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도서관에서 <고구려> 6편을 빌려왔는데 너무 오래된 나머지 앞 부분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처음 책을 읽었던 게 2014년 8월(블로그 참조)이었으니 가물거릴만도 했다. 그래서 간략하게나마 1편부터 5편까지 정리를 하고 6편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구려>의 1권부터 3권까지는 15대 미천왕 을불이 도망자 신세에서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데, 그 배경에는 을불의 큰아버지인 14대 봉상왕이 있다.

 

 

 

14대 봉상왕은 어린시절 아버지(13대 서천왕)가 왕위에 오르고 형제들이 역모를 꾸며 왕위를 노리는 사건을 경험하며 모진 세월을 보내게 되면서 의심많은 성정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이후 왕위에 오른 봉상왕은 작은 아버지인 안국군 달가를 죽이고 미천왕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동생인 돌고를 죽이며 폭군이 되어간다.

 

 

큰아버지에게 위협을 느낀 을불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음모라는 자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게 되는데,  음모라는 자가 심성이 고약하여 갖은 구박과 멸시가 이어지자 집을 나와 소금장수로 살게 된다. 그러나  소금 마저 탐내던 자의 계략으로 을분은 도둑으로 몰려 갖은 고초와 수모를 겪게 된다. 이 시기에 봉상왕의 곁을 지키던 국상 창조리는 폭군이 되어가는 봉상왕이 더이상 나라를 돌볼 수 없음을 깨닫고 새로운 왕으로 을불을 추대하며 봉상왕을 몰아낸다.

 

 

국상 창조리의 도움으로 15대 미천왕이 된 을불은 자신이 겪었던 고초와 수모를 떠올리며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영토를 넓히기에 힘써 고구려를 크게 발전시킨 인물로 꼽히는 게 실제 역사적인 부분이다.

 

 

소설(1권~3권)에서는 을불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험난한 과정들을 드라마틱한 소재를 활용하여 스릴 있게 그리고 있는데, 고구려뿐 아니라 주변 국가의 정세까지도 살펴볼 수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했고,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박영규의 <한 권으로 읽는 고구려 왕조 실록>과 비교하며 읽어서인지 더욱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특히 소설에서는 폭군인 봉상왕을 속여가며 을불을 보위하기 위한 국상 창조리의 책략과 왕위에 오른 을불이 고구려를 지키기 위해 선택해야 했던 수많은 전쟁과 충신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변주되고, 천하 통일을 꿈꾸는 진나라 최비가 낙랑국에서 벌이는 계략들과 선비족들을 통일 시킨 모용족의 모용외가라는 거친 인물과 그들의 지략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던 기억이 난다.

 

 

1권부터 3권까지가 미천왕 을불의 전성기였다면, 4권에서는 진나라의 몰락으로 세력이 강성해진 모용족의 이야기와 고구려에서는 16대 왕위를 두고 고민에 빠진 을불과 왕후의 갈등을 그린다.

 

최비가 고구려에 몰락하면서 진이 패망하게 되는 모습을 그린 3권을 토대로 정리해보자면 진나라는 280년 중원을 통일한 사마염이 전국 27개 지역을 친족들에게 맡기면서 사마씨가 통치하는 시대가 되었다가 사마염이 죽고 사마충의 즉위로 16년 동안 친족끼리 죽고 죽이는 정권다툼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를 '팔왕의 난'이라 한다.

 

 

팔왕의 난으로 어지러워진 진의 조정을 틈타 북방에서는 5호(흉노, 갈, 선비, 저, 강족)에 의한 16국의 흥망으로 거듭된 시대가 생겨나고(이를 5호 16국 시대라 한다),이 시대에 가장 으뜸은 영토분쟁을 치뤄 세력 확장에 힘을 쏟기 시작한 모용족 이었다.

 

 

이런 어지러웠던 시기를 틈타 미천왕 역시 영토 확장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하야 황하 이북에서는 진의 잔존 세력과 선비족, 고구려라는 세력으로 압축될 수 있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진나라 최비는 단과 우문, 고구려에게 모용을 치차는 은밀한 연합을 이뤄내고 모용의 수도 극성으로 몰려가지만, 급작스러운 연합임을 눈치챈 모용이 꾀를 내어 우문대인의 실독관에게 음식을 보내 은밀히 모용과 내통하고 있는 것처럼 꾸미게 된다. 모용의 꾀에 속은 고구려와 단은 우문을 의심하여 철수하게 되자 남아있던 진과 우문은 막강한 모용에게 패하게 되고, 이 모든 게 최비의 작전임을 알게 된 모용은 최비를 잡기에 혈안이 되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최비는 고구려로 망령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리고 있다.

