로 되어버린 심신의 위치를 바로 잡는게 아닐까? 꾸준히 연마하여 언제부턴가 자신없어진 내 자신의 기피성향을 떨쳐버리고, 자신감있는 모습으로 변해보고 싶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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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된 불평등 - 첨단 기술은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을 분석하고, 감시하고, 처벌하는가
버지니아 유뱅크스 지음, 김영선 옮김, 홍기빈 / 북트리거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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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존재한다. 누구에게나 자유의지가 있기에 이것을 규율할 통제장치가 필요했다. 총체적으로 관리할 단위 국가의 등장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의 속성을 지니니, 수많은 상호작용을 한다.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해도 국가단위의 스포츠경기엔 자신의 국가선수들을 응원하는 속성과 같다. 자원을 얻기 위한 경쟁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기본적인 필요(Needs)를 충족시킨 이후의 욕구 정도에 따라 보편적인 삶이 영향을 받는다. 인간의 탐욕이라고 칭한다. 이미 선점한 계층들이 선의의 경쟁자들까지 위협으로 느끼는 순간 온갖 불평등 장치를 마련한다. 도저히 경쟁이 될 수 없는 그들만의 조직화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자동화된 불평등은 읽기도 전에 공감하는 부분이 컸다. 어느 정도의 내용이 예상될 정도였다. " 첨단기술은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을 분석하고, 감시하고, 처벌하는가? " 부제의 현실을 우리는 오늘도 겪고 있다. 정보기술이 발달하니, 대체로 과거의 시대에 비해 편리하게 살아가고 있다. 또한 평균치는 날로 상향되고 있다. 그런데 기술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최근의 이슈화된 현실을 봐도 그렇다. 사실 세삼스럽지 않은 일이다. 조금만 인터넷 환경을 이용할 줄 안다면, 대수롭지 않은 사례들을 천지개벽할 사실들로 확산되는 경우가 많다. 엄청난 파급력 앞에 사실여하는 중요하지 않고, 그 자체가 여론화 되는 성향이 크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날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하는 일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대수술을 마치고 난 며칠 후 의료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시스템 사항을 확인한다. 처방전이 취소되었다. 하필이면 막대한 수술비가 들어간 안면재건수술 시점 이후 보험이 개시되지 않는다. 보험 사기 조사 대상자로 지목되어 보험 혜택이 유예된 것이다. 몇 해 전에 보험금 청구를 한 적이 있다. 비교적 양호한 결과를 얻었지만, 여전히 납득안가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철저하게 고착화된 자동화 시스템에 막혀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 비해 정보자체에 대한 접근자체는 훨씬 편리해졌다. 문제는 어디에서부터 찾아야 할 지에 대한 정보망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각종 수급을 위한 편의적인 자동화 시스템은 많이 구축되어있다.

 

 

 

 

예산은 불특정 다수에게 귀속되는 성향이 있다. 국가범주에서 걷어들인 티끌모아 태산의 영역에서 그 규모에 비해 견제가 취약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반면 사회적 약자로 규정되는 계층 예산은 부정수급 관리를 하는 차원에서도 제출서류자체가 많다. 자연스럽게 기존에 정보망을 고착화 시킨 집단일수록 분석 감시 체계가 철저하다. 연금수급조건은 까다로운데, 소득이 조금만 상향되어도 수급자격이 안 된다는 통보는 신속하다. 소득이 여유 있을수록 사회복지자체에 아쉬울 게 없는 법이다. 다만 불공정한 사회일수록 소득에 기반 하는 체제에 저항을 앞세운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은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과 다변화된 정보기술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미합중국 미국사회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을 읽을 수 있다.

 

 

 

 

흔히 기회의 땅으로 불리고, 전 세계의 젊은 인적 자원이 유학을 하는 첨단의 미국의 인상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어느 국가든 빛과 그림자로 나뉜다는 사실을 재발견한다. 그 국가에 살지 않는... 잠시 관광으로 다녀가는 외국인들이 모를 민낯을 책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예산 자체가 절실한 계층일수록 수급을 받기 위해 관리시스템에 편입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최초의 접근 단계에서부터 무기력증을 학습하기 쉽다. 기기를 통한 정보통신기술보급은 상향화되었지만, 그것을 이용해야 할 사회적 약자일수록 정보활용자체를 접하지 못한 세대일 경우가 많다. 또한 당장의 생활을 준비하기에도 벅찬데, 지원을 받기 위해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건 엄두를 내기 힘들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이다.

 

 

 

 

 

 

백만명을 넘어선 외국인을 비롯해, 우리 사회도 빠르게 다변화되고 있다. 점점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데도 전통적인 위계질서에 고착된 나머지 편의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총량적으로 관리해야할 것은 공정한 경쟁질서를 어긋나게 되는 교란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찰라의 순간에도 많은 빅데이터가 발생한다. 이 빅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지에 따라 우리는 평등사회로 갈 수도 있고, 점점 불평등사회로 갈 수 있다. 완전경쟁시장이 촉진되려면,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여전한 삼각형 구조의 조직편제 시스템에선 불평등만 심화될 뿐이다.

 

 

 

 

 

 

정보의 선별이 중요할 만큼, 지금은 데이터로 출력되는 양 자체가 방대하다. 이런 환경은 과거에 비해 응집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개인주의로 일관한다. 반면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조직을 갖춘 집단에서 시작하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빈민일수록 조직을 소집 하기는 커녕 당장의 의식주 문제 해결이 절실할 뿐이다. 불평등이 해소되려면 직접적인 수혜계층내 에서 오피니언 리더가 육성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누구나 노력한 만큼 성과로 보상받는 질서를 만들어갈 수 있다. 책의 마지막 끝매듭처럼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우리들 개개인 자신이다. 자기 인식 자체를 다른 사람이 깨쳐주지 않는다

 

 

 

 

스스로 자각해야만 한다. 갇힌 틀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 나라의 미래는 없다. 이 책은 지금의 시류에도 걸맞게 우리가 인식해야 할 부분을 짚어주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변하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거에는 아무렇지 않게 그러려니 했던 과오들이 밝혀지는 순간에는 거센 저항의 소용돌이를 겪을 수 밖에 없다. 모든 일이 첫 술에 배부르진 않으니까... 그런데 남모를 누군가 덕분에 오늘을 좀더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쌍방향성을 지닌 민주주의 질서에서도 여전히 이분법적인 통제 관념으로 일관하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아직 의식에 갇혀 있는 것이다. 정치사회 문제에 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지를 이 책은 충분히 시사하고 있다. 단순히 관심에서 그치지 않고, 공론화에 있어서 개개인의 조직화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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