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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업 사회 - 일할 수 없는 청년들의 미래
구도 게이.니시다 료스케 지음, 곽유나.오오쿠사 미노루 옮김 / 펜타그램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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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 문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오는 기사의 주제 중 하나입니다. 성장은 둔화되었고, 기업은 비용절감에 혈안이며, 미래가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청년들에게 도전만을 강요하는 것은 하나의 폭력이 됩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문제는 청년실업 문제가 청년만의 과제로 국한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더 많은 복지를 요구하는 흐름 속에서 더 많은 세금이 필요하지만 일하지 않는 청년이 늘어나면서 이를 충당할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 세계가 함께 겪고 있는 공통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저출산·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일본의 현황과 정책은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며, 유교 등 문화적 배경에 적지 않은 공통점을 가진 한국 역시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소개하는 ‘무업사회’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1. 무업사회란 무엇이며, 왜 등장하게 되었을까?

제목을 처음 보고 제가 했던 생각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으며, 취업이 어려워지는 사회적 추세를 ‘무업사회’라 생각했습니다. 역시 저의 짧은 생각과 달리 제목이 다루고 있는 범위는 더욱 넓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 합니다. 


‘누구나 무업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무업 상태에 처하게 되면 그로부터 빠져나오기가 힘든 사회를 ‘무업사회(無業社會)’라고 정의합니다.’


사회적인 현상과 더불어 개인의 심리적 태도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의 원인에는 다양한 것이 있겠지만 ‘종신 고용제’와 ‘연공서열형 임금’으로 대표되는 일명 ‘일본형 시스템’에 참가하지 못하거나 그 시스템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되면 치열한 경쟁 환경이나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되는 상황과 구조의 책임이 큽니다. 일본에서는 노동시장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과 사회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이 거의 같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청년 무업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어떠할까요?


2. 무업, 그건 너의 잘 못이야! vs 그게 너의 잘 못이야?

책 속 한 청년의 인터뷰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저는 제 성격 때문에 면접을 봐도 채용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시간을 상대방이 허비하게 만드는 것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 데도 면접을 보러 가지 않았어요.”


여러분은 이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너가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너의 생각 때문에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잖아?’ 였습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에는 개인의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사회·대중의 시선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결국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열쇠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스스로 헤어나오고자 하지 않고서는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 책을 읽어가면서 알게 된 것은 무업상태에 빠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닌 ‘질병·부상’이라는 것과, 다섯명 중 한 명의 퇴직 사유가 직장내 분위기나 근로의 질 등을 통한 ‘심신박약’이라는 것을 통해서,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이유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무업상태에 빠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하나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시켜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현상을 개인의 차원에서 해결하도록 강요하고만 있는 현재의 분위기에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3. 청년은 일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일하지 못하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통해서 우리는 문제를 바라보는 각자의 관점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전자는 개인의 노력에 따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며, 후자는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한 피해자로 청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렇게 이분법적 관점으로 정의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두가지 관점이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문제는 언제나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다시 사회 문제로 확대되는 것이 일반적 흐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오히려 새롭게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근본으로 돌아가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하지 않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라는 문제에서 벗어나 ‘일 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던져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일본의 경영자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궁금하다면 이것만은 명심해주기 바란다. 지금 당신이 일하는 것은 스스로를 단련하고, 마음을 갈고닦으며, 삶의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라는 것을.


이 이야기는 책에 나온 청년들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생기는 것 / 일한다는 것은 이어지는 것 / 생활의 일부 /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것 / 막연했던 꿈을 실현해 주는 것 / 사회로 나가기 위한 첫걸음’ 즉, 일이라는 것은 관계를 향한 나아감이며,  누군가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 것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4. 무업사회, 해결방법은 있을까?

