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자들 - 한 난민 소년의 희망 대장정 미래그래픽노블 3
오언 콜퍼.앤드류 던킨 지음, 조반니 리가노 그림, 민지현 옮김 / 밝은미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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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성당의 한 미사에서 신부님께서 "멕시코 이민자들이 얼마나 어렵게 불쌍하게 사는지를 보세요, 그걸 보면, 나는 참 행복하구나."감사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발언에 실망했지만, 사실 비교급 행복,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서 상대적 안전감을 얻는 이가 많지 않을까? 나 역시 그렇고.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의 참사를 스냅샷 이미지로 파악하고 안타까워하는 이들의 마음 기저에는 상대적 안도감이 있을 테다.



그래픽 노블, [불법자들]을 읽었다. 숲속 산책하다가 의자에서 천천히 읽으려 [불법자들]을 들고 나갔다가 산책로 한 중간에 서서 읽었다. 몇 번이나 울컥거리며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나니, 1시간이 흘렀더라. 나는 더운 날씨에, 길 한가운데 서서 책을 읽었던 것이다. 이후, 지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전체공개 리뷰도 쓴다.



[불법자들]의 첫장에는 노벨상 수상자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엘리 위젤의 목소리가 인용되어 있다. "소위 불법)체류, 이민)자고 불리는 사람들이여.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불법자가 될 수 없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한 존재를 그저 "불법자"라는 용어로 축소해버림으로써, 인간으로서의 공통분모를 놓치게 한다.

사람을 가르는 범주명이 얼마나 무서운 효과를 지니는지, 요새 그 생각을 한다. 마치 "성소수자"라는 단어 하나로, 결이 풍부한 한 직물에서 오로지 날실 한줄이 내는 단색 하나로 옷감 전체의 이름을 정해버리듯, 성적 정체성 나타내는 용어 하나로 한 사람의 정체성을 덮어 버린다. 코로나 시대의 언어는 또 어떠한가? "확진자," "밀접접촉자," "자가격리자," "무증상 감염자," 인간이 바이러스의 포로(숙주)가 된 정도 혹은 가능성에 따라 층화된 범주명으로 나타낸다. 물론 이는 "질본"에서 전염병 관리, 통제 차원에서 유용한 범주이기에, 나는 그 실용성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단지, 이런 범주화가 일상에서 사람보는 시선에 반영돌 때의 암울함을 이야기하고 싶다.

어쩌면 나의 컴플렉스와 닿아 있다. 나는 완결점 찍지 못한 자에게 내려지는 '중도 이탈자'라는 명명에 사로잡혀, 내 자신을 덜 된 존재로 인식한다. 미생이군. 여기서 헤어나기 어렵다. 설령 손가락 한 마디가 끊겨 나간 상태라 해도, 다른 부위가 온건한데도 나는 사지가 다 잘려나간 비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완전히 새옷으로 갈아 입거나, 과감히 겉껍질을 벗어내고 흉터 없는 속껍질 몸으로 살지도 못한 채, '중도 이탈자'라는 이름에 짓눌려 흉터입은 삶을 산다. 이 상태의 지속은 안 되겠다.



다시 [불법자들]의 이야기로 돌아가본다. 가나에 살다가 지중해를 건너는 12살 소년 '이보;의 이야기이다. 이보는 저자 '오언 콜퍼'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지만, 그가 이 책을 쓰기 위해 만나 인터뷰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세포로 이뤄졌다. 살아 있는 소년으로 느껴진다. 이보는 삼 남매였으나, 누나가 먼저 떠났다. 사람들은 그녀가 유럽으로 갔을 거라 짐작했다. 이보의 형도 어느 날 자취를 감추었다. 역시 사람들은 이보의 형이 누나를 찾아 유럽으로 떠났으리라 짐작했다. 그래서 이보도 형을 찾아 무작정 떠난다.

이후 아프리카 가나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이르기까지 이보의 여정은 험난하기 그지 없다. 약자가 더 약한자의 피를 빨며 고통을 이중삼중 가중시키는 먹이사슬, 망망대해에서는 유럽에 도착할 희망으로 기다리다가 막상 유럽에 도착하고 나서도 난민 쉼터에서 그저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 이름도 개개의 개성도 지워진채 뭉뚱그려 불법 난민들의 범주로 일원화된 사람들.

