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대출을 선호하는 미니멀리스트 성향 때문에, [전쟁 같은 맛 Taste Like War]을 떠나보냈다. 다 읽은 책을 반납하면서 이렇게나 아쉽고 서운하기도 처음이었다. 사실 저자 그레이스 M. 조는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을 찾아 책 홍보차 찍은 인터뷰 영상을 통해 이미 보았다. 지성미와 우아미가 조화를 이룬 중년 여성이었다. 하지만 [전쟁 같은 맛]의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 내가 느꼈던 '그레이스'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애처로워서 위로해 주고 싶은 어린 딸이었다. 저자에게는 죄송하지만, 심지어 [전쟁 같은 맛]을 읽고 가장 강력하게 뇌리에 남은 문장 중 하나가 그녀가 박사논문 심사 과정에서 심사위원에게서 들었다는, "논문을 진행하기에는 정신 상태가 안정적이지 않은 학생(?)"이라는 혹평이다. [전쟁 같은 맛]에서는 그 교수의 발언을 기득권 백인 남성 교수의 오만인 양 그렸지만, 그레이스 M. 조의 가족사와 학문적 이력의 연결고리를 살펴보면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

우선 저자가 여성학과 사회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 박사학위라는 학력자본 위에 교수 지위까지 취득하게 된 경위에는 학문적 열망보다는 가족사라는 실존적 문제를 성찰하려는 욕구가 크게 작동했다. 그레이스 M. 조는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올케에게서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된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양공주'라는 이름으로 기지촌에서 일하다가 미국인 남성을 만나 결혼했는데 그가 바로 그레이스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뻘 되는 미국인 남편을 따라 워싱턴에 정착한 어머니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매력(형형한 눈빛, 보조개, 늘씬한 몸매, 숱 많고 탐스러운 머리칼 등등), 부지런함과 강인함으로 딸 아들을 위해 열심히 산다. 남편의 폭력으로 코 뼈가 부러지기도 하고, 백인 주류 사회에서 '전쟁 신부'라는 멸칭을 들어가면서도 꼿꼿하게 허리 펴고 두 발로 서기 위해 고전분투한다. 산에서 고사리와 버섯을 채집하고 야생 블루베리를 따서 팔면서 지역 내 자신의 존재감을 드높였다. 저자의 어머니는 20세기 만연했던 미국 내 아시안 혐오에 굴하지 않고 백인들의 요리를 배워 만찬을 베풀며 백인 사회에 녹아들려 애쓰면서도, 마을의 한국 입양아들에게 김치를 먹이며 거두었다. 정작 어머니 당신은 요리에 정성과 시간을 쏟았으나, 딸만큼은 요리가 아닌 공부로 미국 사회에서 우뚝 서기를 바라면서 딸을 응원했다. 그레이스의 어머니는 학력, 계급, 인종, 국적, 어느 패에서도 우위에 서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선택지는 적었지만, 이처럼 당당하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40대에 그녀에게 조현병이 발병하면서 세상과 단절된 채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였다. 저자는 어머니의 조현병 원인을 단순히 생물학적인 데서 찾는 것이 아니라, 아시안 이민자, '전쟁신부'와 '양공주'라는 낙인이 찍혀 한국과 미국 두 나라 모두에서 어머니가 감내해야야만 했던 차별과 멸시와 연관해서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찾아보려 한다.




사실 [전쟁 같은 맛]은 초반에 기대치를 한껏 부풀렸다가 결말 즈음 관객을 허망하게 만드는 블록버스터 트레일러적 속성도 가졌다.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자극적인 소재들이 연달이 터진다. 교수 직종의 사람들에게 엄숙한 권위를 기대하는 한국 독자를 놀래며 사회학자 그레이스 M. 조는 10대 시절 마약을 하고 성폭행 당했다는 고백, 성별 상관없이 애정을 느끼고 끌렸다는 커밍아웃, 아버지와 어머니가 성매매 시장에서 단골관계로 맺어진 사이라는 점, 변비로 고생하던 아버지가 관장약을 잘못 써서 크리스마스 날 온 집안에 똥을 뿌려 놓았다는 에피소드 등을 배치한다. 나는 저자가 훈련받은 사회학자인만큼, 후반부로 가면서 질곡 큰 개인사가 학문적 외피를 입고 해석되는 결말을 기대했다. 하지만, 책 결말 부분에서 저자는 4~5살에 만났다는 이마 한가운데에 (총)구멍이 뚫린 여자아이 귀신을 소환하고, 어머니께 요리해 드렸던 고등어 찌꺼기의 비린내를 묘사함으로써 여전히 '특정 감각, 혼란스러운 감정 상태'에 사로잡혀 있다는 인상을 (적어도 나에게) 남겼다. 비록 온화한 우아미로 미소 짓고 학자로서도 왕성히 활동 중이지만, 그녀 안에는 여전히 가족사로 인한 중독이 해독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그녀가 내놓을 다음 작품에 벌써부터 기대가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한숨 깊게 뱉고 나면, 그 뒤에 이어질 '거리 두기 distancing'은 그녀의 글을 한 층위 위로 올려다 놓을 테니까.














[전쟁 같은 맛], 이 책 너무나 좋다. 읽으며, 특히 초반 부에서 몇 번이나, '아!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 하고 싶었던 공부의 결이 이거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왜? 좋았는지를 설명해보는 건, 내가 발 내디딜 방향을 아는데 중요하다.