 

이런 불안정한 시국에 나라의 강경을 위해서 왕후 주씨는 무예가 뛰어난 둘째 아들 무에게 왕위 계승을 바랬지만, 을분은 백성들의 아픔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첫째 아들 사유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되면서 둘의 갈등은 깊어진다.

 

곡창지대가 끝없이 펼쳐진 하성을 중심으로 고구려와 모용족이 큰 전투를 치르게 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미천왕 을불은 두 아들의 부축 속에 숨을 거두 게 되고 을불의 뒤를 이어 16대 왕이된 사유(첫째 아들) 고국원왕은 포악한 성격의 모용황과 피할 수 없는 전투를 5권에서 그린다.

 

4권에서의 포인트라면 고구려에 망령한 진나라 최비가 모용족의 큰 전투를 앞두고 위기에 빠진 고구려를 구출하기 위한 책략을 쓰게 되는데 그 부분이 기막히게 좋았다는 것과 왕위 계승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던 을분이 사유가 왕이 되어야 하는 까닭을 태후 주씨에게 설명하는 이야기가 가슴에 두고두고 울렸던 기억이 난다.

 

 

5권에서는 왕위를 이어받은 16대 고국원왕의 성정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데 전쟁보다 백성의 안위를 소중하게 여기며 병든 백성들을 구제가 먼저인 고국원왕의 모습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태후와의 갈등을 깊게 그리고 있다.

 

 

그시즘 세력이 커진 모용족은 남하정책으로 고구려의 신성까지 위협하게 되고, 5호 16국 시대에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백제에서는 북진정책을 감행하게 하며 고구려를 궁지로 몰고 간다.

 

 

위협을 느낀 고구려에서는 모용족과 동맹관계를 위해 맏아들 구부(제 17대 소수림왕)을 모용황에게 인사시키는 다소 굴욕스러운 결정을 내리지만, 그러한 고구려의 노력에도 모용족의 계속되는 침략에 342년 2월 일시적 천도를 단행하게 된다.

 

 

고구려의 천도를 간파한 모용족은 지략으로 퇴로를 차단하고 이를 눈치채지 못했던 고구려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데 급하게 호위병만 거느린 고국원왕은 도망자 신세가 되고 몸을 피하지 못했던 왕후와 태후 그리고 백성들은 모용족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된다. 돌아가던 길에 고구려의 반격을 걱정한 모용족이 미천왕 을불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꺼내가는 파렴치한 악행을 저지르는 모습 등을 그리고 있다.

 

 

5권에서 바라본 고국원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해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 큰 결단을 내려 모용족과 전쟁을 치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모용족에 패배한 고구려는 이후 치욕적인 외교 관계 속에서 343년에 미천왕의 시신을 돌려받고 348년에 태후 주씨와 왕후가 다시 고구려에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어 6권에서는 17대 소수림왕(구부)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한때 김진명 작가님의 소설을 즐겨 읽었던 적이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등장 인물들에 변화가 발견되지 않아 아쉬워 했던 기억이 난다. 예를들어 멋들어진 외모에 비상한 머리를 가진 남자 주인공와 아주아주 아리따운 여자 주인공이 호흡을 맞추는 이야기들이 장소만 바뀌어 계속 등장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한동안 멀리하게 되었던 소설을 <고구려>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나게 되어 기뻤고 역사에 기반을 둔 풍성한 인물의 등장과 스토리가 참 매력적이라서 이 소설이 완간이 되면 드라마로 제작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조금 불필요해 보이는 장면들도 보였지만 다시 김진명 작가를 만나게 해준 책인지라 역사와 소설을 즐기는 분들에게 강력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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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3-12 1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흡입력 최고라는 김진명 작가님의 글을
전 한 권도 안 봤네요 ㅠㅠ 해피북님 리뷰 읽고 나니 을분이 엄청 가깝게 느껴지고요. 후계 문제로 다투었다는 을분과 태후 이야기에 ... 아, 왕은 어떤 사람이어야하는가..
그런 생각도 잠깐 해보네요. ㅎㅎㅎㅎㅎㅎ
잘 읽고 배우고 갑니다^^