우리는 현재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보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많은 구직자들이 센터를 방문하는 공통된 목적은 ‘자신감 키우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국내도 마찬가지이지만 다양한 기관에서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개인의 역량을 강화시켜주기 보다는, 구직자와 기업과의 매칭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근본적 문제의 해결 없이 결과만 도출하려다 보니 1년 이내 퇴사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의식의 변화를 행동의 변화로 이어가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 우리가 가장 집중해야 하는 부분은 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변화와 함께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 제도적·행정적 지원입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미니멀리스트/트리머’라는 두 개념이 흥미로웠습니다. 전자는 어떤 시점에서 최소한의 공적 지출을 추구하는 태도이며, 후자는 ‘정원사’라는 의미로 때로는 잔디에 물을 뿌리고 거름을 주는 등 잔디를 키우면서 정원을 가꾸는 것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아름다운 정원’을 만드는데 합리적이면서도 지출이 적어질 수가 있다고 보는 개념입니다. 이 개념에 대해서 저자는 이런 의견을 보입니다.


‘실제로 지원의 확충은 해당 시점에서는 공적 지출의 증가로 나타나지만, 확실한 안정망 확충이나 노동시장에서 높은 부가가치 창출을 발휘할 수 있는 청년 세대 지원은 중장기적으로 볼 때에 비용 대비 효과가 오히려 높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5. ‘청년배당’, ‘청년수당’ 한국의 무업사회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까?

이재명 성남시장의 ‘청년배당’ 정책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청년 수당’ 정책이 생각납니다. 둘 다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로 연일 공격을 당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수혜를 받을 이들의 반응은 언론의 분위기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년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도 하며, 도전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작은 울타리를 쳐주는 것만으로 그들이 누리게 되는 심리적 보상은 그 이상으로 보입니다. 정책이라는 것은 언제나 신중해야 하지만, 신중함이 때로는 우유부단함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개인적 의견은 국가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아닌 지자체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만큼 작은 성공사례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본 후 논의를 해도 늦지 않았다고 봅니다. 과연 이 정책들은 미니멀리스트가 될까요 트리머가 될까요?


20대를 지나 30대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취업과 창업을 통해 자신의 길을 걸어나가고 있지만, 아직 기회를 얻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너의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거야.’라는 말은 도저히 입에 담을 수가 없습니다. 사회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어떻게 해왔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눈을 낮춰서 중소기업과 같은 도전할 수 있는 곳에서 기회를 기다려라는 말 역시 쉽게 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문제의 특징은 개인의 의지보다는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더욱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대의 흐름이 이렇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 책이 하나의 해결책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을 이해함으로써 나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 만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곧 총선을 맞이하게 됩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개인이 좀 더 노력해서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청년들을 대표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 많이 탄생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수행할 수 있는 청년정책들이 많이 탄생했으면 하고 기대하게 됩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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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는 책방 - 동네서점 북바이북 이야기
김진양 지음 / 나무나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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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연히 만난, 운명처럼 만난 <동네책방 북바이북>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뉴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사가 있습니다. 평균 독서율에 대한 기사이지요. 언제나 최저치를 갱신해나가는 독서량을 바라보면서, 한 번도 호황인적이 없었던 것 같은 출판업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 것일까?’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먹고 사는 문제와는 별개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게는 그런 일이 바로 ‘작은 책방’을 여는 것입니다.

 

맘속에 품은 작은 꿈은 작년부터 동네책방과 서점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 번씩 찾아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술 먹는 책방’이 서울에 생겼다는 기사를 접했고, 우연히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렸다가 <동네책방 북바이북> 책이 입고된 것을 발견하고 바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2. 소소한 책방 창업이야기를 담다.
이 책은 저자이자 ‘북바이북’의 책방지기인 김진양씨가 쓴 책입니다. 그녀가 왜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준비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 문을 열고 난 후 책방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 등을 담았습니다. 2013년 3월 책방 시작 결의를 다진 후부터 약 2년 여간 있었던 작은 서점의 분투기 이자, 누군가에겐 창업지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나중에 이런 일 들을 겪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흥미롭게 몰입해서 단번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면 한발자국씩 앞으로 내딛는 모습 속에서 작은 희열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아마존과 테슬라 같은 거대한 창업의 세계가 아닌, 어쩌면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항상 마주하게 되는 소소한 생활 속 공간의 이야기인 만큼, 독자에게도 일상 속 작은 도전의 에너지를 전해줍니다.

