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바타2: 물의 길] 을 2번 보았습니다. N차 관객분들이 꼼꼼 리뷰해주신 그대로, [아바타2] IMAX3D와 ScreenX2D 관람은 각각 미묘하게 다른 경험입니다. IMAX_3D는 입체적 영상미 덕분에 스크린이 오직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양, 관객을 몰입시킵니다. 다만, 배치된 좌석에 따라 호불호가 달라질 수 있겠어요. 스크린 측면에서 192분 내내 눈을 부릅떴던 관객이라면 '어지럼증, 멀미증'을 호소하실 수 있어요. 게다가, 코로나 시대 3D 안경은 1회용 취급 당해 바로 플라스틱 쓰레기가 된다 합니다.

*

제 경우엔, 2D 관람이 더 만족스러웠어요. 3D 안경을 썼을 땐, 도드라진 하얀색 자막에 시선이 쏠려서 배경의 풍성한 디테일을 놓치기도 했거든요. 사나흘 간격을 두고, 똑같은 영화(그것도 무려 러닝타임 192분짜리!!)를 두 번 연거푸 본 이유도 그 때문이기도 합니다. 비록 줄거리는 밋밋했으나, [아바타 2]를 디테일까지지 이해하고 싶었거든요. 1차 관람 때는 못 보았던, 디테일을 제 나름 꼽아보았습니다.(이하 스포일러~주의하세요^^)

* *

다섯번째 아이 _ 몽키보이



"몽키보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스파이더'는 이야기를 불러내는 캐릭터입니다. [아바타2]에 등장하는 어떤 캐릭터보다도 인간 관객의 눈에 친숙한 외피를 입었으나, 영화 속에서는 이방인 중에서도 이방인 취급 당하거든요. 마치, 걸리버가 인간 외형을 가졌어도 소인국, 대인국, 공중도시, 야후의 나라에서 이질적 존재였듯. 스파이더는 인간 부모에게서 DNA를 받았으나,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과 어울리며 자랐습니다. 누르스름한 인간의 거죽을 파란색 위장무늬로 얼룩덜룩하게 칠하기도 하죠. 나비족처럼 보이고 싶어 합니다. 소속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스파이더는 온전한 개체로 인정받을지언정, 한 집단에 온전히 속하지는 못합니다.

* * *

일단, 나비족 네이티리는 대 놓고 스파이더를 못마땅해 합니다. [아바타] 1편을 본 관객이라면 네이티리의 심정(핀더리 행성 파괴자인 아버지를 둔 인간, 스파이더에 대한 불신과 미움)을 이해하더라도, 이방인 취급받는 스파이더가 불쌍할 것입니다. 특히, 생명을 건 전투에서 네이티리가 스파이더의 목을 협상의 도구 삼는 장면에서 불쌍함은 최고조에 달할 테고요. 저는 2024년 개봉 예정이라는 [아바타 3]에서 스파이더가 변심(?)하여 판도라 행성의 판도를 가를 캐릭터로 흑화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 제이크 셜리가 죽은 첫째 아들이 비워버린 가족의 자리에 스파이더를 초대한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큰 아들 자리에 스파이더가 들어오면, 제이크 셜리와 네이티리 부부의 자식은 여전히 '아들 둘에 딸 둘'이 됩니다. 하지만, 과연 DNA 자체가 다른 "Monkey Boy"가 가족으로서 이 집단에 어느 정도로 융화되고 소속될까요? 스파이더는 제 목에 칼날을 들이밀던 네이티리를 신뢰할 수 있을까요?