해피북 2017-03-13 01:04   좋아요 1 | URL
김진명 작가님의 책은 정말 흡입력 짱인데..음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 물리는 경우도 있는거 같아요 ㅋㅋ 저도 이 소설을 읽었던 당시가 2014년도 였기에 ‘왕은 어떤 사람이어야하는가‘를 깊이 생각해봤던거 같아요~~이제 그 생각의 결실을 잘 맺어야 할텐데 아직도 걱정이 많고 고민중인거 같아요 ㅋ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내일 조금 쌀쌀하다하니 감기조심하시구 오늘 저녁은 꿀밤 되셔요^~^

고양이라디오 2017-03-13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진명 작가의 소설 전에 재밌게 봤었는데요. 고구려도 재밌을 것 같네요~ㅎ

책장에 <시드니!>가 보이는데 재밌게 읽으셨나요ㅎ? <시드니!> 정도면 그분이 오실만한 책인데요ㅋ

2017-03-16 0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6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분명히 읽었는데... 어딨더라?'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며칠 전 <책과 삶>독서 신문을 읽고 나중에 다시 읽어야겠다 싶어 어딘가 꽂아 뒀던 걸로 기억되는데 이곳저곳 아무리 들춰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찾는 시간이 길어질 수 록 기억은 점차 확신에서 불안으로 바뀌어 갔다.

 

내가 읽었던 게 맞나? 다른 신문이었던가? 혹시 버린 건 아닐까? 아니면 아주 오래전에 읽어놓고서 얼마 전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 그러고 보면 기억이라는건 작은 불안에도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무엇이든 확신하는 건 좋지 않겠다는 생각을 잠시하며 더 열심히 신문을 찾아댔다. 내가 읽었던 기사에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아침 청소를 하다가 불현듯 떠오른 신문이었고 청소기를 팽개치고 찾기 시작해 집안 구석구석 널부러진 책들과 책들 사이에서 지쳐갈 무렵 간신히 일본어 교재 사이에 꽂혀있던 신문을 발견하게 되었다. 쯧. 이러니 못찾지.

 

 

아침부터 그렇게 찾고자 했던 기사는 2016년 12월호 이너뷰 코너에 실린 소설가 장강명 작가님 편이다. 근래에 보게된 kbs 1 <책번개> 프로그램에서 노홍철씨의 철든책방을 무대로 패널들이 모여 책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좋았는데, 노홍철씨와 호흡을 맞추는 장강명 작가님의 모습도 친근하게 느껴져 도서관에서 책도 대출하고 기사도 보면서 그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2017년 2월 26일 (일요일) 3회에서는 유시민 작가님도 출연하셨다.>

 

 

 

 

이 프로그램의 장점은 패널들이 제시된 주제에 관련된 책을 가지고 와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공감과 이해를 거쳐 프로그램을 이끌어 간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티비를 시청하고 있는 나도 함께 하고 있는 것처럼 몰입을 하게되고, 그렇게 프로그램이 끝날쯤이면 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책을 읽으며 사유하고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 티비에 비친 장강명 작가님의 모습은 너무 순박한 이미지라 느꼈다. 모든지 yes로 대답할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더랬다. 그랬는데 왠걸. 그의 에세이 <5년만에 신혼여행>을 읽으며 내 첫 인상이 완전히 산산조각나버렸다.  그의 제기발랄한 생각들에 웃음과 공감 그리고 깊이 떠도는 사유들에 그가 천상 작가로 살 수 밖에 없음을 느꼈다고나 할까.

 

'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지 불과 5년 만에 5개의 문학상을 탔으니 말이다. 2011년 <표백>이 한겨레 문학상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데뷔하였고, 2014년 <열광금지,에바도르>로 수림 문학상을, 2015년 <댓글부대>로 제주 4.3 문학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그리고 다시 <댓글부대>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그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여느 작가들과 다르다는 말이 혹 뛰어난다로 오해 받을 소지가 있어서 그 질문은 부담스럽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고요. 다만 다른 스타일을 추구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직선적이고 효율성을 강조하고 허세 안부리고...."

                                                    <책과 삶> 독서신문 2016년 12월호.

 

그의 인터뷰 기사처럼 자기자신을 객관적으로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작가라는게 내가 책을 읽으며 내린 결론이었고 '실용주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과장된 게 아님을 느꼈다.

 

공대생이었던 그가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고 채용되기까지 고단했던 과정은 채용된 이후의 삶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입사 후 일에 대한 회의감과 무의미함을 깨닫고 힘들게 들어갔던 기자 생활을 접고 작가의 길로 들어서기 까지 많은 실패와 좌절, 낙심을 경험하며 인생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던 거 같고 그런 삶의 회한들이 그의 글 속에 투영된 게 지금의 장강명이라는 작가를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짐작을 해본다.

