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 처음 읽는 철학
철학아카데미 엮음 / 동녘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만나는현대 프랑스 철학
 
 
 
 
 중학교 사회 기말고사를 위해 이름만 외웠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만에 읽으니 부끄러웠다. 마치 읽어본 적 있다는 양, 다윈의 <종의 기원>을 종종 언급하다가 막상 친구로부터 두꺼운 원서를 선물받고는 책장 장식용으로 고이 모셔두기만 했음을 고백한다. '나 이래뵈도 샤르트르의 <말>과 <구토>는 고등학교 때 읽었거든?,' '메를로 퐁티, 무용 평론에서 자주 들어보던 이름인데?''한국에서 대학나온 사람치고 설마 롤랑 바르트랑 미셸 푸코 책 하나 안 읽어보았으리라고?' 하였건만, 정작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에 대해 이름 이상의 것을 설명하라하면 머릿 속은 백지. 그래서 두꺼운 책에 도전장을 내었다.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 철학>에.......살구핑크빛 표지에 '처음 읽는'이라는 겸손한 문구도 마음에 들었다.
 
 철학 문외한에게도 친절하리라는 기대감을 져버리지 않고, <처음 읽는 프랑스 철학>은 친절한  서술방식을 택했다. 철학서로는 이례적으로 '해요'체 '합쇼'체로 쓰인데다 필자들은 솔직하게 자신의 지적 편력을 혹은 취향을 드러낸다. 자크 라캉을 소개한 김서영은 "너희 엄마도 모른단다"라는 자캉의 말을 24세에 처음 만났단다. 이후 라캉 전문가인 숀 호머(Sean Homer) 교수에게 지도 받으며 라캉 개론서를 두권이나 번역한다. 철학 아카데미의 대표인 김진영은 롤랑 바르트를 그의 "육체적인 삶과 지적이며 공적인 삶을 상호 관련해서 개괄하는 방식"으로 적고 있다.
 
사실 이 고마운 프로젝트는 '철학 아카데미(http://www. acaphilp.or.kr)'의 2012년 가을 학기 기획강좌에서 시작되었다. '불특정 다수를 위한 비제도권 평생교육기관'을 모토로 삼는 이 학교의 좁은 물리적 공간 탓에 프랑스 현대 철학 수강을 원하는 많은 이들이 안타깝게 발길을 돌려야 했고, 이에 강의를 글로 재구성하자는 움직임이 시작된다. 그 시간과 노력을 잡아 먹는 성가신 작업을 총 12명의 저자들은 기꺼이 나누어 맡아주었다. 이렇게해서 4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처음 읽는 프랑스 철학>가 일반 대중과 만나게 되었다.
'들어가는 글'에서 '철학아카데미를 대표하는' 조광제는 말한다. "우리 나름의 철학 사상을 꾸릴 작업이 무르익지 못했고.......중략......다른 이들이 형성한 철학 사상의 진의를 정확하게 해독 (p. 9)"하는 것이 순서라고. 철학 사상에서의 배타적 민족공동체나 국가 공동체의 독선을 따르지 않되, 한국 사회가 지닌 특수성에 프랑스 현대 철학에서 해독한 진의를 적용해보자는 취지에 철학 까막눈 독자지만 고개가 끄덕여졌다.
 "샤르트르부터 바디우까지, 우리 눈으로 그린 철학 지도"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처음 읽는 프랑스 철학>는 장 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엠마뉘 엘레비나스, 모리스 블랑쇼, 롤랑 바르트, 자크 라캉, 루이 알튀세르,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알랭 바디우를 소개한다. 어짜피 철학 지도 독도법(讀圖法)에 까막눈이지라 아무 철학자를 탐사시초로 삼은들 어떠하리란 생각으로, 이름이 친숙한 철학자 순서로 읽어내려갔다.  
 