첫째, 나는 사회과학적 질문의 시발은 개인적 화두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자기 자신, 자신을 둘러싼 관계와 처한 상황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에서 물음표가 생겨났다면, 치환 가능한 주어를 찾아 물음표를 확장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레이스 M. 조의 경우, 한국전쟁 이후 격동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디아스포라 가족의 형성과 형태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으며, 그로 인한 고통을 개개인이 감내하지만 여전히 문제의 근원이 사회적인데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를 잠식한 조현병을 어머니가 인종주의가 만연한 이민 사회와 맺는 관계 속에서 해석한다.


둘째, "음식과 먹기"를 키워드로 방사형 이야기 풀기를 선호하는 나로서 [전쟁 같은 맛]은 [파친코]에 이어, '김치'의 상징성을 재발견시켜준 멋진 텍스트이다. 저자가 육신을 잃은 어머니의 존재를 추모하는 방식은 주로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배치함으로써 이뤄지는 데, 머나먼 타지인 미국에서 고사리나 콩국수가 어머니께 불러일으킨 향수, '쑥갓'을 '쑥'으로 '고등어 세 손(마리)'를 '세 개'로 말하는 이민 2세대 딸의 실수, 조현병을 앓으며 방 안으로 칩거해 들어간 어머니를 식탁으로 불러낸 환갑 축하 한국 요리 등등. 그레이스 M. 조는 요리와 음식을 통해서 국가, 민족, 가족,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추억이 물질화되고 정서가 강력하게 환기되는 모습을 그려냈다.


셋째, 나는 그레이스 M. 조처럼 수위를 높인 솔직함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설령 솔직해진다 할지라도, 그 경험이 그레이스 M. 조의 것처럼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 배치했을 때 다른 이에게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내 경험을 해석할 때 필요한 명확한 한 줄짜리 질문을 나는 품고 있는가?


넷째. 실험적 글쓰기.

[전쟁 같은 맛]은 그레이스 M. 조가 조현병으로 생을 마감한 어머니를 추모하며, 한국전쟁의 생존자들, 한인 디아스포라와 한인 2세대의 정체성 등을 사회학적 이슈를 회고록 형식으로 풀어낸 실험적인 글이다. 학문적 글쓰기와 고백을 느슨하고도 아름답게 결합시켰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

[전쟁 같은 맛]은 저자의 어린시절, 학창시절, 그리고 석사와 박사 프로그램을 거쳐 논문을 완성하는 지난한 과정을 개인사와 연결해 조각조각 보여준다. 포기해도 수치가 되지 않을 법한 상황에서도, 포기를 모르고 내달렸고 집중했던 그녀의 뒤에는 못 배운 한인 이민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한을 딸에게 투영하여 딸만큼은 떳떳하고 당당한 삶을 살기를 원했던 어머니가 계셨다.


[전쟁 같은 맛] 덕분에 2023년 7월의 마지막 날, 내가 선 자리와 내디딜 발의 방향을 재점검해 봤다. 좋은 책, 고마운 작가님이자 선생님 그레이스 M.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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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8-01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전 기사에서 이 책 소개 봤는데 얄님 뽐뿌에 사서 방금 받았네요!!! 땡투 날려 드렸습니다 ㅋㅋㅋ먼저 읽으시고 자세히 분석까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8-01 17:52   좋아요 2 | URL
저도 땡투 날려드리고 싶은데 얄라님 글 못 찾겠어요.

얄라님 100자 평이라던가 글에 책 수록 해주세요ㅠㅋ

얄라알라 2023-08-02 07:23   좋아요 1 | URL
아웅!! 저도 열반인님처럼 고런 고런 말좀 쓰고 싶어요.
뽐뿌가 또 뭐래요^^ ㅎㅎㅎ예쁜 단어네요.저는 땡투만 아는데...감사합니다 ㅎ

기세를 몰아 영문으로도 읽고 싶은데 책 욕심 좀 자제해야겠죠?^^ ㅎ

열반인님, 어떻게 읽으실지 혹은 읽는중이실지 엄청 기대됩니다!!! 열반인님 스타일루다가 리뷰가 올라올테니, 어떤 관점에서 보실까?^^ 기다릴게요

레삭매냐 2023-08-01 17: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쌩뚱 맞지만, 전쟁 같은 맛은
어떤 맛인지 궁금하네요.

저도 미니멀리즘을 추구...
하고 싶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8-01 19:05   좋아요 0 | URL
스포일러지만 배급 00맛 어머니는 00가 싫다고 하셨어...(기사에서 스포당함 ㅋㅋㅋ)

얄라알라 2023-08-02 07:24   좋아요 0 | URL
하하하...
*
추구......

그리고 줄바꿈하셨어요 ㅋㅋㅋ
**
어쩜 좋아요 ㅎ

자목련 2023-08-02 08:40   좋아요 0 | URL
저도 궁금합니다.
전쟁 같은 맛!

고양이라디오 2023-08-01 1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래 문단도 얄라님이 쓰신 거지요?

얄라님 덕분에 좋은 책 알아갑니다. <전쟁 같은 맛> 읽어보겠습니다!

