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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추천 받으며 장바구니에 담아놨어도, 직접 읽고 나서야 먼저 읽은 분들의 추천이 절실하게 와닿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일곱 해의 마지막] 읽을 때도 그랬습니다. 알라딘 서재에서 플친님들의 리뷰를 여러 편 읽어왔으나 저는 소설의 주인공 '기행'이 백석 시인의 본명인 것도 기억하지 못했었더군요. 김연수 작가가 이 소설로 2020년에 문학상과 유명세를 탔다는 정도만 기억했고요. 김연수 작가를 게스트로 모시려면 상당한 강연비가 필요하다고 친구가 알려줬거든요, 정작 저는 김연수 작가의 문학세계는 커녕 연배도, 성별도 몰랐어요. 현실에서 백석이 험난한 삼수의 협동조합으로 떠나려던 즈음의 나이에 김연수 작가도 백석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 군요. 평생 언어를 지켜온 시인 백석의 삶이 하강 스파이럴을 타는 암울한 시기, 김연수는 "그런 그에게 동갑의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으면서, 작가 자신이 인생의 침잠기를 지나며 문학을 고민했던 경험을 투영해서 김연수 작가가 '동갑내기' 백석에게 얼마나 뜨겁고 찬사와 훈훈한 응원을 보내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재 친구분께서 [일곱 해의 마지막] 읽으며 생경한 단어들의 갑툭튀를 경험하셨다는 리뷰를 남기셨죠. [일곱 해의 마지막]에는 발음해 본 적도 없던 아름다운 시어들과 이미지들이 등장합니다. 쓰고 태우고 쓰고 태우고 하면서도 항상 가슴에 뜨거운 언어를 품고 살았던 백석과 김연수. 비록 동갑내기는 아니지만, 저도 그 분들께 질책도 응원도 받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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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2-03 1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경한 단어 갑툭튀!!!
맞아요.저도 그랬었던 기억이 이제 서서히 떠오릅니다^^
아뉘...그런데 김연수 작가의 성별도 모르셨다니?????
북사랑님 너무 하십니다ㅜㅜ😭😭

얄라알라 2022-02-03 13:45   좋아요 2 | URL
네^^;;;;; 인터뷰 기사 찾아 읽느랴고 사진으로 뵈니까, 굉장히 건강하시고 의지력이 강해보이는 인상이셔서 [일곱 해의 마지막]과 맞아 떨어지는 이미지이셨어요.

저, 너무 했죠?;;;;;; 반성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2-03 18:24   좋아요 0 | URL
반성하시기까지야!!
김연수 작가 팬이어서 제가 넘 흥분했어요ㅋㅋㅋ
근데 의지력이 강해 보이는 인상이시던가요??
저는 작가님 약해빠져 보이는 인상이다!!! 근데 글이랑은 분위기가 좀 다르시다?? 맨날 그런 생각하곤 하는데..ㅋㅋㅋ
집에 있을 때는 피곤해서 쇼파에 맨날 누워 계신다고 하시거든요..유머도 넘치셔요!!
여튼 알수록 반전 매력이 넘치시는 분이십니다^^

2022-02-03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22-02-03 18:43   좋아요 1 | URL
아니에요~북사랑님 말씀이 맞아요.
저도 처음 작가님 글을 읽고 사진 봤을 때 그런 인상 받았어요.
근데 자꾸 찾아서 읽고, 다른 곳에서 인터뷰하는 걸 듣고 하다 보니까 약간 동네 아저씨처럼 친근해져서..요즘은 작가님 보면 그저 웃겨서요!! 아...이러면 안되는데 그죠??
근데 작가님 너무 잘 나가시나 봅니다????ㅜㅜ
하긴...알라디너분들 중에서도 팬들이 넘 많으시더라구요^^
근데 피부에 광채가 나시다니???
자꾸 젊어지시나 봅니다ㅋㅋㅋ
직접 뵙고 싶네요.
작가님은 에세이집도 참 좋더라구요..책 읽고 나면 아~~고마 싸인 받으러 한 번 만나뵙고 싶어지긴 합니다^^

얄라알라 2022-02-03 18:45   좋아요 0 | URL
반 년 동안 읽을 소설을 제가 이번 1~2월에 읽나봐요
설 연휴 전후로 읽은 소설만 5권인데, 계시처럼 김연수 작가님을 만났으니 앞으로 책읽는 나무님께서 말씀하신 에세이도 찾아보고 차츰차츰 소설과 다시 가까워져보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2-02-03 18:54   좋아요 0 | URL
우와~~화이팅입니다♡
저도 아직 김작가님 소설 다 못읽었거든요. 같이 천천히 읽어 나갑시다^^
제가 읽은 소설 중엔 ‘사월의 미 칠월의 솔‘ ,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가 좋았어요.