최근 읽은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가 겹쳐 생각납니다. 스파이더 역시 물리적으로는, 셜리네 다섯 번째 (유사 가족 관계의) 아이인 셈이거든요. 레싱의 소설에서 '다섯째 아이'는 '이상적 가족' 판타지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도 많지만, 3편 개봉을 기다리며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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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1-24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다르게 보이면 어느집단에서든 배척당하기 쉬운거 같아요 ㅡㅡ

이 영화가 요새 인기작인가 보네요. 전 아바타 1편을 안봐서 2편을 보긴 힘들거 같긴 하지만 ㅎㅎ

얄라알라 2023-01-24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새파랑님 프사 넘 이쁜 파랑이라 와 소리가.절로^^ 극중 셜리네 자식들은 인간과 혼종이라.손가락이 5개라고 놀림받거든요...정상성의 기준이 얼마나.자의적인지에.대해.찾아보면 리뷰가 많을것 같아요 ^^

coolcat329 2023-01-24 1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파이더의 이야기가 다음 편에는 좀 더 비중있게 다뤄질 것도 같아요. 마지막 네이티리의 행동에서 저도 놀랐는데 그 당시의 스파이더의 심리가 드러나지 않아 참 궁금하더라구요.

얄라알라 2023-01-24 23:19   좋아요 1 | URL
coolcat님께서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나봐요. 반가워요^ ^
저도 목에 칼이 들어와, 당장 죽을 수도 있는데 자신이 아끼는 친구 키리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스파이더의 모습과 대사에서 의아함이 들었어요. 중간중간 스파이더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셜리나 나비족의 야수성을 지닌 네이티리를 무서워하는 듯한 표정을 보일 때가 있는데, 목에 칼이 들어왔을 때는 그 표정이 없더라고요...

소령의 부성(?)도 두번째 관람에서는 확 들어왔던 재밌는 관전 포인트였어요.

coolcat님과 저의 예측이 맞는지 2024년 3편 개봉하면 알 수 있을텐데,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해서 아쉽네요 ㅎ

감은빛 2023-01-24 2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바타 2d와 3d를 모두 보셨군요. 저는 처음에 2d로 보고나서 3d로 한번 더 보고싶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을 꼬시지 못해 못 봤어요. 사실 안경을 끼는 입장에서 3d 안경을 그 위에 겹쳐 끼고 긴 시간 영화를 보는 일은 꽤나 거북하고 답답한 일일 것 같긴해요. 아바타는 워낙 긴 영화라 아마도 더 갑갑하겠죠? 이렇게 못본 것을 합리화해야 덜 아쉬울 것 같아요. ㅎㅎ

얄라알라 2023-01-24 23:23   좋아요 0 | URL
아이들 192분짜리 또 보러가자하면, 팝콘세트로는 어림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ㅎ

감은빛님, 3D보러 가기 전에도 주변에 먼저 다녀오신 분들이 멀미난다 하셨는데, 제가 극장뒷줄에서 걸어 나오면서도 ‘어지럽다‘ ‘토할 거 같다‘고 호소하는 분들 목소리를 몇 명 들었어요. 저 역시 계단에서 잠시 휘청^^;;; 3D 시야를 얻은 대신 치뤄야할 작은 대가였나봐요.

3D도 너무나 환상적인데^^ 감은빛님 SF 좋아하시면 한 번 더 보시기를 ㅎㅎ
 


다른 책을 읽는 중간중간,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가 생각난다. 어느 소설을 읽고도 이렇게까지 오래 찜찜해 한 적 없는데...... 왜일까?.....그건 아마도 "다섯째 아이"의 엄마, 헤리엇을 싫어하는 마음이 영 떳떳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내가 헤리엇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혼자 아이 넷을 돌봐야 하는 와중에 다섯째로 태어난 아이가 '半사피엔스 + 半네안데르탈인' 돌연변이로  느껴진다면? 그 누구라도 "모두에게(다른 아이들, 남편, 시댁 어르신, 친정 어머니...등)" 만족스러운 선택을 내릴 수 없음은 뻔한데, 내가 헤리엇에게 너무 가혹했나 보다. 


 https://blog.aladin.co.kr/757693118/14262653


반면, 왜 나는 지난 리뷰에서 헤리엇의 아버지, 데이비드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이상적인 다산 가족의 환상이 산산이 깨졌는데도, 밑빠진 독 물 붓듯 양육비를 메꾸려 쉴 새 없이 일하는 데이비드를 나도 모르게 측은하게 보았나 보다. 늦었지만, 데이비드를 다른 관점에서 보려 한다. 