얄라알라 2023-08-02 07:27   좋아요 0 | URL
고양이라디오님께서도 함께 읽어주신다니
저~~~엉~~말 좋습니다.
[종의 기원]은 내년쯤으로 미루고 ㅎㅎ이 책부터

나중에 리뷰 올려주시면
거기서 시작해서 또 같이 비슷한 책 찾아볼 수도 있겠네요.

감사합니다요!

독서괭 2023-08-02 1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얄라님 책 소개 읽으니 정말 흥미로워요. 가정사가 엄청나네요...
궁금하여 담아갑니다^^

얄라알라 2023-08-03 01:07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

300번대 책 좋아하는 저는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도 300번대 책인줄 알았는데
문학으로 분류되어 있더라고요.

그 정도로, 소설적인 재미도 대단합니다. ^^

poiesis 2023-08-02 14: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논문 초록과 계획서 같은 글에 기분이 얼얼합니다.
알라알라님의 삶과도 긴밀한 독서 저널 같아 귀하게 읽었습니다.
상기와 더불어 사유의 폭을 넓혀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3-08-03 0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arlos de las Piedras, CC BY 2.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2.0>



한 젊은이가, 인도에서 일본 부토butho 춤을 추다 접신 된 후 "페미니스트 + MZ 세대 비건+ 무당"으로 전업했다고 자기 광고를 했다. 독특한 이력에 끌려서, 그가 썼다는 [신령님이 보고 계셔]를 출간 직후 읽었다. 2021년 9월 썼던 메모는 지금 다시 봐도 흥미롭다. 동시에 현대화된 샤머니즘, "성스러움과 속"의 뒤엉켜듬 등등 물음표는 점점 많아진다. 


















*"무당"이라는 명칭과 "무당다움"에 대하여: 가족의 전폭적 응원 아래 "전업무당"직을 수행하고 있는 홍칼리의 아버지가 조언을 하셨더랬다. "칼리야, 너는 무당말고 샤먼이라 해야 해. 서양의 엘프 같은 이미지로 나가면 좋겠다." 홍칼리는 다시 질문 던진다. 왜 무당을 무당이라 부르지 않고, "만신님, 보살님, 샤먼"이라 하지? 왜 한복 입고 작두 타고, 돼지머리 공물 올리고, 혼령에 빙의됨을 "무당다움"의 표상이라 생각하지?


* 홍칼리가 자신을 페미니스트 무당이라 칭하는 이유: 직업무당 선언 이전에 그녀를 격렬히 괴롭힌 것은 남자친구의 배신, 언어폭력, 임신중절수술 등이었다. 홍칼리는 '손님' 관계로 만나는 많은 여성에게서 고민의 비슷한 변주를 들어왔다고 한다. 특히 데이트 폭력을 당하면서도 폭력에 길들여진 여성들을 많이 만나며 홍칼리는 이 경우만은 예외적으로 타인의 인생에 깊숙하게 관여했다 했다. "점집이 아니라 경찰서에 가세요. 두려움 없이 혼자서 빛나세요."


*편견: (1) 홍칼리는 스님이 되고 싶었다. 사찰을 찾아 상담받았으나, 타투가 있어 거절당했다. "타투가 있으면 세속적으로 보인다"라는 이유였다고. 타투 있으면, 머리 염색하면, 종교수행 못하나? (2) "식신"이 여성에게 있으면 "자식 복이 많다'라고 해석한다고 한다. 반대로 같은 사주가 남성에게 있으면 "예술적 창의성을 표현하는 기운"으로 해석하고. "상관"이라는 격이 남성에게 있을 땐 "승진 운, 취업 운"으로 보는데 여성에게 같은 "상관"이 보이면 "남편 잡아먹는다. 이혼 수가 있다"라고 해석해왔다. 홍칼리는 점사 "해석"에서 가부장적인 "편견"을 지적한다.


*이중구속: 이후, 점을 보러 다니던 홍칼리는 "신내림을 받아야 풀린다"라고 종용 받았다. 단, 2500만 원 헌납금 必! 홍칼리 왈, 여성 무당 중에는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희생을 당하다가 직업 무당의 세계에 들어온 경우가 많다 한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적 약자에게 수천만 원의 신내림 비용을 요구한다면? 그렇게 신내림을 받아 '신제자'가 되었을 때, 비뚤어진 도제관계 안에서 상징적 폭력을 당한다면? 홍칼리는 관행에 문제 제기를 한다.


*결정장애는 진정 현대인의 병인가?: [신령님이 보고 계셔] 읽다가 소리 내어 웃었다. 손님 중에는 "책상을 사려하는 데 동그란 걸 살까요? 네모란 책상을 살까요?" // "네모가 안정적이에요." // "그럼, 책상은 원목이 좋을까요? 철제가 좋을까요?"라고 묻는 이가 있어 홍칼리도 상담하다가 웃었다고 한다. 어떤 손님은 연애 운 상담을 와서 "데이트할 때 카페가 맞을까요? 음식점이 나을까요?"를 "아파트 10층에 사는 게 좋을까요? 6층이 더 좋을까요?"를 물어 오기도 한단다. 여기까지만....


3년 차 무당으로서, 다른 무당들의 삶이 궁금했던 홍칼리는 동종 계열의 6인을 인터뷰하여 얇은 책을 냈다. 주로 홍칼리 본인과 개인적 인연이 있는 친분관계의 무당인듯했다. 평소 내가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항상 흥미롭다. 키워드 위주로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를 정리해 본다.


