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된 독서 - 질병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
최영화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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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에서 밀어주던 신간, 책덕후들이 적극 추천하던 책, 『감염된 독서』를 2018년 끄트머리 한가해진 마지막 주에 읽었습니다. "질병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라는 부제가 아니었던들, 지레짐작 '책 읽기 권장' 서평 모음집으로 착각할 뻔했습니다. 이 책은 감염관리 분야 국내 권위자인 최영화 교수(아주대 의대)가 썼습니다. 처음부터 단행본 출간을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라, '아주대 의료원 소식지'에 쓰던 칼럼 5년 치를 모아 묶어냈답니다. 분명 원고 마감일과 얼굴 모를 독자들이 주는 압박감도 컸겠지만, 제가 상상하기로 최영화 교수는 신바람이 나서 글을 써 내려갔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요? 글쓰기야말로 그녀가 좋아했고, 좋아하고, 또 잘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아마 최영화 교수는 이 칼럼들을 쓰면서 감염내과 의사이자 교수, 동시에 두 형제의 엄마로서 바쁨에서 벗어나 어린 시절의 꿈을 만나고 다시 연장시켰을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처음부터 의사 되기를 꿈꾸지 않았답니다. 문학가를 꿈꾸기에 시집과 소설, 역사 책을 끼고 살던 문과 여고생이었는데 가족이 회유해서 의대를 목적으로 이과로 전향했답니다. 그제서야 의문이 풀립니다. '일단 의대 입학 후에는 『감염된 독서』에 등장하는 그 숱한 고전을 꼼꼼히 읽어나갈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텐데, 이미 10대 시절 다 읽었구나'하며 대략 그림을 그려봅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방대한 문학서적을 누에고치 삼아서 40대가 된 최영화 교수는 비단 뽑기, 수월하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신춘문예 응모하러 연습하듯, 『감염된 독서』에서 최영화는 의대교수로서라기보다는 문학도처럼 다채로운 문체와 형식을 시도합니다. 편지체, 보고서체, 자기독백형 일기체 등 문체가 다채롭고 매력적입니다. 어린시절부터 섭렵해온 문학작품의 탑에 더해, 의사로서의 경험이 워낙 풍부하기에 글에 힘이 있지요. 참 재미있습니다. 이 책 안 읽고, 2018년 넘어갔으면 어쨌을까 하며 신나게 읽었습니다.

최근 만난 『맛, 그 지적 유혹』의 저자 정소영 박사가 영문학자로서 소설을 '음식'을 키워드로 읽어냈다면 최영화 교수는 의학자, 그 중에서도 감염내과 전문의로서 문학작품에서 '감염병'의 징후를 포착하고 그에 대한 사람들(고통을 겪는 사람, 간호하는 사람, 병을 멀리하려는 사람 등)의 반응을 분석합니다. 역시 한 분야를 깊이 들어간 이들은 같은 작품을 읽어도 틈새 빛으로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거네요. 감탄하며 부러워합니다.

자, 이제 『감염된 독서』에서 제가 취하고 기억할 정보만 메모형식으로 기록해봅니다.

"내과 전공의가 되어 호흡기내과를 배정받았을 때 저는 객혈 환자를 볼 일이 가장 두려웠습니다...(중략)...아, 무섭다. 그렇지만 당시엔, 그리 먼 옛날도 아닌데, 장갑 끼고 마스크 쓰고 그러느라 꾸물대는 것은 회식한 뒤 돈 안 내려고 구두끈 매는 것만큼이나 치사하고 우스우며 소견 좁은 일이었습니다. 몸 사리지 않고 환자를 돌보는 것, 그것이 바람직한 자세였지요."

"벽엔 선홍색 피가 낭자했고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저는 객혈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아요'라는 표정으로 굵은 혈관 주사를 시작했으며 피가래를 뽑아냈습니다. 마스크도 없이"

『감염된 독서』 202-3쪽.


'감염 따윈 두렵지 않아'하며 마스크 없이 객혈 쏟는 환자를 치료했던 의료진, 그래서 최영화 교수가 어떻게 되었느냐고요? 네, 결혁에 걸렸었지요. 이 대목에서 저는 '생의학'이 어쩌구저쩌구해도, 해당 지역의 정서 사회문화적 풍토에 따라 그 치유방식이나 몸에의 접근이 꽤 차이 나는구나싶어 재미있었어요. 100여년 전 제중원 수술 장면 사진 속 의사들이 맨손으로 집도하는 모습과 겹칩니다.