*

벤은 분명 데이비드의 자식이다. 하지만, 그는 다섯째 아이 벤에게 "어쨌건 그 앤 내 애가 확실히 아니야"(101)라며 선을 긋는다. 데이비드는 벤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고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본 적도 없다. 작가는 데이비드의 속마음을 한 문장으로 보여준다. "적어도 그가 생각하는 한 벤은 해리엇의 책임이었고 자신의 책임은 아이들, 진짜 아이들이었다. (122)"

*

벤을 짐승이나 외계인으로 비인간화했던 헤리엇.

벤에게 애정 커녕 증오감을 품고 망설임 없이 밀어낸 데이비드. 

*  *

눈물이나 후회, 한숨이 데이비드가 상상해온 행복한 삶에 들어올 여지가 없듯 "부족한" 아이는 데이비드가 품을 여지가 없나 보다. 재력이 대단한 데이비드의 친부와 사회적 지위가 번번한 데이비드의 친모 내외가 수를 써서 벤을 시설에 감금하기로 결정했을 때 데이비드는 도리어 농담하며 웃기까지 했다. 지구에 잠시 왔던 벤이 이제 화성으로 돌아가려나 보다고.  시설에 가면 그 아이가 머잖아 죽을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그것이 바로, 남들 보기 부족함 없는 이상적 가정을 꿈꿨던 데이비드가 자신의 세계에 들이기에 부적합한 자들을 처리하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소설 읽은지 한 일주일 만에 벤의 아버지 데이비드에까지 생각이 미친 걸 보면, 나 역시 돌봄의 주책임자를 엄마로 한정짓는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게 아닐까? 부끄럽다. 반성한다.  여러모로, [다섯째 아이]는 여전히 내게 찜찜함을 남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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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1-13 0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휴 전 이책 읽을 때 엄마에게 이입해서 너무 불쌍했어요 ㅠㅠㅠ <케빈에 대하여>랑 비슷한 시기에 읽어서 더 그랬던 듯도. 데이비드의 태도 지적해 주신 데 공감이 가네요. 순식간에 읽었던 것 같은데 기억에 오래 남는 소설 같습니다.

얄라알라 2023-01-13 15:02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도....여러 분이 그런 말씀 해주시네요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도 떨떠름(?) 합니다....그래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가도 싶고요^^

고양이라디오 2023-01-13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궁금해지는 책이네요. 순식간에 읽어진다니 한 번 읽어보고 싶군요ㅎ

얄라알라 2023-01-13 15:01   좋아요 1 | URL
저도 첫 번째 읽을 때는, 쉬지 못하고 읽었어요. 외출하려다가 [다섯째 아이] 때문에 외출포기^^;;
고양이라디오님께서도 혹시 읽으시면 한 자리에서^^

yamoo 2023-01-13 1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내 애가 확실히 아닌데, 해리엇은 도대체 벤을 시설에서 왜 데려왔을까요?? 그냥 놔뒀다면 모든 가족이 해피했을 거 같은데...데려오고나서 무책임하게 부랑아 학생에게 맡겨버리고...우리나라 엄마였으면 대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듯해요. 끝까지 책임지고 키워서 올바른 아이로 성장했을거 같다는 생각을 햇습니다..ㅎㅎ
 
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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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친 Y님께서 "각을 멈출 수 없게 하는 글의 힘이 새삼 놀라울 뿐"이라며 [다섯째 아이]의 리뷰를 마무리했다. 도리스 레싱의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나 역시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꼬리를 물며 확장하는 질문 때문이 아니라, 해소 안 된 불편감, 즉 찜찜함 때문이다. 

(이하 줄거리 스포입니다)



24살 해리엇과 30살 데이비드는 파티에서 한 눈에 끌려, 결혼했다. 아이 예닐곱을 낳아 큰 집에서 뛰놀게 하는 부모를 꿈꿨던 이들은 지불 능력 밖의 대저택을 구입했다. 그들의 부모는 '행복한 영국인 중산층 가정의 전형'을 현실화하려는 신혼부부의 욕심을 에둘러 나무라면서도 지원하는 데 인색하지는 않았다. 