※ 정치와 종교, 그 얽힘에 대하여: 홍칼리는,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거나 사회운동을 하는 무당에게 쏟아지는 싸늘한 시선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다는 오해에 기반한다고 본다. 책에 수록될 6인 인터뷰이 역시, 굿판을 매개로 사회로 신호를 보내는 무당들을 선택한 듯하다. 예를 들어, 만신 김금화의 조카인 김혜경 무당은 많은 나라굿-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천안함 사건 등등 굵직한 비극에 올리는 굿-을 수행해 왔다고 한다. 광장에서 열리는 대동굿판의 사회적 치유 기능에 대해서는 이미 한국의 종교학자와 인류학자들이 연구해온 바 있다. 홍칼리가 소개하는 사례들의 독특성은, '변방의 변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굿판 확성기로 틀었다는 점이다. 그녀가, 무당인 자신과 비슷한 고민과 지향을 보이는 고객들이 주로 의뢰해 오는 경향이 있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어쩌면 자신이 '변방의 변방'에 서 있다는 동류의식이 그런 활동성을 낳는지도 모르겠다.


※ 하필 맥아더 장군!: 나는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2023)에서 "맥아더 장군"이 가장 인상 깊었다. 6인의 인터뷰이 중 한 명이었던 무당 솔무니는 한국의 근대, 맥아더 장군을 모시는 강신무가 많았다고 한다. "힘없는 민중을 달래주려고 가장 힘 있어 보이는 맥아더 장군"(123)을 소환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덧붙인다. 그렇다면, 무당은 마치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원하는 하늘의 캐릭터를 땅으로 소환해낼 수 있는 것일까? 왜 대한민국 민중의 애환을 달래주려는 데 미국인 장군이 필요했으며, 맥아더 장군의 인기는 현대에 와서 시들한가? 마치 시대마다 선호되는 이름이 있듯, 무당들이 소환하는 신들도 유행을 타는 걸까?


※ 100세 시대, N잡러, 무당에게도 해당한다!: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2023)에는 "전직무당"도 등장하는데, 실명 대신 '가피'로 소개된다. 나는 6인 인터뷰이 중에 '가피'의 생각이 가장 파격적이라고 느꼈다. '가피'는 '바리스타 하다가 어부로 업종 바꾸듯,' 일상에 변화를 주고자 무당직을 택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무당일을 그만두었을 때도, 막상 공무원 시험 붙고 일해보니 회의를 느끼듯 무당일 해보니 더 이상 흥미가 없어져져 그만두었다고 한다. 여태 나는 무당이 '되고/안 되고'의 문제는 개인의 의지를 뛰어넘는 힘의 작용으로 소개하는 프레임에 익숙했나 보다. '가피'의 N잡러 유형 결단력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 무당도 치유, 자활이 필요해!: 홍칼리는 '가피'를 '무당의 자활을 돕는 현대무당'으로 소개한다. 무당에게도 고민이 많은 데 특히, 무당들은 신이 없다고 느낀 순간 분노가 올라오면서 자신의 '신발(빨)'이 떨어졌다고 자책하는 경향이 있다 한다. 그 고민에 대한 '가피'의 조언은 '신은 외부에 없다. 그냥 신은 곧 나.'라고 충고해 준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인간을 신보다 하위에 두는 "신병/신기/신가물/신줄" 등을 다 낡은 개념인가 보다.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가피'가 쓴 글과 말에 더 노출되고 싶다.


부지런한 홍칼리 덕분에, 일반인은 접근하기 어려운 무당의 세계, 전현직 무당의 속내를 들어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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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3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3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7-23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저도 다른 삶들을 조금 엿봤습니다 ㅎㅎ

2023-07-23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3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23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3-07-23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근(?)한 무당이라는 표현보다
그쪽 업계에서도 세계화가 상당
히 진행되었는지 샤먼이라는
호칭을 선호하는가 보네요.

재밌습니다.

얄라알라 2023-07-23 18:31   좋아요 1 | URL
그러고보니, 명칭의 변화가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세계화추세와 관련될 수 있겠네요.

아래 책 41쪽에서는 세계 샤먼들의 특징을 살짝 언급합니다. 독일에서는 ˝Neo Sharman˝이라는 사람들이 기 치료를 하고, 쑥을 피우는 무당도 외국에 있다 하네요 ㅎㅎ 이 분야 공부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들었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7-26 1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세계를 책으로 접할 수 있겠네요. 재밌다고 예전에 들었던 책인데 생각난 김에 읽어봐야겠습니다ㅎ
 

코로나가 한창 기승이던 2021년 [전쟁과 농업]을 읽었습니다. 읽고 저자의 생각에 굉장히 공감한지라, 오프라인 책모임을 꾸려 보려도 했었죠(제목이 좀 딱딱했는지, 제 광고에 딱 1분 호응하셨더랬죠). 그 때 제가 적었던 리뷰는 다음과 같습니다. 



