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페터 슬로터다이크 지음, 이덕임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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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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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지적 풍토, 독서열기는 한국과 어떻게 다르길래? <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원제: Rage and Time: A Psychopolitical Investigation) > (2017[2006])가 "유럽 철학 에세이 분야 베스트셀러"라 한다. 80여쪽의 서문만 거듭 읽으며 활자의 늪에서 헤매는 우매한 독자로서는 '베스트셀러'가 시사하는 높은 가독률이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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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철학자이자 문화 이론가인 페터 슬로터다이크 (Peter Sloterdijk 1947~ )는 '분노'를 키워드로 서구의 역사를 새롭게 조망한다. 2017년 한국 사회에서 분노는 '분노조절장애'니 하는 개인 차원의 '욱' 수준으로 평가절하되지만, 저자에 따르면 분노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발전의 원동력이자 변화를 이끄는 중추 동력이었다. <일리아드 Iliad>의 인용으로 시작하는 <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의 첫 장에서는 영웅 서사시에서 분노를 칭송하는 것이 곧 당대 사람들이 분노를 가치 있게 여겼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하지만 분노가 가진 순수한 힘은 길들여지고, 현대에 이르면서 사람들에게 역으로 '망설임'이 권위이자 미덕으로 내면화되었다고 한다. 페터 슬로터다이크 교수는 이처럼 분노가 개발되고 관리되는 단계는 거의 2000여년 전에 시작, 지속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을 본문에서는 "사육화된 분노(32)"라고 표현하는데 '사육'에 해당하는 원어가 궁금해진다.
'분노의 사육화' 관점에서 보면, 20세기의 폭력은 '분출된 것'이 아니라, 폭력의 대리인들이 자신들의 사업적 기준에 맞추어 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대상을 통제하고 관리한 결과 (56), 즉 기획된 폭력이다. 분노는 증오의 문화를 통해 기획된 형태로 구현되는데 (117), 예를 들면 복수가 그러하다. 분노가 은행 형태로 축적되면 하나의 프로젝트로서 역사적 행태로 변모한다 (123). 성숙되지 못한 분노가 지엽적으로 표출되면 도리어 비난을 받는다. 따라서, 분노 자산을 낭비하지 않고 낡은 것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세계 혁명'의 동력이 될 수준으로 축적하려면 기다릴 필요가 있다.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증오와 분노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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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의 티모스적 역동성에 대한 이해, 즉 사회 심리 체계에서 분노에 대한 연구는 현실적으로 차단되었다고 본다. (45) 그러나 21세기 전반부도 대규모의 갈등으로 뒤덮이리라 예측하기에, 우리는 우리 시대의 분노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라는 어젠다를 붙들고 있어야 한다.(60) 이 작업을 바로 페터 슬로터다이크 교수가 하는 셈이데, 그 스스로는 이 작업을 "전 세계적으로 작동되는 분노은행 건설과 관련된 연구관찰(266)"이라고도 칭한다. 이 작업을 위해 저자는 유럽지성사는 물론, 경제학, 정신분석학, 역사, 인류학, 정치학 등을 넘나들며 자료를 제시하기에, 나같은 무지한 독자는 뇌에 당분이 많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그의 논의가 난해한만큼, 독창적이어서 흥미롭니다. 특히 축적된 분노를 운용할 귀중한 자본으로 해석하는 점이 흥미로운데, 그에 따르면 분노은행은 정당이나 정치 운동, 특히 좌파적 정치 스펙트럼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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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전 세계적 관점을 지닌 분노의 수집 장소가 없다(336)"는 점이다. 분노가 고립되고 분산되어 이전 시대처럼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전망이다. 미래 세계에서도 분노는 공산주의의 보편적 집단적 형태로 결집되지 못할 것이다. (418) 안타깝게도, 교활하고 은밀하게 작동하는 신자본주의의 삶의 방식에서는 "분노와 반체제적 에너지"가 결집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운동성도, 이론적 구심점도 상실된 상태에서 언론과 TV가 '행복'이라는 환타지로 사람들을 눈 멀게 했으니 분노가 결집될 수가 없다. 급진적 행동주의라는 면에서 공산주의와 유사한 면이 있는 이슬람주의 역시, 세계화된 자본주의 국가 안에서 보편적 반체제 집단의 역할을 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415) 미래 사회에서 분노가 공산주의의 보편적 집
그렇다고 <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가 분노의 전복력을 부정하는 책은 아니다. 마치는 글에서 페터 슬로터다이크 교수는 그가 희망하는 '세계 문화'를 제시한다. 그것은 "보복의 형이상학과 그 정치적 반향을 적절한 수준의 성찰로서 깨부수는 포스트 일신교적 문화 (421)," "문화 상호주의와 트랜스 문화적 균형을 갖추고 반권위적인 부드러운 도덕성에 바탕을 둔 실력주의이자, 뚜렷한 규범적 양심과 양도불가능한 개인의 권리에 대한 존중의 문화," "스스로를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인칭 시점에서 건설된 합리성의 문화 (42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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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이야기가 있는 집" 측에서 이 책을 주인공이 "분노"인 소설에 비유하며 강력히 권한다. 어려워도 포기말고 공들여 한장 한장 읽다보면 독자가 세상을 보는 시선에 변화를 맞을 것이라고. 절대 동감한다. 꽤 어려운 독해였지만, 희열이 대단하다. 특히 4부 '중심에서 분리된 분노'와 마치는 글인 '적대감을 넘어서'는 읽고 다시 또 읽으며 속뜻을 음미하고 싶어진다. 마지막으로 이렇게나 어려운 철학에세이의 번역을 해준 이덕임 번역자에게 고마움의 인사와 동시에 아쉬움의 말을 남기고 싶다. '문화 상호주의,'니 '분노의 사육화' 등 용어 중 일부 해설이 필요한 단어는 독자를 위해 언어를 병행 기재해주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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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의 주제와 모티브는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의 <역사의 종언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1992) 와의 가상대화에서 비롯되었다 (76).  "후쿠야마의 창의적인 통찰력은 외부로 뻗어가는 문명의 전쟁 에너지가 종식된 바로 그 순간에 자유세계 시민들 사이의 특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과 질투로 가득 찬 투쟁이 역사의 무대 중앙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성공적인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시민들은 항상 자유롭게 흘러 다니는 불만족의 물결에 젖을 수 밖에 없다고 이해한다. 인간은 티모스적인 불안의 에너지에 시달리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81)" 물리적인 전쟁은 끝난 듯 보여도, 형이상학적 전쟁은 불가피.  "과거의 세상에는 노예와 농노, 시대에 대한 불만을 품은 양심의 소유자들이 있었다면 현대 사회에는 패배자 (Verliere)들이 있다.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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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이 패배자에는 '외모지상주의Lookism'라는 종교에 빠져, 얼짱 외모를 과잉 보상의 충분조건으로 생각하나 정작 자신은 외모로서는 수입을 기대할 수 없는 이도 해당한다. 페테 슬로터다이크 교수는 더 시니컬하게 나아가 '보통 사람'을 재정의하는데, "진보된 자본주의에서 과잉 보상으로부터 제외된 이 (368)"라고 콕집어 명쾌하게 말해준다. 분노가 가진 엄청난 전복 에너지를 인식하지도 못한 채, 급진적 무관심과 극단주의적 권태에 빠진 이야마롤 어쩌면 보통사람일지 모른다. 페터 슬로터다이크 교수는 무기력과 무관심에 젖어 있는 보통의 독자, 뒤통수를 확 친다. '거대한 숫자'는 의미가 있다고. 연합해서 집단적 이익을 위한 행동에 나선다면 강력한 당파가 될 수 있다고.

