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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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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이 책의 제목에 대한 설명이다. 내가 그 동안 학교에서 학문의 이름으로 배웠던 것은 사물과 현상을 구분하고 규정하는 경향, 인과관계에 대한 강박적 집착, 이분법적 사고의 틀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작가는 초장부터 그 이분법적 사고가 깨지는 순간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사는 건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다른 모양이다. 아니면 내가 잘못 배운건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달리는 사람' 그러니까 러너(runner)다. 하루끼씨랑 비슷하네. 그러고보니 하루끼씨 책에서 느껴지는 왠지모를 강건한 균형감 같은 게 이 작가의 에세이에서도 느껴졌다. 운동하는 사람들이라 그런가? 나는 그런 분위기가 좋다. 두 작가의 차이점이라면, 일상의 발랄함이 주된 정서인 하루끼씨에 비해 이 사람은 좀 더 사색적이고 진지한 면이 더 많다는 것 정도다.  하루끼씨의 에세이를 읽을 때는 자주 느끼지 못하는 '슬픔'이나 '회한' 같은 감정도 종종 느껴졌다.

 

에세이가 늘 그렇듯 이런저런 소소한 말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 내 마음을 잡아끄는 대목이 있었다. 서툰 여행자의 태도에 관한 부분인데, 작가는 여행을 갈 때 딱 세 가지를 생각하고 행동한단다. 첫째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 둘째 넘겨짚지 말것, 셋째 인간성을 신뢰할 것. 이것은 단지 여행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삶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로 들렸다. 그리고 이것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 아닐까 싶었다.

 

작가는 내 몸과 마음의 감각을 열고,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샅샅히 느끼면서 - 그것이 피로든 고통이든 기쁨이든- 한 번 '끝까지' 가보면 우리는 상상하지 못했던 결말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삶을 바꿀 정도로 강력하단다.

 

이 떄 중요한 것은 넘겨짚지 않는 것이다. 내 깜냥을 잊고 내 능력 바깥의 것에까지 - 남의 마음, 내가 어쩌지 못하는 상황, 아직 경험하지도 못한 미래 등등- 에너지를 소모하면 금방 지친다. 그리곤 '그럼 그렇지'' 결국 다 소용 없을껄' 하는 따위의 냉소에 빠져들고 그 이후엔 지루한 삶만 남는다.

 

온갖 시끄러운 생각- 비약적 추론, 때이른 결론, 성급한 가치판단, 잡다한 걱정거리-들을 뒤로하고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은 사실 쉽지는 않다. 작가처럼 달리면 해결될까? 숨이 턱까지 차오를정도로 달리다보면 이런저런 생각할 틈이 없을 것도 같다. 그런 신체적, 정서적 경험을 하고 나면 달리지 않을 때에도 그와 비슷한 마음 상태를 연습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말이 되는 듯.

 

그리고 마지막, 인간성을 신뢰할 것. 나에 대한 믿음, 우리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동지니까. 넘겨짚고 의심하고 미워하지 말고 보여지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같이 살아가면 좀 더 따뜻하지 않을까?

 

지나친 회의로 나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믿으면서 한 번 끝까지 가보는 것. 그러면 삶이 바뀔까? 근데 쉽지는 않겠다. 일단 뛰어야겠다. 그런데 내 심폐기능이 남아날지 모르겠어. 아.. 이 생각도 시끄러운 생각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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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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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본업은 소설가요 내가 쓰는 에세이는 기본적으로 '맥주회사가 만드는 우롱차'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세상에는 "나는 맥주를 못 마셔서 우롱차 밖에 안마셔" 하는 사람도 많으니 물론 적당히 쓸 수는 없죠.

 

하루키의 글은 성실성이 느껴진다. 독자에 대한 예의라고 할까 자기 중심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독자로써 내가 존중받는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하루키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다.