국제 무대에서 언어의 비빔밥 먹으며 살 인생도 아니고, 요즘 한국 출판계 외서 번역출간 주기가 짧아졌으니 외국어 몰라도 사는 데 지장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전쟁과 농업: 먹거리와 농업을 통해 본 현대 문명의 그림자]를 읽다가, 처음으로 '일본어'를 몰라서 안타까웠습니다. 저자인 후지하라 다쓰시 교수에게 팬레터를 보내고 싶었거든요.

*

저는 '음식과 먹기' 관련 신간은 매의 눈으로 업데이트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정작 가까운 나라 일본 학자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본 적 없다는 자기 반성을 [전쟁과 농업 戰爭と農業] 읽으며 했습니다. 교토대학 후지하라 다쓰시 교수는 식량체계와 식생활 연구를 통해 세계의 불공정한 시스템 파악하려는 학자입니다. 동시에, 인간을 길들이는 한 줌의 자본가와 시스템으로 일그러진 모래시계 자체를 뒤엎고 싶어하는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석사 시절부터 한결같이 민생기술(특히 농업기술)과 군사 기술이 얽혀 만든 블랙홀로 인간성이 분쇄되어 들어가는 과정에 관심을 두고 이 분야에서 계속 연구를 심화하고 있습니다. 다른 학자들이 상아탑 밖으로 나오지 않아 아쉽다던 다쓰시 교수는 직접 대학강단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가 일본의 풀뿌리 시민정치 활동가, 자연육아 모임, 원전난민 등 일반인 대상으로 진행한 대중강의를 엮어낸 책이 바로 [전쟁과 농업]입니다.


[전쟁과 농업] 전반부는 각각 "농업 기술," "폭력의 기술," "기아"로 20세기를 돌아보는 역사적 접근을 취합니다. 톱니바퀴처럼 각 장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데, "dual use 이중사용"이 그 연결 키워드입니다. 20세기 인구 증가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던 "농기계(특히 트랙터), 화학비료, 농약, 품종개량"이 군사기술 및 산업자본주의 세력과 어떻게 얽혀 있으며, 인간의 생 감각을 마비시켜왔는지를 시적인 우아함과 학자적 냉철함으로 분석합니다.


1. 19세기말, 트렉터가 등장함으로써 자연산 비료인 분뇨를 내지못하니 화학비료 개발을 촉진.

2. 화학비료는 마치 실제 음식 섭취가 아닌 "영양제"라는 지름길을 통해 인체에 영양 공급하듯, 즉효성 추구하는 방식으로 땅에 양분 줌.

3. 농약은 세계대전 당시 화학무기와 뿌리를 같이함. 특히 미국은 1925제네바 의정서에서 금지시킨 독가스를 자국 목화밭에 살포함. 일본은 금지된 독가스를 1930년 대만 게릴라전 진압에서 사용하였음.

4 품종개량과 친환경 식물공장의 알려지지 않았던 대가 (친환경 식물공장 운영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를 원자력발전소 통해 해결)


이 모든 기술의 기저에는 '즉효성' 극대화라는 강박이 작용합니다만, 저자는 '슬로우, 슬로우' 지효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삶의 방식, 식량생산 방식, 정치구조까지 전환해보자고 주장합니다. 추상의 차원에서 접근하면 해법이 모호해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 음식과 맺는 관계, 먹기에 부여하는 생각 자체를 유연하게 바꿔간다면 그 파동으로 '현재 불평등한 식량체계'라는 모래시계를 깨버릴 수 있을지 모릅니다. 실제, 혀로 농지의 흙을 핥아서 염분을 가늠했다는 농부를 할아버지로 둔 저자는 먹는 행위에 우주적 의미를 부여합니다.

현대 먹거리시스템에서야 편의점 방문이나 온라인 클릭 한 번으로 식품 구매에서 상상력이 종결되버린다고 저자는 안타까워합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먹기의 본래적 의미는 "인간 주도의 행위가 아니라, 우주를 몸에 관통시키는 장대한 행위 (163)"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후지하라 다쓰시가 제시한, 현시스템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는 실천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기업이 유발한 폐해에 항의하기

2. 유기농법을 상업화하여 변질시키지 말고, 시스템의 가치적 생태적 핵심으로 복원하기

3. 종자 지키기.

4. 발효식품 활성화

5. 먹거리의 대량 고속 생산, 고속 폐기를 부추기는 시스템에 대항하기 위해서 유통기한 늘이기.

자포자기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입니다.




논밭에 뿌리는 콩과식물은 '녹비'라고도 불립니다.

번개도 같은 힘을 지닙니다. 번개는 방전에 의해 공기 중의 질소를 암모니아로 바꾸어 비와 함꼐 토양에 뿌립니다...옛날 사람들은 번개가 치면 벼가 잘 자란다는 것을 감각으로 알고 있었던 게지요.

[전쟁과 농업] 35쪽


민간기술을 군사 기술로 전용하는 것을 '스핀온spin-on'이라고 하는데요...트랙터는 말하자면 '탱크의 어머니'인 것입니다.

*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기가 전부 폐기된다 하더라도 언제든 민간 기술이 곧바로 전쟁에 동원될 수 있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전쟁과 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이 시스템에 옴싹달싹 못하게 결박되어 있습니다. 이 정도로 무기, 그리고 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민간 기술로 가득한 지구에서 전쟁이 없어진다는 것은, 재미난 장난감이 널려 있는 공원에서 아이들이 장난감 없이도 놀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무명한 일이겠지요.