그 대저택, 같은 방에서, 


1. 1966년 큰 아들

2. 1968년 큰 딸

3. 1970년 둘째 딸

4. 1973년 둘째 아들이 잉태되었고, 태어났다. 


6년 사이 무려 네 번의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 헤리엇은 감당하기 어렵게 전개되는 상황에 압도당했다. 짜증이 늘었고, 친정 어머니에게 점점 더 많이 기대었다. 하지만 "눈물과 속상함은 협의 사항에 결코 포함하지 않았던(49)" 이들 부부는 크리스마스나 여름 휴가 시즌이면 행복한 중산층 가정의 무대를 실수 없이 연출해냈다. 아슬아슬했던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피임이나 유도분만 등 일체의 기술적 개입을 배척했던 자연주의파 헤리엇이 덜컥 다섯째 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이다. 




헤리엇은 임신기간부터 그 태아를 남다르게 느꼈다. 그녀에게 산후 우울증이 있었던걸까? 헤리엇은 뱃속의 아기를 "원수, 야만적인 것, 짐승, 괴물"이라 여겼다. 심지어 "커다란 부엌 칼로 자기 배를 갈라서 애를 꺼내는 상상(66)"까지 했다. 그러니, 그 태아가 몸 밖으로 나왔을 때 얼마나 애정이 있었으랴! 아가를 향한 헤리엇의 증오와 혐오감은 점점 더 강렬해진다. 물론 아가의 생김새나 반응 패턴은 평범하지 않다(신생아 때는 엄마 젖가슴을 멍들게 하더니, 걸어 다닐 무렵엔 생닭을 이빨로 헤집어 놓았다). 다른 이들도 다섯째 아가 Ben에게 거리를 두고 비인간인 양 대우한다. 벤을 "외계인," "다른 종족" "몽골 사람" "네안데르탈 아기" "고약한 작은 짐승" "귀신이 바꿔놓은 아이" "도깨비"  "난쟁이" "호비트" "짐승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 인물들이 이 소설에는 계속 등장한다. 헤리엇은 온 세상이 아이에게 '비정상, 비인간, 다른 종족'이라 진단 내려주고(낙인 찍어주고), 자신을 "Poor Harriet"이라 동정해 주길 원한다. 자신은 남다른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되었으니 희생자라는 논리이다. 



하지만, 자신이 벌린 상황을 수습하지 못해서 자신도 파멸하고 다른 가족의 삶까지 단절과 침묵으로 몰아 넣는 그녀는 과연 희생자인가? 그녀의 시가 부모들은 "대파국(99)"이 예견된다면서, 벤을 요양원(이라 말하고 수용소)로 보내 버린다. 침입자 별종 같던 존재가 사라지자 헤리엇 부부네 대저택엔 다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그 앤(Ben) 내 아이가 아니야"라며 차갑게 손절했던 친부 데이비드와 달리 헤리엇은 죄책감과 공포심에 짓눌린다. 

결국, 그녀는 뻔히 "대파국" 결말이 예상되는 선택을 했다. 그렇다. 자신이 "고약한 작은 짐승"이라 부르던 그 아이를 다시 집에 데려와 "인간화시키려는(156)" 노력을 한다. 헤리엇은 심지어 자기가 내버렸던 벤에게 "진짜 자식 중 하나를 대할 때처럼(112)" 불쌍함을 느끼기도 한다. 과연 그녀는 죄책감 때문에 감당도 못할 거면서 다시 데려온 아이에게 끝까지 책임을 다했을까?



소설 초반부에 헤리엇의 친정어머니 도로시는 사위와 딸에게 "너희 둘은 마치 모든 것을 움켜잡지 않으면 그것을 놓쳐버릴 거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 같구나."(23)라고 에둘러 꾸짖는다. 헤리엇의 시어머니 몰리는 "순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하면서도 사실은 인습의 정수였고 과장이나 과다함의 징후"(19)를 극혐하는데, 며느리를 그 표상으로 본다(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소설 후반부에서는 틀어진다). 헤리엇은 자기 자식을 두고, "그 애는 인간이 아니다"(142) "정상이 아니다(70)"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왔으면서, 막상 다른 사람들이 제 자식을 "몽골 사람"이냐 묻거나 "동물원에 가두자는 거냐" 물으면, 별안간 윤리적인 교양인이 된다. 