 
먼저 <사랑의 단상>으로 왠지 친숙한 이름부터.....롤랑 바르트의 사적인 삶, 공적인 삶, 그리고 지적인 삶의 상호관계를 꿰뚫어 보는 김진영이 아니었던들, 바르트가 왜 '경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그 경계를 넘나드는 부드러운 사유(p.157)'의 철학자이며, 그의 카멜레온적 변신력과 기민한 지적 이동성이 실패자의 콤플렉스와 관련되는지의 이해를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세에 발병했던 폐결핵으로 프랑스 지성계의 중심에 진입할 수 없이 주변을 머물러야 했던 바르트, 어머니 사망 이후에는 '죽음''연민''애도'의 테마를 중심으로 사유했다니, 앞으로 롤랑 바르트를 읽게 되면, 행간에서 그의 이런 사적인 삶이 중첩될 듯 하다.
 
 
 한국근대현대문화사상 연구소의 허경 대표는 푸코를 전공한다하면 '그게 누구냐?' 묻던 1980년대와, '아직도 푸코를 공부하냐?'라는 반농담을 들었던 1990년대 중반의 한국지적풍토의 변화를 꼬집으면서, 푸코의 영향력은 유행처럼 그리 쉽게 사그라들 수도, 들지도 않는다고 한다. 'web of science'의 통계결과까지 제시하며. 나남출판사에서 번역출간해준 미셸 푸코책을 수집하여 고이 전시'만' 해놓은 날나리 독자로서 허경 대표의 푸코 해설을 읽으니, 다시금 도전 욕구에 불이 붙는다. 우선 그는 푸코에 대한 오해들 - 푸코의 사유를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포스트구조주의,포스트마르크주의 혹은 비합리주의로 보는 관점들-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스스로가 동성애 성향을 가졌던 푸코는 정상이란 오직 정상 놀이에서 승리한 지배적인 개념일 뿐이며, 사람들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진리 역시, 사실은 무수한 진리 놀이(jeux de verite)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삐딱이의 시선을 제시한다. 허경 대표 역시 우리가 '진리'라고 부르는 단어 자체가 일본어이며, 우리가 탐구해야 할 대상은 영원불멸의 절대 진리라는 허상이 아니라, 조건화된 문제틀 자체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살피는 작업이라고 덧붙인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흔히 영어의 have 동사를 사용하여, '문화를 가지다' '권력을 가지다' 권력을 잃다' 식의 경제적 소유개념을 권력에 부가하는데,  푸코에게 권력은 '주어진 상황에 존재하는 요소들 사이의 전략적 배치(에 의해 파생되는 효과)'이자 복수의 권력관계이지, 획득,탈취, 양도, 계약의 대상이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2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2
박정호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2>로 처음 알게된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이미 '남다른 시각으로 경제 들여다보기'의 일환으로 냈던 제 1권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던 이라 한다. 평소,  “배워서 남 주자!”라는 신조 아래, 강연과 자유기고로 대중에게 경제 지식을 재미있게 전하고 있다. 저자는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제 2권이, 1권과는 달리 경제원리를 삶의 깊숙한 곳에서 건드리기에 삶과 가깝다고 차별점을 둔다. 그리고 영화, 음식, 인물, 금융.....등, 경제학에 무지무관심한 대중일지라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영역에서 경제원리를 탐색하고 보여준다. 3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책 두께의 압박이 상당했지만, 쉽고 재미있어서 책장도 술술 넘어간다.
 
 
 
 
 
 
 
추측컨데 한빛비즈 권미경 에디터가 부단히 애쓴 덕분일텐데,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2>에서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챕터 제목과 소제목뿐 아니라, 본문 내용과 착착 맞아 떨어지는 비주얼자료와 역사적 사료가 거진 매 페이지마다 실려 있다.  경제학 문외한 독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흥미는 높여준다. 예를 들어, "사탕수수 노예들은 왜 저항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형 소제목 아래 실린 글에는 실제 1880년 자메이카의 사탕수수 플렌테이션 농장에서 일하는 흑인들의 사진과 플렌테이션용어 풀이를 실어주었다.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2>에서는 신문에서나 자주 보았지 일상 용어로는 거리가 있는 경제용어의 뜻풀이도 친절하게 해주다. 경제학 원리가 이렇게 생활과 닿아있구나 하는 아하(A-Ha moment)의 재미도 주고 배울거리도 주는 알찬 교과서의 역할을 톡톡 해내는 책이다.
 