최영화 교수를 멘토로 모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르침, 후학 양성에 뜻을 세우고 재미도 느끼시는 이 분은 한센병 강의하는 고충을 다음과 같이 토로합니다.

저는 감염내과 의사로 제가 강의하는 대다수의 감염병을 가까이서 겪고 치료하지만 나병만은 본 적도 치료한 적도 없으면서 학생들 강의는 그럴듯하게, 마치 본 것처럼, 뇌와 손이 따로인 채로 열심히, 해마다 하고 있습니다.

『감염된 독서』 143족

오늘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으면서 현실이었던, 그것도 죽고 싶을만큼 고통스러운 현실이었던 환자들과 그 고통을 해결해보고자 했던 한 의사의 이야기를 문자로나마 전해 들으면서 소록도 한번 가지 않고서는 이 강의도 이제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위의 책, 147쪽

비슷한 생각을 해 본 적이 많습니다. 최영화 교수야, 한센병이 워낙 드물어서 그랬다는 핑계라도 대려면 대겠지만 핑계거리도 없는 사람은 그 죄책감을 어찌합니까? 판을 키우면 판 위에 오르는 언어가 달라질텐데, 게을러서 늘 같은 판 위에 같은 판서나 계속하는 자의 죄책감은 어떻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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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손님
히라이데 다카시 지음, 양윤옥 옮김 / 박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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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 (haiku)"를 검색해봅니다. 원했던 답만큼 시원스러운 답변은 아니어서, 여전히 궁금합니다. "하이쿠 소설"이 뭔지. 히라이데 다카시가 쓴 『고양이 손님』이란 소설을 다 읽었는데도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겁니다. 평론가들과 번역가가 쏟아낸 말의 향연 중에 "이 작품은 일종의 하이쿠 소설이다!"라는 표현이 있어서 찾아본 게지요. 다 보여주지 않고, 절제된 언어와 표현으로 계속 몸체를 감추려 하면서 유혹하는 소설이라고 제 식대로 정리해버렸습니다.

제목보고 짐작은 했는데, 『고양이 손님』에는 고양이를 제 자식처럼 예뻐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네, 실은 그 주인공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 이뻐하다 못해, 별명까지 '딸랑이'로 붙여준 고양이 '치비'는 그들의 고양이도 아닙니다. 같이 세 사는 처지의 가족에게 입양된 하얀 고양이이거든요. 그래서 그냥 "고양이"가 아니라, 『고양이 손님』일 것입니다. 제목이. 손님으로서의 '치비'는 도도하게, 애교 부리는 법도 없이 부부의 집을 들락이면서 마련해 준 잠자리에서 잠도 자고 갑니다. 부부는 '치비'더러 '미인'이라고 하며, 유난히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그 도도함이 못내 서운하지요. 그래서 고양이는 오로지 자기 주인 앞에서만 그 모습을 다 드러내는 법이라며, 주인 아니라 옆집 사는 이웃임을 자위하지요.

『고양이 손님』은 그 줄거리만 놓고 보면, 특별할 게 없는 내용 - 세 들어 살게 된 집에서 다른 세입자가 키우는 고양이가 제 집에 드나들다 보니 정이 옴팍 들었다가, 고양이가 죽었다 해서 많이 슬퍼한 내용- 인데도, 읽고 나면 가슴 한 수석에 아련한 감동이 남습니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보니, 지칭하는 단어가 고양이일 뿐이지 소설에 등장하는 부부는 고양이 '치비'를, "운명"이라는 단어를 번복해 쓰면서 하늘에서 보내준 자기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처럼 대하거든요.

'왔다, 돌아갔다'라고 했던 말투도 어느새 '돌아왔다, 가버렸다'라는 말로 바뀌었다. 둘이 함께 외출했던 날에는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어두침침한 현관 앞 작은방에 앞발을 가지런히 맞추고 부모 기다리던 아이처럼 맞아주는 일도 있었다

- 우리 고양이지.