나는 엄마를 비난하는(mother blaming) 시선을 경계하지만 솔직히 해리엇에게 호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엄마로서가 아닌 한 성인으로 보아도 그러하다. 이중적이고 남탓하기 좋아해서 맘에 들지 않는다. 


챕터 나눔 없이 주욱 이어진 소설의 마지막 장은 당혹스럽게도,  엄마 헤리엇이 집나간 탕아, 벤의 불행한 미래를 과도하게 상세히 상상하는 넋두리로 끝난다. 45세 노안의 중년이 된 그녀는 대형 원목 식탁의 반들반들한 표면을 보면서 "화목한 가정과 행복"을 움켜쥐고자 했던 오만함을 반성한다. 20대에 4명, 30대 초반에 한 명, 모두 다섯 아이를 낳았어도 곁에 어떤 자식도 남아 있지 않은 외로운 엄마. 게다가 남편은 그녀에게 "우린 애가 없어. 해리엇. 아니, 나는 애가 없어. 당신은 애가 하나 있지."라며 정곡을 콕 찔러 준다. 

왜 노벨문학상 내공의 작가 도리스 레싱은, 주인공이 제 자식의 불행한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시간을 보내는 장면으로 소설을 끝냈을까? 그 대답으로서 나는 이 문장에 주목했다. "그녀의 사고는 이런 틀 안에서 맴돌았다." (158)

작품에서 해리엇은 아이를 많이 낳고 기르고, 그 아이들이 다시 가정을 이룬 후에도 가끔 들리거나 돌아올 수 있도록 큰 집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런 틀에 갇힌 욕망이나 엄마 정체성 외에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소설을 두 번이나 읽고도 잘 모르겠다. 도리스 레싱은 도돌이표를 그리고 사고가 같은 수위에서 맴도는 헤리엇을 두고 "그녀의 사고는 이런 틀 안에서 맴돌았다" 한 게 아닐까?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야 말로, 헤리엇 스스로가 벗어나기 원치 않아 머무르고 맴도는 틀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온통, 자식 생각....집 생각...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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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1-12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나서 많이 찜찜하더라구요. 그래서 리뷰도 엄청 찜찜하게 썼던 기억이 납니다 ㅋ 그래서 도리스 레싱 다른책도 손이 안가더라구요 😅

얄라알라 2023-01-13 00:40   좋아요 1 | URL
저는 읽을 때는 하도 푹 빠져 읽어서 몰랐는데, 다 읽고나서 보니 이 책은 챕터 분할 없이 통째로 가는 구조더라고요
어쩜 이렇게 긴박감(?) 있게 소설을 잘 쓰시는 건지...게다가 회선이 꼬이다 못해 합선 화재라도 날 듯, 이슈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던져 놓네요....다른 책도 읽어봐야 더 알것 같아요^ ^

yamoo 2023-01-13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얄라님의 리뷰 잘봤습니다. 얄라님두 생각을 멈출 수 없으셨군요! 얄라님은 해리엇의 ‘내아이가 아니야‘에 꽂히셨군요..ㅎㅎ
저는 이 책에서 해리엇의 히스테리 핵심이...정신과 의사와 여타 엄마들 그리고 학교 샘에게 벤이 이상한 아이라는 걸 확인받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해서 그랬던 거 같아요. 어쨌거나 얄라님의 리뷰로 읽으니 새롭군요!^^

얄라알라 2023-01-13 15:04   좋아요 0 | URL
처음엔 아빠이자 남편 데이비드가, 헤리엇을 말리는(?) 자세에서 점차 적극적으로 데이비드가 ˝내 애가 아냐. 당신 애야....˝의 태도로 나아가더라고요.

처음엔 놓쳤는데, 계속 생각하다 보니, 야무님 말씀처럼 그 대사가 무척 불편합니다.