2016년 광화문 광장과 대한민국 전역을 달군 촛불집회의 열기가 바로 그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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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와 살고 있습니까? - 가족의 틀을 깬 놀라운 신상 가족 밀착 취재기
tvN 〈판타스틱 패밀리〉제작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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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당신은 누구와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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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1999), <바람난 가족> (2003) 등의 영화뿐 아니라 <마요네즈> (1997) 등 소설에서 "가족의 해체" 내지는 새로운 유형의 가족 등장을 뜨겁게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이상적 엄마상과 아빠상, 이상적 가족상에의 환상이 펑펑 터져 나가고 "가족 = 사랑 = wild world로부터의 안식처"라는 안전한 공식이 깨지자 독자와 관객들이 당황한 듯 보였다. 없던 사실을 허구로서의 소설과 영화가 만들어내서가 아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모두 알지만 차마 말하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하는 데 당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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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자식은 노후 보증수표, 보험"이라며 전통적 효 孝 가치를 들이미는 어른도 드물겠거니와 역으로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은 엄마아빠"라는 모법담안을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많지 않다. 심리서, 육아서에서 가족이야말로 지워질 수 없는 상처의 원인일 수 있다고 역설한다. 가족과 함께 부대끼며 살기보다는 혼자서 더 행복한 사람들이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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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다큐멘터리 <판타스틱 패밀리>가 바로 "신 新 가족주의"의  날 것 그대로를 담아 냈다.  창사 10주년 특별 프로그램으로 기획 1년에 취재 1년을 더해 공을 들인 데다가  가족 및 시민을 무려 600여 명이나 인터뷰하여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이다. <당신은 누구와 살고 있습니까?>는 4부 구성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어낸 결과물이다. 제작진은 "가족은 핏줄"이라는 전통적 가족관이 흔들리다 못해 "가족의 변화가 어쩌면 '이 지경'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비참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과 가설에 대해 고민 (5)"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반려 로봇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는 사람들''이 결정적 제작 계기였다고 한다. 함께 지내던 로봇 강아지의 부품이 수명을 다하자 천도재를 지내고 나머지 부품들을 인간이 장기기증하듯 다른 로봇에게 기증한 사람들이 있다.  실제 제작진이 찾은 가족은 로봇과 유사가족(그들의 내부적 관점에서는 정통가족일) 으로서 깊은 애착심을 보이며, "로봇의 수명이 다하더라고 곁에 늘 두겠다"고까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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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부 다큐멘터리를 활자화한 <당신은 누구와 살고 있습니까?>의 2부는 LAT (Living Apart Together) 가족을 다룬다. 이 생소한 용어는 서로의 가치관과 취향을 존중해 따로 살지만 부부생활을 유지하는 가족을 말한다. 맥시코의 국민 화가 부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가 그랬듯이.

