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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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강의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는 역사의 아픔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의 전작 소년이 온다가 떠오른다. 그러나 소년이 온다가 과거의 소년에서 출발하여 폭도, 빨갱이, 불순분자, 때로는 희생자로 갈음되던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를 거치고 끝내는 현재를 살아가는 소설가 ''에 이르기까지 '오는 것'이었다면 작별하지 않는다의 진행 방향은 다르다.


작별하지 않는다K시의 소설을 다 쓴 뒤에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설가 경하에서 시작한다. 절절 끓는 폭염에 고통 받던 나의 몸, 산책로 단풍의 아름다움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매몰된 나의 고통은 사고로 손가락이 잘린 친구, 인선의 부름으로 인해 ''의 바깥으로 향하게 된다. ''는 인선의 새를 살리기 위해 폭설을 뚫고 제주로 향하고 나와 인선 중 누가 살고 누가 죽은 자인지 알 수 없는 어두운 밤을 겪으며 인선의 어머니, 제주 4.3의 유족인 정심에게까지 닿는다.


소년이 온다에서 차곡차곡 발화되는 목소리들을 통해, '밝은 곳을 향해 걸으며' 과거가 현재의 나에게 왔다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현재의 고통에서 시작하여 연약하고 실처럼 가느다란 이어짐을 통해 활주로 아래 묻혀 있던 유골들, 광산에 매몰된 몸들, 젖먹이까지 '절멸'을 위해 총살된 사람들, 빛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낙하'하며 과거를 붙잡는다.


축대 아래로 추락하는 것처럼, 눈 비탈에서 미끄러지는 것처럼, 어둠으로 하강하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또한 '두 개의 시야로 살아'가는 새처럼 '두 세계를 사는' 것을 주요하게 다룬다. '한 눈으로는 나를 보고 다른 한 눈으론 내 몸 너머 다른 빛을 보는 것' 같았던 인선의 아버지, 죽었지만 돌아오는 새, 활주로 아래 유골처럼 모로 누워 몸을 굽혀보는 인선, 끌려 간 오빠가 어쩌면 생존자일 수도, 아니면 '갱도 유해 삼천 구 중 하나'일 수도 있는 '두 개의 상태'를 살아간 정심.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하는 이들, 이들은 과거와, 죽은 자와, 사랑과 무심히 작별하지 않아 두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다.


'두 개의 시야로 살아'가는 것은 작품의 기법에도 스며들어 있다. '2부 밤'에서는 손가락이 잘려 병원에 있던 인선이 문득 제주 집에 나타나 경하와 함께 어머니 정심의 흔적을 살피며 과거에 닿아간다. 오래된 신문 스크랩, 구치소 이송 서류 사본, 편지, 증언 등을 통해 과거가 풀어지는 어두운 밤의 시간에 소설은 동시에 마당에서 무언가 바람에 쓰러지며 내는 둔한 쇳소리, 새의 그림자, 바람 소리, 눈의 부드러움 등을 계속 언급한다. 단순히 과거를 극화하여 지나간 시간에 독자가 훅 빨려 들어 몰입하는 것만이 아니라 마치 새처럼, 읽는 이가 한 눈으로는 팥죽처럼 피가 엉겨 붙은 세 자매, 총에 맞은 어린 여동생에게 손가락을 끊어 피를 먹이는 언니를 보게 하고 한 눈으로는 인선과 경하가 있는, 내 하나만 건너면 모두 몰살된 마을에 서 있는 외딴 집, 그 위로 끊임없이 눈이 내리는 이 밤을 보게 한다. 그리하여 독자 역시 언어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살아내는 감각을 겪게 된다.


한강 작가에 따르면 이 소설은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작별>에 이은 '눈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이었다고 한다. 죽은 선배가 어느 겨울 날 나타나는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눈이 되어 사라지는 여자가 나오는 <작별>에 이어 도착한 소설은 '3부 불꽃'에 이르러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죽은 건지, 네가 죽은 건지조차 알 수 없는 어두운 시간, 초는 손가락 반 마디만큼도 남지 않았고 우리의 얼굴에 눈이 쌓여가는 이 시간에, 아직 사라지지 말라, 네 얼굴에 쌓인 눈을 닦고 내 손가락을 이로 갈라 피를 주겠다고. 간신히 성냥을 그어 불꽃을 솟아오르게 하며, 작별하지 않겠다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은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책을 펴면 서지에 적힌 한강 작가의 글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부디 무탈하시길 빌며, 작별하지 않으며'


무탈함을 빈다는 것은 우리의 생이 결코 무탈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강의 글은 무탈하지 않음을, 고통을 깨닫게 만든다. 그리고 이 고통의 생을 살아가는 몸을, 인간을, 사랑을 느끼게 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 읽고 나자 캄캄한 나의 내면에 누군가 흰 눈을 불어넣은 느낌이었다. 이 눈이 쉬이 그칠 것 같지는 않다. 나 역시 말하게 된다. 그러니까 정말, 끊임없이 순환하는 눈처럼 작별하지 않겠다고. 쉽게 끊어버리지 않고 당신을, 우리를 고통으로 사랑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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