[불법자들]의 부제는 "한 난민 소년의 희망의 대장정"인데, 부제에서처럼 희망의 메시지가 있었던가? 찾았다.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하나는 이보네 삼남매의 강한 우애, 생명 나누기를 아까워하지않을만큼의 우애이다. 우애란, 결국 핏줄 차원을 떠나 확장시키면 인간애이기도 하기에 희망적이다. 둘째, 이보는 자신을 보호해줄 어른이나 돈 한푼, 쉼터 하나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에서도 선의를 전략삼아 상황을 유리하게 이끄는 능력을 보였다. 예를 들어, 이보는 트럭에서 떨어진 물티슈 한 상자를 들고 다니다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 요긴한게 나눠 쓴다. 덕분에 죽 한 그릇, 일자리 하나라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전략적 계산에 따른 생존방편일지라도 '친절'과 '선의'가 생존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설정은 희망적이긴 하다.

[불법자들]은 성인 뿐 아니라, 초등 중등 어린이에게도 유익 하다. 요즘 대한민국 어린이들 코로나 19로 반 자가격리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일상을 답답해한다. 그러나, 이 정도의 답답함은 희망이라는 막연한 끈 하나 붙잡고 지중해를 건너는 숱한 어린이들의 고통에 비하면 그저 사치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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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도시 - 대규모 전염병의 도전과 도시 문명의 미래
스티븐 존슨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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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로, 호흡기로, 생명의 줄타기로서 코로나를 경험하고 있는 분들과 또 의료진에게 염치가 없다. 하지만, 5개월 째 기특한 자가격리 중인 나로서는 Corona는 온라인 채널이 전해주는 추상의 정보이기도 하다. 간혹 관련한 전문가들의 인터뷰나, 북미 및 유럽발 뉴스를 보지만 어디까지나 온라인 채널일 뿐이다. 철저히 "Untact"하다보니, 세계 유동성까지 막아 놓는 이 전염병이 추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활자중독을 어쩌지 못하고, 또 책을 들였다. 4권. 출판사와 저자가 각기 다른데도 표지 디자인에 일관성이 느껴진다면 과잉 반응일까? 팬더믹으로서의 전염병이 주는 경고인지 붉고 검다. 검붉다. 그 중에서도 가장 검붉은 [감염도시]부터 읽기 시작한다.

하지만, 책 날개에서 저자 약력을 보고 [코로나 19: 자본주의의 모순이 낳은 재난]부터 읽을 걸 그랬나 잠시 후회했다. [감염도시]가 논픽션 장르라는 설명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Covid-19에 대한 사회문화적 해석을 기대했다. 게다가 저자 스티븐 존슨은 기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 전염병 전문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감염도시]를 다 읽고 나니, 4권 중 제일 먼저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얻는 게 많았다.


우선, 저자 스티븐 존슨의 자유로운 글쓰기. 그는 전기문도 아니고 역사소설, 잡지 기고문도 아닌 독특한 장르의 글을 개척한 것 같다. 실제 영문학도로서 빅토리아 시대 소설에서 전염병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석사 논문 주제 삼았던 그인지라 픽션인 듯 논픽션 스타일로 썼다. 19세기 런던은 급습했었던 콜레라를 둘러싼 이야기를 역사적 자료들을 토대로 소설가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썼다. 게다가 그는 지면의 상당 부분을 당시 수인성질병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던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며 콜레라의 감염경로를 밝렸던 존 스노라는 인물에 할애한다.

자수성가한 저명한 의사였던 존 스노는 어떠한 사명감 혹은 야망에, 콜레라가 도는 도시를 돌며 사람들에게서 물 시료를 채집하고 병력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했던 것일까? 19세기 대다수의 보건전문가와 대중들이 '독기'이론을 믿었을 때 홀로 '수인성 감염병'의 경로를 주장했던 것일까? 왜 스티븐 존슨은 이러한 존 스노에게 절제되었으나 숨길 길 없는 존경심을 보내는 것일까?