 

3. 가장 강력한 성장의 힘은 ‘연대 - 콜라보레이션’
작은 서점이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기 위해선 주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 공간을 이용하고 방문해주는 이들의 향기가 없이는 오랫동안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북바이북’이 지금처럼 많은 화젯거리가 되고, 손님들의 방문이 이어질 수 있는 이유에는 핵심 콘텐츠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이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보입니다.

 

실내 디자인과 인테리어는 ‘마누파쿰’, 인기디저트는 ‘배러댄초코렛’, ‘우연’, ‘더브래드팬트리’ 등 많은 곳과 제휴하면서 메뉴개발과 관리에 대한 노고는 최소화 시키며, 자신들은 좀 더 책 큐레이션과 도서관리 등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브랜드를 시작하면서 가지는 환상 중 하나는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직접 할 거야.’입니다. 분명 자신의 정성을 한 곳도 빼먹지 않고 모두 들인다면 가장 자기다운 공간을 만들 수 있겠지만, 전문가들이 존재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충분히 그들과 상의하고 협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바이북’은 이런 콜라보를 통해서 좀 더 수준 높은 서비스를 오신 손님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4. 「북바이북」‘책’이 아닌 ‘콘텐츠’를 파는 공간
많은 동네서점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동네서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고, 자연스런 모습입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좀 더 편안한 공간이다.’, ‘상암동이라는 직장인들이 많은 곳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등 ‘북바이북’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양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주인이 가지고 있는 책방에 대한 관점이 생존의 열쇠였다.’

많은 이들이 책방이라 하면 ‘책’이 핵심이고, 자연스레 책방주인은 자연스레 ‘독서광’ 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금 고루해 보이는 인상은 덤으로 따라옵니다. 하지만 저자의 관점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녀는 책에서 이렇게 말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니 그냥 생각해 봐도 난 책을 그렇게 많이 읽지 않는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독서광’이라고 불릴 만큼 늘 책을 옆구리에 끼고 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책과 관련된 페이스북 커뮤니티만 살펴보아도 소위 말하는 책벌레들은 확실히 독서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책 자체보다는 글쓰기의 연장선에서 콘텐츠를 다루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책은 트렌드의 가장 최전방에서 트렌드의 시작을 알리는 가장 최소 단위의 콘텐츠이다. 독서광이 아닌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난 책방 주인장이 되어 있는 것이다.”

 

‘다음’이라는 대표 미디어콘텐츠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 때문일까요? 책을 콘텐츠로 바라보는 그녀의 관점이 신선합니다. 이런 생각이 상암동이라는 가장 트렌드에 민감한 동네에서 작은 책방에 끊임없이 숨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원동력이지 않을까요?

 

5. 책장을 덮으며
제가 꿈꾸는 공간과 비슷한 곳을 자신의 방식으로 먼저 이뤄낸 이야기를 만나는 것은 작은 질투와 무한한 동경을 불러일으킵니다. 책을 콘텐츠로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서 저의 생각과 맞닿아 있음을 발견했을 땐 묘한 동류의식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전자책 시장이 커진다 하여도, 종이책의 생명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장을 한 장씩 넘겨가며,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하나의 경험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책이 좀 더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독서 자체가 아니라 다른 하나의 문화와 연결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독서모임 / 글쓰기 / 문화여행 등 다양한 장르와 함께 어우러지는 책의 시대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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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예술/대중문화 : 무인양품 디자인 

 

나는 아이폰을 통해서 애플을 연상하고, 삼성을 통해서 갤럭시를 떠올린다. 기업과 제품의 관계라는 것은 닮아있지만, ‘무엇이 먼저 연상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큰 차이가 있다. 제품을 통해서 기업의 철학을 구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한 번 바뀐적 없지만 잘 팔리는 제품들로 가득한 기업이 있다. 제품들이 모여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는 <무인양품>의 디자인이 가지고 있는 힘. 자신의 개성을 부각시키기 좋아하는 요즘 세대에게 디자인적 요소는 기능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디자인의 시대. 이 책을 통해서 알아보자. 