 

'인격자, 리더, 세계사의 위인들, 일일드라마의 주인공들이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믿고 ' 난 할 수 있다'며 결의를 다지겠지. 나는그런 훌륭한 인간이 못 되었으므로 끊임없이 번민했다.

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걸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마흔이 되어서까지 그런 걸 고민한다는 게 이상했다. (P21)

 

특히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은 지금 그의 아내 HJ이고 남자친구였던 지명은 작가님이었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나와 다르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이. 각자의 삶의 무게만큼 주어진 고민덩어리를 어찌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살아가는 모습이. 사춘기적인 방황을 지금에서야 하는 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5년 만에 신혼여행>은 장강명 작가님이 대학 커플이었던 아내와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결혼생활이라는 울타리에서 부딪쳐 나가야하는 가족간의 무거운 문제들을 직설적으로 짚어내고 있어서 그의 강단과 뚝심을 엿볼 수 있게 된다.

 

겉치레가 싫어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혼인신고만 마치고 5년 후, <댓글부대>라는 소설의 당선으로 갖게 된 오천만원은 그간 다녀오지 못했던 신혼여행과 휴식을 위해 필리핀의 섬 보라카이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여행에 대한 계획들과 일정이 여행하던 첫 날부터 틀어지면서 여행의 마지막 날에 이르고서야 촘촘하게 세웠던 계획들이 얼마나 부질 없던가를 깨닫게 된다는 내용들이 담겨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책을 빌리러 구청 도서관을 이용한다는 점. (그냥 작가님들도 도서관을 이용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는 이 엉뚱한 느낌은 뭘까) 그리고 여행지에서 읽을 책은 지루한 책을 고른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지루한 책을 읽을 수 록 여행지에서 보내는 행복지수가 올라간다나?

 

 

 그리고 <댓글부대>를 통해 받은 두 번의 상금이 과분하다는 이유로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하고 싶어서 <한국 소설이 좋아서>라는 무료 E북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소설의 가치를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나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나 <표백>을 통해 사회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고 부딪쳐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티비에서 보이던 순박한 YES 맨의 이미지는 어느새 벼리어진 한 작가의 삶의 감각을 엿보게 하며 개방하듯 투영한 그의 글을 조금더 읽고싶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표지를 보고 조금 놀랐더랬다.

굳이 바코드를 저 그림에 붙여놔야 했을까 싶은. 우리 도서관 사서님들께서 작가님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그리고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출판사에 있는데..

 

이 한 권의 책속엔 장강명 작가님 뿐 아니라 씽크로율 100% 일러스트를 넣어준 방현일님과 책의 디자인을 완성한 송윤형님이 있다. 그런 분들의 이름이 책 날개에 눈이 나쁜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크기로 적어놓은 부분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혹시 책에 넣을 이력이 없어서 일까나. 이력이 대체 뭐라고.. 한국이라는 나라는 이렇듯 많은 것들이 눈에 밟히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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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3-10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5년만에 신혼여행>은 반정도 읽었구요. ㅎㅎㅎㅎ
<한국이 싫어서>랑 <표백> 읽어봤는데, 저는 와하.... <표백> 읽고 정말 놀랐어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절망과 아픔을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데 놀랐구요.
그리고, 이런 작가를 여태까지 모르고 살았다는데 또 놀랐습니다.

장강명에 대한 해피북님 글을 읽었더니, 장강명을 마저 다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드네요.
기대됩니다. ㅎㅎㅎ

해피북 2017-03-10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아직 <표백>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책번개 프로그램에서 그 책을 읽으신 여성패널분이 단발머리님과 같은 이야기를 하셔서 마구마구 궁금했는데 얼른 읽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이 에세이집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솔직하셔서 살짝 걱정스런 마음도 들었지만 (가족들도 읽어보실텐데 하는 걱정이요 ) 그런 여러가지 일들이 우리네 삶하고 다르지 않아서인지 글에 공감하고 이해되는 부분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특히 소설에서 공감되던 부분이 단순히 허구가 아니었구나 싶던 그런 생각들이요 ㅎ 저두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사람이 되었는데 함께 알아보아요~ㅎㅎ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셔요^~^

달팽이개미 2017-03-10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장강명 작가님 작품과 만나보지 못했는데 해피북님 리뷰 읽으니 바로 만남의 욕망지수 업!업!업! 됩니다~^^ㅋ

해피북 2017-03-11 01:43   좋아요 0 | URL
저두 소설은 <한국이 싫어서>한 편밖에 못읽었지만 조금 추천해드리고 싶은 작가님이세요 기회가 되신다면 꼬옥 만나보시길용^~^
 

폭풍우 같은 슬픈 마음을 잠재우는 데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걸까. 재깍재깍 시간이 가고 하루하루 날이 져물 수록 무뎌져가는 날짜만큼이나 마음도 무더져가는 것일까.