라고 말하는 아내는 우리 고양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층 더 자신에게 보내준, 아주 먼 곳에서의 선물이라고 굳게 믿는 기색이었다

『고양이 선물』 85쪽 본문

소설 속 화자인 '나'보다도, 그의 '아내'가 고양이 '치비'에게 보이는 감정의 복잡한 선들은 분명 아기 키우는 엄마의 그것입니다. "나는 공연히 껴안으려 하지 않아. 치비를 자유롭게 놀다 가게 해줄 거야."(48쪽)면서 치비가 놀고 쉬고 먹을 수 있는 온갖 편의를 제공하며 예뻐합니다. 심지어는 밥상 앞에서 '갯가재'의 살을 발라 입에 넣어주기까지 합니다. 그녀가 입에 '갯가재' 넣어주는 속도에 발끈한 고양이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손을 물자 "이제 절교야!"하면서 화를 내는 모양새가, 꼭 '중2병' 아이 키우는 엄마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하루는 그 '아내'가 '치비'를 위해 전갱이를 구워 놨는데 치비가 먹고 가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차에 치여 죽었다더군요. 그들은 원래 '치비'의 주인이었던 이웃을 찾아가 조문하고, 꽃을 공양하겠다고 성묘를 부탁합니다. 하지만 이웃집은 냉랭한 반응을 보이는데요. 다시금 '치비'를 자식으로 생각하는 그 부부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집 부인의 입장에서 보면, 내 자식이나 다름없는 아이를 잃고 슬픔에 잠겨 있는 참에 알지도 못했던 그 아이의 또 다른 반쪽의 삶을 갑작스럽게 코앞에 들이댄 것이다. 성묘랍시고 내 집 정원에 불러들여 또 한 명의 '엄마'가 울기 시작하는 모습은 차마 지켜볼 수 없다

『고양이 손님』 126쪽

이제서야 어렴풋이 이해됩니다. 소설의 말미에서 주인공 부부는 치비가 죽은 지 10년이 지나도록, 치비가 죽은 날짜를 기억하고 슬퍼하는데 갑자기 3월 11일이 아니라, 3월 10일에 치비가 죽었다는 계산을 하더니 그에 집착하거든요. 3월 10일 밤 10시부터 11일 밤 11시까지, 죽기 전 치비가 "마지막 하루를 평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냈"을 텐데 그 하루가 어땠는지 궁금해합니다. 그러면서 소설이 끝납니다. 허무했어요. 처음엔. 그러나 다시 곱씹어 보니, '치비'를 "하늘이 보내준 선물" 혹은 "운명," 다시 말해 자신들의 자식으로 생각했던 부부에게는 고양이가 죽기 전 하루 동안 무엇을 했는지 10년이 지났어도 궁금해질 터이겠지요. 『고양이 손님』은 그래서 부제를 '아이 없는 부부가 자식처럼 사랑한 고양이'로 지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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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1-0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19-01-01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언어 - 민주주의로 가는 말과 글의 힘
양정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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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언어

 


 역주행 베스트셀러였다는 『언어의 힘』 이 밀어낸 물결이었을까? 2018년 유난히도 "말," "언어"를 중점적으로 다룬 책들이 많이 보였다. 나긋나긋 일기체로 "묵언"의 디톡스 운동을 전파하려는 책,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리니!"라며 자기 긍정의 말을 종용하는 책, 최근에는 『차별의 언어』(장한 업 교수, 이화여대) 나 『언어의 줄다리기』 (신지영 교수, 고려대) 등 학자들까지 언어 이면, 차별과 불평등을 공고히 하는 이데올로기를 반성하자는 책을 펴냈다. 『세상을 바꾸는 언어: 민주주의로 가는 말과 글의 힘』도 2018년 출판계 파도를 타고 쓸려온 책인가 싶어, 그냥 지나칠 뻔했다. 그런데, 저자 양종철을 소개하는 책날개 문구에 한국 사회 저자 소개에서 빠지지 않는 학력 사항, 수상 경력 등이 없음을 확인하고 호기심이 생겼다. 대신 그의 생을, 카피라이터 정철이 "양정철로 살았다. 노무현을 만났다. 노무현으로 살았다. 문재인을 만났다. 문재인으로 살았다. 다시 양정철로 산다."라고 굵고 짧게 압축해냈다. 읽어봐야겠다 싶어졌다.