미미 2022-02-03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시어들과 이미지들이라 하시니 다시 찜해놓습니다. 저도 이 책 리뷰 참 많이 봤는데 아직까지 못읽어봤네요. 올해는 꼭 뜨거운 감동을 느껴보고 싶어요^^*

얄라알라 2022-02-03 13:48   좋아요 1 | URL
중간 중간 만담가의 문장이 이어지고
러시아어 통역관으로서 기행이 적절한 번역어를 찾으려고 고민하는 부분들이 등장하는데,

저도 모르게 ‘히야! 이 말을 어떻게 통역해? 번역할까? 우리말 기똥차게 아름답구나!‘ 몇 번이나 생각했었네요^^
문학에도 조예가 깊으신 미미님께서 읽으시면 껍데기만 보았을지 모르는 저보다 더 깊은 뜻, 찾아내실 것 같아요^^ 나중에 리뷰 올려주시면 찾아 읽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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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읽고 싶어했는지" 기억이 가물거릴 즈음 [아메리칸 파이어]가 손에 들어왔다. 책표지가 새빨갛다!  엉킨 곡선들로 채워진 표지와 부제-"쇠락하는 소도시에서 일어난 연쇄 방화 이야기"-로 미루어 추리 소설이겠거니 짐작했다.




그렇다. [아메리칸 파이어]는 범죄의 실타래를 푸는 책이었다. 미국 내 쇠락하는 소도시에서 벌어진 연쇄 방화사건의 전모와 범인들을 집중 조명한다. 꾸며낸 사건인 줄 알았는 데 읽다보니, 논픽션이다. 버지니아주 아코맥 카운티에서 발생했던 연쇄 방화사건 실화를 모티브 삼았다.  



Slowking4, GFDL 1.2 <http://www.gnu.org/licenses/old-licenses/fdl-1.2.html>,  CC BY-NC 3.0





저자 모니커 해시는 집필 전, 실제 아코맥 카운티에서 여러 달 머물면서 치밀한 사전조사를 했다. 2010년대 초반 있었던 방화사건을 기억하는 주민, 방화범, 방화범의 지인과 가족, 변호사와 법원 공무원들, 의용소방대원들, 수사관들, 순찰대, 아코맥 카운티 지역 특화의 사학자 등 100여 명을 직접 만나서 자료 수집하는 데에 저자는 상당한 공을 들였다. 아코맥 카운티 토박이들의 시선에서는 철저한 외부인이었지만 모니커 해시는 작가로서 환대받았다. 방화 사건들 당시 진압에 나섰던 소방대원들은 기꺼이 사건 보고서를 공유했고, 지역 역사학자와 수사관들도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심지어 방화범인 찰리조차 인터뷰에 협조했다. 모니커 해시는 아코맥 카운티 소방서에서 잠도 잤고, 출동하는 소방차에 타보기도 했다. 이런 다각도의 노력이 <아메리칸 파이어>의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전개에 녹아 나온다. 


입체적인 현장조사 자료를 토대로 집필된 [아메리칸 파이어]는 단순히 '연쇄 방화범 꼬리 잡기'의 차원을 넘어서는 작품이다.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는 사회적 이슈들을 시발점들을 묻어두고 있다. 장강명 작가가 [아메리칸 파이어]는 "읽는 이에게 저마다 깊고 강력한 체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추천한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프로파일링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아메리칸 파이어]에서 "보니와 클라이드"에 비견할 커플 범죄자들의 심리분석에 관심이 갈 터이다(모니카 헤시는 'murdurpedia.org'사이트 자료를 활용해 여러 커플 범죄자의 실화를 병렬 배치한다). 유년기 가정폭력의 경험과 성인기 범죄의 상관관계에 관심이 있었다면, 독자는 방화범들의 과거를 타고 올라가 범죄의 불씨 시발점을 찾고 싶을 것이다. 나는 아코맥 카운티, 한 때 번영했던 지방소도시의 몰락과 그 황량함에 관심이 갔다. (100여 년 전, 이스턴 쇼어는 특산물 감자로 유명했고 번영했다. 하지만, 감자 재배지가 전국단위로 확산되면서 가격이 떨어졌고, 감자를 가공한 과자들이 미국인의 입맛을 길들이면서 점점 이 지역 농민들은 곤궁해졌다.) 