어쩌면 작가로서의 스티븐 존슨의 작업 방식이나 위상이 존 스노의 그것과 닿은 지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집요함, 고집, 철저함. 닮은 꼴이기 때문에 더 집중했을지도 모른다.



많은 책에서 19세기 영국에서 콜레라가 돌 때, 과감하게 우물 손잡이를 제거했다는 에피소드 정도로만 존 스노를 소개한다. 그런 에피소드 만으로는, 존 스노가 아래의 지도를 그리기까지 얼마나 많이 가가호호 방문을 하고 편견과 싸우면서 콜레라의 감염경로를 밝히려 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온라인의 시대로 넘어갔다지만, 존 스노의 접근법과 창의적 발산은 여전히 유효하다. 저자 스티븐 존슨 역시, 존 스노의 지도를 현대적으로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제안한다. 한 마디로 "21세기판 스노의 지도"(293)이 필요하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위험 가능성이 높은 도심 공기를 감시하는 센서들로 엮은 정교한 감지망, 환자들에게 나타난 이상한 증상을 보고하는 병원의 1차 진료 담당자, 수질 오염 징후를 감시하는 공공 급수 시설 등에서 얻은 데이터"(293)로 그린 디지털 감염병 지도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느끼지만 나는 감탄하면서 질투하는 쪽이다. 이번에도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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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0-06-25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갖 과학기술의 ‘결정체‘라는 device들이 잔뜩 있어도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여실히 느끼는 요즘의 트럼프독재치하의 아메리카입니다. 결국 노가다가 관건이라고도 생각이 들구요.

2020-06-25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로운 대중의 탄생 - 흩어진 개인은 어떻게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었는가
군터 게바우어.스벤 뤼커 지음, 염정용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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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ONA로 일상의 시계가 다르게 가는 요즘꼬꼬마들도 "지금 이 시국에?" 라는 말을 쓰더라. 이럴 걸 두고 '웃프다라고 할까? 꼬마들도 아는 걸까? 이 재난 상황이 사적 경험 차원이 아닌, 집합적 국가 차원의 문제로 다뤄짐을........

 

[새로운 대중의 탄생: 흩어진 개인은 어떻게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었는가]를 하필 "이 시국에" 읽다 보니, 한국의 상황을 대입하느라 읽는 속도가 느려 졌다. (적어도 유럽에서) 20세기가 대중의 시기였다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진 21세기에 과연 대중은 매력을 잃었을까? 한결같이 '대중'이라는 동일한 단어에 현상을 담지만, 과연 과거의 '대중' 21세기의 '대중,' 그 속성은 얼마나 겹칠까? 이 책은 "개인주의 시대가 왔다는 일반적 가정과 달리 대중은 결코 사라진 적 없다...(중략)...새로운 대중이 생겨났다."(7)고 선언하며 시작된다. 베를린 자유대학의 철학 명예교수인 군터 게바우어와 마찬가지로 독일인 철학가인 스벤 뤼커가 함께 썼다. 유럽의 지성인 미셸 푸코, 하이데거, 한나 아렌트, 피에르 부르디외, 르네 지라르, 조르조 아감벤, 안토니오 네그리 등을 종횡무진 인용하고 에드거 알렌 포우와 카뮈의 소설부터 히치콕의 영화까지 다양한 소스를 끌어온다. 유럽의 역사와 정치적 상황에 익숙한 독자에게 아무래도 더 친절할 책이란 생각도 든다


대중은 본질적이고 항구적인 특성을 나타내지 못하는 불명료한 개념이다. 그래서 공저자 군터 게바우어와 스벤 뤼커는 질문의 방향을 돌린다. ‘대중이란 무엇인가?’에서, ‘대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어떤 원리로 대중이 움직이는가,’ 그리고 언제 우리는 대중이라고 말하는가? (316)’.  