 

 

2. 인문학 : 한나 아렌트의 말

 

총선이 100일도 남지 않았다. 우리는 가장 정치적인 시기로 들어선다. 정치만큼 사회와 개인생활에 중요한 것이 없지만, 정치만큼 우리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 역시 없다. 각 개인이 정치에 대한 올바른 관점이 없다면 언제나 이런 피로는 반복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때 이 책을 읽길 권한다. 20세기 최고의 정치이론가 중 한명인 ‘한나 아렌트’. 그녀의 어려운 이론이 아닌 인터뷰를 통해서 그녀의 생각을 잠시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3. 사회과학 :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

 

국내에도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다양한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고, 관련 책들 역시 우후죽순 출판되고 있다. 다양한 미디어에서 협동조합을 다룰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스페인 몬드라곤’. 나 역시 한 때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을 가졌었고, 관련 영상을 찾아 봤던 시절이 있었다. 이 책은 협동조합의 bible이라 불리는 이 곳의 창시자인 ‘호세 마리아 신부’의 생각과 체험을 담고 있다. 미문으로 이상과 현실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았으며, 유토피아적 상상이나 그릇된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거침없는 비판도 함께한다. 언제나 성공적인 역사를 만들어가는 곳에서는 제대로 구현된 철학이 존재한다. 우린 이제 그 철학을 만나러 간다.

    

  

4. 과학 : 물리법칙의 특성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로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파인만 교수. 아인슈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물리학계의 슈퍼스타. 첨단과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우린 전공을 하지 않은 이상 과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일상생활 속 많은 물리적 현상을 접하면서도 인지하지 못 한 채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물리학을 알기 쉽게 강의한 내용을 엮었다고 하니, 새해에 과학책 한 번 읽어 볼만하지 아니한가? 그리고 도전해볼만 하지 않은가? 과연 내가 일반인 수준인지 아닌지. 이 도전은 조금 두렵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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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 - 푸코.라캉.르장드르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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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찾기의 어려움

지금의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 개인이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이자 두려움은 ‘현재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나’와 ‘현재’가 어떠한지 모른다는 ‘무지’에 많은 이들이 떨고 있으며, 그 불안을 이용하여 ‘지식과 정보’를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은 그렇지 못한 이들을 착취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아 찾기’는 ‘현재 찾기’와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와 국제적 안보의 위험 속에서 우리 사회는 점점 ‘전체화 된 사회’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자신’을 하나의 초월적인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개인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라캉의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정체성은 오직 다른 누구와의 연결을 바탕으로 해서만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 는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현재를 읽어내고,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답을 저자인 사사키 오타루는 “자크 라캉, 미셀 푸코, 피에르 르장드르”라는 세 명의 철학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찾아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현재 속에서 나를 찾아내는 힘”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읽기, 그리고 쓰기의 결과물

푸코도 풍자적으로 ‘철학자의 역할이 어느새 ‘현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게 되었다.’라고 말 했습니다. 사회 비평가의 역할을 철학자들이 대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저자인 사사키 오타루가 강조하는 것은 결국 “쓰기”라는 행위입니다. 전 작인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소개하는 “문학 = 읽기 = 혁명”이라는 단순한 도식에 이제는 “쓰기”라는 것을 추가하는 것입니다. “쓰기”라는 행위를 통해서 사람들은 남들과 차별화 되는 자신을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저자 역시 스스로가 생각하는 푸코와 라캉과 르장드르의 관계에 대해서 직접 공부하며 읽었고, 자신의 생각을 직접 써내려가며 엮어낸 것입니다.


저자는 말 합니다. “세 사람의 텍스트를 나름대로 철저하게 읽고 정성스레 재단해 세로실 가로실을 풀어 묵묵히 다시 짜는 작업을 꾸준히 한 결과, 지금의 필자로서는 <야전과 영원>이라고 밖에 명명할 수 없는 시공이 출현했다. 생각하지도 못한 현현이었다.”

