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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식탁 - 먹는 입, 말하는 입, 사랑하는 입
이라영 지음 / 동녘 / 2019년 9월
평점 :

부제를 꼼꼼히 살펴보았어야 했다. [정치적인 식탁]이라는 제목만으로 속단했다. 음식공급사슬 이면의 정치경제학을 다룬, white gold, black gold, blue gold 들로 불리우는 먹거리 혹은 기호품 이면의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는 책일것이라고. 교만한 속단에 한 방 먹었다.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의 [정치적인 식탁]은 키워드를 몇 꼽아 독자로서의 내 감상을 압축하자면, '페미니즘, 유럽과 북미 기반 경험세계, 40 언저리의 여성.'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이분의 강의가 열린다는 광고를 휙, 지나쳤는데 [정치적인 식탁]을 읽고 바로 후회했다. 글맛으로 전해지는 경험세계의 풍부함과 인습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지성의 매력이 이 정도인데, 현장에서실제 뵈면 어떠할까?

이 분은 서문에서 "제목에 '식탁'이 들어가지만 맛이나 요리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기에는 요리 실력이 별 볼 일 없고, 음식에 관해 특별한 지식도 없으며, 맛에 대한 수사를 과시할 능력도 딱히 없다 (10쪽)."이라고 명쾌히 선을 긋는다. 반면, 이라영 연구자와 무척 교집합이 많게 느껴지는 정소영 연구자([맛, 그 지적 유혹]의 저자)는 "거기(아보카도 올린 구운 호밀빵)라임 즙을 뿌리고 베트남식 칠리 소스인 스리라차 소스를 뿌린 후 고수를 손으로 대충 찢어 올린다. 나의 아침 단골 메뉴다(4쪽)"이라며 요리로 영문학 분석하는 재미만큼이나 글로벌 퀴진 요리하기를 즐겨하는 취향을 드러낸다. 개인적으로 영문학과 미디어를 전공한 정소영 박사의 글도 재미있었지만, 오늘 처음 만난 이라영 박사에 비한다면 파스텔톤이다. 이라영 박사는 원색에 가깝고 명료하다. 이런 연구자가 있었어? 급 검색해보니 2019년에만 그녀의 이름을 달고 나온 책이 수권이다.
소설, 영화, 드라마, (예상한대로) 캐롤 애덤스의 [육식의 성정치]는 물론이거니와 한강의 [채식주의자],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개인적 경험들을 시원스럽게 드러낸다. "식탁"이니 "음식"을 제목의 키워드로 달고 출간되는 책들이 넘처나는 21세기, 이런 색깔 분명한 에세이를 써내다니 독자로서 감동이고 앞으로도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연구자이다. 다만, 부러워서 지는 모양새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상상을 책 읽으며 내내 해본다. 반려견 '반야'를 향한 애끓는 사랑, 어린 조카에 대한 애정과 그 조카를 키워내시는 자신의 어머니의 돌봄 노동에 대한 속상함, 40언저리에서도 이효리 복근이야기를 하며 새로 바꿔 입을 수 있는 비키니 등으로 미루어보아, 이 연구자는 상대적으로 '돌봄' 노동에서 자유롭지 않을까.
같은 해에 여러 권의 대중서와 학술서, 게다가 ICOOP생협과의 작업까지 이 어마한 성취를 일궈내는 파워엔진은 상대적으로 돌봄 노동에서 자유롭거나, 자유롭기 위해 투쟁했기 때문에 가능하지는 않은지.
그녀가 서문에서 자신이 차린 식탁으로 초대한다고 독자에게 초대장을 보냈는데, 정작 나는 요리 맛을 보기보다는 딴 생각을 하고 있다. 건강한 자극이다.

* 붙이는 문장*
이라영 연구가의 에세이를 읽고, "한 걸음 더, 한 층 더 파는 노력"의 중요함을 다시 느낀다. 카프카의 <단식광대>를 언급한 글들 여러 편을 최근 우연히 읽었지만, 어디서도 실제 이 소설 집필 당시 카프카가 폐결핵으로 음식을 잘 못 넘기는 몸의 변화를 겪었음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라영 연구가 덕분에 나는 마틴 센의 작품도, 카프카의 말년에 음식과 맺은 관계에 대해서도 힌트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