이 책을 읽으며 하루키의 글이 좋은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우선 그는 기본적으로 따뜻한 심성을 가졌다. 햄버거를 먹고자 1달러를 구걸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돈을 내주며 밀크쉐이크도 먹게 해줬으면 좋았을껄 후회한다.

그리고 그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교통상황이 복잡하고 어려운 로마에서 운전을 배운 것을 운이 나빴다고 한탄하지 않고 오히려 그같은 곳에서 운전을 배웠으니 어느 곳에 가서도 운전을 할 수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한다. 따뜻한 심성과 긍정적 마인드는 전염성을 가진다. 하루키의 그런 기운이 묻어나는 에세이를 읽다보면 나도 따뜻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하루키는 솔직하고 겸손하다. 유치한 감정이나 생각도 가감없이 드러내고 '우습죠? 저도 우습습니다.'하고 겸연쩍게 웃는 것 같다. 그리고 자족하는 미덕을 가졌다. 분노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말해버리는 그의 모습에서 작은 일에 애태우는 내 모습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긍정적이고 겸손하고 만족하면서 비교적 순하게 사는 듯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가치관이라든지 자신의 일에 대한 굳은 신념은 지키는 것 같다. 프로야구선수의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플레이를 보면서 감탄하면서 프로로써의 소명에 대해 강조한다. 또한 소설에 대해 깊은 믿음을 자주 표현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루키의 음식과 음악에 대한 취향은 생활인으로써 그를 더욱 가깝게 느끼게한다. 독자와 작가 이상의 친밀감 같은 것.

 

어쨌든 소소해보이는 하루키의 글이 좋은 것은 그 따스한 감성, 굳건한 가치관, 그리고 솔직함 뭐 그런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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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언덕]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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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많이 써낸 동화작가로 유명하다. 에세이에 나타난 그의 개인적인 인생사는  가난과 병마 그리고 이별로 응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힘든 시간 속에서 그는 절망하고 분노하기 보다는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했을까? 

내가 찾은 것은 '이야기의 힘'이다. 삶과 이야기가 분리되지 않은 순박하고 따뜻한 어린시절, 이야기 속에서 남을 이해하는 마음을 기르고, 지금 보여지는 것과 다른 색채의 현실을 상상하는 자유로움을 누리는 모습에서 분노가 아닌 평화의 삶의 기초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

지금의 아이들은 어떤가.. 아이들에게 더이상 이야기는 설레고 신기한 삶의 다른 모습이 아닌 시험을 위해 공부해야 할, 독서목록으로 전락한건 아닌지. 창의교육, 독서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즐거워야 할 책읽기가 강요되는 책읽기로 변해버리진 않았는지. 타인을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덕목을 위한 읽기가 타인을 이기기위한 수단이 되어버리진 않았는지 반성할 일이다.

 

작가는 에세이에서 지속적으로 가난하고 소박한 삶에 대한 향수,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 아름다운 우리말에 대한 자부심, 사라져가는 가치들에 대한 안타까움, 물신숭배에 대한 비판을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로 자연과의 공존, 이웃과의 더불어 살아감을 주장한다. 더 가지려고 하지 말고 뺏으려고 하지말고 내 것만 고집하지 말고 더 큰 사랑으로 함께 살아가자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더 가지려고 아둥바둥하고, 낙오되면 죽음이라는 마음으로 전쟁하듯 살아서 남은게 뭔가. 불안한 미래, 파괴된 자연, 불평등한 사회구조,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고, 부자는 공허한 부를 거머쥔채 우리 모두 가난했던 지난 날보다 더 불행해지지 않았는가.