 

대립관계에 있는 라캉과 푸코의 이야기만 듣게 된다면 독자들은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어떤 이의 말이 옳은지 선택하기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그 중간 지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는 르장드르를 등장시켰고,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위치시킬 수 있는 다양성까지 확보하게 됩니다.


너무나 방대한 양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책에서 소개하는 푸코와 라캉과 르장드르의 사상을 이 곳에 정리하는 것은 무의미 하다고 봅니다. 

 

읽겠다는 마음 먹기는 어려운, 읽어보겠다는 도전 의식은 타오르는 책

한 대학의 교수가 저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양 뿐만 아니라 이 책은 독자의 능력을 무한히 높게 측정한 책이다. 이런 책을 독자들이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에 저자는 “읽을 수 있습니다. 라캉과 푸코를 몰라도 읽을 수 있습니다. 원래 독자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모를테니 부드럽게 써주자’라고 하는 것은 독자를 업신여기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쉬운 책은 아닙니다. 그리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닙니다. 그러나 오랜만에 이 책 한권 제대로 잡고 독파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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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불감증]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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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에서 네트워크의 시대로

 


“오늘날 시대에 뒤진 것으로 간주되는 ‘공동체’나 ‘친교 집단’ 같은 구식 관념을 대신해 선택되는 이름인 ‘네트워크’의 핵심 특징은 바로 이런 일방적 종결에 대한 권리이다. 공동체와 달리 네트워크는 개인적으로 조합되고 개편되거나 해체되며, 네트워크의 유일한, 그러나 매우 변덕스러운 기초는 이것을 지속하려는 개인의 의지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월드컵 열기가 한 창이던 때, 미군이 몰던 장갑차에 깔려 두 소녀가 숨지는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발생했다. 많은 이들이 월드컵광장이 아닌 또 다른 광장으로 나섰고, 촛불을 들고 시위를 했다. 광장에서 우리는 함께 ‘공동체’를 외쳤고, ‘연대’를 요구했다. 이 같은 단어들이 우리에겐 익숙했었다.


 

시간이 흘렀다. 모임에 참석하게 되면 언제나 듣게 되는 이야기가 ‘새로운 네트워크 형성’이다. 한 번 만나 명함을 주고받은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나의 네트워크가 된다. 하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다. ‘공동체’와 같은 말이 주는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책임감’이 크게 없기 때문이다.


 

사회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이다. 2001년 다니엘 핑크가 쓴 「프리에이전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라는 선언 이후 역량 있는 1인 기업가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과거처럼 직장인의 삶이 아닌, 직업인의 삶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의 핵심도 역시 ‘네트워크와 협력’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장기 프로젝트 보다는 단기 프로젝트가 많아지고 있으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재빨리 시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실험해보고 진행여부를 결정하는 등 고정적이기 보단 유기적인 업무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위에 소개 한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처럼 다양한 사회의 문제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환원되기 시작한다.


 

순수한 관계가 불러오는 탈 도덕, 그리고 도덕적 불감증


 

네트워크의 시대 속 관계는 ‘남녀관계’와 닮아 있다. 시작은 혼자서 할 수 없지만, 맺음은 한 쪽의 이별통보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별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쿨 한 태도’. 이런 모습을 책 속에서는 앤서니 기든스를 들어 ‘순수한 관계’라고 표현한다.


 

“앤서니 기든스는 ‘순수한 관계’의 도래를, 즉 모호한 길이와 범위의 책임이 전혀 수반되지 않은 관계의 도래를 선언한 바 있다. ‘순수한 관계’는 오로지 관계에서 비롯하는 만족에 기초하며, 이 만족이 줄어들거나 흐릿해지거나 다른 데서 더 심대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이유로 왜소해 보이면 그 관계를 지속할 이유가 전혀 없게 된다. 이 관계의 성립은 쌍방의 결정을 필요로 하는 반면에, 이것의 해체는 일방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순수한 관계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욕구, 욕망, 소망의 충족이다. 관계의 대상은 이것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 하는 이들은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네트워크 시대에 관계 맺음에는 도덕적 판단이 개입 될 이유가 없는,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되는 현상계 바깥으로 위치되는 ‘탈 도덕’적 행위가 된다.