"A Potato Harvest" W. H. Martin / CC0


* * *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A Potato Harvest 



[아메리칸 파이어]는 신문 기사, 법정 기록, 역사 논문, 소설 등 장르의 얇은 막을 가볍게 벗겨내고 새로운 형식으로 사건을 전한다. 배우고 싶은 글 쓰기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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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2-02-03 0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풍토인지 삶인지 여긴 진짜 연쇄방화가 꽤 종종 일어나는 범죄입니다. 인종에 따른 것이란 말도 있고 한데 작은 규모지만 숨어서 불을 지르는 것으로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하네요. 토파민상승도 갖은 방법으로 가능하네요.ㅎ

얄라알라 2022-02-03 06:26   좋아요 1 | URL
조밀한 한국에 살다보니, 소설에서 묘사하는 소도시는 잘 상상도 안 되었어요. 밤화가능성 높은 폐가, 잠복근무를 수개월해도, 범인을 잡을 수 없을 만큼 폐가도 많고 넓다는 묘사가...


transient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저자가 본문 중간에 연쇄 방화범에 대한 정교한 분류법이라든지 범죄심리에 대한 파트를 넣을 수 있을만큼 관련 정보도, 사례도 누적된 게 많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드네요^^;;;

이 책에서도 방화범은 불 보고 희열 느낀다고 묘사됩니다.
 



2020 베스트셀러, 넷플릭스 인기드라마였던지라 '안은영'은 왠지 아는 이름 같다. 사실, 김은영, 최은영, 강은영.....심지어 김원영...기억의 타래를 더 길게풀면, '꽃부리 英' 친구들이 더 생각날 것 같다.  [재인, 재욱, 재훈](2021)으로 정세랑 작가를 미리 만났기에 다행이지, [보건교사 안은영](2020)의 톡특한 소재는 참신함을 넘어 당혹감을 주었을 테다. 보건교사의 '보건증진'업무(?), 일상적 내용이겠거니 생각했다 퇴마 망치 얻어 맞은 기분. 하긴 안은영이 휘두르는 퇴마 몽둥이는 영혼과 요괴들로부터 학생들을 크게 보호하고 돕는 셈이다. 


캐릭터의 이름 짓기(주로 작가의 지인들 실명)에서부터 정세랑표 스타일이라면, 명랑하고 따스한 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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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아먹기'로 묵직해진 위를 커피 대신 책으로 달래주고자 얇은 책을 집었다. [오늘도 매진입니다] 의 책날개에서는 저자 이미소를 "춘천 감자빵을 개발해 연 매출 100억 돌파"한,  '농업회사법인 밭 주식회사' 설립자로 소개한다. 1인당 최대구매가능 개수를 제한했더니 같은 손님이 옷을 바꿔입고 사갔다거나, 구매 후 고속도로를 탔다가 다시 되돌아와 추가 구매한 손님이 있을 정도로 '없어서 못 파는' 빵이라는데, 정작 빵중독자인 나는 아직 맛 보지 못했다. '파리바게트' 감자빵과 관련한 기사로 접한 것이 전부였다. 


 


[오늘도 매진되었습니다] 를 읽고 '(주)밭' 대표 이미소와 남편, 그리고 이미소의 아버지에 대한 호감도가 급 상승했다. 

그 이유는, 


1. 이미소의 강력한 효심은 성공의 원동력이다. 이미소는 어렵게 입사한 IT 회사 입사 6개월차였지만, 감자 농부 아버지의 SOS에 응하느라 퇴사했다. 본인 스스로 '가족'을 모든 가치의 꼭대기에 놓는다고 말한다. 


2. 이미소의 아버지는 종seed 다양성 지키기에 진심이며 대의를 추구하는 분이다. (적어도 그 따님인 이미소에 따르면 그렇다). 아버지의 품성과 지향을 알게 모르게 닮은 이미소 역시 가치를 확산하는 사업을 한다. 청년 농부인 남편을 위시하여 뜻을 같이 하는 농업인들과 함께 우리 땅과 식량 주권을 지키기 위해 고심한다. 


3. 한때 패션전공생으로서 런웨이의 화려함을 곁눈질했던 이미소는 의외로 검소하다. 연 매출 100억 이상 벌어들이면, 고급 외제차 욕심이 날 법도 한데 그녀 자신이 기동성 최상의 소형 농기구 같다. 필요에 민첩하게 대응하여 즉각 문제해결하는 데 최적화된. 이미소의 판별력이 뛰어나고 행동력은 더욱 뛰어나다. "어떤 일을 해서 후회하더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일단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160)는 그녀의 인생관을 보여준다. 




