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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 - 가짜 약부터 신종 마약까지 세상을 홀린 수상한 약들
박성규 지음 / Mid(엠아이디) / 2019년 10월
평점 :
고급 정보인데도 전문가의 권위를 친절함으로 내려놓고 대중에게 소화될 글을 써주는 학자들을 만나면 설레고 고맙다.최근엔 [정치적인 식탁]의 이라영 박사와 박성규 박사를 그 리스트에 올렸다. 흔치 않게도 스웨덴 웁살라대학교에서 약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활동 중인 박성규 저자 덕분에 약의 세계, 이면의 정치경제학적 그물망까지 엿보게 되었다.
[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는 몇 년전 재밌게 읽었던 [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와 왠지 톤이 비슷할 것 같아, 심심풀이용으로 집어 든 책이었다. 실제 읽어보니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와도 컨셉면에서나 책 편집의 취향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 포털 연재 기사를 엮어낸 에세이모음집의 느낌.
고백하자면 1부 "욕망, 약을 발명하다"까지만 해도, 여기저기서 자주 접해온 흔한 정보들- 예를 들어 플라시보 효과, 히포크라테스의 체액설, 중세의 방혈 치료법- 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글에서 신선함을 느낄 수 없었다.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될 즈음해서 2부 "약, 욕망의 도구가 되다" 파트가 전개된다. 1부까지만 해도, 서양 의학에서의 약 관련한 역사의 에피소드 모음같았던 글이 갑자기 척추를 심더니 곧추 선다. 내 말은, 저자의 지향과 목소리가 담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감사의 글"에서 언급된 이름들로 추정하건데, 아마도 저자는 "의료용 대마 합법화 운동본부"측 관계자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거기서 많은 영향을 받은 듯 하다. 1부까지만 해도 온통 서양, 남의 나라의 약 이야기였는데 2부, 특히 4장과 5장쯤 가면 이장희, 박정희 전 대통령 등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해서 귀가 솔깃해진다.
저자의 핵심 주장은, "약은 사람을 홀리는 물질, 매혹시키는 물질로서 예나 지금에나 기능해왔고 사람을 살리는 데 기여할지는 두고 봐야한다. 잘 써야 한다."
저자의 세부 전공이 '약학' 중에서도 무엇일지 궁금할만큼, 저자 박성규 박사는 제약회사들 뜨끔하거나 분노하게할 자료들을 많이 풀어놓았다. 예를 들어, 항우울제는 해피드러그HappyDrug로 포장되었지만 실은 높은 자살율을 부작용으로 유도한다고 한다. SSRI(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notor) 계열 항우울증제로 인한(다고 추정되는) 사건들을 보니, 어쩌자고 이런 약이 행복증진제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유통되는지 어이상실이다. 특히 우울증 치료제 프로작은 특허가 1999년 만료되자 동일성분의 약을 사라펨Sarafem이라 개명해서 비싼 가격에 유통되고 있다 한다.
300페이지가 훌쩍 넘는 [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의 마지막 챕터에는 "섬유근육통 fibromyalgia"란 병이 등장한다. 실은 예전에 이 병의 진단과 싸우며 의료화를 비판한 자서전적분석서를 읽으며 fibromyaigia란 발음을 피하려 애썼던 기억이 난다. 박성규 박사가 깔끔하게 정리해주는데, 이 병은 특히 화이자 증 대형제약회사에게 병으로 선포될 필요와 상품성이 충분한 무엇이었기에 2000년대 본격, 병으로 승인되었다. 오호라! Susan Greenhalgh은 후속 연구를 하였던가?
무엇보다 내게 박성규 저자의 문제의식은 한 사회 혹은 시대가 특정 물질을 약으로, 혹은 독약이나 금기의 물질로서 규정하고 일원들에게 내면화시켜내는 방식에 관심두게 했다. 미국 닉슨 행정부에서 일급 마약으로 낙인찍힌 대마와 한국의 대마가 동병상련의 처지였음이 흥미롭다. 한국의 경우, 1969년 주한미군과 관련한 사건에서 대마 규제 목소리가 있었고, 70년대 반독재 노래를 부르는 예술가들을 타락한 악인으로 낙인찍어 침묵시키는데도 대마에 대한 미디어 효과가 필요했다고 한다. 2019년, 또 뭐가 있을까? 정작 대마는 일급 마약이라면서 카페인 듬뿍 커피를 밥처럼 마시고, 시험기간이면 에너지드링크로 스스로를 각성시키는 우리의 모습에서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