 

 

결혼 8년 만에  첫아이가 생겼었다. 자연임신의 실패와 거듭된 인공수정의 실패로 시험관 시술을 결심하고 시술한지 첫 시도만에 거짓말처럼 아이가 찾아왔다. 처음 피검사가 통과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기뻐하기도 잠시, 시험관 시술은 총 3번의 피검사 수치가 통과해야 하며 각 주수마다 정상적인 발달과정을 검사받아야 했다.

 

 

자연임신과는 다르게 인위적인 임신이기 때문에 몸이 임신 상태로 인지할 수 있도록 호로몬 약을 먹어야 했고 12주까지 가급적 누워서 지내야 했기 때문에 활동을 할 수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아이가 찾아왔다는 기쁨에 모든걸 참을 수 있었다.

 

 

3차 피검사까지 무사히 통과하고 5주차에 아기집이 보이면서 배고픔이 달라졌다. 수시로 고픈배에 음식을 먹으면서도 얼마까지 먹어도 되는걸까 문득 걱정도 들었지만 즐거웠고 6주에 접어들면서 시작된 입덧으로 4형제를 낳고 키우신 엄마의 고통이 그제야 느껴지면서 '엄마'라는 그 위대함에 새삼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렇게 조금씩 나도 어른이 되어가는가 보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그런데 6주 검사를 위해 들른 병원에서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았다. 7주차까지 뛰지 않는다면 유산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밖으로 나와 신랑 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아내자 다음주까지 기다려보고 말할 수 있는건데 의사선생님이 너무 조급하게 말씀하셨다며 화를 내며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나만큼 아이를 기다렸던 신랑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느꼈지만 꼭 다음주에는 건강한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7주차에 들른 병원에서는 유산이라고 했다. 아이가 심장이 뛰지 않는다며 수술하자고 했다. 부끄러움도 잊고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떨구며 조금만 더 기다려볼 수 없냐고 말씀드렸다. 안쓰러우셨는지 조금 더 기다려볼 수 있지만 가망이 없노라고 수술해야할꺼란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병원 밖으로 나와 신랑 어깨에 기대어 펑펑 눈물을 쏟았다. 내 표정만으로 알아채버린 신랑은 아무런 말도 묻지않고 꼭 안아주었다. 3일 뒤 다른 병원에 방문했고  기다려봐야 소용없을 꺼라며 산모 몸에 무리가 많이 가니까 서둘러 수술하라셨다. 그 말씀을 끝으로 8주만에 나는 아이를 떠나보냈다.

 

 

태명은 딱풀이었다. 엄마 뱃속에서 딱 달라 붙어있어달라는 의미에서 지었었다. 그런 딱풀이를 보낸지 4일째가 된다. 선명하게 남아있는 두줄의 임신 테스터기와 3장의 초음파 사진만이 거짓말 같았던 시간들을 증명해주고 있다.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쓰다듬어보고, 매일 임신이 믿기지 않아 테스터기를 해봤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다시 거센 폭풍우가 몰려와 한바탕 눈물 바다를 만들어 놓는다.

 

 

방안에 들어앉아서 주위를 둘러봤다. 수없이 쌓이고 꽂힌 책장의 책등을 멍하니 들여다보다가 문득 어떤 책을 읽어야 이 거센 폭풍우를 잠재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간 열심히 책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아픈 마음에는 어떤 책을 읽어야지 평온해 질 수 있는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애꿎게 책에게 화가 치밀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나를 위해 밤새 미역국을 끓여준 신랑의 마음이 떠올라 <엄마의 꽃밥>을 집어들어 읽기 시작했다. 무수히 많은 사연과 얽힌 풀과 꽃의 이야기를 읽다가 핑크색과 하얀색 팝콘을 달아놓은 듯 보이는 매화나무가, 국화를 닮은 숙부쟁이가. 붉은 줄기가 인상적인 쇠비름이라는 들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페이지마다 초록 빛깔의 들풀들과 잎사귀들이 묘한 위안감을 주고 있음을 느꼈다. <엄마의 꽃밥>을 서둘러 읽고 책장에 있던 <반려 식물>을 서둘러 꺼냈다.