그 외 2부에서는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라는 생각을 비웃듯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소개한다. 대표적 예로  반려동물에게 사람과 똑같은 의미를 부여하여 가족원으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팸팻족"이나, 자발적 비혼족, 사제 師弟가족 등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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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에서는 프랑스, 영국, 한국, 일본 등 세계의 다양한 가족을 밀착 취재한다. 고령화가 진행 중인 유럽과 일본 한국에서 특히 심각하게 사회문제화되는 'Tanguy족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캥거루족 혹은 패러사이트 싱글)'을 주로 다루었다. 자식 다 키워놨는데, 자립 못한 자식이 부모 품에서 떠나지 못하며 부모에게 양가적 감정을 안겨주는 사례가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청년 실업, 고용 불안정 문제가 날로 심각해질 한국 사회에서 앞으로 더 크게 다뤄질 이슈이기에.
4부에서는 좀 생소하게도 "부모 자식관의 상처가 대물림되는 가족"을 집중 케이스로 낱낱히 해부했다. 다른 가족에 비해, 제작진이 가장 깊이 들어가 가족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말로 표현되는 이면의 보이지 않는 갈등과 심리적 고통까지 해석해낸 장이라고나 할까. 완벽을 추구하는 부모 밑에서 열등감과 억눌림에 시달렸던 일본 남성이 한국 여성과 국제결혼 한 후, 자기 자식에게 똑같이 억압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제작진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4부를 읽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가족 = 사랑, 부모 = 영원한 안식처"라는 생각에 대놓고 도전하는 챕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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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도 고백하듯, 한정된 제작비와 제작 기간 안에 양질의 컨텐츠를 만들어내기란 참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많은 가족들을 밀착 취재하고 또 그 내용을 사회문화적 변화 양상 속에서 해석해낸 제작진의 대단한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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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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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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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국에서 초판 번역본이 나온 이래, 무려 54쇄까지 찍어낸 필독교양서 <생각의 지도 (원제The Geography of Thought:The Asians andWesterners Think Differently and Why> 를 이제서야읽어 본다.  중국에서 유학온 중국인대학원생의 다소 도발적인 지적, 중국인은 순환적 사고를 하는데 교수님은 (서양인 특유의) 직선적 사로를 하신다, 에 자극받기도 했거니와 여러 사회과학 문헌들을 섭렵하다 보니, 인간인지과정 보편론자로서의 생각에 변화가 왔다고 한다. 이후, 저자 리처드 리스벳 교수가 몸담고 있는 미시간 대학뿐 아니라 베이징 대학, 교토대학, 서울대학에서 교차 실험 연구를 하면서 동양인과 서양인 사고과정의 차이, 그기원을 밝히는 시도를 하고 있다.