 

대중사회와 대중문화의 시대인 지금, 우리는 지속적인 자극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자극에 반응하기를 멈추도록 만든다. ‘양치기 소년’의 우화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과잉자극이 되지 않고서는 사람들은 행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의 시대는 우리를 불가피하게 탈 도덕적으로 만들고 있다. 정말 뜻밖이거나 아주 잔인하지 않으면 반응하지 않는 감수성 말로의 시대. 즉 “도덕적 불감증”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더 이상 행동 할 수 없는 개인


 

도덕적 불감증의 시대가 불러온 N포세대의 절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대학 졸업생의 평균 부채는 1321만원. 매년 사상 최대의 취업난은 갱신되고 있으며, 두산 인프라코어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취업 후의 상황 역시 안전을 보장받지 못 한다. 집 값 얘기는 더 이상 하지 말자. 삶의 장기적인 전망이 불가능한 상황. 세상은 발전하고 있지만, 생존을 위한 투쟁은 더욱 힘겹기만 하다. 모든 고통은 결국 실존적 불확실성으로 요약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으며 그것의 발생을 막을 수도 없다는, 우리의 무지와 무기력의 무시무시한 혼합물이자 굴욕감의 무한한 원천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활이 걸린 중대한 물음은 우리 세대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역사적 행위 주체’로 등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나 같은’ 존재들인 다른 사람들은 나만큼이나 존중받을 가치가 없고,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심적 토대에서 연대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연대가 없이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행동 역시 동반되지 않는다. 나만 아니면 된다.


 

“개인주의 전략들은 주로 진정제 기능을 가진다. 국제 정치 수준은 사람들로 하여금 먼 미래에나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갖게 한다. 때문에 문화적 행위는 중간 수준에, 즉 그들 자신의 사회 수준과 그들이 미래에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를 둘러싼 민주주의 문제들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은 많은 경우에, 어쩌면 대다수의 경우에 그저 잠재의식으로 존재하거나 명확히 표현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바우만의 주장처럼 점차 개인화 되어가는 네트워크의 시대에, 파편화 된 개인들이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은 미흡 할 뿐이다.


 

그래서 디스토피아 소설들이 그리는 미래가 우리의 현재일까?


 

책 속에서 바우만과 돈스키스는 명확한 미래상을 제시하진 않는다. 그리고 둘 다 지극히 현실 속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이들이기에 그리 밝은 미래를 그려내지도 않는다. 돈스키스는 책의 말미에 “다만 사랑, 우정, 충성 그리고 그것들의 정직하고 충실한 산파인 창조의 정신으로는 그것이 가능했다.”라는 한 마디로 서로의 대화를 마무리 짓는다. 거대담론의 결과로 생각하기엔 허탈할 만큼 뻔 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이런 뻔 한 행동들이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몇 일전, 급작스럽게 한․일 위안부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합의 내용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이미 일본 측에서는 ‘더 이상의 사죄는 없다’고 못을 박은 상황이고, 우리 정부 측에서는 ‘외교에 완승은 없다’며 이 정도의 성과 도출에 만족을 해야 한다 말한다. 많은 곳에서 다양한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더 이상의 협상은 불가하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정치인들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기인 만큼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지는 못 하는 것 같다. 그냥 이렇게 흘러가는 것일까?


 

어제 TV를 보다 흥미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은 대학생들이 ‘인간 소녀상’이 되어, 부산에 있는 일본 총영사관 앞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런 모습이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부산의 청소년과 청년이 힘을 모아 일본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도덕적 불감증은 우리를 분노하지 않도록 만든다. 그리고 행동하지 않도록 만든다. 너무나 깊게 우리 사회에 파고들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각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이겨내기 어렵다. 바우만과 돈스키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너무나 비관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언제나 희망의 빛은 비극 속에서 태어나듯이, 아직 우리에겐 작은 행동들이 이어지고 있듯이 희망의 끈을 절대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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