대중 형성 과정부터 살펴보자. 먼저 많은 이들이 한 장소에 집결하는 것이 첫 단계이다[★광화문 광장★]. 이들에게는 공통의 지향성(한 방향으로의 움직임)이 있다[★축구팀 응원★]. 이들은 일체화된 행동을 통해 강렬한 정서적 반응을 경험함으로써 생각 속의 대중을 형성한다[★붉은 티셔츠와 집합적 응원의 박수와 몸짓, 그리고 붉은 악마라는 상상의 공동체★]. ‘++++ + + += 우리가 되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자각을 통해 대중은 정치적 잠재력을 얻는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회-정신적 동력이 대중을 형성하는가? (82)” 먼저, 집단 최면 상태에서 최면술사로서의 지도자 아래 최면 상태가 사회적으로 모방됨으로써 대중이 형성된다는 르봉의 해석이 있다. 프로이트나 엘리아스도 대중 형성에 대한 가설을 내 놓았다. 주목할 지점은 군터 게바우어와 스벤 뤼커가 보기에 이전의 대중과 군중 속에서 소멸되었다면 21세기, 새로운 대중 속에서 개인은 독자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가치 있게, “개인적으로 풍부해진 것을 경험(111)”한다. 개개인이 스스로 최고 권력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고 권력과 직접 관계를 맺는 것이 그 한 예이다. 한 마디로 21세기에도 대중은 이전의 대전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권력의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렇다면 더 생각해 볼 질문은 이 새로운 대중 속에서 각자의 사회적 역할, 정치적 의미는 무엇인가?


유럽 지성인들의 저서를 읽는 것은 언제나 도전이다. 도전하는 이가 부족한 탓이다. [새로운 대중의 탄생: 흩어진 개인은 어떻게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었는가]를 하필, ‘이 시국에읽었기에 더욱 감흥이 컸고, 생각할 거리가 많았으나 1000자 내로 압축해내기에는 이해가 부족하다.


  냉전시대에 카네티가 완성했다는 이중 대중의 개념, 이 이중대중의 모방적 구조, 포퓰리즘적 대중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 대의민주주의의 공격(Trump대통령의 트위터 소통도 한 예), 공간과 대중(대중이 신성한 공간의 파괴자가 아니라 되레 범속화시킴으로써 그 공간을 대중의, 거주 가능한 공간으로 되돌려내는 힘), 인터넷 등 메스미디어를 통해 형성되는 대중 역시 감염의 원리에 따라 작동함, 가상이 대중이 먼저하고 실제의 대중이 뒤따르는 예(2016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의 social bot, Crowd funding, Flash Mob, ‘독자층이라는 개념) 등등 [새로운 대중의 탄생: 흩어진 개인은 어떻게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었는가]으로 새롭게 환기 받은 생각거리가 한 무더기이다. 이 맛에 책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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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중동, 만들어진 역사 - 중동을 읽는 자가 세계를 읽는다! 만화로 보는 교양 시리즈
장피에르 필리유 지음, 다비드 베 그림, 권은하 옮김, 김재명 감수 / 다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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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씩 차근차근 읽어가는 중입니다.







"잘 몰라서" 부끄러운 게 아니다. "몰라서"  행여 실수할까봐 조바심 난다. 혹자는 서구 중심적 세계관의 반영이라고 비판하는 "근동Near East" 등의 용어쓰는 것도 조심스럽고, 전범을 영웅으로 칭송할까도 걱정된다. 피비린내 나는 민간의 고통을 한 구절의 이벤트로 기억한 채 모르쇠할까도.......그래서 일부러 중동 역사 책을 찾아봤다. 도전적인 과제인지라 일부러 만화책으로 골랐다. [만화로 본 중동, 만들어진 역사]. 이래뵈어도 글쓴이는 프랑스파리정치대학교 국제대학원의 교수이자 중동정문가인 장피에르 필리유(Jean _Pierre Filiu)이고 그린이는 만화전문 출판사를 설립해 활봘히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는 다비드 베(David B)이다. 


만화 형식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다비드 베는 그림이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하도록 그린다. 강렬한 이미지가 문자보다 더 깊이 뇌리에 박힌다. 예를 들어 방관만 하던 미국이 2차 세계대전 발발하고 "석유"가 중요해지고 나자 '스윽~' 중동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아래 그림처럼 표현한다. 담배 꼬나물고 여유롭게 관망하다가, 180도를 돌아 '쓰윽~' 깊숙하게 영향력 행사 시작. 