본격적 논의에 앞서 저자는 독자의 오해를 사지 않도록 용어에대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동양' 이라 할 때, '동양'으로 지칭되는 문화의 다양성을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고밝힌다. '동양' '서양'이라는범주어도 단순한 이분법의 발로가 아니라, '평균적' 차이를고려하여 편의상 썼다고 한다.

"왜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과정이 다른가? 기원을 어디서찾을 것인가?"의 문제의식에 대한 답으로 저자는 고대 그리스와 고대 중국 철학의 풍경을 독자에게펼쳐 보인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강한 신념으로 자유와 개성, 사물의 본질을 중시하는 특징을 지닌다. 그 증거로 저자는 영어 어휘에서추상 형용사를 '-ness' 접미사를 통해 명사화시키는데 반해 중국어에서는 추상 명사접사가 없음을 지적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개인의 자율성보다는 집단의 자율성과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중시했다고 한다. 그 예로, 음양 이론, 침술, 풍수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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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동양의더불어 사는 삶, 서양의 홀로 사는 삶'에서는 미국과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사례를 끌어와 동서양의 자기 개념(self-concept)을 비교한다. "당신에 대해 말해 보시오."라 하면 여러분은 어떤 서술을 할지? 북미인들이 성격형용사나 행위 위주의 서술을 한다면, 한중일 3국 사람들은 타인을 언급하거나 타인과의 관계지향성을 드러내는 서술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자아, 내집단, 외집단간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사회심리학 실험을 예로 더하고 있는데, 미국인과 한국인에게 볼펜을 마음대로 골라 가지라 했더니 한국인들은 가장 무난한 색을 대부분 골랐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국인은? 가장 희귀하고 튀는 색의 볼펜을 골랐다. 멀리 이 실험까지 가지 않고, 우리나라 고속도로를 생각해보자. 무채색 계열의 무난한 차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다면 캘리포니아의 프리웨이 위를 달리는 차량의 색은? 저자는 이런 일상의 예가 독립성(independence)을 강조하는 서양과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을 강조하는 동양의 사고과정 차이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연구 사례도 2장에서 소개되었는데, 경영학자 제프리 산체스 버크스가 이끈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영자의 속마음을 읽어내는 데에 피실험자였던 미국인보다 한국인이 더 뛰어났다고 한다. 저자는 타인의 감정을 신경쓰며 자라온 데서 그 이유를 찾는다.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아이들이 밥을 남길 ˖, "농부 아저씨가 너가 밥 남기면 얼마나 속상하시겠니?"라고 타인의 감정을 언급하지 않는가?