그러고 보니, 산부인과 의사와 정신과 의사와의 만남 씬이 길게 묘사되는 걸로 보아 헤리엇이 의료적인 진단을 받아 자신의 고통을 인정받고 싶었었나봐요. 야무님 말씀에 동감입니다. ^^
 
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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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드라마에 ˝끝순이(?)˝ 이름의 캐릭터가 있었다. ˝딸은 이제 끝, 그만. 제발 아들˝을 기원하는 이름이라고 했다. ˝다섯째 아이˝ 이름은 Ben, 이상적 가정을 꿈꾸는 Ben의 부모는 Ben의 이름만큼은 무성의하게 지었다. 다산하고자 했던 부부지만 Ben이후로 더 아이를 낳지 않았다. 못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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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1-10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안 좋아합니다. 으.... 느므 끔찍해서 말입죠. 도리스 레싱 성격이 원래 그렇다고 해요.

얄라알라 2023-01-11 00:2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골드문트님.
골드문트님. 전 지금 이 책 두 번째, 처음부터 다시 읽는 중입니다.

맨 처음 읽을 땐, 마치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조바심으로 빠르게 책장을 넘겼고,
이젠 작가의 생각을 알고 싶다는 욕심으로 천천히 읽어요..

중간에 황색 공포증이나,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오래 묵은 유럽인의 편견 등, 제가 잘못 읽었을 수도 있지만, 편견이라 할 만한 단서들이 보였어요....도리스 레싱의 성격, 저도 더 알고 싶어집니다. 작품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요^^

Falstaff 2023-01-11 05:50   좋아요 2 | URL
19호실에 쓴 댓글인데, 여기다가 쓸 걸 그랬습니다. ㅎㅎㅎ

진짜 만나서 쐬주 한 잔 마시면 사람이 담백하고, 직선적이고, 활달하고, 정의감이 뿜뿜 뿜어져나오는 화통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마음 속에 꽁하고 두지 않고 그냥 핏대 팍팍 올리면서 해치워버린다고 해요. 이런 사람들이 뒤끝이 없어서 오히려 더 좋기도 합니다.
근데 책은 여간해 잘 읽히지 않게 쓴단 말입니다. ㅎㅎㅎ
이 양반, 하여간 사람이 사람 차별 하는 거, 그건 눈 뜨고 안 봐준답니다. D.H.로렌스 작품 판금 소송, 루슈디 사형선고 규탄, 이런 데 무조건 앞장섰던 작가입니다.

yamoo 2023-01-11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번째 읽으시군요! 벤의 이름을 짓는 것도 그렇지만 그 양육 면에서 보면 너무 쉽게 포기해 버린 것에 좀 화가나더라구요...
잘 읽히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300페이지가 넘었다면 덮었을지도..^^;;
근데 생각할 꺼리를 많이 준 의미있는 책이라는 건 부의할 수 없어요..
얄라님의 리뷰는 어떤지 기대가 됩니다!

얄라알라 2023-01-13 00:41   좋아요 0 | URL
예전부터 이 책 리뷰가 알라딘에서 핫해서 눈 여겨 보았었지만, 이제 제가 소설 읽은 후에 다시 리뷰들을 찾아가보니 생각이 복잡해진 건 저뿐이 아닌가봐요. yamoo님 말씀처럼 정말 생각이...생각이^^;;;;개운하지는 않네요. 그렇지만.

페크pek0501 2023-01-12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들을 기원하는 이름을 지었다고 해서 꼭 아들을 낳는 게 아니었던 사례를 알고 있어요.
성의 없음을 반성할 점이라고 봐요.

얄라알라 2023-01-13 00:42   좋아요 1 | URL
해제에서 Ben이름의 상징성을 풀어주던데,
저는 이 이후로 부부가 아이 가질 엄두를 아예 못 내는 게 무섭다고 느꼈어요
 


읽고 난 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일상 대화에서도 '드라이, 드라이' 하고 다닐 지경으로 계속 소설 [드라이]가 생각난다.  


https://blog.aladin.co.kr/757693118/14227819

한국이 물부족 국가라는 사실, 올해 뵈었던 어르신 중에서 상수도 시설이 없는 거주지에 사셨던 지라, 출산 임박해 스스로 작은 우물을 팠다는 회고담, 심지어는 사막 행성 배경의 영화 [DUNE](2021)나 다큐멘터리 [Blue Gold]까지 꼬리를 물고 계속 생각난다. 일상이 예고 없이 비일상 재난 상황으로 전환되고, 국가라는 안전망은 구멍 숭숭 뚫린 신기루에 불과한 상황이 '당신들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나의' 상황이 될 수 있으니까.