[오늘도 매진되었습니다] _ 약간 아쉬운 점. 

"밭에 심은 것은 감자가 아니라 가치였습니다."라는 홍보 문구에 더 충실하도록 '감자' 언급을 조금 더 했더라면 싶다. 이미소 대표처럼 감자계 영향력 있는 분이라면, 국산 감자 종의 다양성 및 식량주권을 지키는 농업 등에 대해 스피커 역할을 할 수 있을 터이니. 


효심과 가족애, 공동체의식 충만한 이미소 대표를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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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1-21 22: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 번씩 북사랑님의 책 선별하시는 능력에 감탄합니다^^
이 책도 대단한 책이군요?
감자빵 저도 처음 들었어요.

얄라알라 2022-01-21 22:34   좋아요 2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려요. 선별이 아니라, 충동에 따른 ‘집어들기‘입니다.
저자 이미소는 20대부터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속 변화하려 노력했더라고요. 그 아버님도 대단하신 것 같고요.
책에서도 저자가 부모님의 양육법 특징을 요약하고 감사드리는 부분이 따로 있어요^^

감자빵, 저도 실물 검색해서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답니다! 택배주문이 되는지 검색해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22-01-21 2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몰아먹기로 묵직해진 배 ㅎㅎ 저도 자주 그래요. 감자빵이 있군요. 저도 빵중독자에요 ^^
책 좋은 내용인 것 같아요.

얄라알라 2022-01-21 23:39   좋아요 2 | URL
프레이야님은 늘씬하셔서(서재에 최근 올리신 숲 속 뒷모습 사진) 몰아먹기랑은 거리가 멀어보이시는데^^;;

저는 생일선물로 빵을 한 박스 택배 받은 적도 있어요. 고등학교 친구가 제 빵중독 기억했다 보내주었더라고요.

저자 이미소는 어떻게해서든 자신의 아버지가 농사지으신 감자를 팔아보고자 애쓰다가 빵까지 개발하신 케이스여서 효심에 감복^^

프레이야 2022-01-22 00:56   좋아요 2 | URL
제 별명이 어릴적부터 지금까지도
빵수니!! 에요. 밀가루중독자 ㅎㅎ

persona 2022-01-22 0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메가커피 감자빵으로 먹어보긴 했는데 감자가 들어간 반죽에 크림치즈가 들어가고 충분히 단짠하니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같아요. 저는 이 도우에 치즈 소시지 넣고 핫도그 만들면 맛있겠다 싶더라고요. 감자 종에 대해서 궁금해지고 이미소라는 분과 그 가족분들도 무척 궁금해지네요. ㅎㅎㅎ 이거 보니 감자 분이 나게 쪄먹고 싶네요. ㅎㅎㅎ

얄라알라 2022-01-22 19:19   좋아요 1 | URL
분 나는 감자~~~비주얼만으로도 자연, 자연에 가깝죠^^ 감자빵도 생김새는 일반 감자같아보이더라고요. 저는 구글 검색만 했지만요

persona님처럼 저도 감자 종이 궁금해요. 우리나라는 수미감자가 표준종처럼 인식된다고 이미소 저자가 지적하시더라고요

기억의집 2022-01-22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 들어봐요. 매출액 백억이면 어마어마한 금액인데,, 고구마빵은 들어봤어요!!!

얄라알라 2022-01-22 19:18   좋아요 0 | URL
네, 기억의집님. 직원들 기숙사까지 있더라고요^^


이분도 처음에는 감자랑 고구마도 섞어서 빵 만들었었나봐요. 결국 감자 본연의 맛을 극대화한 빵이라는데
아마도 따뜻할 때 먹어야 감자 맛 살겠죠?^^ 저도 맛이 궁금해요.
 



Elizabeth Moon. 크리스마스. Going Solo. Moon. 강추위. 카페에서 외투 껴입기. 혼커피 혼독. The Speed of Dark. 2021 Top3 소설. 



2021년의 크리스마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크리스마스 특수를 누렸을 카페, 손님이 적어 공간이 휑하다. 오래 한자리 차지하기 미안해서, 3번이나 주문한다. 라떼에서 시작해서 아메리카노, 다시 카모마일을 마시도록 [어둠의 속도]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집중했는데도  500여 페이지를 읽는데, 꼬박 5시간이 걸렸다. 5시간 중 5 minutes은, 작가 엘리자베스 문(Elizabeth Moon 1945~)에게 마음 속 찬사를 보낸 시간이었을 것이다. 