 
 
사적으로 만나본 일은 없지만, 아마 저자 박정호는 요즘 소위 말하는 '융합형 인재'가 아닐까 싶다. 경제학 석사, 경영학 석사 학위 소지자로서 현재는 홍익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는 그는 영화, 문학, 시사 등 다방면에 관심을 넓게 두고 공부하는 이 답다.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2>를 읽다보면, <다크 나이트>니 <빌리 엘리어트> <클라우드 아틀라스>등의 영화며, 뭉크의 <절규>니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까지 만나게 된다. 십여년전 극장 상영관에서 <빌리 엘리어트>를 두번이나 찾아 보았던 관람객으로서 주인공 빌리네 아버지가 동료들에게 배신자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탄광으로 가는 장면에서 마가렛 대처 정부 당시 영국의 경제사를 읽어내는 박정호의 시각이 신선했다. 영화를 본 대다수는 남자인 빌리가 가난한 탄광촌 출신의 핸디캡을 벗고 백조로 날아오르는 마지막 장면에 마음을 빼앗겼을 터인데,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걸까?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2>를 읽고나서, 여름 방학 성수기의 극장을 찾았더니, CGV나 메가박스의 팝콘판매대가 다른 눈으로 보인다. 영화관의 가장 큰 수익원이 영화 입장료가 아닌 인공버터냄새 자극적인 팝콘 덕이라나! 역시나 "배워서 남주자"는 박정호 연구원 덕분에 많이 배우게 된다.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1>도 꼭 찾아 읽어봐야겟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문학, 여성을 말하다
미셸 페로 외 지음, 강금희 옮김 / 이숲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문학,
여성을 말하다 

 

 

 

 

 

 

 

언제부터인가 식을줄 모르고 하나의 문화적 키워드로 잘 팔리는 '인문학’ 열풍 영향인가. 원제 "La Plus Belle Histoire des Femmes (여성의 아름다운 역사)>를 <인문학, 여성을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였다. 무려 380여 페이지에 이르는 대담집 형식의 이 학술서의 공저자 4명 엄밀한 의미에서 인문학자로 뭉뚱그려 범주짓기는 어려울 듯 하다. 먼저, 니콜 바사랑은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 프랑수아즈 에리티에는 구조주의 인류학의 창시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수제자로서 물론 인류학자이다 (통섭의 시대에 이런 구획은 낡아보이겠지만, 굳이 이야기하자면 인류학은 인문학이라기보다 사회과학 분과에 속한다고 본다). 한 때 자크 데리다의 동반자였던 실비안 아가생스키(정작 그녀 자신은 이런 소개를 달가워하지 않을 듯 하지만)는 철학자이자 작가,  미셸 페로는 미셸 푸코와 함께 연구를 했던 역사학자이다.

*

 
*

 

<인문학, 여성을 말하다>를 독해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서 이 4명의 학자를 관통하는 공통분모를 찾아볼 필요가 있었다. 니콜 바사랑,프랑수아즈 에리티에(1933년생),실비안 아가생스키(1945년생),미셸 페로(1928년) 모두 프랑스의 대표적 지식인으로서, 투쟁으로서의 여성의 역사를 일깨우고 또 쓰고자 한다. 정치학, 인류학, 역사학, 등 세부 전공 분야는 다르지만 이들 모두 철학에 탄탄한 지적 초석을 두고 있다. 게다가 이 4명 모두 여성, 그것도 대중적 시선으로 말하자면 중년 혹은 노년의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공통분모는 철학에 문외한이고, 더군다나 (억압받고 평가절하되어온) 여성의 역사에 미처 눈 뜨지 못한 독자에게 대단한 도전으로 다가온다.

공적 영역(public sphere) VS 사적 영역(domestic sphere), 여성의 재생산력( reproduction)과 자연에 묶인 여성의 종속적 지위의 보편성, 여성의 가사노동에 얽힌 논쟁 등은 이들이 1920~40년생이라는 사실도 다시금 환기시켜준다. <인문학, 여성을 말하다>에서는 "여성이 정말 제 2의 성으로 역사 속에서 주변화되어 왔는가?"란 질문의 예스, 노(yes/no)를 구하지 않는다. 여성의 종속적 지위는 보편적인 사실로 전제하고 있기에....이들의 관심은 그 종속적 지위가 어떤 문화적 기제로 생산, 강화, 그리고 당연시 유포되어 왔는가, 나아가 어떻게 여성의 지위를 복원하여 '혼성' 사회를 이룩할지에 있다.

