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가 지나 가물거리는 기억을 그러모아 방문기를 적어 봅니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Six Centuries of Beauty in the Habsburg Empire],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거 다들 아시죠? 워낙~~~유명하니까. 초등 겨울방학 견학 코스로 인기몰이 중이니까!
소문은 들었지만, '혹시나'가 역시나!
입소문을 탄 인기에 연일 현장판매 티켓 오전 매진이라는 소문 그대로, 13시쯤 도착했을 땐 이미 발권 마감이었습니다. (이 엄청난 인기 덕분에 3월 1일에서 3월 15일로 2주간 연장 전시 결정되었다고 하니, 아직 예매하지 않으신 분들께는 기쁜 소식이겠습니다)
매진이라면서, 매표소 앞 줄을 서 있는 분들은 뉘시냐고요?
이런 분들을 "일찍 일어나는 새, 얼리버드 early bird"라고 하겠죠? 올빼미로 살고 있는 제가 평생 되어보지 못한 유형. 저는는 실로 얼리버드인 친구 덕분에 무임승차로 얼리버드 티켓을 얻었습니다.
이 얼마나 소중한 티켓인가요! 얼리버드 티켓, 가격할인에 프리 패스 서비스까지! 무려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워낙 인기 많은 전시이다 보니 회차별 입장 인원 제한을 두었는데, 얼리버드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네요! 고맙습니다. 친구 A님!
이 얼리버드 입장권이 아니었다면, 성인 티켓 가격은 1만 7천5백 원! 얼리버드를 예찬해! 얼리버드로 살고 싶어!
흥분을 가라앉히고, 쌀쌀한 날씨에 벤티 사이즈 라테를 마셔둡니다. 얼리버드 티켓을 쓸 수 있는 마지막 날인지라, 얼리버드 조직이 다 모인 듯 입구가 혼란스러웠거든요. 저 많은 사람들 속에서 관람을 하려면 속이 따뜻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전시관 입구는 증명사진 남기기 딱 좋은 스폿이었지만, 워낙 사람이 많았던 관계로 패스합니다! 입장해서는 어땠냐고요? 아.....말씀 드렸죠? 무려 26일간 판매했던 얼리버드 티켓, 1월 31일까지 쓰지 않으면 "꽝=도루묵"이 되는 관계로 그 숱한 얼리버드 티켓구매자들이 하필 1월 31일에 다 몰려들었나 봅니다. ('early bird'가 티켓팅할 때만 해당되는 용어였는지도 ㅎㅎ) 나름 전시란 전시 놓치지 않고 다녀봤지만, 이렇게 입장객 많은 전시는 처음입니다. Musuem San에서 암실 체험할 때, 깜깜한 공간을 안내 쇠 파이프에 의지해서 더듬더듬 앞사람 따라 천천히 이동했던 때가 생각났어요. 아예, 두 줄 서기로 관람한다고 상상하시면 됩니다.
저는 13시쯤 입장해서 16시 30분쯤 나왔으니, 3시간 이상 머물렀습니다.
다음 일정이 아니었더라면 5시간은 충분히 머물며 하나하나 눈과 마음에 다 담고 싶은 보물들이었습니다.
총 96점이 전시되었다는데 그중에서도 "갑옷"에 매혹되었습니다. 전시관에 머물렀던 3시간 중, 1시간 이상은 온통 갑옷 구경하는 데 썼던 것 같아요.
Peter Paul Rubens /C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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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왕가 사람들이 입었던 갑옷이 정교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기능적입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게 정교한 장치들이 숨어 있어요. "갑옷"의 "갑"이 무슨 뜻일까? 옷이라기에는 예술작품을 나타내는 데 적합한 단어인가 궁금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예품이 과연 싸우러 나가는 사람에게 '입는 보호막'이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그 섬세한 아름다움에 절로 입이 벌어졌습니다.
흉통 부분을 보면 매끈한 곡면이 아니라 사구 dune처럼 살짝 솟아난 모양새인데, 이 모양이라면 화살이 비껴 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엉뚱한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하긴, 아래 갑옷의 경우 흉통 부분에 칼이나 뭔가를 걸어 놓을 수 있는 걸개가 붙어 있는 걸로 보아, 전투력 증강보다는 위세를 위한 옷이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옷의 전면보다 후면이 재미있었습니다. 단, 좁은 공간에 관람객이 워낙 많아서 후면부 볼 때 눈치가 많이 보이긴 했습니다. 디테일은 달라도, 갑옷 대부분은 허벅지 안쪽은 비워두었더라고요. 기동성을 위함이겠죠?
관람실 내 갑옷 입는 시연 동영상이 반복 재생중이었는데, 너무 재밌어서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혹여 유럽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갑옷 테마로 한 번 박물관과 미술관을 훑어보고 싶어질 지경이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의 갑옷일수록 조각이 세분화되었다하니, 당연히 입는데도 더 오랜 시간이 들었겠지요? 갑옷을 입은 연기자가 발레의 샤세 동작을 보여줍니다. 의외로, 갑옷 입고 움직임이 둔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입어보고 싶지도, 입고 활동해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갑옷 아래 감춤으로써 인간 육신의 취약성을 예민하게 인식하지 않을 수 없게되는 전쟁 상황은 상상만 해도 무서우니까요.
붉은 벨벳으로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금 도금을 입힌 갑옷....
위세를 위한 옷이라고 '쾅쾅쾅' 확인 도장 찍고 싶어집니다.
제 사고는 이런 데서 반복적 한계를 드러내는 데, 저는 극소수의 권력자가 황금 갑옷을 입고 위세를 뽐낼 때 덜그럭거리는 갑옷이나 맨 피부로 적의 칼과 창을 맞아야 했던 많은 보통사람을 상상하게 됩니다. 갑옷의 화려함에 매혹되는 동시에, 마음이 서늘해지는 까닭입니다.
저는 관람실 안에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를 들고 갔어요. 책에서 보았던 명화를 전시관 벽면에서 볼 때, 가벼운 기쁨을 느꼈습니다. 이번 전시의 놀라운 인기 덕분에 이 책 판매지수도 상당하더군요.
아직 [합스부르크 600년] 전시에서 찍어 온 사진 중 1/10도 방출하지 못했습니다. 테마를 정해서 조금씩 묶어 포스팅 하려합니다.
이 포스팅을 마무리 하기 전에,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선생님들의 높은 식견과 섬세한 배려에 감사 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브뤼헐 가문과 꽃 정물화' 전시실에는 실제로 너무도 아름다운 꽃을 배치하여서 전시실의 특징을 살려주었습니다.
한 때, 박물관 공부를 따로 했던 만큼, 박물관에 가면 전시품 외에 그것을 이어준 사람을 상상하게 됩니다. 이번 전시에서도 학예사 분들이 워낙 섬세하게 관람객을 위한 편의를 제공해주신 덕분에 정보와 재미가 넘치는 즐거운 관람 경험을 하고 왔습니다.
유럽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저인지라, 전시회에 담긴 알뜰 정보의 반/반/반도 못 담고 왔을지 모릅니다. 조금 더 공부를 해서 3월 15일 전에 다시 중앙박물관을 찾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