[잔류 인구 Remnant Population]는 2주 전, 표지에 혹해서 집었다가 가슴 벅찬 채 마지막 장을 덮었던 소설이다. [어둠의 속도]는 내가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확실히 깨닫게 해 준 작품이다. "엘리자베스 문"을 좋아한다. 앞으로 더 많이 좋아할 것이다.  엘리자베스 문. 



Szymon Sokół/ CC BY_SA 3.0 



엘리자베스 문의 대표작, [어둠의 속도](2002)는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 버금가게 내 마음에 큰 진동을 일으켰다. 내가 읽고, 경청하고, 공부하는 근원의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세상 보는 시선을 알기 위함이다. 노력해왔지만, 벽이 있다. 그 벽에 올라서는 경험을 나는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작가로서 엘리자베스 문의 공명 능력은 마법적이다. 그녀는 [어둠의 속도]에서 주인공의 정신 세계로 들어가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비정상," "자폐증," "질병" 등의 라벨로 정체성을 덕지덕지 도배당한 청년 '루'를 주인공 삼아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루'는 자신을 '비정상'에 가둬두는 사회적 시선과 제도를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할 수 있고, 자기 안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인물이다. 게다가 후각, 청각 등 지각능력뿐 아니라 인지력까지 천재적이다.



하지만 그를 고용한 회사는 '루'를 비롯한 소위 자폐증 직원들을 채굴할 자원으로 보기 때문에 이들의 뇌를 개조하는 실험을 제안한다. 독자는 루가 "나는 나 자신이기를 좋아합니다. 자폐증은 나 자신의 한 부분입니다. 전부가 아닙니다."라며 "장애"를 한 인격을 판단하는 단일기준 삼는 세상의 시선을 반격할 때, 루가 그 수술을 받지 않기를 기대한다. 독자는 루가 감각하는 세상의 다채로움과 열린 가능성에 부러움마저 느낀다. 질병의 증세로 폄하하기 이전에, 그건 소중한 자질이니까. 하지만 끊임없이 '넌 달라'의  '경계' 밖으로 내몰려 온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루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엘리자베스 문의 경이로운 공감, 공명 능력에 감탄했던 나는 소설의 부록으로 실린 '인터뷰'를 읽고 나서야 이해한다. 아기를 입양해서 18년 키워온 어머니로서, 작가는 (소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자폐인) 자신의 아이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앎/알지 못함/안다는 것을 알지 못함" "어둠/빛" 등의 짝패 아닌 짝패도 사실 작가가 아이와 실제 나눴던 일상 대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또한 Moon은, (내가 그토록 존경하는) 올리버 색스의 저작을 탐독하며 [어둠의 속도]를 준비했다. '인터뷰'를 읽고 나니, 내가 왜 [어둠의 속도]에 열광하는지가 더 분명해졌다. 나 아닌 사람(들)의 집에 조심스레 노크하되, 발자국 남기지 않으려는 절제된 존중심. 상대를 바꾸(고 싶을지라도)려기 보다는 먼저 알려는 노력. 



책은 사람들이 생각해 낸 질문에 답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답하지 않았던 질문을 생각했다. 나는 늘, 아무도 한 적이 없으니 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쩌면 다른 누구도 생각해 낸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둠이 먼저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무지의 심해에 처음으로 닿은 빛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질문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332)



*본문 203쪽 세번째 줄, '싶죠'를 '시죠'로 잘못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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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2-26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커피를 3번이나 주문할 정도로 재미있게 읽으셨나보네요 ㅋ 역시 책은 카페에서 읽어야 잘읽히더라구요 ^^ 리뷰를 보니 완전 궁금해집니다~!!

얄라알라 2021-12-27 22:11   좋아요 1 | URL
동감합니다, 새파랑님!!! 카페에서 읽으면 냉장고 문도 덜 열고, 카톡 확인도 덜 하고~.
다른 분들 대화는 백색 소음 삼기 딱 좋고...

고양이라디오 2021-12-27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을 거 같아요^^ 흥미로운 책이네요ㅎ

얄라알라 2021-12-27 22:12   좋아요 1 | URL
저는 어쩌면 작가가 이렇게 자폐인 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잘 이끌어갈 수 있나....책 읽는 내내 계속 경탄했거든요. 다 읽고 인터뷰를 읽고 나니, 그제서야 조금 의문이 풀렸습니다. 엘리자베스 문, 시간 여유 나실 때 접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멋진 작품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