 



책 손에 든 후, 내려놓지 않고 한숨에 다 읽었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민주주의적 진보를 이루려면 국민들 생각과 의식을 바꾸고 문화를 바꿔야 (7쪽)" 하기에 함께 봉하마을에서 글을 쓰자던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빚진 마음 때문이었을까, 드러내놓고 혹은 행간에서 모시던 전 대통령과 현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존경심과 뜻을 함께 세우고 펼친다는 의지가 계속 보인다. 이 책을 쓰기까지, 대한신문기자연합 회장으로서, 대기업 홍보담당 전문 인력으로서, 문예창작과(우석대) 교수로서, 정치인의 비서로서 활동하며 얻은 경험에 더해 뉴질랜드에서 거주하는 친동생, 영국에 거주하는 처제와 동서로부터 얻은 글로벌 비교자료까지 많은 자료를 양정철은 성실히 모았다. 그가 글쓰기 가르치는 업을 삼았었음을 모르고 읽었을 때도, 어쩜 이리 국어 바르게 쓰기 정신이 곧은 데다 실제 실천까지 중시할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원체 글쓰기를 좋아하고 좋은 글쓰기를 사명으로 아는 이이다.

『세상을 바꾸는 언어』는 평등의 언어, 배려의 언어, 공존의 언어, 독립의 언어, 존중의 언어라는 5장 구성에 짧은 에세이들을 담았다. 모든 에세이들이 부제인, "민주주의로 가는 말과 글의 힘"으로 수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실은 구매해서 포스트잇 덕지덕지 붙여놓고 싶은 페이지가 많았다. 여러 주장 중, 상당 부분은 이미 기존 혹은 양정철의 책 이후 출간된 책의 저자들과 주장과 겹친다. 예를 들어 신지영 교수가 『언어의 줄다리기』에서 맹렬히 비판했던 '미망인'이란 단어 이면의 성차별주의나 장한업 교수가 콕 집어낸 한국 특유의 '국민여동생,' '국민배우' 표현의 함의 등이 그러하다. 양정철의 여러 주장 중,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바로 한국에서는 유난히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식 정서가 팽배한지 일상생활에서나 정치권 활동에서 '고성 高聲'을 많이 쓴다는 지적이다.


목소리가 크다고 설득력이 높은 게 아닌데도 우리 사회엔 왜 그렇게 고성이 많은 것일까. 사회 전반에서 목소리가 커진 것은 저마다 절박한 상황이 있어서일 것이다. 목소리가 크지 않으면 주목해주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알아주지 않는 오랜 풍토가 만든 일종의 사회 병리다 (『세상을 바꾸는 언어의 힘』52쪽) "

양정철 저자의 해석을 듣고 보니, 단지 목소리의 크기뿐 아니라 태도의 공격성에도 마찬가지의 배경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위 점잖게 언질을 주거나, 담당자가 문제 사항을 알아서 처리해주리라고 기대했다가는 숟가락 뺏기는 경험을 하거나 전해들으니...... 내 숟가락 남이 챙겨주지 않는다는 절박함 때문에 나의 상황을 더 격하게 어필하려 드는 성향. 점잖빼거나 어물쩍거리다가는 30분이 지나도록 새치기 때문에 비오는 날 택시 못 잡거나 TV도 없었음을 증명 못해 시청료 8년치를 못 돌려받는다. 목소리를 키우거나 태도에 공격성을 더하는 해법을 쓰게 된다.

비록 230여 페이지 짧은 에세이였지만, 양정철 저자는 서문에서 조심스럽게 희망한 집필목적을 상당히 성취한 것 같다. 그는 한국 사회가 일부가 아닌 전반적으로 차별을 덜 하고, 특권의식을 덜어내고 온화해지는데 꼭 필요한 지적을 했는데, 문제는 저자처럼 언어용법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훈련을 받았거나 업 삼는 일부가 아닌, 그렇지 않은 다수가 민주주의로 가는 말과 글의 힘을 느끼고 힘을 키우는 방향으로 말하고 써야하는 것이다. 실천하지 않으면 평등, 공존, 배려, 화합. 가치는 가치로서만 남게 되니.

"지방방송 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감사해요. 감사드려요." (상대높임법은 합쇼체를 써야함)

"좋은 하루 되세요." (어법에 안 맞는다!)

"중대박사태권도, 연세대치과, 용인대 유도" (학력드러내는 사회)

"내일은 맑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주체없는 수동형 문장)

"미세먼지 좋음" ('아니, 미세먼지가 어떻게 좋을 수가 있는가?')