이들의 주장은 '프랑스식 추상적 보편주의 환상(p111)이라는 비판도 받지만, 그들은 잘라 말한다. 남성 중심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양성의 중요성을 거부하고 남성의 문화적 우위성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추상적 보편주의를 파기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

4명의 학자들은 성불평들의 기원을 원시사회에서부터 더듬어보기도 하고(레비 스트로스의 수제자 답게, 프랑스와즈 에리티에는 신화에서 답을 찾아보려한다), 서양 고대철학 전통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유교 문화권에서의 남존여비 사상에 더 친숙한 한국 독자들에게는 익숙치않은  틀이기는 하지만, 새로쓰는 여성 역사라는 보편적 과제에 대해 사명감은 공유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허기사회 - 한국인은 지금 어떤 마음이 고픈가 아케이드 프로젝트 Arcade Project 2
주창윤 지음 / 글항아리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서적 허기(emotional hunger)’라는 용어를 알고 나서는, 오래된 초콜렛 탐닉 습성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었다. 초콜렛으로 달래려는 것은 생리적인 배고픔이 아니라, 바로 정서적 공허나 갈망이라는 각도에서. 탐식증 환자들을 치료하던 정신의학자 로저 굴드가 탐식의 기저에 도사린 무기력증을 지적하면서 제기한 개념이 바로 정서적 식욕(emotional eating)’이었다. 주창윤 교수가 우리 시대 한국 사회에서 진단해낸 증상 역시 빈 밥그릇의 허기(p.10),’ 정서적 허기처럼 채워지지 않고 더 큰 허기를 야기한다.

한국인은 지금 어떤 마음이 고픈가라는 비유적 부제를 단 <허기사회>는 학술 무브먼트아케이드 프로젝트시리즈의 두번째 권이다. ‘박사논문은 쓴 자와 커미티 멤버들만 읽는다라는 농담이 나올만큼, 상아탑 내에서만 생산될 뿐 대중에게는 거의 노출될 기회도, 공론화될 기회도 없는 수천 수만편의 논문들.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은 소프트한 감성의 제목을 단 편집서나 번역서로 출간되어 대중을 달래준다. 정작 인문학 출판사들은 이런 타협에서 문사철의 결기가 흐려짐을 통감한다. 그래서 나온 학술무브먼트가 바로 아케이드 프로젝트.’ <허기사회>를 읽고 나니, 이 총서 시리즈가 세 자리 수로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주창윤은 2012년 발표했던「좌절한 시대의 정서적 허기: 윌리엄스 정서의 구조 비판적 개념의 적용」이라는 학술논문를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취지에 부합하게 공론화의 가능성을 열도록 다듬었다. 저자는 우리 시대 한국 사회의 성원들이 공유하는 상호주관적인 마음들, 정서에 주목한다. 정서가 문화의 패턴파악에 유효한 단서라면서. 그는 우리 사회의 경제적 결핍이 초래하는 관계적 결핍의 현상들(p13)”, 빈 밥그릇의 허기를 사회과학자의 눈으로 분석한다. 그가 파악한 허기 사회의 구성물은 퇴행적 위로’, ‘나르시시즘의 과잉,’ 속물성에 대한 분노이다. 각 구성물은 <허기사회>의 각 챕터를 이룬다. 학술용어와 다양한 학자들의 논의까지 끌여들여 소개하고 있는 고밀도의 사회과학서이지만, 흥미롭게 술술 읽힌다. 글항아리 출판사의 세련된 편집도 가독성을 높이는데 한 몫했다.


학술논문도 대중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편집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페이지들.


각 챕터를 간단히 소개해보자. 1퇴행적 위로, 잘 팔리는 문화적 코드로서의 힐링이나 스낵컬처가 대중에게 정서적 위로만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위장된, 퇴행적 위로라고 본다. 탈역사와 탈정치의 매커니즘이 작동하여 주체성을 사회와 역사안에서 찾는 대신, 나약하기에 위로받아야 하는 개인만을 남기기에.