62쪽* 80쪽


전후(WW2)에도 굶주림은 무기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팔레스탄인에 입식한 이스라엘은 국제법에 위배되는 군사 행동과 점령을 70년 가까이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의 이스라엘에 의한 가자 지구 봉쇄와 포탄 공격은 굶주림을 무기로 삼는 잔혹한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108쪽


일본군은 병참을 등한시했습니다....아시아 대륙과 도서부, 태평양의 섬들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전투에서 일본군은 '식량은 현지에서 빼앗는' 현지 조달을 기본 방침으로 삼았습니다.

116


현재 먹거리체계의 정의는 인간이 식품을 구입하는 데서 끝납니다. 식품 기업으로서는 식품이 입에 들어가지 않아도 구입만 해주면 그만입니다...그러나 식품이 불러일으키는 피해는 입속에 들어간 뒤에 나타납니다. 이 time lag가 식품화가 품은 문제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155



식사와 배설은 사실 동일한 행위의 경과를 드러내는 말일 뿐입니다.

...

교육 현장에서는 식사와 배설을 이러한 관계성 속에서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배설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158, 159


농민의 지식은 추상이 아니라 구체입니다...벼농사를 생업 삼았던 할아버지께서는 흙을 핥아 염분을 가늠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각은 기계나 화학의 발달과 함께 점점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흙을 핥는 감각에서 멀어져도 농업을 경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좋든 실든 그것이 20세기 농업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3


인간은 생물이 교류하는 세계를 모험하는 주체라기보다는 생물의 사체가 통과하고 또 많은 미생물이 서식하고 있는 하나의 취약한 관이라는 것. 요컨대, 생명이 변화하는 과정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데에서 존재의 기반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 기반을 전제로 시스템을 꾸리는 것, 결과를 재촉하는 세상에서 사는 것만이 인간의 유일한 양식이 아닙니다

...

'음식을 먹는 것'이 위장에서 끝나지 않는 영원성과 순환성을 가진 현상인 이상, 인간은 타인이나 다른 생물과의 즉흥적인 상호작용 속에서밖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지효성이 즉효성을 앞서는 시스템이야말로 살기 좋은 시스템이 아닐까요?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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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2023-07-21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읽기 모임에서 읽어봤는데, 농업의 자본주의 발전과 전쟁을 일본사를 통해 잘 분석했다는 점에서 저도 추천합니다.

페크pek0501 2023-07-21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많은 공부가 될, 멋진 책이네요. 저도 이런 책을 좀 읽어야 한다는... 장바구니에 담겠습니다.^^
 


읽으랴 쓰랴 바쁜 6월, [셰임 머신]이 달콤한 후식처럼 유혹적이어서 메인 메뉴를 밀쳐 두고 먼저 손이간다. 100자평은 다음과 같다.

*

부럽! 하버드대 수학 PhD로서 학계와 월스트리트에서 이름을 날렸던 데이터 과학자가 직업 칼럼니스트 이상 글도 잘 쓰다니, 이 다재다능함은 뭐람?

*

케시 오닐(Cathy O'neil)의 [대량살상 수학무기 Weapons of Math Destruction](2016)은 무려 80주나 amazon 베스트셀러에 머물렀을 정도로 영향력과 인기가 컸다. 6년 만에 나온 [셰임 머신 The Shame Machine: Who Profits in the New Age of Humiliation] 역시 저자의 직진형 사회비판과 솔직한 자기성찰, 데이터 전문가로서의 해박함과 필력을 감추지 않는다.

GRuban, CC BY-SA 4.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via Wikimedia Commons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서문 읽다가 덮고, 저자가 얼마나 뚱뚱한지 궁금해서 구글 검색하기도 처음이었다. 왜냐하면 서문에서 저자는 거의 평생 따라다닌 비만 수치심(shame)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기 때문이다. 고학력자인 자신과 마찬가지로 수학 박사이신 부모님과 최상류층에게만 허락된 뉴욕 부촌에 살아왔지만, 캐시 오닐은 비만 수치심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낮은자존감과 자살충동도 경험했다. 하지만, 그녀는 문제의 본질을 심층 분석하는 수학자답게 개인적 경험에서 나아가, 오늘날 수치심이 혐오를 조장함으로써, 사회를 계급화하고 데이터 산업의 몸집을 불려주는 먹이로 활용된다는 통찰력을 보인다.


Shame machine

수치심은 돈이 된다


[세임 머신] 1부에서 저자는 비만, 약물(마약) 중독, 빈곤, 그리고 외모를 빌미로 수치심을 유발하고, 그 수치심에 혐오와 비하의 의미를 더함으로써 이익을 내온 산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예를 들어, 현재 미국에서 마약중독 재활사업은 350억 달러 규모로 성황이다. 그녀는 사회가 유도하는 각종 '질병-비만, 중독, 악취증, 히키코모리 등등'과 그 질병에 찍는 '낙인'은 어떤 이익집단에는 돈벌이가 되는 현실에 차갑게 분노한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

혐오를 조장하고 확산한다


[셰임 머신]이 흥미로운 이유는, 여타 '뚱뚱함의 고해성사'나 '비만인의 before & after'를 보여주는 여타의 책처럼 수치심을 개인적 차원의 정서 상태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데이터 과학자로서 캐시 오닐은, 인간 심리와 본성을 간파한 알고리즘이 혐오를 조장하고 확산시킴으로써 수치심을 사회통제 도구로 활용한다고 주장한다.