오래 전, 수자원을 둘러싼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와 불평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블루 골드]를 보았다, 2023년 업데이트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신간 [워터]를 읽었다. 하버드(중퇴이지만) 출신 헐리우드 배우로 더 유명한 멧 데이먼과 개리 화이트가 함께 썼다. Water.Org 공동 설립자인 이들이 서로의 노력과 철학을 칭송하면서도, 물부족의 현실을 현장 전문가의 시각에서 전해주는 책이다. 이들이 어떻게 "Water.Org" https://water.org/를 통해 지구촌 물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는지 책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또한, 깨끗한 물 접근성이야 말로, 생존뿐 아니라, 교육 기회, 성평등 등 사회 전반의 변화를 유도한 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분들이 발벗고 나서 준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다만, 부제인 "물이 평등하다는 착각"을 십분 살려서, 물이 부족한 지역 사람들의 시점에서 불평등의 현실을 조금 더 생생히 삽화처런 부각시켜주었더라면 하는 욕심을 독자로서 부려본다.



[드라이] 덕분에 앞으로도 한 동안, 물 불평등에 대한 자료를 찾아 다닐 것 같다. 



캘리포니아 수로(California Aqueduct) 때문에 수로 지나는 주변 지역민의 건강(평균 수명)이 현저히 나빠졌다고 비판하는 (저자 자신이 그 지역 출신) 책을 분명히 읽었습니다. 그런데 제목이 기억 나지 않아 답답합니다. 계속 검색어를 바꿔하며 그 책을 찾고 있는데(뭔가 건강 불평등에 관한 책), 혹시라도 플친님들 중 그런 책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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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1-01 23: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맷 데이먼!!!!! 오~~
책 제목을 알려드리지 못해 아쉽네요ㅜㅜ
저도 궁금하네요!!
물 아껴써야 하는데 큰일입니다ㅜㅜ
기후위기도 그렇고, 앞으로의 미래가 어찌될지?

얄라알라 2023-01-02 12:25   좋아요 3 | URL
맷 데이먼도 그러하고, water.org 공동 설립자 개리 화이트 역시
어머님께서 봉사에 진심이신 분이셨더라고요^^

알게 모르게, 공동체를 보듬는 엄마의 마음과 행동이 자녀에게 전해지나봐요^^

책읽는나무님, 해피 먼데이 시작하셨기를^^

감은빛 2023-01-02 20: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라도 쪽 가뭄이 심각해서 상수원이 말라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습니다.
한국이 물부족 국가라는 이야기는 언론의 오보였지요.
실제로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도시화, 산림 정책, 4대강 사업 등으로 점점 더 물 자원이 부족해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저도 책 제목을 알려드리지 못해 아쉽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얄라알라님.

얄라알라 2023-01-03 13:04   좋아요 1 | URL
감은빛님 감사합니다. 물 부족 세계 지도를 보면 우리나라 남부지역은 붉은 색이더라고요
먹거리가 나오는 귀한 땅인데, 도시민으로서 클릭과 배송 받는 데만 익숙해져서
정작 땅 지키시는 분들의 고뇌가 제 것임을 잊을 뻔했어요

일깨워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은빛님.

책 제목, 아, 저도 정말 답답해서 도서관을 직접 찾아서 서가에서 어슬렁 거리는 게 빠를 것 같아요^^ 분명 읽었으니까 ㅎ


고양이라디오 2023-01-05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이 부족하면 정말 끔찍할 거 같아요ㅠ 얄라님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ㅎ

멧 데이먼이 이런 활동하는지 처음 알았네요ㅎ 좋은 일 하시네요^^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