"살생부, 진검승부, 화약고, 용병, 격전지" (전투적인 방송용어)

"일가견, 기라성, 18번, 간발" (일본어의 잔재)


『세상을 바꾸는 언어의 힘』에서 지적하는 민주주의 저해의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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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조성일 지음, 박지영 그림 / 팩토리나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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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책 제목이 과거형의 문장이기에, 이미 제목만으로 그 톤을 짐작할 수 있었지요. "지나 보니, 그게 사랑이었더라. 헤어지고나니, 더 잘 사랑할 수 있었겠더라"의 톤이라고 짐작하며 첫 페이지를 펼쳐씁니다. 이 아기자기하게 예쁜 책을 쓴 이는 조성일. 『차라리 우리 헤어질까』로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의 사랑을 받았다는 문구를 보니, 전작을 쓸 때는 열애중이었나봅니다. 『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는 헤어지고 난 후의 아픔, 사랑을 추억하는 내용이 대부분인데 반해서요. 

'피뜨겁고 뺨 복사꽃같이 부드럽고 혈색 좋은 젊은 날의 사랑, 누가 안 하나? 누군들 책으로 엮어낼 이야기가 없을까?'하는 독자의 반응을 미리 읽기라도 하듯, 저자 조성일은  『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을 자기 연애담에 함몰해 쓰지 않았다고 "책을 내며"에서 밝힙니다.  "구체적인 상황보다 모호한 상황으로 열린 결말을 만들어서, 그 글에 각자(독자)의 경험을 넣어 완성하면 더 의미 있지 않을까(1쪽)"하여 "묘하게 독자의 글이 되는 느낌을 주고 싶어 (2쪽)" 썼는데 "(독자는) 어떻게 하면 사랑의 정체기에서 벗어날지 고민하면서 각자 자신만의 답을 찾"(3쪽) 바란다고 했습니다. 저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랑에서의 각자 "답찾기"는 독자의 몫인 셈이고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땔거리 삼아, 독자 각자가 사랑의 기억을 더듬어 태우며 불의 형상을 각자 만들고 의미를 찾으라는 것이지요. 뭐, 제게는 꽤 어려운 과제이긴 합니다만.....태울 원료도, 태울 의지도 딱히 없어 작가가 보여준 사랑궤적을 따가가 보는 식으로 리뷰를 전개하려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을 서술형으로 거칠게 말하면, "내가 널 좋아했다. 나중에 보니, 내가 널 (너가 나 좋아한 것 보다) 더 좋아했던 것 같아. 그만큼 넌 사랑스러웠어. 그런데 내 뜨거운 사랑이 되레 독이 되어 네가 삼키기 힘들어했나봐. 헤어지고 나니, 이제서야 보여. 그래도 우리 사랑 너무 아름다웠지 않니? 난 여전히 네가 그리워"의 줄거리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 좁은 해석으로는 그렇게 보였으나, 사랑 이야기야 워낙 줄기가 갈리는 해석을 낳을테니, 개인의 해석이라 한정해둡시다. 
그렇게 사랑했는데 헤어지니 "
내일 눈 뜨기가 두렵다 / 그냥 이 모든 게 장난이면 좋겠" (17쪽)을 정도로 실연의 고통이 큽니다. 실연의 고통은 삶의 물결이 흘러가는데도 다시 저자를 찾아와 자꾸 과거 회귀하게 합니다. "지겨울 때도 됐는데, 그만할 때가 맞는데"(105쪽)라며 머리로는 정리하면서도 자꾸 헤어진 이를 생각하고 궁금해합니다. "우리는 이미 1년 반 전에 헤어졌는데 말야"(105)

"여기 진짜 맛있다."

"어떻게 또 찾았어?"

"매일 취향 저격이네."

"역시 센스 있다니까." 

.

"혼자 오셨어요? 같은 걸로 드릴게요. 오늘은 늦으시나 봐요. 언제 오세요?"

.

"여기 계산해주세요."



 

 - 조성일 "단골 손님" (134쪽) 



저자는 위에 전문을 소개한 "단골 손님"에서처럼 헤어진 여자친구랑 늘 찾던 맛집을 혼자 찾아 처연함을 안주 삼기도 하고, "누구를 좋아하거나 사랑할 수는 있어도/ 그 누구도 너처럼 성장통을 겪게 하진 않더라 (233쪽)" 며 사랑의 기억을 통해 자신이 성장했음을 돌아봅니다. 조성일 작가와 경험의 공감대가 많은 이들에게는 한 줄 한 줄, 일기장 들킨 기분으로 읽게 되는 글일테고, 경제신문 페이지를 한장한장 탐독하며 일상의 메모에서 형용사를 지워나가는 이들이 읽는다면 괴리감을 느낄 글이겠지요. 직접 읽고 확인해보세요. 