수치심 네트워크는 우리를 부지런히 끌어들인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사회구조에 균열을 내고, 그때마다 잠깐씩 고양되는 기분을 느끼며 옹졸한 권력감이나 분노, 복수심 같은 감정에 중독된다. 우리는 나한테 관심을 주는 듯한 소규모 커뮤니티에 상주하며 과도한 감정에 몰입하지만, 그 감정을 기계적으로 자극하는 허술한 시스템은 눈치채지 못한다. 그 시스템은 바로 영속적으로 굴러가는 수치심 머신이다. (154쪽)



무기로서의 수치심

Punch Up!


달랑 300여 쪽의 책 한 건이지만, 내가 활자로 느낀 캐시 오닐이라는 인물은 세 아들의 엄마이자 건강한 시민으로서의 상식, 지식 전문가로서의 소명의식, 호불호가 명확하고 감추지 않는 황소의 뚝심, 꺾이더라도 굴하지 않는 저항정신을 지닌 멋진 사람이다. [셰임 머신]의 1부와 2부에서는, 대중이 잘 모르던 수치심 산업이 눅눅한 지하의 곰팡이처럼 현대사회의 공동체와 사람들의 정신을 좀 먹고 있음을 경각시키는 데 주력한다. 비판과 각성하라는 촉구만으로 끝내지 않는다. 3부에 와서는 그 수치심 자체가 사람들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역발상으로 보여준다. 즉, 수치심 기계가 사회를 계급화하고 정서를 조정하고,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쳐왔다면 (punch down), 역으로 그 수치심을 활용해 정의를 복구하는 무기 삼을 수 있다고 독자들을 고무시킨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 나이지리아의 촛불 집회, 2020년대 Me T00 운동 등 구체적인 실례와 함께.

더 살만한 세상을 위해

수치심 머신을 해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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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 2023-06-12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알라님 책소개 감사합니다.
수치심의 비즈니스화 꼭 읽어봐야겠네요~^^

얄라알라 2023-06-13 09:24   좋아요 0 | URL
Conan님 오랜만이십니다^^

저는, 알고리즘이니 빅데이터니 하는 걸 전혀 모르지만, 이 책은 그쪽의 전문지식 없이도 무척 흥미롭게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었어요. 저자의 넓은 시야 덕에 많이 배웠답니다.

Conan님께서도 나중에 후기 올려주시면 보러 갈게요^^

초란공 2023-06-12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저자분 신간이 나왔나 보네요~! 교묘한 알고리즘으로 먹고 사는 기득권 세력들이 결코 달가워하지 않을 인물일 듯 합니다. ^^ 그래도 업계 전문가로서 내막을 정확하고 비판적으로 알려주는 인물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얄라알라 2023-06-13 09:26   좋아요 0 | URL
네네, 맞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특히 Punch Up 파트에서, 저자의 과감성에 존경의 맘이 들면서도 놀랐어요

심지어 본인이 오래 살아온 뉴욕 상류층 동네 사람의 실명을 거론하면서까지 논의를 촉발하는데
뒷감당에 대한 부분....소심한 저는 걱정이 되는데, 이분은 강하시더라고요. 자기 주장 펼치는 데 주저함이 없고...


배경에서 나온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하며 읽었답니다. ˝다행˝이라는 초란공님 말씀에는 절대 공감하고요^^

좋은 하루 시작하시어요

고양이라디오 2023-06-1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량살상 수학무기> 재밌게 읽었는데 신간이 나왔나보네요. 재밌을 거 같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3-06-13 10:13   좋아요 1 | URL
<대량살상..>은 책으로는 아직 못봤는데, 저자가 워낙 강연을 많이 해서 자료가 많더라고요.

고양이라디오님! 저는 <셰임 머신>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다른 책들 읽을 거 많은데, 우선순위 무시하고 이 책부터 읽었을 만큼요 ㅎ

고양이라디오님, 항상 느끼지만 진짜 다양한 분야에 손을 대시고 또 좋아하시니 저도 책 친구로서 묻어가니 좋습니다요!

<종의 기원>이후, 저희는 ㅋㅋㅋ함께 읽기 이야기도 안 꺼내고 있는 상황이네요. ^^

고양이라디오 2023-06-13 17:23   좋아요 1 | URL
<종의 기원> 읽어야 되는데... 올해도 못 읽겠네요ㅠㅠ

저도 주말에 <셰임 머신> 도서관에서 빌려보려고요ㅎ

제가 보기엔 얄라님이 다양한 분야에 관심 많으신듯요ㅎ 제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들도 많이 읽으시고요ㅎㅎ

함께 읽기... <종의 기원>의 벽에 막힌 걸까요ㅠㅠㅋ?