 

 

'  제 부끄러운 글에서 고백했듯이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했던 우울했던 시기에, 밭을 돌보며 위안을 얻었습니다. 사람도, 책도, 술도 아닌 식물에게서 얻은 메세지는 조용하지만 가장 강력한 위로였습니다.(p13)

 

맞아맞아. 그 위로. 나는 그간 또 잊고 살았었나보다.

봄이면 작은 씨앗을 심고 싹이 움트길 곁에서 기다렸다가 조금씩 솟아나오던 작은 힘에 새삼 놀라며 베란다 텃밭을 가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작은 생명들에 위로를 받았던 시간의 조각들이 떠올라 책을 단숨에 읽게 되었다.

 

 

 

' 잊고 지냈던 식물 기르는 일을 다시 시작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면서도 진지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그리고 힘겹게 보내는 신경외과의로서의 하루 속에서 숨 쉴 '틈'을 찾기로 한 것이다. 뇌출혈, 뇌종양, 그리고 중증 환자들. 하루에도 수차례 그들을 마주하면서 절망하고 좌절할 때마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 줄 무언가가 절실했다. 한 달에도 몇 번이나 사망 선고를 내리면서 점차 생명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져 가는 스스로가 부끄럽고 미웠다. 환자를 살리는 것에 대한 희망과 감동보다 환자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감이 커져 갈수록 직업적 회의감도 깊어졌다.(p139)

 

그래서 무언가를 더욱 키우고 싶었다.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의사로서 내 능력의 한계는 쉽사리 그것을 허락지 않았고, 결국 그 두려움과 참담함으로부터 견디고 스스로를 지켜 내기 위해서 술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환자에게 사망 선고를 내리는 날이면 두려움, 비참함, 허무함, 공허함으로부터 아주 잠깐 이라도 도망치기 위해서라도 술을 찾았다.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스스로를 발견하고서 더는 이런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버릇처럼 다시금 찾아오는 감정의 홍수는 그치지 않았다.(p140)

 

 

신경외과의 김형구 선생님의 글을 읽는 순간 마음에 와 닿았다. 두려움과 비참함 허무함과 공허함에 뻥 뚫려버린 가슴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김형구 선생님은 환자가 버리고 간 죽어가는 난초화분을 발견하고 정성스레 키우며  식물이 주는 기쁨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고민끝에 병원과 가까운 곳에 밭을 만들어놓고 환자들을 떠나 보낼 때마다 씨앗을 심고 화분 바닥에는 환자의 이름을 붙여 놓는다고 했다. 그렇게 ' 하나의 죽음을 또 다른 생명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작지 않은 위안이다' 라는 글귀가  거센 풍랑과 비바람을 몰고왔던 내 마음에 작은 평안과 숨 쉴 틈을 안겨주었다.

 

 

지금도 툭 건들면 쏟아지는 눈물 바다를 장착하고는 있지만, 딱풀이를 위해 어떤 씨앗을 심어볼까 작은 고민이 생겼다. 아주 오래오래 곁에두고 키울 수 있는 식물이면 좋겠고 되도록 병치레를 하지 않고 키울 수 있는 식물이면 좋겠다. 그렇게나마 끝내 지켜주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을 나 역시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슬픔이 아픔이에게 말한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더 큰 아픔 마음을 간직한 사람들이 참 많다고. 자살까지 했다가 걷기의 즐거움을 깨닫고 실크로드를 횡단한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나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에 페루를 떠올려 여행을 떠난 손미나씨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이야기를 떠올려 보라고. 그들 역시 아픔을 간직한채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아픔과 슬픔을 극복했던 이야기를 분명 나는 알고 있었노라고.

 

 

또 슬픔이 아픔이에게 말한다.

이렇게 아픈 마음에는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잘 모르겠거든 내가 위로받았던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떠올려보라고. 식물과 책. 그리고 이야기들. 다시아픔이 덮쳐와 슬픔이 되거든 그때는 꼭 잊지 말고 서둘러 찾아읽어보자고 말한다. 그리고 딱풀이와 했던 한때의 기쁜 순간도 있었음을, 그 기쁨이 슬픔에만 잠식되지 말자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이 공간에 기록해둔다고. 그 마음이 떠오지 않거든 이 공간에 다시 찾아와 달라고......

 

 -2017년 3월 4일. 햇볕이 좋던 오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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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4 16: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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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5 19: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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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6 2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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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7 06: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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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4 17: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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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5 19: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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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3-04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워낙 조심스럽고 수고스러운 과정이라고 하더라고요. 용기 잃지 마시고 몸도 마음도 꿋꿋하게 잘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그러고 계신 것 같아요 ^^
위에 올려주신 책들은 저도 다 읽어보고 싶네요.