동양인은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상호의존적 단서들을 통해 끊임없이 상호의존적인 사람이 되도록 유도(점화)되어 있고, 서양인들은 독립적 단서들을 통해 독립적인 사람이 되도록늘 점화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1)

보다 상호의존적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보다 독립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하는 사회적존재 방식이 세상을 보는 방법을 결정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오늘을 살고 있는 동양인들은 개인의 힘보다는외부의 힘을 중시하는 집합주의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사회에 살기 때문에 외부환경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반면에 서양인들은 개인주의적이고독립적인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보다 분석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고 환경보다는 사물자체에 많은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82)

상호의존성과 독립성이라는 단어는 3장에서도 대조군처럼 계속 등장한다. 동양인은 배경, 즉 맥락을 고려하며 전체를 보는 성향이 강한 방면 서양인은 사물 그 자체를 독립적으로 분석한다는 주장은 반복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심리학 사례가 다양하고 참신하다.

4장, "동양의 상황론과 서양의 본성론"에서는 1991년 실제 발생했던 총기난사 사건을 사례로 같은 사건에 대해 미국인과 중국인이 어떻게 다른 해석을 내리는지 소개한다. 미국인은 총기 사건의 주범의 성격적 결함에 주로 주목하지만 중국인은 가해자의 상황적인 요인을 더 고려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인다. 마찬가지로 스포츠 게임에 대한 가쉽에서도 미국인은 주로 개별 선수의 능력으로 경기 결과를 파악하는 반면, 동양인은 팀워크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한다.

리처드 리스벳은 5장에서 "문화적 차이가 언어적 차이에 기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책 전반에 걸쳐 기술하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인지적 차이와 언어적 차이 사이에는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이 있다는 말과 아울러. 가까운 예로 우리 국어 교육을 생각해보자. 초등 고학년이 되어서도 일기장에 '나는' 이라는 주어를 쓰면 '꽤나 유치한' 어린이 취급 받으며 우리는 좋은 문장에서 주어 '나는'을 생략하기를 권고받는다. 반면 행위의 주체를 자신으로 두고 사고하는 영어권에서는 언어에서 주어에 집착한다. 비가 온다를 영어로 it's raining이라 하지 않는가?

<생각의 지도>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장을 꼽으라면, 6논리를중시하는 서양과 경험을 중시하는 동양”을 들고 싶다.  저자 리스벳 교수의 제자이자 번역자인 최인철 교수는 문화적 차이를 증명하기 위해 한국인과 미국인 참가자를 대상으로 모순관계에 있는 진술들을 제시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1. 많이 알면 알수록, 더 믿게 된다. 2 많이 알면 알수록, 덜 믿게 된다.의 두 가지 진술에 대해 한국인 참가자들은 놀랍게도 1에 동의했더라도 2진술에 동의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한다. 비약하자면 동양인들은 서양인에 비해 모순에 보다 호의적이며 변증법적 사고를 한다고 볼 수 있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서양인이 either/or로 사고할 때, 동양인들은 both/and로 사고하는 경향이있다는 것이다. 사고법의 차이에 대한 이런 가설이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더 점 보는 걸 좋아한다'는 진술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인이 일관되게 긍정 혹은 일관되게 부정인 진술을 신뢰한다면, 동양인은 모순 관계에 있는 진술에 더 융통성 있기 때문에 점장이의 점괘에 호의적이라는 것이다.