페크pek0501 2023-06-13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산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 주는 점,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 나이지리아의 촛불 집회, 2020년대 Me T00 운동 등 구체적인 실례와 함께˝~~ 흥미롭네요.
셰임 머신, 에 관한 글이 요즘 많이 올라오네요. 검색 들어갑니다.^^

얄라알라 2023-06-13 11:59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미국인이다 보니, 미국 사회 자잘한 예시도 자세하게 알려줘서 저는 도움을 받았어요^^

4월에 나온 책 같은데 요새도 글이 많이 올라오나 보네요^^ 좋습니다

페크님의 리뷰를 기다리는 것으로^^

유수 2023-06-13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셜 딜레마 다큐에서 이분 인터뷰 재밌게 봤는데 책 찾아 볼 생각을 못했네요. 얄라알라님 페이퍼에 올려주신 저자 사진 덕분에 연결됐어요!! 궁금한 책이었는데 수치심을 역으로 활용한다는 게 특히 흥미로워요. 읽어봐야겠어요. 소개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3-06-13 12:54   좋아요 1 | URL
딜레마 다큐? 제목이 소셜 딜레마인가봐요
저야말로 유수님 덕분에 새로운 탐구거리를 가져갑니다

Punch Up, Punch Down의 느낌을 제가 이 부족한 페이퍼에서 살리지 못했는데
역으로 수치심이 약자의 무기, 혹은 대중의 펀치 업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저항의 가능성을 저자가 실례를 들어 보여주었어요. ....흠.. 제가 책이 넘 재밌어서 비판하지 않고 술술 읽었는데
다시 읽는다면 그 ˝Punch Up˝에 대해서도 고민할 지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정작 책은 반납했는데 마지막 3부를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유수님 덕분에 드네요

han22598 2023-06-18 0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쉐임 머쉰이라...진짜 현대 소비문화를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인 것 같아요. 이 책 장바구니에 담아뒀어요...감사합니다. 리뷰해주셔서!!!

얄라알라 2023-06-25 15:4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an님, 셰임머신을 장바구니에 담아두셨다니, 반갑습니다.
저는 수학자인 저자가 사회비평을 쉬운 언어, 설득력 큰 예시로 해주니 참신하고도 이 책이 참 재미있었어요.

han님 혹시 리뷰올리셨으려나, 놀러가봐야겠네요^^
 

SF소설가 엘리자베스 문은 [잔류 인구 Ramant Population]에서 가방끈 짧은 할머니, '오필리어'를 통해 Ph.D 소지자들을 관찰한다. 이들이 문자와 데이터라는 상아탑에 갇힌 나머지 오감으로 흡수할 수 있는 삶의 충만함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관찰하고오필리어는 이들에게 경멸과 측은지심을 보낸다. 이런 관점은, 1940~60년대 미국 텍사스에서 교육받아 온 저자의 자기 반성일 수도 있다. 혹은 자폐증 아들을 키워 온 어머니로서, 정상성만 강조하는 제도권 교육이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어떻게 닫아버리는지에 대한 성토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 문은 오필리어의 입을 빌려서, 수평적이고 능동적인 배움이 얼마나 아름다운 과정인지를 독자에게 일깨워준다. "돈(학원비, 과외비, 등록금.... 촌지)"을 매개하지 않아도 잘만 굴러가는 수평적 배움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보여주는 문장을 [잔류인구]에서 옮겨본다.

아! 나 엘리자베스 문, 많이 좋아하나 봐.


 매개하지 않아도 잘만 굴러가는 수평적 배움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보여주는 문장을 [잔류인구]에서 옮겨본다.




오필리어는 자식들이 질문했을 때 화가 났던 모든 순간을, 괴동물의 선을 넘는 호기심에 화가 났던 모든 순간을 떠올렸다. 그런 식으로 자기 자신도 윽박지르며 살아 왔다. 배울 수 있었던 온갖 것을 배우지 못하게 막았다. 그래야 한다고 믿었던 때도 있었다. 아이들이 시간낭비를 하게 둘 순 없다고, 필요하 것만 가르치지 않으면 결코 규율을 익히지 못할 거라고. 그는 기억 속에서 환한 얼굴을, 반짝이는 눈을 봤다. 열의에 찬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또한 떠올렸다. 아이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그토록 왕성하던 호기심과 열의가 소극적인 복종의 틀 속에 들어가버린 것을. 단념해야 했던 만큼 많이 혹은 적게 시무룩해져서.

[잔류인구] 368쪽



나 역시 오필리어처럼 괴동물(행성 원 거주 생명체들)이 충족될 줄 모르는 왕성한 호기심을 가지고, 오필리어의 냉장고 성에를 가지고 놀 때 가벼운 짜증을 느꼈다. 비인간 종족이 인간의 배설과정을 궁금해 할때 "교육받은 짜증"을 느꼈다. 마치 교실에서 암묵적인 금기어와 금기행동을 어긴 학생에게 그러하듯. 오필리어가, 정확히 무엇을 아쉬워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잔류인구] 덕분에 2023년 대한민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공부"의 협소한 의미와 가능성을 열어주는 "배움(터득함)"의 의미를 비교해 보게 된다. 닫혔다면, 다시 여는 노력이라도 해야겠다.




21c 대한민국에서 "공부"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학교, 기관, 학원, 수업료, 강사, 선생, 기출문제, 경쟁, 무한 반복, 효율성, 선생. 규율, 합격, 선행.

* * * 

오필리어가 비인간 생물체들을 통해 알게 된 '배움'의 키워드는? 호기심, 열어놓음, 주종이나 위계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에서 이뤄짐. 스스로 자신의 선생님. 즉 (가르칠 대상이라는) 목적어가 필요하지 않음. 서로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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