해피북 2017-03-05 19:33   좋아요 1 | URL
hnine님 댓글 감사드려요^~^
이런 과정들을 거치고보니 세상의 부모님들은 다들 대단하시구나 하는 마음이 커지더라고요 이렇게 성큼성큼 어쩌다 어른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가 봅니다~^^ 요기 올린 책들은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hnine님도 즐겁게 읽으시길 바래봅니다 ㅎ 즐거운 주말 보내셔요^~^

2017-03-04 21: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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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5 19: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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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4 23: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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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5 2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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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6 16: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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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7 06: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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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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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마치 위화 소설의 <허삼관 매혈기>가 연결된 듯 착각이 들었다. 1970년대의 문화대혁명 시기를 그리는 부분이 겹쳐서였는지 허삼관의 아들들이 교육을 위해 농촌으로 떠나야했던 부분과 오버랩되어 읽는 기분이라 더 친근하게 느껴졌달까.  또한 금지와 억압이라는 명찰을 다는 순간 책은 더욱 열렬해지고 간절해지고 강해지는 힘이 있음을 느낀다. 산골의 바느질 소녀가 떠날 수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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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 영화, 문학을 만나다
이대현 지음 / 다할미디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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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먼저 볼까 책을 먼저 읽을까라고 딱히 고민해본 적은 없는거 같다. 영화를 보다가 좋으면 책을 읽었고 책을 읽고 좋으면 영화를 찾아봤으니까. 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굳이 따질 필요 없이 모두 냠....냠(글로 쓰니까 꽤나 잔인한걸!)

 

그러나 내가 읽어서 좋았던 원작이나, 영화가 있다면 그 내용이 똑같길 바랬다. 예를 들어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고 영화를 보면 원작에 충실해서 너무 즐겁게 볼 수 있었던거 처럼.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그대로 그려주는 영화나 원작이 무척 좋았더랬다.

 

그런데 영화가 소설의 내용을 똑같이 그린다면 멍청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 이대현 씨다.

 

 


 

 영화 <인셉션>처럼  때론 그 영상의 창의성을 통해 글보다 섬세하고 생생한 심리와 의식까지 표현한다. 소설이 긴 문장으로 설명하고 묘사한 것들, 복잡하고 긴 사건을 영화는 단 한 컷의 영상, 배우의 표정, 소품 하나로 더 강렬하고 명징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만약 영화가 소설을 그대로 따라해야만 한다면, 많은 부분을 영상대신 글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 소설에는 소설의 언어와 스토리텔링이 있고, 영화에는 영화의 언어와 스토리텔링이 있다. 장르적 특성과 경계만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같은 이야기라도 서로 다른 작품이 된다. 둘의 차이를 단순 비교하면서, 어느 쪽이 낫다고 함부로 단정할 수도 없다. 소설은 소설이고, 영화는 영화니까, 그래서 우리는 소설도 읽고, 영화도 본다.(프롤로그)

 


 

소설은 소설의 언어와 스토리텔링이 있고, 영화는 영화의 언어와 스토리텔링이 있다는 말에 조금은 놀랐다. 원작이 있는 영화라면 어느정도 원작에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는 영화라는 특수성으로 장르적인 특성과 경계만으로 구성되어 진다는 것에 조금은 그럴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을 갖게 한다.

 

예를들어 저자가 제시한 영화들 중에서 <허삼과 매혈기>란 작품은 질타를 <마션>이란 작품엔 찬사를 했는데 나는 두 개의 영화 모두 부족하다 생각했더랬다. <허삼관 매혈기>는 어떤 내용을 그리고 싶어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영화가 되어버려서 아쉬웠고 <마션>는 원작의 깨알 재미를 모두 빼버려서 너무 심플한 영화가 되었다고 실망했는데 그런 부분까지 바랬다면 과욕이라는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에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고나 할까.

 

 


 

 귤이 회수(중국의 화이수이강)을 건너면 탱자가 된다. 기후가 다르고 토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돼지간볶음을 순대로, 국수를 만두로, 간염을 뇌염으로, 상해를 서울로 바꾸기만 하면 귤이 그대로 귤로 다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시대와 시간의 생략과 단축, 중요한 모티프의 포기,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부족, 내면화 하지 못한 배우들의 연기로는 영화의 허삼관이 소설의 허삼관이 결코 될 수 없다. (p24)

 

그러나 독자와 관객은 모두 과학자가 아니니 솔직히 이런 영화와 소설 앞에서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다. 얕은 과학적 지식으로 영화와 소설이 가진 상상력의 재미를 스스로 반감시키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하는그 상상이 어느 날 현실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미래의 사실'이라고 믿으면서 읽고 보면 더 짜릿하다. 어쩌면 과학은 그 엉뚱한 상상을 조금씩 현실로 만드는 학문인지도 모른다. 이미 많이 그렇게 했다.