 

우리 페이스대로 옳다고 믿는 믿음대로 천천히 자유로운 꼴찌로 떳떳하고 깨끗하게 살아가는 것.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의 태도가 그게 아닌가 싶다. 나와 내 아이가 '정의롭고 씩씩하면서 따뜻한 눈물을 흘릴줄 아는 인간'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 목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 자연을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할 것.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 - 자원을 아끼고, 이웃과 먹을 것을 나누고,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는 모습- 을 보여줄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다짐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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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라하우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랄랄라 하우스 - 묘하고 유쾌한 생각의 집, 개정판
김영하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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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는 인상적인 두 마리의 고양이 이야기로 시작한다. 버려진 고양이에서 사랑받는 귀염둥이로 인생역전한 그들의 이야기에서 그 고양이들을 그렇게 만든 작가의 따스한 성품과 일상이 보인다. 내가 알지 못했던 작가의 따뜻한 일상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에세이의 묘미다. 김영하 작가의 글은 하나도 읽지 못했지만 고양이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하면서 나머지 이야기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다.

 

그런데 너무 기대를 한 탓일까? 그 다음에 이어지는 에세이들은 초반의 기대에 부응하지는 못했다. 각각의 이야기는 짧고 간결했다. 이러쿵저러쿵 반복되는 말들에 지치지 않도록 한 건 좋은 덕목이다. 주로 주워들은 우스운 이야기, 평소에 그냥 스쳐지나갔던 물건이나 사건에 대한 잠깐의 상념, 상상력과 농담이 적절하게 어울어지면서 작가는 '과연 그럴까?'라고 자꾸 묻는 사람들이구나 다시 한번 감탄한다. 그러나 그 이야기 속에 작가의 얼굴은 분명하지 않다. 뭐랄까 계속 남의 이야기만 듣는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고양이 이야기 속에서 느꼈던 친밀함은 간곳없이 사라지고 2프로 부족한 빠-앙 터지지 못하고 터질락말락 애태우는 유머들만 남았다.

 

작가가 자신을 어느선까지 드러내느냐 하는 건 모든 작가의 고민거리일듯. 노골적으로 드러내느냐 그렇지 않느냐도.. 하지만 적어도 에세이를 쓰려고 마음 먹었다면 맘껏 풀어써도 되지 않았을까? 독자로써 욕심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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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 박범신 논산일기
박범신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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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는 한 소설가가 가진 '고독의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고독은 외부로부터 규정된 자신이 아닌 내면의 진정한 자아와 손잡게 하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고독의 위로) 작가로서 고독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 작가는 뭔가 새로운 출발이 필요했던 것 같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 가족과 직장을 떠나 고향으로 향했다.

 

고향이라는 패찰이 붙어 있을지라도 나는 옛날의 그곳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오늘도 나는 새로운 시간의 레일을 따라 새로운 공간에 처음 온 것이었다. 새로 출발할

 

그 곳에서 그는 자신의 존재를 찾는다. 고향땅에 묻혀진 이야기, 선조의 이야기, 지금 현재 자신의 곁에 있는 이웃과 동료와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누구인가' '내게 있어 쓰는 것(문학)은 어떤 것인가' 하고 자문한다.

 

어려운 질문이다. 그는 기억을 통해 자신의 내면 깊숙이 남아있는 우울의 감정과 마주하고 자신을 위로한다. 명확하지 않지만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와 배척하는 악덕들을 구분하며 고유성과 이데올로기는 지켜나가되 변화에 반응하고 유순함이 감도는 '늙은 청년'이 되고자 한다.

그에게 문학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것이고 '명분 너머의 오욕칠정에 대한 기록'이며 상상과 기억으로 다채로워지는 꿈이다.

 

이 글을 관총하는 주된 정서는 우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불편해하지 않고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말하는 '사랑' 때문이다.

 

우울은 내 영혼의 숙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에 파먹혀 멸망하진 않는다. 나는 내 안에 아직 다 소진하지 않은 어떤 광채가 남아있다고 믿는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지닌 불가사의한 그 광채의 다른 이름은 이를 테면 신성 혹은 사랑이다.

 

그는 끝없이 침잠하면서도 사람들과의 사랑의 끈을 놓지 않는다.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어울리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그것이 우리를 심연에서 구원해줄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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