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위기의 음악가들]
- 유서를 쓰는 사람의 심정이란... -
지금은 코로나 시대에 많이 익숙해져 있는 편이지만, 작년 3~4월만 하더라도 비교적 긍정적인 나에게도 우울한 날들이 많았다. 반 픽션, 반 현실이긴 하지만 전염병에 관한 영화들이 말해주는 여러 가지 상황들, 뉴스를 틀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입원실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른다는 사람들... 지난 영상이긴 하지만 전국의 구급차와 구급 대원분들이 대구를 찾은 모습은 그 당시 우리가 지내고 있는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 것이었는지 말해준다. 아무리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런 시국에 의연한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싶다. 코로나 이전 미세먼지가 극악이었던 날조차 마스크 한 번 안사고 안 쓰던 나였는데, 그 이후 마스크가 없어서는 안 될 세상 안의 나... 내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게 꿈인지 생시인지 했다.
코로나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던 작년 봄쯤이었을까. 집에서 평소 즐겨듣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안토니오파파노 지휘, 조성진 연주,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듣고 있었다. 2악장이 시작되고 나오는 피아노의 첫마디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베토벤이라는 사람과 베토벤이 만들었던 곡에 더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코로나 전에 그저 위대한 작곡가의 위대한 곡이라는 피상적인 수식어 아래 음악을 듣고 즐겼다면, 코로나 이후 내가 이렇게 힘들어보니 그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베토벤의 삶을 더욱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작년은 마침 베토벤 탄생 250주년 되는 해라고 했다.
나는 클래식 음악만 들어서 모든 음악가를 각각의 손가락만큼이나 똑같이 사랑하지만, 한 줌의 마음을 더해 조금 더 아끼는 음악가가 있다면 그가 바로 베토벤이다. 솔직히 나는 베토벤의 음악을 가장 사랑한다. 음악 전문가가 아니라서 귀로 듣는 예술을 문장으로 술술 풀어내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저 아래까지 떨어지는 깊은 밑바닥에서부터 그 정신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의 개념에 이르기까지, 인간에서부터 인간 이상에 이르는 거대한 스펙트럼을 느낄 수 있어 좋아한다. 사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베토벤의 음악은 뭔가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특정하기에는 한없이 크게 느껴질 뿐이다.
베토벤이 이 전 시대의 음악가, 이를테면 바흐나 하이든, 모차르트와 구별되는 점은 베토벤 그 자신이 당시 자유계약자, 즉 프리랜서의 신분으로서 예술가의 지위를 한층 더 드높였다는 데에 있다. 이 전 시대 음악가들은 그것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교회나 궁정의 녹을 먹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한 곳에 소속되어 있어 안정적이었다 할 수 있지만, 각자가 지닌 음악에 대한 철학은 교회나 궁정의 의뢰와 가이드라인에 따라 재단될 뿐이었다. 심하게 말하면 이렇지만, 개중에는 그렇지 않은 음악도 있지 않을까 한다.
베토벤은 이전의 선배들과 달리 독립적인 음악가로서 자신이 만든 음악(악보)을 출판사와 네고?, 협의를 통해 팔았다. 아마도 자신이 만든 음악의 가치를 스스로 저울질하며 출판사에 금액을 불렀을 것이다. 예술가라는 신분이 더 이상 종속적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은 베토벤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베토벤과 그의 음악은 인기가 많았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 하이든, 모차르트까지의 음악이 약간 관공서에서 만들어진 것 같은 정형화된 즐거움, 쾌활함, 똑똑 떨어지는 터치(스타카토)가 주를 이루는 음악이었다면 여기에 익숙해져 있던 당시 사람들은 베토벤의 음악적 스타일에 신선한 충격을 받으면서 신기해했던 것 같다. 이쁠 리 없는 굉음, 많이 보이는 단조 선율, 쫀득하게 이어 치는 레가토 주법 등이 베토벤의 음악이 주목받을 수 있었던 요인들이지 않나 싶다. 그 이전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자유계약자 신분으로서 베토벤은 성공적인 삶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잘 나갔다. 그러던 그가 청력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1796년부터로 추정된다. 1796년부터라고 하면 그의 나이 26세. 청력 이상의 원인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어떤 자료에서는 연주여행을 갔던 베를린에서 발진티푸스에 걸려 심하게 앓고 난 뒤 청각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청력은 서서히 악화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청력 이상으로 인해 베토벤은 작곡과 연주활동에 의기소침해지고 점차 사람들을 기피하며, 예민하며 더럽고 고약한 성격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내가 감기로 며칠 아파봤을 때를 떠올려본다면 충분히 이해 가는 상황이다. 그 가벼운 감기로도 아플 땐 짜증이 나던데 당시 의료기술로는 고칠 수 없었던 청력 이상, 그로 인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정하기 싫은 미래, 그 두려움 앞에선 베토벤을 생각하면...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라는 도시로 요양을 하러 갔다. 이런저런 방법을 써도 나아지는 기색이 없자, 펜을 들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