두 번 읽었는데, 실은 리뷰 쓸 만큼 머릿 속에 구조화되어 중동 역사가 망을 그리며 뻗어나지 못한다. 시간 차를 두고 나중에 한 번 더 읽거나, 관련 다큐멘터리를 중간에 한 번 보아야겠다.


[만화로 본 중동, 만들어진 역사] 본문의 굵은 가지를 그려내진 못해도, 타이틀 속뜻을 이해한 것 같다. 주말 내내의 독서가 물거품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모든 역사가 진행형일테지만, 타이틀에서 중동 역사를 "만들어진," 수동형으로 표현한 의도가 중요하다. 읽는 이에 따라 불쾌하다는 반응하겠지만(우리가 체스 판위의 말이니? 움직여지고, 만들어지게?), "전쟁 after 전쟁"이라는 분쟁의 역사를 체스판 위에 그리고 조종대를 쥐려는 이들이 있었고 계속 있다. 프랑스인 저자는 중동의 역사에 미국이 어떻게 개입하여, 때론 독자자와 손을 잡고 중립적인 척 하면서 이중잣대를 쓰거나 전쟁판을 일으키는지를 시원하게 보여준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는 사담 후세인을 지원했던 미국이 어떤 과정을 거져 후세인의 몰락을 이끌었는지도 이 책을 통해 정리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비판적 지식인이라는 저자는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의 중동정책들을 매섭게 비판한다(크리스쳔 베일 덕후인지라 새벽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 [딕 체니]가 이해에 좀 도움이 되었다). 그 독설가인 트럼프 대통령조차 칭찬일색으로 조의를 표혔던 아버지 부시, 그리고 아들 부시. '죽음의 고속도록'라고 마치 공포영화 제목처럼 한 문구로 지나가버리지만 용서될 수 없는 범죄. 



"미국의 개입이 항상 좋은 의도였던 것은 아니다"라는 옮긴이의 문장이 책 다 읽고서 더 이해된다. 

중동 역사에서 소련을 비롯 유럽의 역할 역시,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간다면 "항상 좋은 의도였던 것은 아니다"라는 문장의 주어로 쓰일 수 있지 않을까? (몰라서 묻는다)


타자의 역사라고 생각하면이처럼 사후 반응으로 끝나지만, 만약 그것이 우리에게 임박한 것이라면? 오싹해진다. 이 좋은 책을 깜냥 부재로, 반도 못 소화시켜 아쉽다. [만화로 본 중동, 만들어진 역사]를 여름 쯤, 다시 읽어야겠다. 좀 배경지식 양념좀 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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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건강 - 보건의료의 정치경제와 사회의학의 미래
하워드 웨이츠킨 지음, 정웅기.김청아 옮김 / 나름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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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기

역자는 "이 책 [제국과 건강]이 보건 의료의 정치경제와 의료 사회학 분야에 관심이 있는 관련 전공학생과 교양 대중뿐 아니라, 보건의료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와 활동가들에게 많이 읽히길 바란다 (411쪽)"고 희망했다. 각각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과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는 두 저자는 관련 분야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손대기 어려운 문장들을 옮겨주었다. 본문보다도 더 본격적 본문 같은 "옮긴이의 말"까지 덤으로 얹어주기도 했다. 아쉽게도, 독자로서의 내 시력이 흐린지라 전체 흐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즉, 역자들이 희망했던 독자 리스트에서 '교양 대중'은 살짝 빠져도 좋을 듯하다. 전공서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진 70쪽에 달하는 599개의 각주와 역주를 수록한 결단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각주를 홀랑 생략한 한국어판 학술서를 종종 봐온지라, 출판사 '나름북스'의 김삼권 대표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2. 저자에 관해서