2장에서는 모방 욕망을 자극하여 희생양을 만들고 이상적 자아와 일상적 자아를 분열시키는 나르시시즘의 과잉을 이야기한다. 인류학에서 많이 논의되는 르네 지라르의 희생제의 개념을 타진요(타블로의 학력을 의심한 이들), 슈퍼스타 K등 친숙한 예로 흥미롭게 분석해놓았다.

속물성에 대한 분노라는 소제목을 단 3장에서 주창윤이 이야기하는 분노는 개인의 심리적 반응이라기보나는 집합적 문화 반응이다. 김홍중이 속물지배 snobocracy’라 규정한 MB정권 시대는 정의의 기억을 소환시켰다. 대중의 나꼼수열광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된다.

마지막 4장은 배제와 과잉으로 허기사회의 맥락을 밝힌다. 둘다 어려운 관념어이지만, 이 시대 한국 사회의 비극적 호모 사케르였던 용산참사 희생자,’’ 쌍용차 노조원’ ‘MB정권의 4대강 사업과정에서 사망한 인부들을 하나씩 언급하면 그 추상은 분노할 현실이 된다. 주창윤의 해석에 따르면 이들은 규율사회의 제도들을 유지하는 데 방해되는 생명이므로 배제(p.74)’되었다. 권력으로부터, 그리고 대중으로부터.......

우리 사회의 과잉상태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혁명과 떼놓고 설명할 수가 없다. 데이비드가 진단하듯 현대 사회는 과잉연결 (overconnected) 상태에 놓여있다. 과잉연결은 아이러니하게도 관계의 결핍을 동시에 의미하며, 우리 시대 우울증, 자살, 퇴행을 낳는다. 주창윤은 4장에서 수 페이지를 할애하여 한병철의 <피로사회>의 논의를 자신의 논의와 변별시키는데, 이 지점은 <피로 사회>를 읽어본 후에 다시 음미해야겠다.

이 분야 문외한의 일반독자로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파트는 바로 에필로그의 게릴라되기.’ 주창윤은 사냥꾼의 시대에는 모두가 사냥꾼이라는 바우만의 주장을 살짝 틀어서, ‘노련한 일부 사냥꾼들만이 사냥꾼의 대열에서 행복을 맛본다(p.93)’며 그 대열에서 이탈한 이들이 어떻게 게릴라 전법을 구사할 수 있는지를 호기롭게 이야기한다. 게릴라가 되려면 권력의 허위를 무너뜨리는 게릴라 담론을 생산(p.97)’할 소명을 다해야 한다. 어렵지 않다. ‘나꼼수’ ‘잡년행진’ ‘토크콘서트’ ‘촛불시위를 떠올려보라.

<허기사회>의 마지막에서 주창윤이 허기사회의 지독히도 아름다운대안으로 제시한 눈부처의 상생은 솔직히 생뚱맞게 관념적으로 들린다. 사회과학자로라기보다는 1986년 시단에 등단한 시인으로서의 주창윤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눈부처 주체는 불의와 세계의 부조리에 저항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면서도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주체(p.102)를 말한다. 내가 세상을 너무 까칠하게 보는 걸까? 눈부처의 상생이 참으로 멀리있는 신전처럼 느껴진다. 신성할만큼 아름다운 대안이지만 감히 접근하기가 어려운.....아무도 남을 돌봐주지 않는 사냥꾼의 시대, 그래도 눈부처의 상생을 꿈꾸는 눈부처 주창윤. 적어도 그의 <허기사회>가 게릴라 담론 생산의 밑거름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욕망을 디자인하라 - 디자인은 어떻게 확신을 창조하는가
정경원 지음 / 청림출판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욕망 디자인하라
*
한 분야에 30년을 투신해온 전문가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사실,디자인이라는 분야에 문외한이었지만, 30년을 디자인에 헌신해온 정경원 교수의 이력에 혹해서 책을 읽게 되었다. 한국에서 디자인 경영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는 그는 한국디자인진흥원장과 서울시 디자인서울 총괄본부장을 지낸 경력에, 다양한 수상경력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학자로서의 탄탄한 이론과 풍부한 현장경험을 토대로 저술활동에도 매진하여, 베스트셀러인 를 비롯 많은 저서와 다수의 논문을 내왔다.
*
정경원 교수의 2013년 신작, <욕망을 디자인하라>는 격변하는 시대의 생존전략으로서의 디자인의 가치를 다시 일깨우고, 현시대 디자인의 핵심이 단순히 심미적인 필요를 넘어 욕망의 충족에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욕망을 디자인하라>를 통해서 디자인 지수를 높이고 "Good to Great"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욕망을 디자인하라>를 집필했다고 한다. 즉, "창조적 디자인에 숨어 있는 영감을 공유하기 위해(p.15)"서.....이처럼 독자를 고려해서인지 이 책은 전문 용어나 개념을 많이 등장시키면서도,다양한 사례와 정경원 교수의 디자인 철학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쓰였기에 재미있게 읽힌다.
*