 

영화 <마션>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의 소설가답게 독백도, 대사도, 서술도 직설적이고 날렵하다, 감정의 숨김이나 은유도 없다. 그래서 이야기가 짊어지고 있는 무게가 화성의 중력만큼이나 가벼워진다. 그러면서도 500여일 동안 마크가 기록한 일지에는 미래에 우리가 현실로 만날 화성에 대한 관찰과 경험이 들어있다. 영상이라면 몰라도 이를 영화에까지 다 담아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과욕일 것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도 알고 있기에 욕심내지 않았고, 그것이 영화의 무게 역시 가볍게 해 사뿐히 착륙하게 만들었다. 거장은 거장이다.(p35)

 


 

 

그래도 말이다. 작가의 말처럼

 

 소설은 영상으로 표현한 이미지나 상상을 새롭고 구체적인 언어적인 서술로 풍성하게 만들고  플롯도 영화보다 훨씬 자유로워야 한다. (P173)

 

이렇게 풍성하게 만들어 놓은 작품에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모습에 빠졌다면, 풍성한 서술과 플롯에 흠뻑 즐거웠다면) 그 부분을 영상으로 볼 수 있길 바라는게 독자의 심정은 아닐런지. 왠지 이 책에는 작가와 감독에 관한 이야기는 잔뜩 있어도 그것을 바라보는 독자의 마음은 빠진듯 아쉬움이 남는다.

 

 

무튼 나는 똥꼬집이라서 내가 좋아하게 된 작품 (그게 원작이랄지 영화랄지)이 많이 변형되지 않는 선에서 나와줬으면 좋겠다. 사람마다 그 작품이 좋아진 계기가 있을터. 그런데 그 계기가 사라져 버린다면  왠지 김빠진 맥주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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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2-04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컨택트 때문에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다시 읽고 있어요^^ 각각의 장점으로 영화와 원작을 보는 건 독자이자 관객에게도 득이라고ㅎ 생각합니다. 시장 메커니즘이 끼어 들어있긴 하지만 좋은 작품을 둘다 볼 수 있는 요즘 환경이 재밌기도 하고요.

해피북 2017-02-06 09:49   좋아요 0 | URL
저처럼 외골수인 독자나 관객을 만나면 작가나 감독이 골치 아프시겠어요 ㅋㅋ 아갈마님 글처럼 양쪽을 즐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재밌게 즐기는 여유도 찾아야겠습니다 ㅋㅂㅋ

그런데 저는 영화 컨택트를 집중해서 관람하지 못했거든요.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좀 더 재밌게 볼 수 있을까요? ㅎ

AgalmA 2017-02-06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은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의 재미가, 영화는 보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의 재미가 확실히 다르게 만들어진 게 느껴져요. 드니 빌뇌브가 구현하는 이미지성과 테드 창이 구현하는 논리성은 각각의 재미가 있어요^^
개인 취향차일 뿐 뭘 먼저 보고 본다는 건 큰 의미 없을 듯~
집중하지 못하신 건 미래 환상 부분이 계속 교차편집 되어서 피곤하셨던 게 아닐까 싶은데 그 점에서는 책도 비슷하실 걸요^^;;
내용상으론 테드 창이 좀 더 어렵죠; 과학, 철학, 언어학적인 걸 더 전문적으로 다루니까요.

해피북 2017-02-06 10:20   좋아요 1 | URL
캬~~아는 만큼 보이며 즐길 수 있다고 했던가요~~ 깊이있게 즐기시는 아갈마님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아.그리고 그게 과거가 아니라 미래였군욧! 어쩐지 계속해서 죽은 딸을 회상해서 이게 대체 무슨 연관인가 했어요. 실은 마지막까지 다 보진 못했거든요. 저는 영화에서 외계인에게 글을 가르치는 부분이 아마 중간이었던거 같은데요. 거기서부터 조금 흥미를 잃었던거 같아요. 영화 정보도 없이 막연히 외계인 영화라고해서 침공을 생각했는데 갑자기 심리적인 교감이 주를 이루니까 에이~~했던거 같아요. 다시 차분하게 영화도보고 책도 보고 해봐야겠어요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ㅋㅂ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