하워드 웨이츠킨은 일차의료를 하는 의사이자, 비판적 공중 의학(Critical Public Health)을 이끄는 사회학자이다. 한국어 단행본으로 소개되는 그의 첫 저서, [제국과 건강]은 2012년 미국사회학회 주관의 우수학술도서이다. 그는 Hilary Modell과 함께, 칠레 군사독재 정부가 고문하고 투옥시켰던 보건의료 노동자의 구조 위한 국제 연대운동을 벌였다. 이로써 칠레 정부의 심기를 건드려 이후, 칠레 입국을 못했다는 이야기는 그가 지향하는 "비판적 공중의학"의 실천적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하워드 웨이츠킨은 (주로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쓰였기에 상대적으로 학계에 덜 알려진) 라틴 아메리카 사회의학의 전통을 소개함으로써 미국을 위시한 "더욱 발전된(12)" 국가들에 통찰을 제공하고자 한다. 하지만, 한국의 보건의료 상황도 잘 모르는 독자로서 나는 칠레, 쿠바, 볼리비아 등의 사례를 따라가기가 도전적이었다.



3. [제국과 건강]에서 취한 점

크게 3부 구성으로 제국의 과거(대략 1980년대까지)-현재(1980s~2010s)- 미래 순 배열이다. 1부에서는 의료와 공중보건의 발전(혹은 변화)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라는 맥락 아래서 살펴본다. 1장에서는 카네기 재단, 록펠로우 재단 등 자선단체와 국제무역협정이 어떻게 공중보건과 제국의 강화에 연계되는지를 살핀다. 2장에서는 사회역학의 선구자 3인(엥겔스, 피르흐, 아엔데)를 소개하며 질병의 사회적 기원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태동, 심화되었는지 소개한다. 3장에서는 CCU(관상동맥집중치료실)의 정치경제학 사례를 통해, 보건의료 상품및 서비스가 다국적 기업의 전세계적 활동 강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보여준다.

2부, '제국의 현재' 중에서 5장이 가장 유익했는데 서문의 문장을 그대로 빌어와 소개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신자유주의적 정치경제 정책들이 공공 부부인 제공하는 보건의료 서비스에 미친 영향과 이러한 서비스의 민영화 과정, 국제적 보건 의료 상품 및 건강보험 시장에 대한 다국적 기업의 침투와 관련된 초국적 자본가계급의 등장, 경제적 세계화가 국민국가에 끼친 영향, 그리고 그 결과로서 공중보건 운영에서 국가가 주권을 상실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18) ☞ 놀랍게도 한 문장이다. 이쯤해서 예비독자들은 [제국과 건강]의 문체, 특히 번역체를 상상할 수 있으리라.



2부의 다른 장들은 신자유주의 하 사회 안전망의 민영화가 공중보건에 끼친 영향을 구체적 예를 통해 설명해준다. 일방적인 제국의 횡포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도 여러 번 소개받은) 볼리비아의 물 사유화 반대 투쟁을 통해 저항도 보여준다. "민영화뿐 아니라 다양한 전략들, 특히 전 지구적 무역과 세계화, 이데올로기, 그리고 전쟁이 어떻게 자본주의 '제국'을 발전시키고 강화했는지를 분석한다." (409쪽 옮긴이 해제)


3부......


'제국' '대항-제국 Counter-Empire'의 맹아를 내포한다...제국과의 경쟁과 제국에 대한 전복, 그리고 새로운 대안 모색을 위한 투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영역 중 의료와 공중보건도 이런 투쟁의 장에 포함된다." (141)



3부에서는 라틴 아메리카의 사례를 중심으로 '대항-제국'이 판타지가 아님을 보여준다엘살바도르는 보건의료서비스 민영화에 맞섰고볼리비아는 물조차 상품화하려던 다국적 기업에 맞서 싸워 물주권을 수호했다([Blue Gold]라는 다큐에서 보고 감동받았던 저항사례). 저자는 이런 저항운동의 의의와 과제를 다음처럼 정리한다."


"신자유주의와 민영화의 대안을 추구하는 사회운동은 대중에게 스스로가 존엄한 존재라는 자각을 불러일으켰다...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러한 대항 패권적 공간들을 더 폭넓은 사회적 변화로 확장할 수 있는 사회운동 전략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335) 다시금, 사회의학자로서의 저자의 지향을 상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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