총 3장 구성의 이 책의 1부에서는 디자인의 본질과 가치를 역사 속에서 맥락화해주고 있다. 먼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하에, 디자인을 미술과 기술의 융합을 도모하는분야에 놓는다. 이어, 아날로그 시대와 대비해 디지털 시대의 디자인을 살피고 왜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이 주목받는지를 설명한다. 2장에서는 디자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인간과의 교감'으로 놓고, 이를 '배려' '나눔' 그리고 '치유'의 키워드로 설명한다. 사실 '디자인'이 먹고 살만한 부유층, 디자인을 소비하고 국가적 사업으로 장려하는 부유국가에게 더 의미있으리라는 편견이 있었는데,'히포 워터 롤러 hippo water roller'등 물부족 지역에 사는 이들을 위한 물통 등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
2부 "디자인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다"는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를 보완한 장이라고 한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가장 재미있게 술술 페이지가 넘어가는 챕터가 아닐까 한다. 패션모델들이 신기를 아예 거부했던 극악무도의 30cm 킬힐 '아르마딜로 구두'에서, 라시드의 우피 의자, 0.1초만에 에어백으로 변신하는 스카프, 날개 없는 선풍기 air multi flyer, 실켄 푸에르타 아메리카 마드리드 호텔 등을 소재로 정경원 교수의 전문가적 지식과 디자인 철학을 녹여낸 글은 참 재미나다. 학술적인 부분에 관심이 적은 이라면 <욕망을 디자인하라>의 2부부터 읽으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로.
*

*
*
3부는 제목을 "Good desgin is good business"라는 전 IBM회장 토머스 왓슨 주니어의 말을 인용하여 지었다. 정경원 교수가 <포춘코리아>에 연재했던 디자인 경영 사례를 중점적으로 소개하면서, 국내외 주요기업들이 디자인을 통해 어떻게 경영혁신을 추구하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현재 세계 최대의 IT Solution회사로 변신하며 승승장구중인 IBM을 비지니스의 변화에 부응하여 디자인 경영의 혁신을 이룬 훌륭한 사례로 제시한다.
*

*

브랜드 가치 세계 1위의 코카콜라의 경우 'C가 강조된 스펜서체 로고'와 '다이내믹 리본'으로 탄산음료의 경쾌한 느낌을 전한다. 글로벌 기업 코카콜라는 비즈니스의 도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시스템디자인으로 유명하단다. 국내 기업의 예로서는 삼성전자야 워낙 유명하다 하겠지만, 현대카드의 활약이 놀라웠다. 2011년에는 미국산업디자이너협회가 수여하는 국제우수디자인상에서 금상을 수상했을 뿐더러, 서울시에 버스 환승센터를 기부했다고 한다.
*

*
정경원 교수는 "디자인하지 않으면 쇠퇴한다"는 제목의 후기에서,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최단의 지름길로 디자인을 예견했다. <욕망을 디자인하라>가 개인, 기업, 나아가 국가까지 풍요롭게 해주는 창조적 디자인의 힘을 대중에게 인식시키는 멋진 디자인 입문서로 많이 읽혔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