아 참, 일러스트레이터 '박지영' 님의 화사하면서 부드러운 일러스트레이션은 사랑경험의 편차가 어떻듯 모든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해줄 책 속, 보너스 선물임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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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이혼 2
모모세 시노부 지음, 추지나 옮김, 사카모토 유지 원작 / 박하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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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고의 이혼

 

 

 

한국의 김수현 작가 위상일까? 사카모토 유지는 일본에서 제 76회 드라마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받은 <최고의 이혼> 시나리오 원작자라고 한다. 이 드라마가 최근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덕분에 친절한 한국어 번역으로 소개받을 수 있었다. 박하출판사에서 발 빠르게, <최고의 이혼> 2권의 책으로 엮어 출간해주었으니까. 1, 2편 다 하면 총 500여 페이지 분량의 소설이지만 치밀한 묘사보다는 통통 튀는 대사 중심이기에 무척 빨리 읽을 수 있다. 각본을 원작으로 소설화한 작품의 약점이자 매력인 듯.

 

 

드라마 문법에 익숙한 눈치 빠른 독자라면 짐작했겠지만, “최고의 이혼은 달달한 로맨스 소설이기에 결코 주인공들이 각자의 길을 모색하며 이혼 도장을 흔쾌히 찍고 내게 놔두지 않는다. 되레, 이혼을 계기로 서로를 얼마나 애틋하게 갈망하는지를 깨달아 다시 신혼으로 돌아가게 설정한다. 주인공 유카와 마쓰오의 밀당만으로는 양념이 약하다. 그래서 그들과 커플로 밀당하며 연애의 타래를 복잡하게 얽게 하도록 또 다른 문제적 커플을 등장시킨다. 그 커플의 아카리는 마쓰오의 전 애인인데, 아카리의 현 애인은 타고난 바람둥이로 유카와도 탈 뻔한다. 일본인 특유의 예의바른 거리두기를 유지해오다가도 어느 순간 존대법을 버리고 반말을 주고받으며, 아슬아슬하게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일본 드라마의 특징일까? 주인공 캐릭터 네 명 모두, 태연자약한 척하다가 한순간에 욕망과 셈법을 훤히 드러내며 판을 흔드는 공통점이 우연의 일치인지, 일본 드라마의 문법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 두 커플을 자칫 짝을 바꾸어, 바람날 뻔하나 건전 드라마답게 얌전하게 원래 짝을 찾아 해피엔딩 한다. 이혼했던 유카와 마쓰오는 다시 혼인서류를 내고 공식 부부가 되고, 류와 아카리도 배속의 아기 덕분에 끈끈하게 다시 맺어진다 

 

<최고의 이혼>은 일본에서 인기를 끈 후, 한국에 상륙한 셈인데 두 나라 시청자들에게 거부감 적은 결혼, 이혼의 문법이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느껴질까? 궁금해진다. 예를 들어, 1편에서 이미 이혼 서류로써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유카와 마쓰오는 남들의 이목이 두려워 쇼윈도 부부 생활을 지속한다. 유카의 경우는 시할머니를 실망하게 하거나 병환 중인 친정아버지께 누가 될까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더 들어가 보자. 이혼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유카의 시할머니는 손주와 손주며느리의 결정이 경솔하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유카의 시아버지는 남의 집 소중한 딸을 이렇게 만들었다며아들 마쓰오에게  버럭 화를 내고, 유카의 친정아버지 역시 제멋대로인 딸 때문에 미안하다며 사위에게 사과한다. 으흠…… 이어서, 직접 화법으로 결혼은 너희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닌 두 가족, 즉 집안끼리의 인연이라는 문법을 강조한다. 미혼이 아닌 주체적 비혼이 증가하는 추세의 한국과 일본 사회에서 이런 문법이 어색하게 느껴질 날이 올까? 결혼과 이혼의 문법은 앞으로 어떻게 어떤 속도로 바뀌어갈까?  <최고의 이혼>을 읽고 나니 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길다면 꽤나 긴 <최고의 이혼> 1,2편 전부 읽고 나서 가장 의미심장한 대사로 기억되는 것은 바로 이것. “콩나물 따위는 (전골 냄비 속에서) 신경 쓰지 않아도 익는다는 듯이 내버려두다사랑과 존중 받고 싶다면서 정작 상대를 콩나물 취급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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