7장과 8장에서는 "서양과 동양 사고 방식의 차이, 그 기원은?"과 "누가 옳은가?"의 질문은 던진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까지 언급하는 7장에서는 사고의 차이를 생태환경의 차이 수준에서부터 검토한다. 쌀 농사가 중심이 되는 농경 사회인 고대 중국에서 협력이 중요했던 반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무역이 성행했기에 집단주의가 상대적으로 약했고, 이렇게 다른 사회구조가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다. 물론 사고의 차이를 낳는 것은 생태환경 외에도 경제적 이유나 종교적인 이유도 있다는 설명도 잊지 않는다. 8장에서는 언어, 몸에 대한 접근, 법률, 경영, 계약에 대한 태도, 종교 등의 면에서 동양과 서양인의 인식 차이가 어떻게 벌어지는지를 보인다. 8장에서 던진 "누가 옳은가?"에 대한 질문은 에필로그에서 답하는데. 리스벳 교수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과 서로 존중하며 중간쯤에서 수렴될 것이라는 견해에 동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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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들려준 이야기 - 인류학 박사 진주현의
진주현 지음 / 푸른숲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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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들려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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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산 글로벌 인재의 삶을 엿보는 것은 행복이다. <뼈가 들려준 이야기>를 읽으며 몇 번이나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물론 책 내용이 너무나 흥미로웠던 이유도 있지만, 저자 진주현 박사의 진솔한 성품과 열정에 감복해서였다. 일반인을 주 대상으로 집필하긴 했어도 꽤 전문적인 내용인데, '저자의 삶'에 감동받았다고 하면 진주현 박사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지만 진심, 그녀의 삶이 아름답다. 90년대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닌 그녀는, 자신의 뼈와 맺은 인연을 사적인 에피소드들로 소개한다. 고등학교 신입생이었던 청소년 진주현은 강남역 노래방을 갔다가 교통 사고를 당해 팔골절을 겪는다. 이후로도 2번 더 뼈가 부러지고 다시 붙는 과정을 경험했다는 개인의 이야기를 뼈에 대한 기본적 상식에 녹여 소개하니 문외한 독자의 귀에도 쏙쏙 와 박힌다. 서울대학교 고고학과에 입학한 그녀는 전공과목 숙제로 <최초의 인간 루시>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뜨거운 그녀는, 아프리카 올두바이 계곡으로 필드를 떠난다. 학부생으로서 말이다. 이미 1, 2학년 때는 온두라스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필드 스쿨을 다녀온 그녀인지라 먼 대륙, 이국 땅에서도 잘 적응하며 뼈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처럼 당차고 똑똑한 그녀에게 한국고등과학재단은 해외유학을 지원했고 그녀는 인류학 박사 학위를 따고 현재 하와이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기관(DPAA)에서 근무하고 있다.

 

 

 

 

 

 


