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유전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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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의 #작은책시리즈 8번째 책이다. 늘 읽고나면 큰 만족감을 주는 시리즈인데 이번에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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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마을, 헛된 꿈을 꾸지 않고 성실하게 십대를 보내며 부모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을 소임으로 아는 사람들이 모여살던 마을이었다. 그것을 물려주고 물려받는 것 그것을 자랑이자 유전이라 믿는 마을을 떠나고 싶었던 민영이 있었다.

마을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 생각한 백일장에 참여하고자 했지만 진영이가 먼저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저히 양보할 수 없던 민영은 진영을 찾아가고 한 편씩 글을 써 그 중 가장 나은 작품을 뽑아 그 사람이 백일장에 나가자는 진영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학생들 모두 사실 다들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음이 밝혀지고, 다들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학생들이 쓴 여러 글들과 마을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처음엔 어디서부터 어디서까지가 교통사고가 난 '나'의 이야기인지 헷갈리고 구성방식이 익숙하지 않아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3분의 1 지점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기 시작했지만 정확하게 정리되진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 작가의 말 속 '느슨한 연결'이란 말을 통해 잘 짜여진 연결 고리를 애초에 찾을 필요가 없었음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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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듯 조금씩 닮아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유전이라고 생각할만큼 당연하고 필연적이라 여기고 있던 현실을 벗어나려 시도하는 사람들이 여성이란 점이 좋았다. 뭔가 전통이라 불리고 있었지만 실은 그저 답습에 불과했던 것임을 알고 벗어나려는 애쓰는 과정과 비슷하다 생각했다.

그런 과정이 글쓰기로 실현되는 점이 흥미로웠다. 학생들이 쓴 글에 자주 등장하는 김지우, 이선아라는 인물이 작가라는 점. 그들의 실종과 남겨진 글에 대한 이야기, 선아가 글쓰기를 통해 감정을 치유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던 것, 엄마가 이선아 작가의 글을 모으고 읽으면서 치유 받았던 것, 유작, 황녀를 통해 평가에 시달리는 모습, 소설 속 이야기를 자꾸 작가와 연결지으려는 태도의 답답함등. 글을 둘러싸고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들이라 일종의 고백 같으면서도 그것조차 함부로 판단하기 힘든 느낌을 받았다.

'다락'은 이전에 읽었던 강화길 작가님 글들의 분위기와 가장 비슷했다. 평가와 소문에서 시작된 이야기 같았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고 종내 입 다물게 하려는 큰 움직임이 한 축이고 그래도 끝까지 진실을 보려는 누군가의 끊임 없는 시도가 다른 한 축 같았다.

아마도 누군가의 그런 시도 끝에 없어지리라 상상조차 못한 마을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교통사고를 당해 진영과 민영, 백일장에 대한 이야기를 병원에서 듣는 '나'가 글 대신 남긴 감상처럼 이 많은 이야기들 속 어떤 이야기는 너무 내 이야기이기에 또 쓸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된다. 읽은 독자는 다시 쓰는 사람이 되어 우리는 또 연결될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이야기는 없고 여전히 진행중일 이야기이며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다정하게 이어져갈 수 있는 것. 유전처럼 남아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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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
그날 이후, 선아는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까 그녀
에게 벌어진 일, 기분, 수치심 그러니까 모멸감, 행복. 거듭해서 기억하고 싶은 일, 잊지 않고 싶은 일. 귀에 들리는 모든 이야기를 받아 적었다. 그녀는 그렇게 매일 글을 썼다. 일기는 그녀가 많은 것을 견디게 한 수단이었다. 그녀는 이 방법. 그러니까 바닥으로 완전히 가라앉지 않을 수 있게 이 방법을 알려준
그 친구, 김지우에게 감사했다.

p.72
이렇게 읽어도 되는걸까? 이렇게 개인적으로 받아들여도 되는걸까? 나는 혼란스러웠어. 너무 내 것이라서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어떤 마음 때문에, 나는 너희의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어. 하지만 그것이 지금의 내 마음이라면, 나는 이걸 있는 그대로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 이 방식으로우리가, 몰랐던 마음들이 만난다면, 그것으로 나는 새로운 것을 알 수 있게 되겠지. 그리고 새로운 것을 읽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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