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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린생활자
배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7월
평점 :
노력에도 제자리라도 (근린생활자)
프레파라트만큼 부서지기 쉬운 우리의 집살이가 겹친다. 신고만 당하면 언제든 빼앗길 수 있는 집 ‘근생’을 선택한 건 다 싼 가격 때문이었다. 그마저도 온갖 대출을 내야했지만 내 집을 가진다는 것만으로도 감수할 만했다.
집 두 채인 사람은 모른다. 근생을 선택한 상욱의 마음을. 가진 거라곤 젊음과 성실밖에 없는 사람들만 안다. ‘코지’한 집에서 ‘언제까지나' 살 수 있는 가망따위 이번 생엔 없다는 것. 첫사랑과 마음껏 사랑을 나누고 테라스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집을 바라는 것만큼 불안하고 무서운 건 없다.
사방은 꽉 막히고 지하라 습해도, 매년 이집저집 돌아다녀야 하더라도 차라리 이게 낫다. 열심히 살아 불안한 삶밖에 살 수 없는, 노력의 최대치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이라 해도 이게 낫다. 불쌍하지 않다. 과학자와 예은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찬란했던 집, 이제는 팔아야 할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상욱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척 슬프고 절망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가슴 속 얹힌 무언가가 내려가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허탈함이 그 빈자리에 곧바로 채워졌지만. 전원을 다시 껐다 켠 기분이었다. 분명 고된 시간이 오겠지만 어쨌든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매일 전전긍긍 집을 걱정하는, 매달 이자와 월세가 지긋지긋한, 매년 재계약 성사여부를 두고 마음 졸이는 성실뿐인 한국 청년들을 위한 이야기다.
몸이 계속 가려웠다 (삿갓조개)
<삿갓조개> 읽는 내내 몸이 계속 가려웠다. 모처럼 신기한 경험이었다. 자잘한 삿갓조개를 보고 온몸에 닭살이 돋았던 기억이 났다. 엄청난 생명력으로 온갖 곳에 포진한 이 조개 더미 앞에서 나는 정말로 짜증이 났었다. 삿갓조개는 참 끈질기다고, 징그럽다고, 얼른 내 눈 앞에서 사라져라고 생각했다. <삿갓조개>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도수관에 자라난 삿갓조개를 긁어내는 2년차 관리인 ‘그’도 그랬다.
‘삿갓조개를 긁어내는 일을 하면서 그는 절대 조개를 먹지 않았다. 그는 조개만 봐도 지긋지긋했다. 아무리 긁어내고 잘라내도 개체를 이루며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것들의 존재 자체가 끔찍하고 소름끼쳤다.’
정확히 이 시선이었다. 관리인과는 절대 같은 식당에서 밥먹지 않았던 정규직 작업반장의 눈길이. 시급900원 인상을 위해 파업한 관리인들을 도시 전력 생산을 마비시키는 파렴치한 인간들로 만들어버린 기사가 딱 이랬다.
비정규직 파업 노동자들을 긁어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혐오가 작가의 가위에 다 긁어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