  2차대전 당시 실종 미군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는 본업 외에, 그녀는 뼈와 관련된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그 전문적 식견을 제공한다. 타고난 학자이자 에너자이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인류의 진화를 공부하며 받았던 억울한(?) 비난에 대한 해명에, 비타민 D결핍증에 대한 현대한국인들이 새겨들을 만한 피부색 관련 이야기. 고고학 발굴 이야기, 공룡뼈 밀수 사건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 놓는다. 동시에, 해외 여러 기관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면서 한국에서 뼈 연구에 투자는 커녕 그 가치조차 몰라준다고 학자로서 쓴소리와 충고를 해준다. <뼈가 들려준 이야기> 단연코, 우리 인간 종에 대해 알고 싶은 독자라면 놓치면 아까운 수작이다! 너무 재밌어서 지하철 왕복 5시간이 지루한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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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록 정치적인 음식들 - 음식으로 들여다본 글로벌 정치경제
킴벌리 A. 위어 지음, 문직섭 옮김 / 레디셋고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알수록 정치적인 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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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제목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든다. <알수록 정치적인 음식들>이라 하니, 왠지 알야야만할 것 같고, 음식 문화의 정치경제적 접근에 익숙한 독자일지라도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는 의욕을 자극하니 말이다. 더군다나 <알수록 정치적인 음식들>의 원제인 <From Jicama to Jackfruit: The Global Political Economy of Food>에 등장하는 히카마(Jicama)니 잭푸르트(Jackfruit)란 과일은 한국인 독자에게 낯설기에 직역한 제목으로는 저자의 의도를 심상화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저자 킴벌리 A. 위어(Kimberly A. Weir) 교수는 노던 켄터키 대학 정치학과에서 '음식의 정치학 (the Politics of Food)'이란 이름으로 개설하여 수년 간 진행해온 국제관계론강좌를 <From Jicama to Jackfruit: The Global Political Economy of Food>으로 펴내면서 음식을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파악하고자 했다. 위어 박사 스스로도 이 강좌를 꾸려오면서 강의가 책으로 나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해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유익하고 매력적인 자료를 대학 강의실에서만 소비하기란 아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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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속 과일이 바로 원제에 등장하는 Jicama와 Jackfr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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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특정 식재료나 음식의 계보를 추적하는 역사적 접근도, 조리법이나 영양학 강의도 아니다. 제목 그대로 현대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음식재료를 실타래 삼아, 음식의 생산· 유통 · 소비 과정 이면의 세계정치경제의 흐름, 즉 경제정책과 자본주의, 식민지정책,상호의존성, 개발문제를 풀어나가는 시도이다. 식량 생산에 동원되는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아동노동 문제, 기아와 비만 등 건강 불평등 문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협하는 식량 생산의 문제 등은 자칫 추상적이고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당장 나 먹고사는 데 아무 지장을 주지 않는데 왜 그런 문제의식을 가져야 해?'라며 반박할 예비독자가 많을 것이다. 이에 저자 위어 박사가 취한 영리한 전략은, 대중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식재료인 향신료, 콩, 토마토 그리고 참치 등을 키워드로 성공적인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쏟아낸다. 물론 우리 일상과 닿아 있는 먹거리 소재로 이야기하니 귀가 솔깃해지고 읽기에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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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시작해보자. 최근 비만은 '글로베시티(Globesity)'라고 불릴 정도로 지구적 이슈로 떠오르른데 이는,  비만이 비단 북반구(GN) 아니라 남반구(GS)에서도 사회적 재앙으로 대두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비만인구의 증가가 단순히 의지력 결여, 단맛의 탐닉이라는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음식공급시스템이라는 상호연관된 커다란 돔 아래서 이해할 구조적인 문제로 해석한다. 즉, 비만의 세계화는 거대 식품회사가 이윤을 확대하기 위해, 식재료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칼로리는 높으나 영양가는 없는 음식들이 대량 생산되고, 사람들이 이를 편리함이나 주머니 사정을 이유로 대량 소비하면서 가속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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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당초 음식공급사슬은 '불공평함'과 '위험요소'를 함축한 체계이다. GN과 GS로의 경제적 세계 분할은 비단 21세기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 식민주의, 제국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니 말이다. 대탐험의 시대 시나몬, 후추 열매, 정향 등의 향신료야말로 세계 경제 질서를 새롭게 개편시킨 촉매제 역할을 했고, 이런 불균형의 흐름은 현재까지 이어진다. "카카오를 재배하는 농민은 대부분 자신이 경작한 작물로 만든 초콜릿을 맛본 적이 없다. (131쪽)"라는 본문의 한 구절이 불평등함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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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세계 4대 곡물 중 하나라는 콩과, '채소냐 과일이냐'의 논쟁을 일으켰던 적이 있던 토마토를 예로 들어, GM 음식과 유기농 농법에 대한 솔직한 견해를 밝힌다. 놀랍게도 저자는 '무조건 유기농'의 사고가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생태계에 유해할 수 있다고 본다. 유기농법을 고수하려면 더 많은 물, 토지, 그리고 노동력이 필요하며 그렇게 생산한 유기농 식품으로는 전 세계 기아인구를 모두 구제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알수록 정치적인 음식들>의 마지막 장에서는 '참치'를 소재로 '공유지의 비극,' 즉 자칫 재앙으로 치달을 세계환경문제를 이야기한다. 참치처럼 장거리를 이동하는 어류는 공공재로서 세계적으로 협력하지 않는 이상 멸종에 이를만큼 남획하게 된다. 어획량할당제도(Total Allowable Catch)나 참치 양식 등 국제사회의 다양한 노력이 있지만, 대중의 인식 변화와 실천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가까운 미래에 참치는 식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단지 참치의 문제만이 아니라, 참치를 천적으로 삼는 해파리의 습격이 더 심해질 것이고, 해양 식량 자원은 엉망이 될 것이다. 결국 상호의존, 상호연결된 세계에서 음식을 둘러싼 각종 문제는 너의 문제가 될 수 없고, 국경을 넘어 공영의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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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알수록 정치적인 음식들>는 저자 위어 교수가 대학 강의하며 수강생 에세이 과제로 내주었을 연습문제와 단원 정리 문제, 생소한 식재료를 소개하는 책 속의 책 페이지가 있어 제대로 활용할 여지가 많기에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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